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에 요청되어야 할 '윤리'
    [서평]《윤리21》(가라타니 고진/ 사회평론)
        2013년 05월 18일 0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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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워지라는 명령, 21세기의 윤리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 21’은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20세기를 반성하고 21세기에 요청되어야할 것으로서 ‘윤리’를 말한다.

    ‘윤리’의 문제는 당위와 욕망의 이항대립에서 표류해왔다. 더욱이 가라타니 고진이 전개하는 이 윤리론의 토대는 ‘인간을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라는 고매한 정언명령을 선고했던 칸트다.

    도덕적 의무, 명령으로서의 윤리란 현대의 우리 삶에서 매우 낯선 것이다. 혹자는 허무맹랑한 도덕적 설교 따윈 집어치우라고 이야기하며 오직 ‘힘’에 의해 결정되어 온 것이 역사라 이야기한다.

    분명한 건 우리는 윤리라는 명제에 대해 불쾌한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감정적 간극 아래 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고진의 윤리론은 이 역설과 모순 사이에서 힘을 발휘한다.

    윤리21

    자유롭지 못한 인간

    먼저 인간이 윤리적 주체로 나서기 위해 요청되는 것은 무엇일까? 착한 심성? 혹은 이를 행동으로 실현시킬 자유의지? 자선사업에 골몰하는 빌 게이츠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자유로운 윤리적 주체일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윤리적 부담을 털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고진은 윤리는 ‘자유의 문제’라 말한다. 우선 인간은 내재적인 공격성, 악한 본성을 가졌으며 자유의지란 것이 불가능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낙관적인 계몽주의자들은 비합리적인 권위를 배제한 이성의 사용으로 인류 사회의 진보를 이룩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성 자체에 불가피한 오류가 있고, 그것이 20세기의 참혹한 전쟁 경험을 낳고 오늘의 환경위기를 몰고 온 것이라면 어떨까?

    자본주의 경제의 심화와 확장 속에서 우리는 윤리적 주체의 부재를 보았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만을 긍정하는 가운데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행위는 사실 이러한 공모에 연루되지 않은 후진국의 타자, 죽어버린 타자, 그리고 미래의 타자를 배제한 채 이루어진다.

    또한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누리는 모든 물질적 혜택은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구조와 원인들의 결과다. 우리가 자유의지로 행한다고 믿는 행위들은 사회적, 자연적 원인에 의해 규정되며 또한 타자로부터의 인정 욕구, 타자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타율적인 것이다.

    자유로워지라는 명령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리고 윤리적 주체로 서려면, 바로 여러 원인들에 의해 규정된 운명을 ‘자유로운 것(자기원인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다. 즉, 자유를 의지하는 자만이 자유로운 주체일 수 있고 윤리적 주체로서 책임을 무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인간을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라는 칸트의 수사는 나뿐만 아니라 타자 또한 자유로운 주체로서 대하라라는 명령이자 윤리적 요청인 것이다.

    고진은 인간이 가진 악한 본성과 자연적 조건에 대한 냉엄한 인식 위에서 진정한 ‘자유’로서 타자에 대한 윤리를 말한다. 이 때 타자는 현재에 잊혀진 타자와 과거의 죽어버린 타자 그리고 미래에 올 타자 모두를 상정한다.

    고진은 일본의 지식인으로서 양차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며, 전쟁책임이 미국에 의해 천황부터 면책되었기에 일본의 전후사가 비틀린 인식 위에 기초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과학적 인식에서의 진리성을 판명하는 기준인 반증가능성과 패러다임 또한 ‘타자’, 칸트식으로 하면 ‘물 자체’에 대한 인식에서 가능하다. 우리와 다른 지평에 선 자유로운 타자만이 반증을 제기하며 패러다임에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세계 공민의 하나로서 우리는 지금까지 무시되고 억압받은 타자들을 다시 정당한 위치로 복권시키며 또한 미래에 올 타자들 또한 지속가능한 환경적 터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진의 말대로 역사에는 의미도 목적도 없다. 그것은 실천적(윤리적)으로만 존재한다.

    필자소개
    연세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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