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신확인“을 부탁해~
    [서평]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인권운동사랑방/ 오월의 봄)
        2013년 04월 27일 10:2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간곡한 마음을 전하는 이메일을 누군가에게 보내놓고, “수신확인”을 눌러본 경험이 있는가? 아마도 여러 번 “수신확인”을 누르며 마음을 졸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도무지 “읽음“되지 않는 메일을 “발송취소”하며, 소통을 접어버린 경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읽지않음”인 채 당신의 기억에서 조차 삭제된 메일도 있을 수 있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자.

    당신 혹은 당신의 의제는 공익을 침해한다고 여겨지고 있는가?
    그래서 확산을 막기 위해 드러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되기도 하는가?
    국민적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국민 정서에는 너무 이르다고 여겨지는가?
    국가정체성과 사회통념 혹은 가족 질서의 안정을 혼란시키는 사안이라고 설명되는가?
    통계에 의하면 당신 주변 사람들은 불행한 집단이어서, 우울증 자살율이 높고, 알콜 의존도가 높다고 집계되는가?
    당신의 주장이나 방식은 윤리와 도덕에 어긋난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수신확인

    위 질문들에 대해 “대체로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이 보내놓고 “수신확인”을 눌러대던 그 간곡한 사연의 편지와 닮았다.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당신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든가 불안이 덜해지기도 하는가? 힘겨운 10대 레즈비언 ‘서윤‘이, 당신의 힘겨움에 환한 웃음과 위안을 보낸다.

    아주 다른 듯 싶던 한 사람의 분노나 상처의 이야기를 듣다 당신의 경험이 떠오르고, 옆 사람들 역시 비슷하고 다른 경험들을 꺼내놓은 자리들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우리들은,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서로 다른 사건들을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경험할 뿐이다.

    다양한 부문운동의 분화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기 부문의 싸움에 갇힌 채, 자본에 의한 각개전투에 하나하나 차례차례 무너지고 있는 원인은, 저들이 수가 많아서도 아니고 저들의 힘이 커서도 아니다.

    비혼모, 트랜스젠더, 이주여성, 게이, 10대 레즈비언, 장애여성, HIV감염인,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

    당신을 이루는 정체성들이 저 정체성들의 어디 즈음에 걸쳐 있든 혹은 요행히 바깥이든, 불길하게도 당신은 자본에 의해 저들과 같은 줄에 서 있다. 저들이 먼저 배제되거나 아직 포섭된 그 이유가, 고스란히 당신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들 듯 정체성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본은 자신을 위한 정상성과 효율성의 기준으로 우리를 배치한다. 하나하나 차례차례 끌어들이고 내쫓으며, 포섭하고 배제한다. 그리고 자본이 장악했다 철수한 자리에는, 이미 상당히 불온한 우리 모두 알다시피, 빈곤이 남는다.

    각자의 억압과 차별의 경험들을 연결시키는 맥락을 만들고, “자신/들이 어찌해 볼 여지가 있는 관계”로 들어올 때 차별에 대한 저항이 시작된다.

    “당사자들의 도구화“와 ”선언적 명제”를 극복하고 당사자들을 주체화하고 문제를 보편화하며 대안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목격자와 청자들이 한 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증언하고 재/구성하고 재/해석하고 듣고 나누며, 개인 문제의 해결과 함께 사회 관행과 권력관계를 재조정하는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승민, 혜숙, 수민, 정현, 서율, 이숙, 민우, 타파, 명희와 영석.

    이들이 ‘고유하고 강렬한 자신만의 서사들“을 모아 당신에게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그들의 사연과 서사를 인권운동 활동가들이 듣고 풀고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붙였다.

    저들의 사연 구석구석에서 당신의 경험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의 감수성이다. 활동가들의 작업은 저들의 사연과 당신의 경험을 연관하는 토론의 장이다. 그 감수성과 토론이 없다면, 당신의 저항도 저들의 저항도 실패할 것이다.

    우리들의 저항이 확장되어 권력관계과 사회를 재편하고 반격하기 위해, “수신확인”을 요청한다.

    필자소개
    1957년생 / 학생운동은 없이 결혼/출산 후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됨. 2000년부터 진보정치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 성정치위원장 등을 거쳐, 공공노조에서 중고령여성노동자 조직활동. 현재 서울 마포에서의 지역 활동 준비 중.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