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작은 자본가 ?
        2013년 05월 16일 05: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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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개인이 사는 사회의 근본 구조는, 아무래도 그 개인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쏘련 사회 같은 경우에는 자본을 대신하여 국가가 경제를 운영하다 보니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국가 복무자 심리’ 같은 게 강하게 작동됐습니다.

    그 심리는 明도 暗도 있었는데, 좋은 쪽에서 이야기하면 의무감이라든가 동료들에 대한 배려 등등이 대부분에게 각인돼 있었고, 나쁜 쪽에서 이야기하면 윗사람 기분을 맞추고 분위기를 파악해 분위기대로 처신하는 순응주의도 만발했습니다.

    구성원들이 잘 바뀌지 않는, 연공 서열대로 움직이는 小사회들이 본래 좀 그렇습니다. 실은 단괴(團塊) 세대가 살아온, 90년대 이전의 일본도 그런 면들이 꽤 강했던 듯 한데, 쏘련에서 일본의 동시대 문학이, 그리고 일본사회 일각에서 쏘련 문학이 그렇게 잘 읽혀진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신자유주의 시대는 단괴, 즉 ‘덩어리’와 아주 무관합니다. 원자화된 사회 안에서 각자가 일종의 1인 회사처럼 자기 자신을 ‘경영(?)’해서 매일, 매순간 경쟁적인 서바이벌 게임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경쟁 업체, 즉 옆에 일하는 동료들을 뛰어넘지 못하면 ‘나’의 ‘1인업체’가 도태되기 때문입니다. 뭐, <베틀로얄>(バトル・ロワイアル, 2000년)을 보신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인지 잘 아실 터인데, 동류들을 죽임으로써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한 그 영화는 어떻게 보면 90년대 이후의 동아세아 전체의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스릴 있게’, 액션으로 영상화한 셈입니다.

    영화 '배틀 로얄'의 한 장면

    영화 ‘배틀 로얄’의 한 장면

    기본적으로 이제는 대처 말대로 “사회라는 것이 없어”진 양으로, 다들 ‘1인 업체의 개업’을 강요 받습니다.

    학자, 예컨대 대학이라는 이름의 최첨단적 신자유주의적 기업체에서 고용된 연구/교수역 근로자(교수)도 절대 예외는 아닙니다. 반대로, 대학 고용자들이야말로 ‘국민개상 國民皆商’, 모두들이 자기 자신을 팔면서 살아야 하는 위대한 새 시대를 열어가는 데 앞장 섭니다.

    국내 대학의 풍경을 감상해보시죠. 거기에서는 지금 영어 논문의 전성시대입니다. 민중들이 어떻게 사는지, 시대의 요청이 무엇인지 그런 것 따위를 고려할 여유라고는 전무하고, 대중적인 글로 국내 독자들을 상대할 여유도 잘 없습니다 (보수일간지에서 컬럼 청탁하면 약간 다르긴 하지만요).

    기본적으로 영어 논문으로 해외학계, 즉 식민지 모국에서 ‘나’만의 이름 (일종의 상표)을 만들어야 학자 반열에 올라 그 다음에 그 밑천을 갖고 장사할 수 있습니다. ‘영어 논문’에 대한 상금 명목으로 (대학마다 다르지만 1~2천만원대까지입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부터 사유화하고요.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이 ‘사회’와 같은 구시대의 유물들을 발전적으로 해체시키는 신자유주의적 후천개벽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으니 노르웨이의 사민주의적 원주민들이 감히 완전하게 흉내를 내겠어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면 갈수록 학자에게 ‘인민에 대한 계몽의 의무’들이 없어져가고, 그저 ‘나’만의 ‘1인기업’을 무한정 확장시킬 권리만 남습니다.

    애당초에 없었던 일인데, 2005년부터 여기에서 ‘논문게재점수’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니까 1년에 적어도 한 편의 전문 논문을 ‘검증 받은 학술지’에 게재하지 못하면 각종 불이익을 받기 시작합니다. 여행비용 보조금 등이 없어지고, 연구년 신청도 안되고, 임금인상 협상에서도 퇴짜를 맞고… 반대로, ‘논문게재점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대접은 아주 후해집니다.

    물론 대한민국처럼 ‘권위지 게재 논문’을 아예 그냥 학생들의 돈으로 보상(?)할 만큼 여기 대학 관리자들이 용감하지 못합니다. 아직은 “대학은 걍 기업이니 우수사원들에게 상금 주면 어떠냐”는 소리를 대놓고, 민중 앞에서 하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거기까진 못해도 일단 ‘우수 사원’들에게 가용자원을 집중시키는 분위기를 만들긴 합니다.

    물론 식민지 모국의 SSCI 등에 등재돼 있지 않은 학술지를 아예 학술지로 취급하지도 않는 우리 국내의 모범적인 황민들과 달리 노르웨이에서는 ‘검증 받은 학술지’의 목록을 국가 기관들이 학계의 조언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만들어, 운이 좋으면 예컨대 한글 학술지도 거기에다 포함시킬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뉘앙스는 달라도 경향은 하나, 여기에서도 저와 저의 동료들이 ‘작은 자본가’ 되게끔 강요를 받는 것입니다.

    물론 저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강요한다고 해서 무조건 복종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강요 받으면 받을수록 예컨대 블로그 등의 방식으로 ‘점수 안되는 글’을 쓰고 싶은 오기 같은 마음이 더 생기기도 하죠.

    학자에게는 ‘인민 계몽’이 ‘명예로운 의무’이었던 쏘련시대, 아주 전문적인 셈족 언어 및 역사학자이면서도 당과 인민계몽기관 (“지식”이라는 대중적 계몽단체)의 요청에 따라 한니발과 알렉산드르 대왕의 대중적인 평전을 내놓아 그 대중적 저서를 어떤 전문서적보다 더 자랑스러워했던 제 당숙 일랴 시프만(관련 글 링크)과 같은 ‘계몽적 학자들의 시대’는 이제는 아름다운 꿈처럼 기억됩니다.

    저는 그의 대중적인 저서를 읽으면서 자라고, 그렇게 해서 역사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영어논문’들을 과연 미래의 소년들이 읽어가면서 역사 사랑이라는 평생의 달콤한 질환에 걸릴까요? 우리는 자본의 노예, 학계의 작은 자본가가 스스로 돼서 스스로를 거세시키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성경의 말대로, 모든 것을 얻어도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리면 다 무슨 소용이에요?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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