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의 유통기한...‘을'의 눈물
    [레디앙 생각] '을'들의 분노는 '조직'되어야 한다
        2013년 05월 09일 0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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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주 폭언과 밀어내기 강요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만들고 있다. 대기업의 횡포와 부당한 강요에 항변할 자유 조차 없었던 ‘을’들의 불만과 서글픔이 분노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는 권한과 권력의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들이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 있는 약자들에 대해 일방적 권위적 독재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남양유업 사건만이 아니다.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승무원 폭언과 폭행, 대형유통마트나 백화점의 납품업자들에 대한 횡포, 제빵회사 회장의 호텔 직원에 대한 폭행, 기간제 교사에게 심부름과 차 접대를 강요한 교장, 보육교사에게 고용을 미끼로 노예처럼 부리는 보육시설 원장, 건설업계에서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을 둘러싼 부패의 먹이사슬, 하청업체의 기술을 도둑질하는 재벌 대기업,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그리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을 초토화시키는 대형할인마트의 범람 등등 수많은 을의 눈물과 핍박이 깔리고 깔린 게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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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삼의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한 장면

    하지만 환경오염과 유독가스 사고를 일으키면서도 ‘돈만 벌면 되잖아’라는 삼성전자 임원의 발언은 ‘갑’의 정직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갑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갑이라는 자신의 존재가 위협을 받고 몰릴 때 조금이라도 변할 뿐이다.

    그래서 남양유업은 대중적인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자신들의 이윤에 큰 타격이 올 것 같으니 자, 꼬리를 내리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변화의 약속일지, 악어의 눈물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

    포스코 임원이 사표를 내고,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사직을 하고, 과도한 행동을 한 교장이 교직은 그만둔다고, 자극적인 불쾌한 행동을 해서 불의를 일으킨 몇몇이 사라진다고 갑과 을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통쾌하지만 문제의 구조와 근원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갑’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일탈적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권위의식과 우월의식을 강요하는 갑과 을의 구조와 관계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불만이 누적되고, 그것이 점화될 때 폭발한다. 보통 폭언 폭행 욕설, 뺨 때리기와 같은 자극적인 계기가 분노의 불꽃을 점화시킨다. 남양유업과 같은 경우에서 보듯이 그 분노의 폭발성은 작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자극적 분노의 ‘유통기간’은 짧다. 오래지 않아서 잊혀질 뿐이다. 그래서 을들의 분노는 한 개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갑이라는 집단을 향해 집단화되고 조직되어야 하고, 흐름도 그렇게 가고 있다.

    사실 갑과 을의 관계, 을들의 피눈물과 설움을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갑과 을의 관계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이다.

    공돌이 공순이로 종처럼 취급받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였고, 지금은 노동조합 등이 발전하면서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어느 날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고 오전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도 여전히 전형적인 ‘을’의 처지이다.

    ‘을’이었던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조직 즉 노동조합이었다. 지금은 노동조합이 마치 권력인 것처럼 인식되고 또 일부 그런 부정적 측면과 사례도 있지만, 노동조합은 ‘을’들의 가장 대표적인 저항조직이고 ‘갑’에 대한 대응기구였다.

    지금 택배기사들이 대형택배 업체의 일방적이고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행동에 맞써 파업을 하고 조직화를 하고 있다. 홈플러스 입점에 맞서 마포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조직하고 오랫동안 맞서 싸웠다. 남양유업의 횡포에 맞서 대리점 점주들이 연합회를 조직하고 맞서고 있다.

    하청업체 기업주들이, 자영업자들이, 택배기사와 백화점의 입점업체 노동자들이 조직하고 그 조직이 갑의 억압에 최소한의 저항과 발언이라도 할 수 있을 때 을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닦아낼 수 있고,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고 나아질 수 있다.

    개인의 분노는 소중하지만, 그 분노의 유통기한이 짧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분노의 유통기한을 늘리고, 그 분노를 자신의 권리의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조직’이다. 더욱이 삼성이나 현대 등 재벌 대기업과 같은 ‘슈퍼 갑’을 대상으로 하려면 더더욱 그렇다.

    더불어 을의 자기 권리를 위한 행동을 ‘불매운동’이라는 눈에 보이고 화끈한 행동으로만 한정해서도 안된다. 피해대중들의 자기 ‘조직화’와 함께 노동법, SSM규제법, 불공정 하도급 규제법 등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관심과 집요함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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