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범죄사건에는 '스토리' 있어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1-2. 과거의 기억과 연쇄범죄
        2013년 05월 15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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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앞의 글 링크

    ‘프로파일링’은 행동증거를 통한 수사방식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행동’이란 상황, 맥락(주어진 조건)이라는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개인의 행위양태(선택)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러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적 기반 즉 사회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생물학 의학 통계학 경영학 군사학 등의 지식이 동원된다.

    한번 상상해보자. 어떤 사람이 목적지에 대한 아무런 기약이 없이 길을 나섰는데 얼마 가다가 네 갈래 길이 나왔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인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추정해보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내키는 대로’ 라고.

    그러나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물론 처음 길을 떠날 때야 아무런 기약이 없었지만 걷다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본인이 뚜렷한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고, 애초의 시작처럼 그렇지 않은 즉 생각 ‘없는’ 선택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전자는 목적지에 대한 의도를 파악해보면 되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앞에서 한 말처럼, ‘그냥’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실제로 보면 아무런 이유가 없는 선택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사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평소의 생활습관에서, 나름 어려운 선택을 할 때는 가장 첫 번째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습관을 가졌을 수도 있고, 또 다르게 보자면 평소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세 번째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선택에는 본인이 인지하든 못하든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프로파일링은 그러한 이유(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유를 파악함에 있어서 가장 핵심은 관찰과 유형화이다. 즉 행동 혹은 행동의 결과에 대한 관찰을 통해 행위자가 가지는 적합한 경우의 수를 추정하고 가능한 추정치를 일반적인 조건과 그 외 다양한 조건 속에서 비교, 대조하여 그 추정들 중에서 최적의 선택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다양한 행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많은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중요한 전제 하나가 빠져있다. 즉 그러한 다양성을 위해서 인간은 다양한 환경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통은 간과한다.

    이러한 환경요인을 제외한다면 사실 인간은 매 순간순간마다 이전과 절대적으로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에 대한 정의이며 따라서 인간은 문화를 통해 문화화 되었고 그러한 문화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인간 행동의 변이는 상당부분 제한적이다.

    문화 속의 개인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특정하게 분류된 행동양식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왜 인간은 스스로를 다양하며 창조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역사 전체, 인류 등과 같은 개별 인간이 경험하지 못하는 차원의 것에 대해 축적된 지식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은 간접체험(추체험)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지하고 규정할 때 그렇지 않게 인식하면서 다른 방식의 의무부여를 할 뿐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인간행동과학이다.

    그리고 이 인간행동과학은 파블로프나 스키너 등의 행동주의 심리학의 조건화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화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 사회학습을 포괄하는 영역이고, 가장 가까운 것은 문화인류학 영역이다.

    일찍이 영국과 미국의 사회문화인류학자들은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 지배와 관련하여)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다수) 집단(부족, 종족, 민족 등)들에 대한 기초자료를 방대하게 집대성해놓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왔다. 또한 이러한 자료들은 횡단적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종단적인 자료를 모두 포함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HRAF(human relation area files)와 SCCS(standard cross-cultural samples)이다.

    Profiler와 family life-history, Serial-Crime(과거의 기억과 연쇄범죄)

    일반적으로 범죄 수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이 사건이 살인사건인지 자살사건인지 사고사인지, 복수-살인사건인지 강도-살인사건인지 치정-살인사건인지, 실종사건인지 가출사건인지, 성범죄인지 사기사건인지 등등.

    사람의 삶과 죽음에 모두 사연이 있듯이 모든 사건에도 다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모든 범죄현장은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실을 수사 관련자들이 모두 알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수사과정에서는 이런 사건 파악 작업에 현실적이고도 구조적인 한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원론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작업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수사선을 설정하면서 물적 증거를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를 판단하여) 수집하고 이러한 수사의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의 수사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앞부분의 단계를 수행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그것을 실제 구현할 인력과 환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진행되려면 범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사건 수사경험을 풍부하게 가진 전문수사관들이 있어야 하고 이들이 수사진행에 있어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전문수사관들이 현장에는 드물며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이 리더가 되어 수사를 진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기 경험만을 최고로 아는 어설픈 베테랑들이 많고 승진만을 지향하는 소수 (자칭) 엘리트 행정경찰들이 계급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실적 중심의 수사진행으로 정작 중요한 수사를 망치곤 한다.

    우리가 수사 관련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범죄현장에서, 수사경험이 많은 고참 강력반 형사가 사건 현장을 둘러보면서 강철중 캐릭터가 하는 것처럼 척보면 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장면에는 매우 대조적인 두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수사경험이 많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자칭, 서울 1급지 경찰서에서 20년 정도 살인사건 수사경력이 있는 A라는 형사가 있다고 치자.

    한 변사사건의 수사 모습

    한 변사사건의 수사 모습

    서울청 관할 31개 경찰서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변사사건은 평균 10여건 내외, 그렇다면 평균적으로 경찰서 1개 당 1년에 약 110건의 변사사건을 다룬다고 보고 이 중에 약 10 %인 10여 건 정도만이 범죄관련성으로서 수사가 이루어진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고, 그 외 나머지는 간단히 자살로 처리되거나 사고사/자연사 등으로 처리될 것이다.

    여기에 경찰서 당 강력(형사)팀은 6개 팀이고 살인사건이 6개 팀 모두에 배당되지는 않지만 대체로 2-3개 팀에 배당될 것이다. 정리하면 20년 경력이면 대략 60-100여 건 정도의 살인사건 수사경력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60-100여건이 모두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같이 사건의 실체를 면밀히 다루는 수사가 필요한 사건은 아니고 대략 이 중에서도 10%인 6-10여 건 이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다른 90%의 경우 사건의 실체가 비교적 분명하지만 피의자 신문과 사건관련자 진술, 공소유지를 위한 서류작업 등과 같이 소위 보강수사 차원의 필요에서 진행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인력 운용상 20년을 계속해서 그 업무에만 투입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대략 5-6건 정도라고 보면 된다. 결국 정작 중요한 것은 A가 20년 동안 관여 혹은 담당했던 5-6 건의 살인사건 수사이다. 이 사건들을 중심으로 작고 쉬운 다른 사건들을 같이 섞어서 20년 살인사건 베테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A가 진짜 베테랑인지는 이 사건들이 어떻게 수사됐으며 수사과정에서 A는 어떤 업무를 했는가를 면밀히 검토해보면 금방 결론이 난다.

    그 다음으로 수사 관련 교육의 관점인데 몇 년 전까지 우리 경찰에는 전문수사관교육 시스템이 없었다. 그럼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했을까? 그게 바로 도제 시스템이다. 이른바 사수-부사수 개념으로 바로 위 선배들에 의해 수사에 대한 기법 전수가 이루어진다.

    물론 인간문화재가 제자를 들여서 하는 도제시스템은 그 자체 매우 훌륭한 제도라고 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오지 않은 선배에 의해 진행되는 도제방식은 과도하게 말하면 시간낭비일 뿐 제대로 된 교육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배웠다고 스스로 자위할 뿐 효율적인 방식은 분명 아닐 것이다.

    당연히 채용과정에서 자격 있는 사람을 채용해야하고 채용한 뒤에도 필요한 예비교육을 시키고 거기에 더해서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수사관 전문(보수)과정이 적어도 2-3년 주기로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한데, 현재에도 그 정도는 없고 길게는 3개월 정도의 수사과정을 1회 정도 운용하기는 한다. 부실하고 부족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과거에는 범죄에 대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수사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직된 전체주의 사회에서, 경찰권에 대한 공포와 폭력이 압도하던 시대에는 그냥 관련이 있어 보이는 용의자들을 데려다가 다소 거칠게 물어보면(?) 되고 또한 그런 범죄 수사 방식에 맞게 수사 인력을 운용하면 되는데 굳이 복잡하게 수사에 대해서 교육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전공과목에 ‘수사’라는 과목이 있지만 그것은 그냥 형식적인 수사절차법이나 관련된 사례의 나열일 뿐이다. 따라서 A형사는 사실 살인사건 수사의 베테랑이 아니라 과거에 경험한 몇몇 사건에 대한 기억을 통해 현재 사건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력자일 뿐이다.

    앞에서 말한 리더로서의 전문수사관이 바로 프로파일러이다. 범죄에 대한 치밀한 이론적인 지식으로 무장함은 물론이거니와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실전 속에서 단련된 범죄심리수사관이 바로 프로파일러이다.

    이들은 제일 처음 현장을 확보한 후 이론적이고도 경험적인 근거를 통해 사건 파악을 한 후, 수사의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물적 증거 취득과 기타 인적 수사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물론 이 과정에는 법의관, 감식요원, 현장수사관 등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는 것이 포함된다. 수사는 시스템이고 협업체계이다. 과정 속에서 처음 제시된 사건 파악이나 수사선에 오류가 발견되면 즉시 수정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사건에는 모두 다 스토리가 있다. 그 사건에 내재된 스토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유사한 유형의 사건들에는 그에 따른 스토리가 유사하다.

    그런데 이 스토리는 범죄의 목적이 ‘재물’, ‘치정’, ‘원한’ 등에 가까울 때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스케일이 달라진다. 그래서 뚜렷한 윤곽은 찾기가 힘들다. 스토리는 단순한데 스케일이 크니까 전체 파악이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사건은 주로 ‘돈’의 흐름의 찾거나 ‘관계’의 흐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즉 물적 증거를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스케일에 가려진 스토리의 단순함을 찾을 수 있다.

    반면 범죄의 목적이 심리적인 것,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 ‘분노’, ‘폭력’ 등과 관련될 때는 스토리가 복잡하다. 반면 스케일은 비교적 작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복잡한 스토리라고 해도 윤곽의 파악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사건은 ‘행동’을 따라가야 한다. 즉 행동증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보이는) 것보다는 없는(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으며, 더욱이 현장이라는 것도 시공간적으로 확정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는 해당 범죄를 둘러싼 개인의 스토리 즉 life-history를 말하는 것이다. 주요하게는 개인이 해당 사건과 관련된 방식을 말하는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보다는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 스토리의 파악이 보다 더 중요하다.

    전자의 경우 범죄와의 관련성에서 자신보다는 자신 이외의 요소와 관계될 가능성이 높지만 후자의 경우 자신 이외의 요소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적인 문제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자신의 스토리는 한국과 같은 사회환경에서는 family life-history일 경우가 대단히 크다. 즉 가족의 문제가 성장기의 아이에게 투영되었을 가능성을 포함해서 가족의 문제가 아이의 문제였을 가능성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연쇄강간범(발바리) J의 경우를 보자.

    비교적 대도시지역 중산층에서 자란 이 아이는 외모도 학교성적도 보통이었고 성격도 온순해서 교사들로부터 지적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의 부모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이 아이의 모친은 아이가 초등학교 때 다른 남자와 춤바람이 나서 가출했다가 친정부모의 강압에 의해 다시 남편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물론 남편은 친부모와 처가의 설득으로 아내를 용서했고 한 1년 정도는 그럭저럭 잘 사는가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과음을 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바람났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가게 되었고 결국 모든 소식을 끊고 미국으로 이민 가버렸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된 이 아이는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되었고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련 없이 아버지 집을 나와서 군대 마친 후 지독하게 돈을 벌어서 작은 배달 음식점을 하고 있다. 남의 집 가게에서 일을 할 때 사장이 착실하다고 잘 봐서 주변에 아는 여자를 소개해줬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다. 주변 사람들은 젊은 부부가 착실하고 주변에도 잘한다고 평가가 좋은 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옆 동네에서는 강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지만 실제 그 범인에 대한 것은 윤곽도 못 잡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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