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들의 천국과 미스김
    韓 '직장의 신'과 日 '파견의 품격'
        2013년 05월 13일 09: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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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스김이다. 진짜로…

    20년전 여성들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미스아무개로 불리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곳은 여전히 그렇다.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직장인에게 인기 있다고 하니 일본 원작과 비교해서 뭐 좀 써보지 않겠냐고 편집부에서 지령이 왔다.

    2007년에 리얼타임으로 <파견의 품격>(하켄노힌카쿠)을 봤었지만 <직장의 신>은 아직 보지 않아서 부랴부랴 한꺼번에 구해서 봤다.

    그리고 비교를 위해 원작도 전부 다시 봤다. 두 드라마를 비교하면 <직장의 신>은 기본적인 포멧과 네러티브를 원작인 <파견의 품격>에서 다 따왔지만 상당히 한국적인 상황들을 집어넣어서 각색했다.

    마트의 캐셔대결도 그렇고, 출근전쟁도 그렇고 원작에는 없는 한국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그로 인한 공감대 형성이 이 드라마에 사람들을 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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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의 신’과 ‘파견의 품격’

    일본 드라마는 대개 주 1회 방송으로 10회 전후에서 완결된다. 그리고 회당 런타임도 45분 정도이다. 이에 비해 한국 드라마는 주 2회에 런타임도 60분정도이다. <직장의 신>은 16회 완결이라고 하니 원작에 비해 두배 정도의 길이인 셈이다.

    그래서 원작에는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외연도 넓다. 예를 들어 홈쇼핑업체가 등장한다든지 사원체육대회 에피소드나 사내연애커플이 등장하는 장면은 원작에는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원작과는 주인공의 비중이 상당히 다르다.

    원작은 주로 주인공들의 코믹한 티격태격과 여주인공의 놀라운 능력이 중심이 되고 있다.

    물론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갑질”하는 것은 두 드라마에서 모두 중요한 내용들이고 <직장의 신>에서는 홈쇼핑이라는 회사 대 회사나 더 다양한 직위 등이 등장해서 더 다양한 “갑질”이 등장하면서 “갑질”이 대한민국 전체에 널리 퍼진 질병이라는 걸 보여준다.

    일본의 비정규직법

    <파견의 품격> 1회는 <직장의 신>과 같은 스타일로 시작한다.

    1986년 파견법 제정(한정적), 1991년부터 버블붕괴, 1997년과 1998년 금융기관 연속파산, 1999년 파견법개정(일반사무), 2000년 사상최저 대졸취업율, 2004년 파견법 개정(제조업까지 확대) 2005년 파견업 시장 4조엔 돌파..라는 자막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파견이 늘어가고 있는 사회적 배경을 나레이션으로 빠르게 설명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여기서 1986년 제정된 일본의 파견법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자.

    1986년 7월 파견법이 제정되었을 당시의 파견법의 취지는 상시고용노동자의 이직을 막기 위해 파견업무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 한한다”고 되어있다.

    즉 버블 전성기의 일본에서 더 많은 임금을 위해 이직하여 일반 업무의 지장을 초래하는 사태를 방지하고 대신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인재의 활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13개 업무에 한해서만 파견업무가 허용되었다.

    1998년 만들어진 한국의 파견”보호”법과는 취지가 매우 다르다.

    한국의 파견보호법은 “……인력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을 목적….”라고 되어 있다.

    두 국가의 공통점은 이 법들은 기업을 위한 법이지 결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1991년 버블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것이다. 1997년, 98년에 잘 나가던 대규모 금융기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한국도 IMF를 겪었고, 전세계적으로 모라토리엄 선언이 이어지고 일본에도 버블붕괴이후 누적된 경제불황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상태였다. 일본의 몇몇 증권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리고 은행권은 알아서 통폐합에 들어갔다.

    1996년 파견법을 개정하여 육아와 개호(간병)업무에 관해서 파견업무가 가능하게 된다. 총 26개 업무에 대해 파견노동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1999년에 개정된 파견법은 이제까지 허용업무 몇개로 명시하던 걸 바꿔서 특정업무 이외에는 파견이 가능하게 되었다. 소위 규제철폐를 통한 노동유연화로 아웃소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2003년 파견법은 IT와 금융분야도 파견업무가 가능하도록 개정되었고, 2004년에는 파견기간에 대한 제한을 삭제하고-즉 일정기간이상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하는 근무연한이 사라짐-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던 제조업분야도 1년 근무연한 조건으로 파견업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서 파견업무가 불가능한 업무는 사실상 없어진 셈이다.

    최근 2012년에 개정된 파견법은 “원칙적”으로 파견업무가 불가능하다고 조항만으로라도 존재했던 업무의 원칙금지 제한이 모두 삭제되었다. 일본의 파견법은 꾸준히 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악되어 온 것이다.

    <파견의 품격>이 보여주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 밖에 존재한다.

    파견법을 완전한 고용유연화로 이끌었던 고이즈미 총리의 아들이 드라마에서 파견들을 가장 인간적으로 잘 이해하는 “사토나카” 주임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디렉터나 작가가 의도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7년 당시에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이 참 재미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했었다.

    일본에서 파견의 실제

    필자도 파견으로 근무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드라마의 미스김처럼 일반사무는 아니고 일본어와 한국어의 통역, 번역, 외국어수업, 외국어로 진행하는 조사 등의 업무를 주로 한다. 그러니까 나인투식스의 근무형태는 아닌 셈이다.

    파견에는 다양한 업무가 존재하고 필자의 경우는 개별적이고 자세한 계약내용에 따라 일을 한다. 일반적인 파견업보다는 전문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시급이 높다. 당연히 매달 벌어들이는 수입도 들쭉날쭉하다.

    실제로 일반업무의 파견직은 <파견의 품격>에 나오는 것처럼 높은 시급을 받지 못한다.

    <파견의 품격>에 나오는 파견직은 토쿄, 그리고 대기업 기준이다. 일본은 물가연동제이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이 다르다. 토쿄의 주거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높기 때문에 시급도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래서 정규직의 경우는 교외에 집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데 회사는 교통비를 지원하고 그 상한선이 10만엔 정도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정규직의 경우는 증빙서류만 있다면 월 120만원의 교통비까지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이후 파견에게는 이런 지원이 사라졌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오랫동안 한 곳에 근무하는 계약직이 있는데 그야말로 슈퍼파견직이다.

    정사원보다 월등히 많은 급여를 받는다. 파견업무자체가 다양하게 존재한다면 정사원보다 나은 파견직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아주 드문 것도 아니다.

    파견은 어떤 의미에서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그리고 능력주의적인 업무형태라고 할 수 있다. 파견업무는 스펙이 아니라 능력에 의해서만 평가받는다. 능력이 없다면 재계약도 없고, 높은 급여도 없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토대가 사회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것은 차별과 상대적 빈곤을 양산하고 확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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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의 디테일 한일비교

    두 드라마를 살짝 비교해보면 한국과 일본의 노동현실이 약간 보인다. 한국 장규직 팀장의 연봉은 5700만원이고 일본 쇼지 주임은 625만엔이고, 무정한 팀장의 연봉은 3900만원이고 사토나카 주임은 520만엔으로 소득이 상당히 차이가 난다.

    부장 연봉에 이르면 한국은 8200만원이고 일본은 1600만엔으로 2.5배의 차이가 발생한다.

    미스김의 시급은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하루코의 시급은 3000엔, 그 후에 더 오른다.

    일반적인 파견사원의 연봉은 한국은 1500만원에서 1800만원 정도, 일본은 230만엔에서 290만엔으로 나온다.

    단순비교는 물가 등의 문제로 크게 의미는 없으나, 직급별로 한일 양국의 연봉 차이가 벌어지는 부분은 좀 의미심장하다.

    일본에서 승진이란 경제적으로나 업무권한에서 훨씬 더 큰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견의 품격>에서는 직원식당이나 교통비 등, 정사원에게는 업무를 위한 각종 비용이 지급되고 있다는 내용이 살짝 보인다. 일본에서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뿐이다. 단지 파견과 정사원의 차이는 이 드라마의 결말과 상관있다.

    <파견의 품격>에서는 런타임의 길이가 짧아 주로 주인공의 근무환경이나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다양한 직급의 모습을 비추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으나 사내에 한정해서 말하면 일본과 한국의 파견직 업무와 오피스 분위기 차이도 뚜렷하다.

    미스김을 위무하는 오피스판타지

    <직장의 신>은 원작보다 외연이 많이 넓다. 그래서 그냥 일개 오피스, 일개 회사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얼마나 “갑질”이 흔하고 도처에 퍼진 일반적인 일인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원작보다 더 씁쓸하다. 주인공 남녀가 탁구치듯 주고받는 대사에서 원작이 보여주던 발랄함도 <직장의 신>에서는 그다지 느끼기 어렵다. 원작이 만들어진 2007년과 <직장의 신> 이 만들어진 2013년과의 간극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두 사회의 간극도 크다.

    2007년에 일본 사회는 비정규직 300만이었고 2013년 한국사회는 비정규직 800만이다. 이것을 경제인구 대비로 비교한다면 2007년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 불과 5%의 비정규직이 있었지만 2013년 한국에는 공식적으로 35%가 넘는 비정규직이 있다.

    주된 직업을 기준으로 하는 통계에서는 그렇지만 2012년 무렵 단기알바들을 포함한 일본의 비정규노동인구는 경제활동인구의 30% 미만이고, 한국은 60%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제아무리 미스김이라도, 자격증을 클리어파일 12개에 넘칠 만큼 가진다해도 정규직이라는 넘사벽에 대항할 도리가 없다.

    그게 어떤 기업이든 위험한 미스김 한 명보다 미스김이 가진 자격증 숫자만큼의 비정규직을 쓰려고 할 것이다. 미스김에게는 “갑질”이 통하지 않으니 말이다.

    잡지나 지갑으로 때리거나 재고 물량을 떠넘기려다가는 대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미스김에게 재계약이라는 은총은 내리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미스김이 존재하지만 그들이 “미스김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날은 너무 멀다.

    철탑위의, 종탑 위의, 굴다리 위의 미스 or 미스터김에게 잠시의 판타지는 얼마 만큼의 위안이 될지 모르나 <직장의 신>은 이제 여섯회분을 남기고 있다.

    좋은 판타지는 현실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고발하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남은 여섯회동안 미스김이 힘내길 바란다. 한국사회의 현실을 미스김이 잠시나마 이김으로서 우리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기에 덜 힘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일본 후쿠오카에서 14년째 살고 있으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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