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2013년 04월 29일 0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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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부터 <레디앙>은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의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첫 글은 연재의 취지와 앞으로 다룰 주제들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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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프로파일러로서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일하다가, 퇴직 후 몇 년 전부터 중앙경찰학교 외래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 경찰이기도 했고 수많은 경찰을 길러낸, 그래서 경찰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신임 경찰관 교육생에게 수사 관련 교육도 하고 많은 동료 경찰들과 이야기하면서 늘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기도 하며, 더 깊이는 사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 또 질문하지 않는 것이다.

    나 자신도 경찰생활을 하면서 내 주위의 누구도 이런 질문은 하거나 받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 최면 아니면 굳이 알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의 경찰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이 질문은 갓 들어온 신임 경찰관 교육생들에게 한 두 마디 듣고 그 뒤에는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궁금하다. 도대체 이 집단은 누구이며 우리 사회에 어떤 존재인가? 늘 가까이 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다양하게 드러나는 이 집단에 대해 나와 우리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경찰은 이미 주어진(강요된?) 존재였기에 굳이 이런 질문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대안이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 현실은 좀 다르지 않은가?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군사정권도 아니다. 경찰 스스로도 치안을 서비스라고 하면서 과거로부터 차별하려는 개혁이라는 것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서울 중심 길거리에는 80년대의 낯설지 않은 풍경, 전경버스와 진압복 입은 경찰의 모습도 우리는 매일매일 보고 있다.

    또한 언론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범죄와 사건들, 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지만 실제 경찰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단편적으로 그 숫자가 12만이 넘고 예산도 적지 않으며 집회도 막고 범죄수사와 음주단속도 하며 얼마 전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수사권 조정을 가지고 검사들과 맞짱 뜨다 깨진 것 정도 등에 대한 가십거리는 늘 회자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 경찰이 무엇을 하는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는 듯하다. 또 얘기가 된다고 해도 정보경찰의 사찰이나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사실 이러한 얘기들은 본질과는 일정정도 동떨어진 상당히 지엽적인 문제 중에 하나일 뿐이다. 실제 본질은 비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 글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의 경찰, 그리고 더 나아가 범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양들의  침묵

    91년 한국에서 대중들에게 프로파일러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영화 ‘양들의 침묵’이다. 이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는 FBI 소속 프로파일러인 클라리스 스털링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이쯤 되면 보통 사람들은 왜 하필 경찰이냐? 범죄를 다루는 프로파일러라고 하면 범죄와 범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지 왜 별 관련도 없어 보이는 경찰을 짚고 넘어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다.

    사실 몇 달 전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우리나라 출판기업과, 범죄와 관련된 출판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아래의 주요 목차가 그때 내가 제시한 것이었는데 며칠 후에 출판 불가 대답이 왔다.

    이유는 그 출판사가 경찰시스템을 비판하는 사회비판적인 출판은 하고 싶지 않고, 또 그 내용이 “경찰이 아니라 범죄가 주가 되고, 범죄보다도 범인이 주가 되는 <범죄로 보는 한국사회>”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일견 이 주장은 타당하고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주장에 범죄와 범인, 그리고 사회와 경찰(사법)시스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있다. 결국 그들은 프로파일러를 통해 범죄인을 보고 싶은 것이었지만 그 범죄인은 결국 화석화된 그냥 개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 것이다.

    실제 나는 그 출판사 편집진들의 범죄와 경찰에 대한 인식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고 더 깊이는 큰 실망을 했다. 일반적으로 범죄 관련 책들이 범죄 그 자체에 관심을 둘 때 발생하는 현상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범죄현상보다는 범인의 내적 요인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좀 더 고민하면 그것은 같은 맥락이다.

    범죄는 사회의 일부이며 하나의 시스템이다. 따라서 범죄를 범죄 그 자체로 본다면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특히 경찰 즉 사법시스템에 대한 사회비판적인 글 방향을 기피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자체 검열일 것이다.

    한 사회의 범죄는 그 범죄를 처리하는 경찰(사법)시스템과 불가분의 관계이고 범죄와 범인을 경찰(사법)시스템과 떼어 놓고 보면 실제 본질적인 모습은 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는 책의 1부를 경찰시스템에 할애하고 2부를 범죄에 대해 할애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 글도 이 방향에 충실할 것이다. 다음의 목차는 내가 현재 집필 중인 책의 대강이며, 본 글은 이 책의 각 부분을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정리하는 방향으로 쓸 것이다.

    아래는 집필하는 책과 레디앙 연재 글에서 다룰 주요한 내용들이다.

    △ 범죄와 수사, 과학수사 : ‘수사’의 사회학. 시스템으로서의 범죄수사

    △ 수사에의 과학기술 응용 :

    – 수사의 과학화가 사회를 안전하게 했나? NO. 예산 부족 보다는 사법(경찰)시스템의 약점이 문제

    – 수사의 과학화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 이른바 ‘경산복합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

    – 다른 길은 없는가, 안전사회를 만드는 제3의 길에 대한 모색

    △ 과학수사의 한계 : 시스템의 모순. 피해자와 목격자 진술만이 있는 사건의 증가

    △ 변사사건의 확대 : 장자연, 유니, 정다빈 자살 사건의 교훈

    △ ‘위험사회’와 ‘연쇄살인’

    △ 사이코패스 연쇄살인의 대중화

    △ ‘공포’가 상품인 사회

    △ 공포를 통한 지배 : 최근 10년 사이의 사건.  미국의 과학수사 시리즈의 증가 배경. 미국의 보수화와 범죄와의 전쟁

    △ 과학수사의 현실 : 3D 노동자로서의 CSI. 증거가 있어도 분석 못하는 현실. 낮은 수사효율성

    △ 한국 경찰의 자화상 : “범죄와 한국 경찰에 대한 불편한 진실” 몇 가지

    △ 한국 경찰은 도대체 어느 정도 범죄를 해결하고 대처하고 있는가?

    △ 상담 받아야 하는 경찰 : 업무 스트레스와 자살하는 경찰

    △ 집회시위를 막는 경비경찰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

    △ 돈 받는 경찰 : 한국 경찰은 얼마나 부패한가?

    △ 고문하는 경찰 : 성과주의와 승진, 강압수사

    △ 한국 경찰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경찰 채용, 교육, 승진 시스템)

    △ 민주주의 시민사회와 범죄: 집회와 시위. 정치적 테러와 범죄. 합의 혹은 의무로서의 처벌. 저지 드레드와 경찰특공대

    △ 국가,역사와 범죄 그리고 충성 : 사죄와 손해배상. 도덕적 개인주의와 합리적 공동체주의. 국가는 중립인가. 애국심과 범죄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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