• 몽당숟가락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33]"왜 우리는 아직도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나요?"
        2013년 05월 22일 12: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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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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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제가 제주를 떠난 지 벌써 사십여 년이 되어 가네요. 조랑말 떼에 물 먹이러 명이동까지 왕복했던 시오리길이 아득했듯, 이제 꿩알 서리나 삼동 따먹다 가시에 찔리던 일들을 파편쪼가리처럼 맞춰야 겨우 기억하는 세월이 흘렀네요.

    그런데 내 어린 시간 속에 깨진 질그릇과 몽당숟가락은 아직도 온전하답니다. 가족을 모두 4․3 때 잃고 삯일로 연명하시던 동네 할머니도 아직 계시고요. 할머니가 내밀었던 밥숟가락을 실명한 한쪽 눈의 고름 때문에 외면했던 기억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답니다.

    형님, 처음 아름다운 풍광은 잠깐이었고 다음 만져진 제주의 속살은 무섭고 애처로웠지요. 물심부름하며 지나치던 동굴을 들여다보면 몸서리치게 낯선 시간들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지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참 이상했지요. 동굴 옆을 무심히 오가게 되었을 때 멀게 느껴지던 한라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고, 애꾸눈 할머니의 식은 밥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먹었을 때 오름들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게 나를 보듬는 것 같았지요. 텃세하던 세찬 바닷바람도 오랜 친구의 농담처럼 무심하게 받아 넘기는 여유도 갖게 되었지요.

    어느 날 동굴의 오래 묵은 시간을 걷어 내고 내가 몽당숟가락을 쉽게 집어 들 수 있었을 때, 나를 괄시하며 함부로 돌담을 넘어 애를 먹이던 조랑말 무리들이 얌전해지기도 했지요. 나도 제주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지요.

    나중에 형님이 4․3 때 사람들이 토벌을 피해 숨어들었던 동굴이라고, 더 깊이 들어가 사람 뼈도 본 적이 있노라는 얘기를 해줬었죠. 큰어머니는 말뼈다구지 사람 뼈는 아니라고 나를 안심시키고는 형님에게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기도 했었지요. 그때가 칠십년 대, 그 난리 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쉬쉬했었지요. 상처의 가해자는 모두들 폭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영화 '지슬'의 동굴 속 주민들의 모습

    영화 ‘지슬’의 동굴 속 주민들의 모습

    형님, 저는 작년에 강정을 다녀왔습니다. 자주 왕래하던 큰집에 알리지 않고 형님에게 안부 전화도 안 드리고 강정 사람들과 제주의 갓길을 걸었습니다.

    동굴 속의 몽당숟가락을 집어 들듯 강정을 보고 싶었습니다. 걷다가 사십여 년 전에 따먹던 삼동나무가 있나 찾기도 했었지요. 그러다 북촌 너븐승이 돌무덤들을 보고 서우봉에 올랐을 때 물 먹이던 조랑말 눈처럼 낯익은 바람을 만났지요.

    바람이 온전히 제주의 것이듯 구럼비도 온전히 제주의 것이어야 하며 어떤 이유로도 평화를 해칠 수는 없다며 잘 왔다고 나를 강정으로 떠미는 것 같았죠.

    형님, 지금 제주는 봄기운이 완연하겠지요. 그러나 해마다 사월이 오면 한라산은 또다시 무거워지고 바다는 뒤척이는 날이 많아지겠군요. 바람의 장탄식도 길어지겠지요. 4․3항쟁 때 제주민을 학살하던 군경의 배후가 미군정이듯 지금 강정을 갈기갈기 찢어내고 뼈를 끊어 내는 고통의 원인이 미국이기 때문이겠죠.

    강정 사람들은 자신의 평화는 자신들이 지키고 싶답니다. 해군기지 반대한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무능한 아비를 둔 자식들처럼 죄 없이 매 맞는 것인가요. 무릎 꿇고 손 모아 비는 것인가요. 왜 끌려가는 것인가요. 제주 사람들은 폭도들인가요. 강정 사람들은 빨갱이들인가요. 일천구백사십칠년 사월 삼일은 육십년이 훨씬 넘어 멀리 있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나요.

    강정 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인심 좋고 풍요로운 내 고향에서 평화로운 한 세상 살다 가고 싶답니다. 구럼비 바위를 맨발로 걷고 싶고 강정천에서 멱을 감고 은어를 잡고 싶답니다. 그러니 구럼비 바위를을 무자비하게 찢지 말랍니다. 무지한 케이슨으로 강정 앞바다를 막지 말랍니다. 의심과 반목으로 내 형제 이웃을 증오하고 미워하게 하지 말랍니다. 몇 백 년 동안 한과 눈물로 켜켜이 쌓아 전설이 된 마을 이야기와 상처도 우리 조상들이 품고 지켰듯이 우리도 강정을 지키며 살아가겠답니다. 조상들께 죄짓게 하지 말랍니다.

    형님, 육지에 있는 큰아버지 묘 이장 때문에 며칠간 걱정하며 전화 통화했었지요. 형님도 저도 일상사에 충실하듯 강정 마을 분들도 이렇게 살고 싶답니다.

    유종: 시인. 2005년 광주전남작가회의 추천, 같은 해 『시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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