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민운동의 흐름과 '시민성'
    [시민/사회운동 20년]시민운동의 시민은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 이제는 넘어서야
        2013년 05월 13일 06: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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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평론>은 55호에서 ‘한국사회 시민운동 평가와 새로운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로 시민운동(정병기), 생협운동(권오범), 민중의 집(정경섭), 인권운동(박래군), 로컬거버넌스운동(이창언)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다루었다. 시민사회운동이라는 말이 소개된 지도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고, 그 의미와 시각, 효과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물론 특집란에서 모든 영역을 충분히 담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은 그 긍정성과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평가되어야 하고, 그 평가의 기반 위에서 새롭게 자기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토론을 위한 최소한의 근거는 제공한 듯 하다. <진보평론>과 <레디앙>은 한국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치열하고 전투적인 토론과 논쟁과 평가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유하고 진보평론 55호의 특집 논문들을 게재한다. 글 형식이 논문이다보니 다소 길고 건조하다. 양해를 구한다. 각주와 참고문헌은 생략한다. 관심있는 독자들은 진보평론 55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특집 글의 순서대로 게재하고 다소 길더라도 나누지 않고 싣는다. 전투적인 비판과 비평을 바라며 반론이 있다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당연히 게재하도록 하겠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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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민,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1990년대 시민사회 논쟁 때부터 시민,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관한 개념은 다양하게 정의되고 비판되어 왔다. 그리고 그 논쟁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여전히 통일된 개념이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의 시민운동 진영의 시민사회론자들 대다수는 ‘시민운동의 주체’로서의 시민 개념과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citizen) 개념을 혼용하고, 국가와 대비되는 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과 ‘시민들의 사회’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을 혼용한다”,는 질타가 있었다.

    또한 “한국에 시민사회라는 ‘사회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예증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각종 시민사회 패러다임의 기본적 전제들이 제대로 반성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그 “반성되지 않은 철학적 정황”을 개탄하는 소리도 나왔다.

    이러한 지적이 중요한 것은 시민운동과 관련된 주요 개념들의 사용이 운동의 실제 내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혼용으로 인해 분석의 엄밀성이 확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을 고찰하기 전에 시민,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개념을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시민운동 발흥 초기에 이미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시민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의 구성원 전체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이때 시민(市民)의 의미는 사회구성원을 말하는 공민(公民, citoyen, citizen, cittadino, [Staats-]Bürger)의 잘못된 번역에 기원을 둔다. 곧 국가에 대한 정치적 법적 소속성에 관련되는 단어로, 오늘날 ‘시민권’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국가에 대해 특정의 의무(납세·병역 의무 등)를 지면서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참여의 권리를 가진 ‘국민’을 뜻한다.

    그러나 실제 TV를 비롯한 언론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인터뷰하는 사람들은 주로 농민이나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 상공업자나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들이다. 이때 시민(市民)은 한자 그대로 자본주의 초기 시민 형성기의 어원 그대로 도시거주자를 의미하는 듯하다.

    도시거주자라는 의미의 시민은 엄밀하게는 재산을 가져 세금을 납부하는 자에게만 참정권을 주던 제한선거 시기(régime censitaire)의 도시 거주 납세유권자를 의미했으나 오늘날에는 자본가라는 의미의 부르주아(bourgeois, capitalist, borghese, Kapitalist)로 전환된 용어다.

    따라서 오늘날 사용되는 시민 개념이 부르주아로 전환된 도시거주자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노동자와 농민, 빈민을 제외한 도시 중간층의 뉘앙스를 가진 용어로 사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인민 혹은 민중(peuple, people, popolo, Volk)은 현대 민주주의 수립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대개 피지배 집단으로서의 국가 구성원을 뜻한다.

    물론 링컨 대통령의 연설로 유명해진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치”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현대 민주주의에서 인민은 주권자로서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자치적·자율적 존재다.

    하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독재 정치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특권층이 엄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민이나 민중은 피지배 혹은 비특권계층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시민사회 개념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혼란은 국가와 대비되는 ‘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을 ‘시민들의 사회’, 즉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시민들의 집합체”라는 행위자 개념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 시민 개념 중에서 공민으로서의 개념만을 차용해 시민운동을 “국가로부터도 자유롭고 경제로부터, 즉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운 운동, 한 마디로 ‘공동선’을 지향하는 초계급적 운동으로 이상화”시키려는 암묵적 의도에서 비롯된다.

    이 글은 시민사회를 엄밀히 국가 혹은 국가기구와 대립되는 사적 및 공적 영역으로 정의하며, 시민운동과 관련해서는 공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운동들만을 관심 대상으로 한다.

    다른 한편으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개념에 기초해 정치사회를 별도로 상정하여 시민사회의 영역을 더 축소시키는 연구들도 있다. 이때 정치사회는 일반적 의미의 정치권 혹은 정치영역으로서 시민사회와 국가를 매개하는 영역으로 설정된다.

    이 개념은 민주화를 전후한 시기에 정당 외에 정치단체들이 활발하게 조직된 시기에 적절하며,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이 장차 정당 외적 정치조직이 출현할 경우에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2000총선시민연대

    2000년 총선시민연대 모습

    그러나 현재까지 전체시기를 통틀어 사회운동을 분석하고자 할 때는 정당 외에 다른 정치운동이나 정치조직을 설정할 필요가 없으므로 정치사회라는 개념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 민주화 전후의 비정당 정치조직들은 대부분 사라졌거나 크게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활동 당시에도 전선조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이라는 개념은 민중운동 및 사회운동과 구분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초기 시민사회 논쟁에서 민중운동은 기층민중운동, 노동자-민중운동이라고도 불리는 반면,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운동 혹은 새로운 사회운동이라고 다양하게 불려 왔다. 더 나아가 이 둘을 아울러 ‘시민·사회운동’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진보적 시민운동과 보수적 시민운동을 구분하기도 한다.

    또한 시민운동을 다시 운동 주체와 문제 영역에 따라 포괄적 시민운동 혹은 종합적 시민운동과 특수전문적 시민운동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 논쟁들은 모두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 역사적 특수성을 가로지르는 논쟁의 핵심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구별 및 시민운동의 세분화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일궈온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인민 혹은 민중이 민주화 역사의 주체였으며, 이 민주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와 내용을 갖춘 운동이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민이라는 개념보다 운동의 현실과 이론에서 민중이라는 개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중운동은 분명한 역사적 실체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반적 용례를 따라 계급적 라인으로 구획된 사회운동을 민중운동이라고 부르며, 민주화를 전후해 새로운 내용과 형태로 전환 혹은 형성된 운동을 시민운동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미 탈계급화된 상황에서 애써 계급성을 찾으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계급적 차별이 엄존하고 있는 한, 사회운동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계급성도 찾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민중운동 개념이 여전히 유용한 가장 중요한 까닭이다.

    물론 현재 시민운동에 해당하는 사회운동이 민주화 이전 혹은 1990년대 이전에는 계급적 라인을 따라 민중운동의 한 부문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전의 시민운동도 개념상으로는 동일하게 시민운동으로 부르되 기원과 관련해서만 간략히 다룬다. 그리고 ‘포괄적’, ‘종합적’, ‘특수전문적’이라는 시민운동의 세분화도 시민운동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사용하되 구분을 위한 분류 개념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주요 시민운동으로 고찰할 대상은 부문 운동들 중 여성운동 및 환경운동과 포괄적 혹은 종합적 운동인 참여연대 및 경실련이다.

    2. 시민운동의 기원과 발전

    우선, 환경운동은 민주화 이전의 지역 주민운동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산발적이었지만 빈민운동과 유사한 시기에 쓰레기 매립장, 분뇨처리장, 연탄공장, 화력발전소, 공해배출공장의 건설을 반대하는 각종 운동이 진행되었고, 이 산발적 운동들은 19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의 설립을 계기로 목적의식적인 조직적 운동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1983년 영산호 보존운동과 1985년 온산병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런 맥락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1984년에는 조직화 수준이 한층 더 발전하여 비록 소그룹적 성격이었지만 반공해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고, 이 협의회는 1988년 최초의 전국적 환경운동조직인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으로 발전했다.

    또한 1988년을 전후로 하여 도시의 일상적 공해 문제가 크게 대두됨과 동시에 원자력발전소 11-12호기(영광 3-4호기)의 건설과 관련해 반핵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목적의식적 반핵운동이 주민들의 자발적 운동과 결합해 가는 양상을 보였다.

    2013년 환경운동연합 20주년 기념행사(사진=환경운동연합)

    2013년 환경운동연합 20주년 기념행사(사진=환경운동연합)

    전통적 부문운동인 농민, 빈민 혹은 주민운동과 달리 환경운동은 1990년대 시민운동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에 해당한다. 그러나 1988년 창립 당시 공추련은 전통적 부문운동과 다르지 않은 민중운동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곧 공추련 창립선언문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있는 독점재벌과 그 비호자인 군사독재, 한반도를 식민지쓰레기장으로 여기면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을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공해추방·반핵주민운동의 지원, 공해 문제와 핵무기의 사회적 모순구조 지적, 민족민주운동의 전체적 과제에 충실히 복무하는 것”을 주요 활동 및 사업으로 설정했다.

    또한 공추련이 제기한 대안사회의 모습은 “사회적 불평등과 자연으로부터의 소외가 극복된 진정한 민주사회”,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였다. 곧 공추련은 당시 민중운동의 전통적 부문운동들과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했다.

    여성운동도 1980년대 후반까지는 환경운동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였다. 1980년대 여성운동은 기본적으로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적극적 투쟁의 맥을 이었다.

    1985년에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이 비상설기구인 ‘여성노동자생존권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해고 등을 일반 시민들에게 폭로하는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1986년에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종교단체 및 민주단체들과 함께 ‘부천서 성고문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운동을 주도해나갔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 여성단체들은 상설적 공동투쟁조직의 필요성을 느껴 1987년 2월 21개 회원단체가 모여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을 창립하였다.

    여연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모순을 외세에 의한 분단, 군사독재 정권에 의한 기본적 자유의 억압과 민중 억압적 경제정책으로 인식”하고, 활동 목적을 “여성운동 세력 간의 조직적 연대를 이루어나가며,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화, 여성해방을 쟁취함”이라고 회칙에 밝힘으로써 “민중적인 여성운동단체들의 연합”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사업 계획에 평화통일사업, 기층여성운동력 강화사업, 정치 민주화 투쟁사업, 여성권익사업 등을 포함하였다.

    이와 같이 민주화 이전의 환경운동과 여성운동은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같은 전통적 부문운동들과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한국 민중운동의 기본가치를 공유하면서 영역별 전국 조직화를 거쳐 전선운동에도 참여했다.

    장외 재야정치운동단체로 1985년 설립되어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일익을 담당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 이어 1989년 초에 결성된 전국적 통일조직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에 공추련과 여연으로 대표되는 환경운동 및 여성운동이 참여한 것이다.

    3. 정치적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분화

    영역별로 구체적 시기는 다르지만 대체로 1990년을 전후해 사회운동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으로 분화되었다. 이것은 1987년 정치적 민주화로 인해 점차 언론매체를 통한 간접적 공론 형성의 기회가 넓어지고, 인적 자원들이 제도 정치권에 흡수되며, 신중산층의 확대로 시민사회 내 조직 공간이 확대된 것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1980년대 후반 동구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적 민중운동은 이념과 전망에서 큰 타격을 받아 새로운 전환을 모색해야 했다. 그에 따라 노동운동 등 민중운동의 약화 내지 온건화가 초래되는 한편, 과거 기본가치를 공유했던 시민운동도 민중운동과 결별하거나 처음부터 그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타협에 의한 민주화’, 혹은 ‘미완의 민주화’라는 한국 민주화의 특수성과 특히 곧바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노동운동이 민중운동의 핵심 분야로 떠오름과 동시에 한국노총의 개혁이 이루어지고 민주노조운동의 저변이 더 확대되기도 했다. 그에 따라 전선운동도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으로 나뉘어 진행되어, 양 운동 흐름 간에 차이가 더욱 커졌다.

    두 운동 흐름의 분화가 본격화된 것은 개발독재의 직접적 계승체제인 노태우 정권 때보다 간접적 계승체제인 김영삼 정부 때였다.

    김영삼 정부 시기는 3당 합당을 배경으로 한 지배연합구조가 지니는 문민성과 권위주의 성격이 중첩되고, 실질적 정치 참여 기회가 봉쇄된 채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공론의 장을 제도권 언론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또한 동구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영향력이 현실화되는 한편, 우루과이라운드와 같은 쌀시장 개방 요구가 사회운동진영에게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제공한 것을 특징으로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시민운동단체가 1989년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과 1993년 환경운동연합(환경련) 및 1994년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였다.

    경실련은 부동산투기 억제, 금융실명제 실시, 한국은행 독립 요구,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 요구, 세제 및 세정개혁 요구 등 경제정의 실현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그 후 1991년 말부터는 1992년 총선을 겨냥해 정치·경제 분야의 개혁 정책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고, 14대 대선(1992)에서도 이 캠페인을 더욱 확대하여 ‘경제개혁과 민주발전을 위한 정책캠페인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또한 1995년 지방선거에서는 각 지역에서 정책 과제를 도출하는 등 점차 노동자, 환경, 통일문제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나갔다.

    경실련20주년

    2009년 경실련 20주년 기념행사(사진=경실련)

    이처럼 경실련은 처음부터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점차 활동을 넓혀 나가며 선거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종합적 시민운동 혹은 포괄적 시민운동의 양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노동 문제와 관련해서는 1990년 노동자 회원들을 중심으로 ‘분배정의를 위한 노동자협의회’를 결성하고 1993년 이를 본격화한 ‘노동자회’를 결성해 토론회 등을 벌여나갔으나 1994년 중반부터 활동을 중단했다.

    환경련은 공추련의 민중운동적 성격을 버리고 시민운동적 성격을 강화했다. 곧 환경련의 창립선언문은 “급속한 산업화와 무분별한 도시화를 결과한 기업과 정부, 그리고 시민 개인들의 무절제한 소비생활”을 환경오염의 주원인으로 규정하고, 주요 사업 및 활동으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환경파괴, 오염행위를 근절하고, 새로운 환경의식과 실천으로 스스로 자신의 삶터를 건강하게 가꾸어 나가는 시민운동을 펼쳐나가고자” 하며, “자연과 더불어 모든 인류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 것으로 집약된다.

    그밖에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녹색연합도 중요한 환경운동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녹색연합은 1991년 탄생한 배달환경회의가 ‘배달환경연합’으로 개칭했다가 1994년 녹색당준비위원회, ‘푸른 한반도 되찾기 시민의 모임’과 통합해 배달녹색연합을 설립한 후 1996년 현재의 명칭으로 개명한 것이다. 두 단체로 대표되는 환경운동은 환경련의 설립 이후 새로운 이슈별 시민운동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여성운동의 경우는 다소 달랐다. 여연은 1991/92년에 입장 재검토가 시작되고 점차 기층여성 중심성이 약화되어가는 한편, 다른 시민운동과도 함께 하지 않았다. 여성운동 전체 진영은 비록 다양한 이념과 목표들을 가지고 있지만, 여연은 민중운동의 계급적 라인과 시민운동의 비계급적 라인 중의 어느 하나에 편입하기를 거부하고 성성(性性)에 따른 독자적 구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적+녹+보라’ 연대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20차 여연 정기총회 기념사진(사진=여연)

    2006년 20차 여연 정기총회 기념사진(사진=여연)

    경실련과 유사한 종합적 혹은 포괄적 시민운동 단체지만, 좀 더 진보적으로 분류되는 참여연대도 상대적으로 특수한 성격을 띤다.

    창립 당시 참여연대는 “국민 각계각층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하여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대체입법을 제시하며, 실천적인 시민행동을 통하여 자유와 정의, 인권과 복지가 실현되는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천명했다.

    그에 따라 참여민주주의를 이념적 좌표로 설정하여 “제도정치 이외의 영역에서 사회, 경제적 민주화운동을 가속화시키고”, “이른바 재야와 시민운동, 나아가 노동조합과 같은 기층민중단체와도 친화적인 연대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경실련과 환경련이 제도권 안의 활동에 집중하였다면, 참여연대는 제도권 바깥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지속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내세운다는 차이를 보였다.

    1980년대 중후반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와 1990년대 중반 고도성장이 막을 내리고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의 양극화로 중간계급조차 중상층과 중하층으로 분화된 사회계층 구조 변화는 시민운동이 생성하고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우선,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주변부 포드주의(peripheral Fordism)’의 확립이 실질임금의 상승에 따라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상층의 물질적 기반을 향상시켜 이제까지 사회운동이 간과해온 환경, 여성, 교육, 지방자치, 의료, 교통, 인권 등 새로운 이슈들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로 인해 이 이슈들을 담당하는 시민운동이 생성되는 배경이 되었다.

    곧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한 중상층은 민주화를 통해 정치적 참여 기회가 확장된 공간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더욱 강하게 대변하고자 하는 욕구를 시민운동을 통해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에는 자산소득이 거의 없어 임금하락과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라 경제적 타격을 입은 중하층도 선진국들의 사례와 달리 보수화로 귀결되지 않고 정치적 관심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경제적 민주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민주화조차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경유착, 관치금융, 부실경영 등이 중간계급을 더욱 옥죔으로써 특히 중하층의 정치 참여 의식이 고무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종합적 시민운동이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2000년대 이후 시민운동은 “대의의 대행(proxy represen- tation)”(조희연, 2000)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속히 성장했는데, 이것은 민주화의 공고화 단계에서도 지속된 정당 정치의 빈곤이라는 정치적 요인과 민중운동의 역할 방기라는 시민사회 내부적 요인과 정보사회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현상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및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의 유권자운동에서 시민운동이 준정당적 기능을 수행한 것이 대표적 예다.

    우선, 2000년대 한국 정당정치는 민주화 이후 빠르게 포괄정당(Catch-all party; Kirchheimer 1966) 시기를 넘어 카르텔 정당(Cartel party; Katz and Mair 1995) 현상까지 중첩되는 압축적인 발전을 경험했다. 이미 정당은 선거 승리만을 목표로 백화점식 공약을 남발하고 더 이상 시민사회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가에 진입해 정부 내 정당으로서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중개인(broker)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개인은 단순한 매개자가 아니라 독자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양쪽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며, 중개인으로서의 정당은 공직 진출과 권력 장악이라는 이해관계를 갖는다. 더 나아가 이미 공직을 장악한 기성정당들은 신생 정치세력들의 제도권 진출을 가로막고 각종 국가제도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카르텔 체제를 구축한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이미 이러한 카르텔 정당체제에 진입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민주노동당까지 찬성한 2012년 초의 국회의원 연금법 통과다. 이제 한국의 정당정치도 큰 범주에서는 서구처럼 국가기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으며,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소명의식을 가진 천직(vocation)이 아니라 소득의 수단이 되는 전문적 직업(job)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과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염증이 심화되어 정치적 무관심층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 집단을 시민운동이 대변하게 되었다.

    민중운동의 역할 소홀도 정당정치의 왜곡과 관련된다. 사실 민주화라는 결실은 민중운동이 이룬 성과였다. 그러나 민주화된 공간에서 시민운동은 자신들의 이슈들이 국민적 이슈이고, 민중운동의 계급적 이슈들은 ‘집단이기주의’적인 이슈인 것처럼 공격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물론 1990년대에 참여연대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시민운동이 나타나면서 이러한 경향은 약화되고 사회보험 개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사회개혁 투쟁에서 양 진영이 연대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부터 민중운동은 민노당으로 대표되는 제도정치권 혹은 국가 영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운동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반면 시민운동은 낙천낙선운동과 같은 “근거리적 압박운동”을 전개해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한편, ‘환경’, ‘평화’, ‘여성’ 등 새롭게 부상한 이슈들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시민사회 내 활동을 병행함으로써 시민들의 호응을 확대해갔다(조현연·조희연, 2001, 388-389; 조현옥 2003, 181-182).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정보사회의 도래에 따른 전자적 공공영역(online public sphere) 또는 사이버 공공영역의 등장에 힘입어 젊은 세대와 여성 등 정치적 무관심층의 참여를 제고할 수 있었다.

    4. 시민운동의 ‘시민성’과 극복의 과제

    한국 시민운동의 ‘시민성’은 민중운동과 결별한 후 탈계급적 라인을 노정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한편 새로운 인식상의 오류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경실련은 “기업인이든 중산충이든” “민주복지사회로 가야겠다고 하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중요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창립취지문에서 밝혔다.

    참여연대도 창립대회사를 통해 “참여민주사회의 건설을 내세우는 것”은 “시민적 무관심을 극복하려는 데 있”다고 했다. 종합적 시민운동단체로 알려진 두 단체가 설정한 운동 주체는 이와 같이 탈계급적 ‘시민’으로 범주화된다.

    환경련의 운동 주체 역시 주민 혹은 ‘시민’으로 간주되며, 여연에서도 기층여성들의 역할이 점차 약화되어 왔다.

    이러한 ‘시민성’의 개념들은 사실상 중간계층을 상정하는 것으로 통한다. 최장집 교수가 키르히하이머의 “포괄정당”과 유사한 의미에서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포괄적 시민운동”이라 규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곧 “중산층을 중심으로 사회의 모든 계층을 끌어안아 다수를 획득하고자 하는 정당”에서 ‘포괄적 시민운동’이라는 개념을 차용했다고 밝혔듯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참여연대조차 ‘시민성’은 사실상 ‘중산층’ 혹은 ‘중간계층’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이러한 변화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향상된 중상층이 민주화를 통해 정치적 자유가 확대된 공간에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걸 맞는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새로운 사회경제적 양극화 경향에서 잃을 것이 더욱 많은 중하층이 확대된 정치적 참여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욕구에 부합했다.

    그에 따라 시민운동은 비록 직접적인 정치권력 획득이나 분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권력 지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의민주주의의 범주 내에서 여론을 통한 압력과 시민적 참여를 통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영향력의 정치전략’을 활용했다.

    참여연대와 환경련을 비롯한 전국의 981개 시민단체가 연대한 ‘총선시민연대’에서 2000년 성공적으로 전개한 낙천낙선운동과 2002년 대선 및 2004년 총선의 유권자 운동뿐 아니라 2005년 지방선거 이후 지속적으로 정당과 연합정치를 펼쳐온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그 대표적 예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탈계급적인 새로운 이슈를 제기했다는 점과 함께 중산층 내지 중간계층 중심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서구의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과 유사하다. 그러나 중산층 내지 중간계급 주도의 성격을 비롯해 서구 신사회운동의 ‘새로움’과 한국의 새로운 운동인 시민운동의 ‘새로움’은 사뭇 다르다.

    서구 신사회운동은 전통적 정당과 제휴하거나 그것에 흡수되지 않으며, 기존의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의 제도 모두가 사회통합의 능력 및 정치적 운용능력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는 점을 표출하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그 조직·이념·행동양식이 매우 다양하여 하나의 통일된 원리나 비전으로 묶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롭다.

    반면, 한국의 시민운동은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하고 계급적 라인을 따라 조직된 민중운동과 구별되어 권력지향 정치를 추구하지 않고 탈계급적 이슈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새롭지만, 공통적으로 정치 지향성이 강해 전통적 정당들과 제휴하며 국가 혹은 정당에 대한 영향력의 정치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서구 신사회운동과 다르다.

    이것은 우선 서구의 신사회운동이 좌우파의 케인스주의적 동의구조 속에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복지)가 충분히 확보된 상황에서 일상성의 권위주의에 도전하면서 생겨났다는 점을 반영한다. 그리고 한국의 시민운동은 미완의 정치적 민주주의와 거의 전무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는 배경과 여전히 지속되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심각한 사회경제적 차별 구조에 대항하면서 생겨났다는 점을 반영한다.

    한국 시민운동들의 ‘시민성’은 탈계급적이면서도 사실상 특정 계층, 즉 중산층 내지 중간계층의 대변에 치우쳐 있다는 점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마치 서구에서 계급정당(class party)을 거부하고 탈계급적인 ‘국민정당(Volkspartei, people’s par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실상은 포괄정당(Catch-all party)을 노정하면서 중간계층을 겨냥하게 된 정당정치의 변화와 동일한 맥락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다.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 역사를 가로지르는 유(類)적 모순인 탈물질적인 권위주의 모순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들을 지적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인 시민운동은, 중요한 해결 주체가 된다. 이때 탈물질적인 권위주의 모순은 영장류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종 권위주의 모순으로서 가부장적 모순, 환경모순, 관료적 모순, 제국주의적 모순(혹은 전쟁모순), 진화론적 모순을 말한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현재의 ‘시민성’을 극복하고 ‘공민’이라는 의미의 진정한 시민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모순인 계급모순에 기초해 있으면서 그 모순의 유지를 위해 유적 모순들이 활용되는 사회질서다.

    그러므로 유적 모순의 해소와 사회적 모순의 해소는 인간 소외의 극복을 위해 동시적으로 함께 추구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시민운동이 부문적 이해에만 충실하게 되는 한, 그것은 모두 특수이익의 대변에 함몰될 뿐이다. 각자의 활동 영역을 유지하되, 두 모순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 계급운동과 실질적 연대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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