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는 스테이지 과제 수행 게임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CSI'와 'Profiling'
        2013년 05월 07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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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프로파일러와 연쇄범죄, 그리고 가족-생애사>라는 주제로 1. CSI와 Profiling 2. Profiler와 family life-history, Serial-Crime(과거의 기억과 연쇄범죄) 3. 나는 왜 Profiler가 되었는가?의 순서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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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I와 Profiling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미드(미국 드라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모은 것이 CSI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추리소설이나 수사반장 정도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부분적으로 전해지던 경찰 과학수사에 대해 대중들은 실제 그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이 시리즈 이전에도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한 매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시리즈가 크게 성공한 것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감각적인(시각, 청각, 3D 등) 묘사방법을 쓴 것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미국 영상업계의 자본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이 시리즈가 대중들에게 범죄와 과학수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대단히 크게 넓힌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요즘은 중학교 정도 나이에도, 범죄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장비가 어떻게 사용되는 지에 대해서 알 정도이다.

    csi-1 (1)

    그리고 이러한 점은 부분적으로 그간 범죄와 범죄수사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던 사법기관들에게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든 인권 차원이든 적지 않은 과제를 부과한다.

    즉 범죄/범죄수사와 관련된(피해자, 피의자, 목격자 등의 관련자) 국민들에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거나 대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경찰서 담당 경찰과의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상황에서 이제는 모른다고 무시할 수 없고 이해시키면서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사법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피곤하고 업무가 과중하게 되겠지만 우리 사회의 진일보한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어쨌거나 CSI 시리즈의 큰 기여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좋은 점만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프로필에서도 밝혔듯이 벌써 4년째 중앙경찰학교에서 수사(프로파일링) 과목 외래강사로서 신임 경찰관 교육생들에게 수사와 관련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요즘 입경하는 교육생들은 이전과는 달리 95% 이상이 대학교 중퇴이상이다. 반 정도는 대학교 졸업생들이고 그들이 다니거나 졸업한 대학교가 더러는 예전의 전문대학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학교 출신들도 많다. 예를 들어 전북대 법대, 인하대 법대, 충북대, 충남대, 부산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등. 이전처럼 대부분 고등학교 출신 경찰관이 아닌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취업난을 반영한다는 씁쓸함도 있지만 경찰로 봐서는 나쁜 일은 아닌 것이다. 이들 중 경험상 대체적으로 10% 정도의 교육생들이 앞으로 입직하여 과학수사 파트를 지망한다고 수업시간 중에 포부를 밝히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매우 기쁘면서도 하기 힘든 말을 하곤 한다.

    실제 과학수사 파트가 얼마나 3D 업종인지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진지하게 설명을 하면 분위기 상 그들 중 반 정도는 이미 떨어져 나갔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사는 당연히 과학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앞에다 과학을 붙여서 과학수사를 부르짖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결국 지금까지는 과학수사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물론 혹자는 과학기술 수준이 그렇게 많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진짜로 비겁한 변명이다.

    이는 우리가 사극에서도 보듯이 조선시대의 범죄수사에도 과학적인 방법이 채택되었음을 여러 기록(신주무원록)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발전되었는데 범죄수사는 이에 역행되었음은 아마도 우리나라가 식민지시대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조상의 훌륭한 제도를 이어받지 못한 듯해서 매우 안타깝다.

    물론 시대의 암울함과 박봉의 어려움 중에도 나름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여 누구도 돌보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의 정의를 위해 싸운, 선배 경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찾은 훌륭한 경찰 선배들만 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의 값진 노력이 시대의 암울함 속에 같이 묻히게 되는 것이 다른 사람 못지않게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런데 좀 더 넓게 생각해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아주 간단한 원칙이 도출된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두 번째 원칙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수사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수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이 셜록 홈즈와 같은 천재 수사관/탐정이 하는 것이 아니다. 훈련된 기술자/장인들이 분업화된 시스템에서 병렬적 종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셜록 홈즈처럼 하나만 봐도 척하면 다 아는 것은 말 그대로 공상이다. 자기 분야에 전문화된 기술자가 있어야 하는 하나의 산업 시스템인 것이다. 여기에는 대전제가 범죄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자연적인 것이고 또한 그가 누구이든 무관하게 모든 국민은 적절하게 수사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즉 정의와 인권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당연히 이러한 인식이 없었을 것이고 다만 범죄는 재수 없어서 당한 것이고 범죄수사도 운이 좋으면 잡는 것이고 보통의 경우 잡힐 때까지 기다리다 못 잡으면 그냥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학수사의 원년을 따질 때도 나는 2000년대 중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지문 감식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담당하는 기술/부서는 식민지시대 경찰에도 있었다. 그렇다고 과학수사의 원년을 식민지 경찰부터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것은 과학수사의 대상이 모든 사건 모든 국민에게 서비스 되어야지 가능한 것이다.

    실제 서울 경찰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감식반(과학수사반)이 24시간 3교대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서울 관할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건에 투입된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노원구 어느 중산층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죽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 가족들은 평소에 그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자살할 것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자살한 게 확실하니 편하게 보내기 위해 빨리 장례를 치렀으면 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사법시스템에서는 ‘변사’라고 한다. 죽었으되 사인을 의사가 확인 하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죽었다는 사실만 빼고는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

    이것은 실제 사례로서 가족 모두가 재산 때문에 그 남성을 공모해서 죽여 놓고 자살했다고 한 경우이다. 재산 상속이라는 문제가 개입될 때 가족은 더 적극적인 범인의 범주에 들어온다.

    요점은 이것이다. 억울한 죽음이라는 불확실한 상황을 해결해주는 것은 공권력에 의한 수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 모두는 수사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개연성이 충분한 모든 사건에 과학수사가 실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전에는 어떻게 했을까? 모든 경우에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많은 경우, 이에 대한 수사지침은 있었겠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관례와 경험에 따라 판단해서 사건을 처리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물론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경우는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나는 시스템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는 그 원년이 2000년대 중반이라고 해야 적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수사의 기틀이 많은 사람들의 각고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는 것과 그것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법 집행은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매우 어려운 고차원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수사는 인터넷 게임에서 차용하면, 스테이지 과제 수행 게임과 같다. 첫 스테이지에서 과학적인 합리적인 결론에 의하지 않고는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없다. 수사가 그런 것이다.

    첫 번째로 범죄현장 재구성에 의해 용의자를 추정하고 추정된 용의자를 배제하는 과정이 과학적인 추론에 의해야 한다. 막연한 가정이라는 것은 반드시 실패한 수사로 이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물적 증거’인 것이다. 적절한 시간 내에 적절한 범위의 물적 증거가 공급되어야 수사는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인 것이다. 즉 현장 중심의 물적 증거인 것이다. 현장(살인이든 절도든 강도든 방화든 성범죄이든)에서 수집한 물적 증거만큼 과학적인 기준을 제공해주는 것은 없다. 단 최적의 상태에서 최적의 방법으로 최적의 기간 안에 분석되었을 경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수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결국에는 범인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그것은 효율성의 문제인데, 과학수사에는 자연적인 한계가 있다. 즉 기술(시간)의 한계와 비용의 한계인데, 화성연쇄살인에서 보듯이 정액을 찾고서도 우리나라에는 DNA 분석기술이 없어서 결국에는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실제 분석기술이 있어도 분석에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결국 분석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상적인 상황에서야 최고의 기술과 막대한 비용을 모든 사건에 투입할 수 있지만 수사는 또한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선책이지만 어떻게 보면 최선이 될 수 있는 것이 물적 증거를 보완하는 ‘행동증거’이다. 즉 물적 증거로 완벽하게 도입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문화인류학적 통계학적 기반에 의한 행동 증거를 통해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로파일링’이다. <다음 회 계속>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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