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러움의 섬, 제주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30]침묵 속에서 강정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
        2013년 05월 10일 01: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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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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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 초입 신춘문예에 떨어지고 문학청년의 치기로 친구와 함께 제주를 가 보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와 저는 목포의 유달산 정상에서 제주가 있는 쪽의 바다만 쳐다보다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제주는 가고 싶지만 마음속에 남겨두고 싶은 섬이었습니다. 사실 친구와 저는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처음부터 우리는 제주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푸른 바다를 우리의 치기 어린 시(詩)는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젊은 날의 우리는 목포의 유달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제주를 목청껏 외치는 것으로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고 그 여행을 끝냈습니다.

    제주, 그렇게 그곳은 한때 마음속에 이상으로 남겨두고 싶은 섬이었습니다. 삶에 지치고 아플 때, 시를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때, 그때 제주에 가면 우리의 상처가 낫고 다시 시를 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제주의 대표적 작가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제주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낭만의 섬만이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으로 상처를 가득 안고 있는 아픔의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우며 동경의 장소인 제주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현기영 선생님의 산문집 『바다와 술잔』에도 그것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신의 문학적 이력을 정리한「나의 문학적 비경 탐험」을 보면 제주는 4․3이 할퀴고 간 상처의 땅으로, “수평선으로 갇혀 있는 뇌옥(牢獄), 유배 1번지로서의 원악도(遠惡島), 해상봉쇄령 속에 전대미문의 참혹한 살육이 벌어진 4․3 처형도(島)”라는 것입니다.

    그는 제주의 이러한 현실적 조건과 경험을 소설집 『순이 삼촌』으로 대표되는 처절한 역사와의 싸움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저는 아직 강정 마을도, 그리고 그곳의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도 올라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강정 마을에 가는 편지 릴레이 길은 걸어 본 적이 있습니다. 작가들이 임진각에서 강정 마을까지, 강정을 살리자는 편지를 배낭에 짊어지고 릴레이 식으로 걸어간 그 긴 여정의 한 작은 구간을 걸어 본 적은 있습니다.

    작가들의 행진

    임진각에서 제주 강정까지의 작가들의 평화릴레이 행진이 제주에 들어오는 모습(사진=제주의 소리)

    그 한나절의 행진, 그게 제가 강정을 생각해 본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 행진을 통해 제주의 바다가 군함과 무기로 다시 수평선이 갇힐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강정 마을에 작가들이 꿈의 도서관을 짓고자 땀을 흘리고 있다는 소식을 먼발치에 떨어져서 듣고 있습니다. 무조건 목청을 높여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그럴듯하고 번듯한 도서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오감이 공명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강정 마을에 도서관을 짓지 않고, 강정 마을을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해 빈집을 청소하고 집을 수리하고 그 옆을 이어 마을 전체를 도서관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러한 작가들의 행동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과 환경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아 강정 마을에 평화의 참뜻을 그렇게 새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쓰는 자체가 저에게는 부끄러움입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 때문에 사실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그 진실을 위해 그 작은 행동조차도 하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은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끄러움이 있는 한 제주는, 강정은 제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아마 저와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며 침묵 속에서 강정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박형준 : 시인.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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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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