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경과 시와의 '색 좋은 만남'
    <콘서트 동행>에 대한 대한 감상기이자 비평적 기록
        2013년 05월 13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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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원씨가 지난 4월 20일 있었던 정윤경씨와 시와씨의 <콘서트 동행>공연에 대한 감상기를 보내왔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그 내용은 시간을 떠나 울림이 있다. 일찍 보내준 기고글이지만 편집자의 게으름으로 늦게 올린다. 죄송하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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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연중기획 릴레이콘서트인 <콘서트 동행>이 네 번째 공연을 가졌다. 4월 20일(토) 오후 4시와 7시 30분, 서울 홍대앞 공연장 ‘롤링홀’에서 ‘꽃다지’의 음악감독이며 솔로활동을 재개한 정윤경과 인디음악동네에서 주목받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시와가 만났다. 이글은 이날 공연에 대한 감상기이자 비평적 기록이다.

    인디뮤지션과 민중음악인의 ‘색 좋은’ 만남

    오월이면 공원과 도로 곳곳이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로 채워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데 간혹 놀이기구와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고단한 피난민 행렬처럼 보이곤 한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보게 될 풍경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이르면 스스로 방정맞다 질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상에선 급한 불을 끄느라 산불을 놓친 격으로 살고 있기도 하다. 한편으론 첨단의 기술을 배우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강박이 모두의 가슴 위에 올라가 숨통을 누르고 있는, 거대한 스펙터클 속에서. 브라보, 스펙터클의 시대!

    한가롭고 느리고, 따뜻하고 결연한 음악의 그림을 그려온 정윤경과 시와의 <콘서트 동행>을 전후로 ‘음원차트 석권’의 주인공들이 버스커버스커, 싸이, 조용필, 이효리로 바뀌어갔다. 각각의 ‘차트 석권’에 대한 과잉분석과 과대평가가 매주 시도되었지만, 이러한 현상에 특별함이 있다면 권좌에 머무는 기간이 무척 짧다는 것이다.

    나도원1

    시장회전율에 갈수록 가속이 붙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소박한 소리와 내밀한 이야기는 귀해진다.

    벽이나 둑의 벽돌 틈을 뚫고 고되게 자라는 풀들을 발견하면 경외심을 품곤 한참을 바라보게 되지 않는가. 요란한 환영행사는 없을지라도 어디에든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줄기를 뻗는다. 지금도 세상에 새롭게 돋아나고 있는 음악들을 모두 담기엔 마음바구니가 부족하다(온통 조용필과 싸이 이야기로 가득했던 2013년 4월의 그늘에선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작품들이 한꺼번에 발표되었다).

    비움과 채움

    화사한 옷을 입고 홀로 등장한 시와는 ‘꽃다지’의 명곡인 <전화카드 한 장>을 아무런 반주 없이 불러 이날의 회합에 의미를 부여했다. 건반과 베이스 연주자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랄랄라>와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가 이어지고, 이내 퍼커션이 끼어드는 점층 구성으로 공연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음반 안에서 시도된다면 또 다른 감흥을 불러올만한 전개가 시도되는 가운데 시와의 얼굴은 늘 그렇듯 미소로 해맑았고, 예전에 전달을 중시했던 창법도 분위기 중심으로 옮겨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시와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는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건반을 맡은 이혜지와 퍼커션을 두드린 이수혁과 함께 시와의 공연을 이끌어간 사람은 베이스연주자 정현서이다.

    이날 사운드를 건실하고 다채롭게 조율한 정현서는 아주 오랜 음악경력을 지닌 베테랑이다. 현재는 싱어송라이터로서 ‘투명’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인디음악동네의 중견밴드인 ‘황보령=스맥소프트’ 등에서도 관록과 실력을 증명하고 있다.

    ‘시와 무지개’를 통하여 발표된 <고개를 들어봐>는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와 시와의 목소리만으로 펼쳐졌으며, 플랫리스 베이스의 흥얼거림이 <그대의 우물에서>를 덧칠했다.

    음반에선 조정치가 함께 했던 <짐작할 뿐이죠>라든지, 특별한 사연을 소개한 <마시의 노래>와 <나는 당신이> 등이 이어지는 후반은 밴드 전체가 함께 움직이며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나도원2

    시와는 여백을 하나둘 채색하는 과정과도 같았던 이 공연에서 자신의 베스트 송들을 엄선하기보다는 대부분 최근에 발표한 곡들을 소개했다. 물론 앙코르에는 오래된 노래인 <화양연화>로 화답했다. 이렇듯 시와가 욕심을 버리고 소리 역시 비웠다면, 정윤경은 누가 봐도 의욕이 넘치는 자세와 꽉 찬 소리를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정윤경의 첫 곡은 능청스러운 ‘튜닝’이었다. 아, 현장에 있었던 이들을 위한 농담이다. 처음부터 풀 밴드와 함께 <다시 시작>으로 곧장 달리기 시작한 정윤경(과 밴드)의 차례에 앞서 2012년 연말에 가진 첫 단독공연과 차이가 있다면 록 사운드의 전면화이다.

    보컬멜로디부터 연주까지 원곡을 새롭게 만들어버린 <나의 노래>와 <나무>는 스케일이 큰 록 클래식을 방불케 했다.

    이지은의 건반이 프로그레시브 록에 등장하는 연주법과 상통하고, 고명원의 기타가 록에 뿌리를 둔 연주였던 이유도 있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드럼을 연주한 정석원과 베이스를 맡은 박우진도 영락없는 하드 록 밴드의 멤버들이었다.

    단순한 기법과 멜로디로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기타리스트 고명원의 장기 또한 <살아있다 보면>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발휘되었다.

    정윤경의 솔로 곡들 중에서 <참 딱한 일이지 뭐예요 정말>과 <좋겠어>는 귓바퀴와 혀놀림에 여운을 남길 정도로 인상이 깊었고 생기가 넘쳤다. ‘꽃다지’의 음반에 젊은 세대를 위하여 수록한 <혼자 울지 말고>가 대상과 기법 사이에 다소간 간극을 남겼다면, 이 곡들은 자신의 이야기라선지 자유로웠고 참신했고, 그래서 젊었다.

    물론 정윤경 음악의 한축은 <또 친구에게>처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시와가 순간순간을 노래한다면 정윤경은 긴 여정을 돌아보았다. 그럼에도, 가짜 마지막 곡이었던 <실망>에 이어진 앙코르 <나의 낡은 캐주얼화>가 끝나기까지 이날은 ‘로커 정윤경’의 날이었다. 이러저러한 축제들은 당장 정윤경 밴드를 섭외해야 한다!

    나도원3

    정윤경과 시와는, 꽃다지 공연의 앙코르라든가 사적인 자리에서 정윤경이 부르곤 하는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를 함께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관객의 구성에선 정윤경의 콘서트에 시와가 초대된 것 같은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음악인들에 의하여 그 반대의 장면도 만들어지고 있으니, 언젠가 온전히 어깨를 거는 날도 있지 않을까.

    만남과 헤어짐

    정윤경은 <나의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한동헌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의 노래>는 김광석이 불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에 대학 노래패 ‘메아리’의 테이프에 실려 퍼져나간 노래인데, 원래의 주인공이 훗날 ‘노래를찾는사람들’의 대표를 맡게 된 한동헌이다.

    농담을 섞어 그의 이야기를 하고 정윤경이 <나의 노래>를 마음껏 재조립하고 있을 때에 한동헌은 바로 내 옆자리에 있었다(정윤경은 공연 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곡이 끝나고 슬쩍 쳐다보니 그는 손은 힘찬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 풀 한 포기마저 소중해지는 날이 있다. 김광석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이등병의 편지>에도 등장하는 이야기다.

    역시 이 곡의 원작자인 김현성을 광주에서 열린 <오월창작가요제> 심사를 위한 자리에서 만났다. 그는 과거의 음악인들은 커뮤니티와 노래패 활동을 통하여 서로의 음악에 대한 조언과 질책을 나누는 과정에서 음악이 걸러지고 기량을 닦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요즘 젊은 인디음악인들은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전문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한 강조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편에서 보면, 중견 음악인들 역시 당대의 음악 트렌드와 과거와는 달라진 좋은 음악의 기준, 그러니까 더 이상 가창력과 연주력과 완성도가 아닌 다른 기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마 처음에는 납득할 수 없겠지만, 귀를 닫거나 재설정을 두려워한다면 말 그대로 과거의 음악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공연과 문화 프로그램의 기획 역시 기존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연 바깥에서 하나둘 정도 끼워 넣는 식이라든가, 조언과 자문을 그냥 조언과 자문을 듣는 과정에 만족한다면 갱신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번 공연만큼은 동행의 의미에 충실했다. 다른 의미에서도 그렇다. <콘서트 동행>의 시작은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자인 고 황유미의 추모영상을 포함한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의 티저영상이었고,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며 동행을 요청했다.

    공연 후에 박재동 화백이 그려준 초상화를 들고 돌아간 정윤경은 꽃다지와 함께 다시 대한문으로 갔고, 시와는 또 다른 카페뿐만 아니라 자신을 부르는 ‘지붕 없는 곳’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다른 자리에 있을지언정 그들은 계속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별과 동행

    “당신은 그대로인데 나는 늙었습니다.”

    고인들의 영정을 보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말이다. <콘서트 동행> 이후에 어딘가로 돌아간 사람이 또 있었다. 이날 공연을 본 사람들 중에는 이해삼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도 있었다. 그가 다음날인 4월 21일 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애썼던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들이 누구를 대신하여 투쟁하는 대신 자신을 위하여 싸워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어 있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천천히 움직여지는 상황에서 애써 마음은 느긋하게 먹고 몸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시절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생겨난다. 길을 걸으며 “여기 한 사람 더 있소!”라고 말하면, 또 누군가 “여기에도 한 사람 더 있소!”라고 말하고, 그들을 보며 또 다른 누군가가 “여기에도 한 사람 또 있소!”라며 만나는 장면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여행이다. 알아간다면 말이다.

    태양계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았다면 지난겨울 언 땅을 녹였던 해와 저 멀리 추운 북구에 비스듬히 햇살을 뿌리고 있을 해가 지금 이 눈부신 오월의 해와 같은 물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윤경과 시와의 음악 역시 같은 해 아래에서 자라났다.

    필자소개
    음악평론가.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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