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필요
    제6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 소감문...선생을 다시 생각하며
        2013년 05월 08일 05: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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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으로 <위기의 경제학: 경제 위기의 시대에 다시 읽는 현대 경제사상>의 저자 신희영 박사가 선정되었다.(관련기사 링크). 레디앙 필자이기도 한 신희영 박사는 비교적 장문의 수상 소감문을 ‘일곡기념사업회’와 ‘맑스코뮤날레’에 보냈다. 그 수상소감문의 취지가 주례사 소감문이 아니라 현재 경제 현실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대안적 접근의 방향을 언급하는 내용이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필자는 완곡하게 게재를 사양했지만 레디앙의 강권으로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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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농업 분야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협업’적 기업농 또는 요즈음 한창 회자되는 표현을 빌자면 농업 ‘협동조합’을 통한 발전 방안을 제시하셨고, 고 박현채 선생님과 더불어 현대 한국의 비판 경제학의 초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민족 경제론’을 주창하셨던 일곡 유인호 선생님의 학문적 실천적 기여를 기리는 상을 받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하기 그지없는 저의 책을 이 상의 후보로 추천해 주시고, 또 제6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의 수상자로 저를 선정해 주신 추천자와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더불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학술 지원 제도가 빈약하고, 각종 연구 관련 재단들의 활동이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일곡 유인호 선생님의 활동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신진 연구자들의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북돋아 주고 계시는 기념사업회 관계자 여러분들과 유족 분들께도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 상을 수상하게 된 저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더 많은 소장 연구자들이 국가권력의 억압이나 재정적인 제약에 부딪혀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문제의식을 벼리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일곡 유인호 기념사업회와 유인호 학술상과 같은 선구적인 제도적 바탕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74-유인호

    1974년경 일곡 유인호 선생의 모습

    저의 책 [위기의 경제학 – 경제 위기의 시대에 다시 읽는 현대 경제 사상]은 전부 2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1부에서 저는 미국의 주택 시장 거품의 붕괴에서 촉발된 현재의 국제 금융 위기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추적하고자 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시는 모든 분들께서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시는 것처럼, 2010년 초에 접어들자 금융 시장의 붕괴 직전까지 치달았던 미국발 금융 위기는 유로존의 재정 위기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던 국제적인 차원의 유동성 사이클이 붕괴하고 주택 시장의 가격이 폭락함과 동시에 주변부 국가들로 유입되었던 막대한 양의 투기 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유로존의 주변부 국가들은 은행 산업의 채산성 위기,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들의 정부는 불가피하게 자국 은행 산업의 위기를 막기 위해 지급 보증을 해주거나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금융 위기가 정부의 재정 위기로 변모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국제 금융 위기의 초기 국면에서 흥미롭게도 미국은 G20라는 이름으로 모인 선진 각국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며 전례 없는 규모로 ‘케인스주의적 확대 재정 및 금융 정책’을 취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유럽의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 위기에 빠지자 보수당 정부 하에 놓여 있던 유로존의 중심부 국가들은 예의 낡고도 낡은 ‘신고전파적 긴축 정책’을 구제 금융 지원의 대가로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1990년대 말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과 미 재무부 그리고 미 연준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 정부들에게 강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왜 똑같은 금융 위기를 목전에 두고서 이렇게 극명하게 대조되는 정책들이 거론되고 처방되는 것일까요? 미국을 위시한 선진 각국들이 자국 경제를 회생시킨다는 미명하에 추진했던 일련의 정책들은, 왜 어떻게 해서 아일랜드와 그리스,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는 적용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현재와 같은 국제 금융 질서 하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냉혹한 국제적 이중 잣대 또는 표리의 부동을 목격하면서 저는 한국의 보다 많은 지식인들과 정부 관리들이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출간하면서 제가 가졌던 첫 번째 소박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이 책의 2부에서 저는 ‘비판 경제학자’ 또는 ‘비주류 경제학자’(heterodox economics)라고 불리면서 ‘주류 경제학'(orthodox economics)의 담론에 의해서 장악된 공식 경제학계에서는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 일련의 학자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세계 경제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가 직면해온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진보적인 해결 방향을 찾는 데 혜안을 제공해주는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는 데 할애하고자 했습니다.

    미국발 국제 금융 위기 국면에서 터져 나온 주류 경제학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소개하고,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포함한 일련의 사회 운동 등에 대해서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소개하는 5장의 뒤를 이어, 이 책의 6장부터 10장까지 저는 순서대로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와 칼 마르크스(Karl Marx),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 Keynes), 하이먼 민스키(Hyman P. Minsky), 그리고 미하우 칼레츠키(Michal Kalecki)의 경제 사상(에 대한 저의 해석)을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정치경제학의 국민 체계]는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계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왔지만, 오늘날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실제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 과정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역사와 현재 상태를 비판적으로 추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상가입니다.

    그는 미국발 금융 위기 국면에서 미국 정부가 취했던 일련의 예외적인 재정 및 금융 정책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유럽의 트로이카가 지금 현재 벌이고 있는 짓거리들의 함의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에서 명확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지녔던 시대적 한계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리스트를 포함한 당시 유럽 지식인들이 지니고 있던 유럽 중심주의와 사회적 다윈주의, 그리고 봉건 지주와 근대 자본가 및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했던 적대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을 은폐하고 당시 독일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배타적으로 옹호하려고 했던 한계입니다.

    이 측면에서 사회 계급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의 대립을 자명한 것으로 놓고 그 비밀을 일관된 이론 체계를 통해서 해명하려고 했던 애덤 스미스 이래의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의 문제의식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칼 마르크스가 집대성한 고전파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추적하고, 그 함의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을 포함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동학을 파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이론적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경제학

    다만 이 책의 7장에서 저는 수많은 이론적 과제들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만을 다루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소유권 이론을 추적하고 해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저작들 안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주장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어떻게 하면 그가 구상했던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 체제의 운영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재구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저는 마르크스의 주장들 가운데 한 측면, 즉 협동조합과 규제된 주식회사가 생산 수단에 대한 지배적인 소유 형태로 나타나고,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책임성을 지닌 정부가 각종 시장 실패를 보완해 나가는 체제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일곡 유인호 선생님은 “경제적 민주주의의 구상”([샘이깊은 물], 1987년 11월호)라는 글에서 이미 한국 경제의 민주화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제가 마르크스를 재해석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생각의 단초를 마련하고 계셨습니다. ‘경제력 집중 억제와 재벌 체제 개혁 그리고 노동자 경영 참가 및 분배 구조의 개선을 경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적 소유 이론을 재해석하면서 언급했던 정부의 역할이라는 문제,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점점 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금융 산업의 구실과 행태라는 문제들에 대해, 저는 케인스의 [일반 이론]과 그의 뒤를 이어 케인스주의를 급진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했던 하이먼 민스키를 소개하는 장들(8장과 9장)에서 다루어 보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케인스의 ‘일반 이론’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문제점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문제점들을 어떻게 다루고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제가 이 책의 10장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려고 했던 경제 사상가는 폴란드 태생의 미하우 칼레츠키라는 ‘좌파 케인스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적 케인스주의’ 사상가입니다.

    그는 비록 국내외의 경제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으며 여전히 순치나 무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케인스의 [일반 이론]에 내재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특히 한계 생산성 가설(marginal productivity hypothesis)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경제 문제들을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칼레츠키는 총생산과 총소득의 생산과 분배의 동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의 재생산 표식(Marxian reproduction scheme)을 원용하고, 이것을 케인스 경제 사상의 핵심인 유효 수요의 원리(principles of effective demand)와 일관되게 결합시켰던 뛰어난 경제학자였습니다.

    비록 제한된 지면 때문에 그의 경제 사상의 전모를 소개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 체제 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총생산과 소득 분배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그의 논의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저의 논의가 국한되었지만, 저는 칼레츠키가 한국 경제가 당면한 구조적인 문제들 해결하는 데 반드시 참조해야 할 매우 중요한 경제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11장에서 저는 앞선 장들의 논의를 종합하며, 비판 경제 사상에 대한 저의 해석들이 지난해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 한창 거론되었던 ‘한국 경제 성격 논쟁’에 어떠한 함의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과정에서 제가 이 마지막 장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일곡 유인호 선생님께서 이미 25년 전에 제시하셨던 것에서 단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앞서 인용한 글에서 제시된 것처럼, ‘노동자들의 경영 참가를 보장하고 그들의 소득을 증대시켜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를 해체한다.’는 문제의식 말입니다.

    저는 이 수상 소감문을 쓰기 위해 일곡 유인호 선생님의 연구 업적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생님께서는 이미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과 틴버겐(J. Tinbergen)의 [경제 정책 이론], 그리고 모리스 돕(Mourice Dobb)의 [경제 발전론]을 우리말로 옮기셨습니다.

    제가 추정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선생님께서 번역하셨던 [국부론]은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중단된 한국 사회과학의 명맥을 잇는 매우 중요한 번역서입니다. 다시 말해,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1990년대 말 김수행 선생께서 다시 번역한 책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무이한 [국부론] 번역서인 것입니다.

    틴버겐은 미국의 저명한 케인스주의 경기 순환론자로서,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케인스주의 경기 순환 이론의 기초를 놓은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제가 책의 9장에서 소개한 하이먼 민스키의 분류법에 따르면, ‘케인스주의의 이름으로’ ‘소비 함수 가설’을 세우고 ‘거시 경제 변수들 간의 통계적 규칙성을 찾으려고 했던’ 미국의 ‘보잘것없는’ ‘케인스주의자들’에 맞서서 거시 경제 변수들 간의 주기적인 탈구와 연속되는 경기 순환의 동학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학자입니다.

    이 사람의 저서를 그것도 이미 1970년대에 한국에 번역 소개했다는 것은 유인호 선생님의 학문적 선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리스 돕은 누구입니까? 그는 서구 자본주의 경제 발전 과정에 대한 최고의 연구서를 쓴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사가이자 제가 [위기의 경제학]에서 소개한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과 칼레츠키 등의 사상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입니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들을 노동 가치론을 중심으로 해서 집대성하고, 이를 통해 한계 주의가 아니라 생산 비용 (노동 가치)에 입각해 가치론을 재구성해서 신리카도주의라는 강력한 비판 경제학의 조류를 만들어 냈던 피에로 스라파를 옆에서 도왔던 사람도 바로 이 모리스 돕입니다.

    서구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대한 그의 경제사적 탐구는, 잉여 가치 이론의 적실성을 둘러싼 마르크스주의자들 내부의 논쟁에 대한 기여와 함께, 현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분석하는 중요한 이론적 틀인 ‘독점 자본주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처럼 서구의 저명한 비판 경제학자들의 문제의식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한국의 경제학계에 소개하려고 했던 일곡 유인호 선생님의 학문적 선구성에 비추어 볼 때, 저의 책 [위기의 경제학]은 그저 이제야 첫걸음을 뗀 아기의 걸음마에 비유되는 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일곡 유인호 선생님은 편역서 [현대 경제학의 위기](한길사, 1982)에서 저명한 캠브리지 케인스주의(Cambridge Keynesian) 경제학자인 조안 로빈슨(Joan Robinson) 교수와, 제가 운이 좋게도 유학을 떠나와 경제학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이라는 곳의 경제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봉직했던 로버트 하일브론너(Robert Heilbroner) 등의 저술들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일곡 선생님께서는 “현대 경제 이론은 경제적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이론도 설득력 없는 궤변으로 연결[되고 말 것이라고] ‘선포’된지(1971년 12월 미국 경제학회 연례회의에서 조안 로빈슨 교수의 [경제학의 제2의 위기]라는 제목의 강연) 벌써 10년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현대 경제학은 ‘위기’에서 벗어날 새로운 치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의 보수화에만 급급할 뿐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위기의 지속은 현대 경제 이론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고 쓰셨습니다.

    그 때로부터 이미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더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일곡 선생님께서 강력하게 비판하셨던 ‘경제학의 위기’ 현상을 다시 한 차례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저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만들어낸 지배적인 경제 현실과 ‘경제학이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그 대안을 찾으려고 했던 선구적인 노력들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진지한 탐구 노력을 평생에 걸쳐 행하셨던 일곡 유인호 선생님은, 저와 같은 과문한 젊은 세대에게 오랫동안 귀감으로 남아 계실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일곡 유인호 선생님이야말로 그동안 ‘위기의 경제학’이라고 감히 이름 붙여진 책들의 진정한 저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에게 이처럼 영광스러운 상을 주신 심사위원들과 일곡 유인호 기념사업회 관계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평소 유인호 선생님께서는 치열한 자기 성찰을 위해 서산대사의 [야설](한밤의 눈)이라는 시를 즐겨 쓰고 그 의미를 종종 곱씹으셨다고 합니다. 그 시를 여기에 인용하면서 저의 말씀을 가늠하고자 합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한밤중에 눈을 밟으며 갈 때에는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을 따라 뒷날 사람들이 그 길을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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