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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 -29] "내 고향이었으면 좋은 곳, 강정"
        2013년 05월 08일 03: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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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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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서울 태생입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서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뼛속까지 서울인 친가의 누대(累代)에서 ‘도시’는 그리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자하문 근처 살던 가난한 아버지의 유년이 며칠씩 생으로 굶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촌에 살던 가난한 어머니의 유년에는 그나마 먹을거리들이 있었다 하니까요.

    아버지의 자랑이라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정도니까 역시 서울은 자랑할 게 못 됩니다. 저에게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것이 자랑이 되지는 않습니다.

    서울 출신이라는 이유로 ‘연약하다’, ‘깍쟁이다’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요, 동향 사람들끼리 갖는다는 ‘친근감’ 같은 것도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고향이 어디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동의 이름을 말해야 하나, 구의 이름을 말해야 하나 한참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서울을 고향이라고 대답한 적은 없습니다.

    사람의 고향이 되기에 서울은 너무 크고 뻔뻔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서울에서 조국 근대화의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 국민소득이 이천 달러,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해에 육천 달러, 졸업하던 해에는 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건강 위해 혼식하고 경제 위해 분식’을 한 적도 혹은 ‘쥐를 잡자’ 표어 아래 쥐꼬리를 학교에 가져다 낸 적도 없는 세대입니다. ‘보릿고개’나 ‘꿀꿀이죽’은 한참 더 먼 이야기입니다. 배고픔 한번 모르고 살았습니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 덕에 집에 밥이 없는 날은 허다했지만 집에 라면이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비스페놀A가 검출된 컵라면을 간식으로 먹으면서 자랐습니다. 도시락 반찬으로는 아질산나트륨과 소르빈산칼륨이 가득 들어간 햄을 좋아했습니다.

    석면이 피어 있는 상가 보일러실에서 친구들과 뛰놀았고 아토피피부염과 비염도 오래 앓아왔습니다. 카드뮴, 수은, 세레늄, 비소, 크롬, 납, 포름알데히드 같은 것들도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내리는 것은 산성비이고 부는 것은 황사였습니다.

    당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조국 근대화가 나쁘고 잘못되고 틀렸습니다. 세계화, 선진화 같은 정언명령들이 도시는 물론 자연까지 망쳐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까지 갈아엎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컵에 담긴 물과 흐르는 강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탄소와 나무의 관계도를 그려내지 않습니다. GMO 식물들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잘 재배된다는 사실을 알아도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이제 십 년이면 강산은 리모델링됩니다.

    2010년. 처음 강정 마을에 가 보았을 때 이곳이 내 고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은어가 많다는 강정천이며, 흙빛 선연한 땅이며, 남방돌고래가 뛰는 바다에, 달달한 할망물을 품은 구럼비 바위까지.

    돌고래

    돌고래 떼 위쪽으로 오탁방지막이 보인다. 돌고래 떼가 수시로 갈 길을 잃고 배회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걱정했다. 출처: 조성봉 감독

    그 좋은 제주에서도 가장 살기 좋아 일강정이라 불리던 곳. 그해 여름, 강정 마을에서 보름 정도 머물면서 저는 그곳이 더 좋아졌습니다. 강정 마을의 어르신들은 낮 동안 주로 밭일을 하다 저녁밥을 먹고 마실 나오듯 자연스럽게 해군기지 반대 집회에 나왔습니다.

    구럼비가 유네스코 지정 유산이었든 아니었든, 제주가 세계7대자연경관이든 아니든, 해군기지가 국방과 동북아 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사실 강정 주민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분들에게 구럼비는 고향이고, 유년이고, 할망이고, 어망이었다가 똘 같은 것이니까요.

    ‘자연은 어머니’라는 오래되고 낯익은 비유를 이곳까지 데려와 미안합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진실입니다.

    도시에서 자라 강도, 산도, 바다도 모르는 제가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엄마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가 오히려 엄마를 더 그리워할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글의 앞머리에서 아버지의 세발자전거를 잠깐 이야기했었는데요. 그때가 1954년 즈음입니다. 당시 며칠씩 생으로 굶던 처지의 어린 아버지가 갖기에는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 자전거는 사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대신한 물건이었습니다. 며칠씩 울기만 하는 아들이 불쌍했는지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것이지요.

    분명 자전거도 좋았겠지만 ‘엄마’라는 것이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인가요. 저는 벌써부터 선지처럼 맛있어 보이던 구럼비 바위가, 강정 마을이, 어망이, 할망이 그립습니다.

    박준 : 시인.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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