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서평]《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엄기호/ 웅진지식하우스)
        2013년 05월 18일 01: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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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다리 잘린 동료를 들고 100m를 뛰었습니다.” (여수=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화학공장 폭발사고를 목격한 근로자들이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정비 보수 협력업체인 유한기술 근로자 이재석씨는 (중략) “준비작업을 포함해 열흘을 일하는 동안 가스나 분진의 위험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며 “너무 빠듯하다는 근로자들의 불평에도 사측은 하루라도 빨리 보수를 마치고 가동하기 위해 공기 단축에만 열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근로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인 통상 근무 시간에 더해 야간 근무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용접작업 전 사일로 내부의 가연성 가스를 질소와 공기로 퍼지(purge·치환)했고 가스 점검 결과도 문제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사측의 발표에도 이씨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씨는 “통상 퍼지작업을 할 때 일을 중단하는데 우리는 퍼지한다고 작업에서 빠진 적이 없다”며 “책임을 피하려는 사측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끔찍한 죽음이 반복된다. 분진에 불꽃이 옮겨 붙어 폭발이 일어났다고 분석한 기사들이 눈에 띈다. 소수의 기사만이, 이 사고의 원인은 원래부터 위험했던 작업 현장이 아니라 그렇게 위험한 현장에 일상적으로 사람이 내몰리는 것임을 짚으려 한다.

    시간이 곧 돈으로 계산 가능한 곳에서 사람이 우선시되지 않는 모습은 여수 산업단지만의 일이 아니지만, 사건의 스펙터클함에 주목하는 것이 덜 속 시끄럽다는 듯이.

    “어제까지 완전히 남이었던 사람의 죽음이 가장 애통한 사건이 되어 동시대인들을 엄습하고 사람들은 애통함을 나눈다. 애도를 통해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은 문득 우리 모두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기호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죽음에 대한 애도. 결국 다시, 우리네 삶에 대한 애도. 반복되고 있지만 개별적인 사건으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미 뛰어난 평론가들이 여러 번 펜을 댔지만, 다시 이 책을 건드리고 싶었다. 엄기호의 언어를 더 공유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이 책은 공감과 동감이 어떻게 다른지, 왜 희망을 원하는 마음은 애초에 어긋나있었던 지를 풀어낸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인용하며 ‘동료’를 이야기하고, 망해가는 사회를 논하며 맥주 한 잔을 나눌 이들이 모일 수 있는 아지트를 그린다. 쉬운 단어들이지만 담긴 사상은 깊다. 이 곳 사람들의 평소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길게 시대를 뚫어 보고 있다. 이 책은 철학서다.

    핵심은 ‘이게 사는 건가’라는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지금 우리 삶이 사실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며,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공감’의 근원이 된다.

    필요한 역할로 엄기호는 푸코가 말한 ‘파르헤지아’를 제안한다. 이 단어는 “말해야 할 바를 말하게 하고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하게 하며,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게 하는 자유로움”을 실천하는 단 한 명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책의 뒷부분은 다소 신학적이기까지 하다. 떠들고 있다가 깨어 있는 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질 ‘때’를 기다려도 좋다니. 동의하는 사람에게나, 동의하지 않은 사람에게나 흥미롭게 떠들어볼 만한 생각인 것 같다.

    엄기호 방식의 말하기는 청유형 어미를 내포한 채 등을 토닥인다. 어떠한 고민이든지 괜찮으니 다만 ‘옹호’해주겠다는 제안은 힐링의 수사학과도 언뜻 비슷하다. 그리고 엄기호가 내리는 결론은, 요한 계시록과 유사하다. 파국을 신나게 떠들자, 그리고 파국 이후의 시간에 대해 마음껏 상상해야겠다고.

    단, 강조되는 것이 추가로 있다. 바로 그 때가 오면 곁에서 깨워줄, 혹은 깨워줘야 할 ‘동료’다.

    우리가 잘못산 게 아니었어

    “동료란 내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동료란 또한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슬픔에 공감하는 동료가 있을 때 내 삶이 아무리 비루하더라도 나는 삶이 견딜 만하다고 느껴진다. 동료가 공유하는 것은 바로 언어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는 언어가 같을 때 우리는 이 친구에게 내가 공감되고 있다고 알 수 있다.”

    엄기호의 책을 읽으라 권유하는 것은,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같은 한글을 쓰고, 쓰지 않고의 여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눈 앞의 것만 보고 땅굴을 파는 두더지가 됩시다’고 할 때, 나는 이 두더지의 비유를 “동료”가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괜한 노파심인 듯도 하지만, 소개를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엄기호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며 서평을 맺고자 한다.

    “글이란 결국 동시대인을 동료로 초대하는 정치적 행위이며, 이 정치적 행위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아닌가.”

    필자소개
    연세편집위원회. trythemoment@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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