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학력'과 '과소교육' 해결 시급
[비판과 비평]대학의 위기와 구조조정: 진보주의적 대안 비판 ②
    2013년 05월 13일 03: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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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론 비판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대학위기를 학벌체제와 입시과잉경쟁으로 단순화 한다. 학벌체제가 기득권층을 구성하며, 사회적 자원(권력, 부 등)을 독점함으로써 입시경쟁이 과열된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립대학과 주요사립대학을 네트워크로 평준화시킴으로써 입시과열을 방지하고 학벌체제로 인한 사회적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른바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구축이라는 안에 따르면, 서울대는 학부학생을 모집하지 않으며, 전국에 존재하는 모든 국립대학을 단일한 대학체제로 통합하고 이들은 평준화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전문대학(의대, 법대, 약대, 경영대 등)은 대학원과정으로 편성하고 이들은 국립대학에만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요 사립대의 경우 통합네트워크에 참여해도 되지만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경우 전문대학은 설립인가를 취소하는 것이다.

사립대학들이 전문대학 없이 자립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학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자립할 수 없다면 통합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상위권 대학을 평준화시킴으로써 입시과열을 막고 학벌체제를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상위권 대학을 평준화시키는 것은 학벌체제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다. 최상층 대학간 위계구조는 분명 약화될 것이다. 더불어 사교육시장의 팽창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안은 현재의 대학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안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론은 근본적으로 대학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위기의 본질은 경제위기 이후 엔지니어와 중간관리자를 담당하는 지식노동자의 수요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로 상위권 대학들이 평준화되어도 이들 역시 대기업/공기업 취직을 위한 경쟁에 노출됨으로써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상위권대학의 평준화는 대학 입학과정의 선별효과를 약화시키는 것이지 선별효과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등의 안정적인 직장에 진입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대학통합네트워크는 현재 일반화되고 있는 과잉학력문제를 그대로 유지한다. 과잉학력 문제는 학력에 따른 취업기회 차이 및 임금격차에서 비롯된다.

이런 차이는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가 구성되었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 내부의 단절과 특정 수준 이상의 대학출신자들에게만 안정된 일자리가 제공되는 상황에서라면 학력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과잉학력은 고등교육에 대한 열망을 키우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할 수 없다. 또한 학력 인플레이션은 지위에 대한 과잉기대만 낳고 육체노동에 대한 거부감만 키워 능력 있는 현장 인력 공급에 장애로만 작용할 뿐이다.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론은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결여되어 있다. 앞장에서 보았듯이, 20세기 법인자본주의 하에서는 기계가 숙련을 대체하면서 기계를 관리하는 엔지니어와 조직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들과 반숙련 상태의 육체노동자로 분할된다. 이는 공장과 같은 생산과정만이 아니라 유통산업과 같은 서비스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는 학벌은 없앴지만 선별효과에 따른 지식노동자와 육체노동자 간의 분할이라는 문제를 그대로 유지한다. 네트워크 안이 대중대학 체제의 고유한 모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말이다. 노동과정에서 이와 같은 분할이 지속되고, 고등교육체계가 이와 같은 분할을 정당화하는 체제에서는 학벌에 대한 요구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는 과소교육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대학들은 실제 경제성장에 필요한 과학적, 기술적 지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학부제 등이 확산되면서 대학이 교양교육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심화된다.

구미공고의 교육 모습(사진=중소기업청 블로그)

구미공고의 교육 모습(사진=중소기업청 블로그)

교양교육은 귀족적 특색을 지닌 고등교육 체계를 답습하는 것이지 현대적인 대중대학의 체계에서 주요하게 추구하는 목표는 아니다.

국립대통합교육네트워크는 평준화의 이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대학이 실질적으로 담당해야할 전문교육의 심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여되어 있다. 심지어 다수의 인민주의자들은 인문교육의 가치를 과잉옹호하면서 고등교육기관의 과소교육이 마치 진보인 것처럼 떠들기도 한다.

대학의 인문학 열풍은 이와 같은 과소교육의 또 다른 징후이자 대학의 ‘중등교육화’에 앞장서는 것일 뿐이다.

이는 경제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경제성장은 인구와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데, 인구성장이 정체된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적 경쟁력이다.

대학이 장기적으로 교양수준의 교육만을 담당하는 반면 제대로 된 과학, 기술 지식인을 양성하지 못한다면 국가경제의 성장 동력은 점차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 및 전문적인 생산자 서비스의 생산을 위해서는 보다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평준화 자체가 아니라 대학 자체가 지식노동자를 생산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6. 인문주의 비판

현재 대학가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적으로 인문학 열풍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학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고전읽기 중심의 인문교육은 과거 귀족들과 같은 유한계급들의 삶의 보충물이었다.

이런 지식은 직접적인 생산활동,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계급들이 삶의 양식이자 지배집단으로서 갖추어야할 윤리적, 종교적 인성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지배계급으로서 갖추어야할 소양으로서 인문교육, 고전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과학적 지식, 실무적 지식은 노동자계급이나 중간계급의 덕목이었다. 이와 같은 지식은 실천적 지식으로써 삶의 양식이 아니라 생산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한때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비롯하여 일련의 비판이론에서는 현대의 지식이 ‘도구적 지식’의 성격만을 지님으로써 성찰적, 반성적 사유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비판받은 적이 있다. 한국의 교양교육 강화론자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입장을 지니고 있다.

인문적 지식을 쌓는 것은 삶의 본질, 사회체제의 문제, 현대 사회의 모순을 성찰하는 능력을 갖추는 반면 공학적 지식이나 사회과학적 지식은 자본의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이다.

경기도 한 지자체에서 개최한 인문학 강좌 모습

경기도 한 지자체에서 개최한 인문학 강좌 모습

그러다 보니 철학자에 대해서 좀 알거나 시라도 한 구절 읽는 이들은 교양을 갖춘 반면 전공서적만 읽는 이들은 뭔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관념이 사회적으로 매우 확산된 것이다.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점차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과학적 지식은 제대로 학습시키지 않는 반면 인문적 교양만을 강조하는 것이 ‘진보적인’ 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교양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과학적 지식, 수학적 지식은 단지 입시에서만 필요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20세기 대중대학의 성장은 귀족적인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인문적인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필요한 과학적인 지식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대학의 일차적인 역할은 지식노동자의 생산인 것이지 노동은 경멸하면서 ‘삶의 가치’나 따지는, 말하자면 머리만 크고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런 허구적 지식인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 교육에 기초를 둔 인문교육은 귀족과 같은 통치 집단의 교양인을 만들던 시절에 중심적으로 이루어진 교육인 것이다.

현재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허구적인 인문학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지식에 대한 대중적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 문제이며, 생산에서의 기술적 경쟁력의 약화가 문제인 것이다.

더 나아가 모두가 대학 가고, 교양 교육 받고, 허구적인 지식인이 되려하다 보니 육체노동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생산현장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이다. 모두 대학생이 되다보니 생산현장으로 갈 능력 있는 인재들은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공업계 고등학교가 붕괴된 것이야말로 한국 중등교육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이며, 제대로 된 과학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 한국 고등교육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허구적인 교양의 습득이 아니라 기술적 능력을 갖춘 육체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 참여하는 것이며, 과학적 능력과 기술적 경쟁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이다.

7. 대안적 접근을 위한 문제 제기

대학 위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안은 노동자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학력간 임금격차를 해소함으로써 과잉학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들은 소위 ‘졸업장 장사’로 유지되고 있다.

더불어 대학은 준실업자들을 실업상태에서 제외하는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국가와 체제에 봉사하고 있다. 많은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돈 내고 졸업장만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력간 임금격차를 줄여야 하며, 노동자에 대한 기술교육을 더 확대해야 한다. 현재 거의 유명무실화된 중등 고등 교육기관의 직업교육에 더 투자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 확대해야 한다.

학력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상승시키고 사회임금을 확대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상승은 중등교육을 마친 학생들로 하여금 어떤 분야에 취직해도 일정한 수준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줌으로써 고등교육에 대한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사회임금의 확대는 노동자간 임금격차를 감소시킨다.

2012년 6월 최저임금 집회 모습(사진=전국여성노조)

2012년 6월 최저임금 집회 모습(사진=전국여성노조)

반면 반값등록금 정책은 정부의 재정지출을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과잉학력을 더 부추긴다는 점에서 정책적 대안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것은 그저 인민주의적 구호일 뿐이다.

최저임금을 높이는 근원적인 힘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은 한 국가의 노동력과 국민소득의 비로 나타난다.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려면 교육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교육은 복지가 아니라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공공재이다. 공공재를 정부가 공급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경제성장을 추동한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인문교양과 같은 허구적인 지식의 확대를 위한 투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교육의 확대, 사회과학과 같은 실천적 지식의 확대를 의미한다.

수학 및 과학 교육에 대한 투자, 공학적 지식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중요하며,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등교육과정에서 기술교육의 중요성은 더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전문지식에 대한 투자만이 사회전체의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더불어 노동자들 스스로 과학적 지식, 기술적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지식인이 됨으로써 노동과정에 대한 자주적인 통제력을 확산시켜야 하는 것이다.

교육투자는 이미 확대되어 있는 대학들에 대한 일률적인 지원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재 과잉성장 된 대학의 규모는 줄여야 하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규모를 확정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대학에 대한 투자확대를 통해 경쟁력 있는 지식노동자를 생산해야 한다.

물론 이런 지식노동자의 생산이 현재와 같이 안정된 직장에 대한 특권적 지위의 보호와 결합된다면 과잉교육의 문제는 지속될 뿐이다. 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는 그 투자의 결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축소시키는 정책과 결합된 과학기술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앞에서 썼던 최저임금의 상승과 사회임금의 확대는 그와 같은 격차 해소의 한 방향이다.

더불어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확장해야 한다. 이는 대학교육 자체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와 자본이 장악한 대학이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확장해 줄 수 없다. 지식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시민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

시민교육의 확대는 대학과 같은 공교육체계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사회운동의 자발적인 힘을 통해 이를 실현할 수도 있다. 시민교육은 과학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더 강화하고, 정치공동체와 자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은 성과주의, 출세와 결별하고 시민들 내부의 공동체적 유대와 자주적인 자기 통치의 능력을 확장하는 그런 교육이다. 시민교육의 확장은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지식인화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노동일의 단축과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동시에 필요하다.

필자소개
남종석
부경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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