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에셀, 그 매력적인 일생
[책소개] 『세기와 춤추다』(스테판 에셀/ 돌베개)
    2013년 04월 27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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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2013년 2월 26~27일 파리의 자택에서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가나긴 삶을 조용히 마무리한 스테판 에셀.

그는 이 시대의 다시없는 어른이자 영원한 자유인,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2010년 만 93세에 쓴 『분노하라』라는 얇은 책 한 권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에 맞서 용감히 저항하고 연대할 것을 호소해 전 세계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대표적 사상가 반열에 올랐으며, 『분노하라』는 프랑스에서 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 지금까지 3,500만 부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한편 이 책 『세기와 춤추다』Danse avec le siecle(쇠이유, 2011)는 에셀이 80대에 지인들의 우정 어린 압력에 못 이겨 집필한 회고록이다.

양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국가들의 연이은 독립, 끝없는 분쟁, 인종 갈등, 냉전 등 그 어느 시대보다 치열하고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던 20세기를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살아낸 에셀은 누구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훌륭한 시대의 증인이다.

여기에 더없이 독특한 개인사와 유엔 프랑스 대사를 지내며 다방면에서 펼쳐온 활동상이 유럽의 정치외교사와 어우러져 단순한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넘어 20세기 현대사의 한 흐름을 잡아주는 탁월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완성해놓았다.

한국어판에는 올랑드 대통령의 추도사와 에셀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인 유럽, 아프리카, 프랑스, 파리의 지도들, 개인사와 세계사의 중요 지점이었던 부분을 정리한 연보가 곁들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언제나 글쓰기보다는 행동을, 향수와 추억보다는 미래를 선호했다”고 밝히는 에셀은 무한한 낙관주의자로서 “바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실현된다고 확신”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유년 시절인 1920년대에 이미 “삶은 창조적 자유가 증대되는 길을 열어줄 때만, 현실을 넘어 현실에 다원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는 확신을 얻었으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 확신과 함께한 자유인이었다.

독일의 유대인 작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자유를 가장 중시한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열린 시야를 갖출 수 있었고 마르셸 뒤샹,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 피카소 등 당대 내로라하는 많은 예술가들과 접하는 행운을 누리는 한편, 열다섯 살에 철학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스무 살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합격한 엘리트였던 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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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꼬마였을 때부터 이미 남다른 자의식과 총명함, 당돌함, 상당한 글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 헬렌이 한때 사랑했던 아버지 친구 로셰의 파커 만년필이 탐이 나 슬쩍했던 어릴 적 일화가 이를 잘 드러낸다.

피에르 아저씨,

엊저녁 엄마가 얘기하길, 아저씨가 보기엔 내 만년필이 아저씨가 잃어버린 바로 그 만년필과 이상하리만치 닮았다고 하셨다지요. 이런 우연의 일치가 아저씨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몹시 난처하게 여겨진다는 것 이해하시겠지요. 아저씨는 내가 이 만년필을 가져갔다고 입증할 수 없고, 저 역시 굳이 이 만년필이 아저씨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려 들진 않겠어요. 소용없는 일이니까요. 내가 처한 상황의 곤란함을 아저씨가 이해해줬으면 해요. 제일 곤란한 건, 내가 지금 이 만년필의 출처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다는 거예요. 만년필이 굉장히 필요했을 때 학교 친구에게 돈을 주고 산 것이거든요.

그러니 모든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아저씨가 이 만년필을 그냥 가지셨으면 해요. 아저씨가 그렇게 분명히 알아보신다면 이 물건이 결국 아저씨 집에서 나온 걸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뜻에서 아저씨가 잊고 안 가져간 뚜껑도 여기 동봉합니다. 이 유감스러운 일이 엄마를 화나게 하는 것 이상의 치명적인 결과를 낳지 않길 바라며……. (40~41쪽)

흔치 않은 성장기를 거쳐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기까지

에셀의 부모는 익히 알려져 있듯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으로 신화의 반열에까지 오른 ‘세기의 삼각관계’의 실제 모델이었다.

어릴 때 이 기묘한 사건을 목도하면서 에셀은 형 울리히와 달리 이 관계를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건 에셀이 어머니의 기질을 강하게 물려받았기 때문인데 어머니의 기질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 솔직함, 불손함, 기발함과 시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게다가 에셀은 인습적 도덕, 특히 성관계와 관련된 도덕을 아주 하찮게 여기는 성향을 물려받기까지 하여, 영화 <졸업>에서나 볼 법한 첫 연애를 통해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다. 이후 입시준비반에서 만난 비티아와 결혼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스’군에 합류한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던 중 1944년에 체포되어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세 곳의 수용소를 거친 끝에 사망자와 이름을 바꾸는 탈출계획이 성공해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이후 에셀은 말한다.

전쟁에서 벗어나며 내가 느낀 갈증은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미처 그쪽에 이르기도 전에 시간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처럼, 나는 살아난 후 50년을 매일매일 강렬하게 살았다. 내 새로운 탄생을, 결정적인 밤을 이겨낸 내 승리를 유익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이 욕구는 유년 시절부터 내가 갖추고 있던 준비들을 더욱 단단히 다져주었을 뿐이었다. 먼저 행복해지겠다는 헬렌과의 약속이 있었다. 헬렌은 모두의 행복에 대한 각자의 가장 큰 공헌이 스스로의 행복에 있다고 보았다. 또 내가 세 언어, 세 나라의 시, 세 문화에 열려 있다는 점이 있었다. 이 세 언어의 결합 때문에 나는 결코 맨몸이었던 적이 없으며 진정으로 고독했던 적도 없다. (145쪽)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발견한 중재자의 길

1946년 외무부 시험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에셀은 이후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샤를 드골,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스 테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피에르 모루아, 미셸 로카르 등 당대 최고 권력자들 밑에서 국제사회 관련 일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간다.

행동하는 유럽 지성의 전위로서 알제리 전쟁기간에는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한편 불법이민자 문제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일도 있었다.

에셀은 자신의 부족함으로 혹은 정부의 의중과 맞지 않아 실패한 사건들을 아무런 포장이나 자기합리화 없이 담담하게 술회한다.

특히 1975년 클로스트르 납치 사건과 1996년 생베르나르 성당 점거 사건에서 맡은 중재자 역할에 실패한 경우가 그러하다. 에셀은 오랜 세월 유엔 대사로 봉직하면서 자신이 새로운 균형의 전달자로 남는 것이 가장 실존적인 선택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나의 탄생 별자리가 천칭자리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천칭’은 라틴어로 ‘리브라’livra다. 이는 의미심장한 어원이다. 프랑스어의 ‘리브르’livre(책)와 ‘리베르테’liberte(자유)가 모두 이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다. 천칭이란 끊임없이 가부를 분별하고 무게를 재는 자의 상징인 것이다.

세 살 때 단호히 ‘카디’라는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이슬람 판관인 분쟁 중재자 ‘카디’의 소명에 나 자신을 내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인이 된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 체포되어 심문당하는 힘겨운 순간에도 끊임없이 두 문화, 두 국민의 만남을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두 문화, 두 국민이 합쳐지면 과거의 폭력과 미래를 조건 짓는 균형 사이에서 잠재적 중재자가 될 것이다.(418쪽)

이런 맥락에서 그가 후대에 전하는 마지막 말은 상당한 무게감을 지닌다.

성공한 중재란 없다. 그러나 중재는 번번이, 그 실패를 통해 또 다른, 더욱 너른 중재의 길을 열어준다. 또 다른 중재도 역시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중재와 중재를 통해 우리 인류의 용감한 역사는 쓰이는 것이다. (419쪽)

스테판 에셀이라는 큰 인물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진정한 자유, 참여, 연대, 드높은 이상에 대한 헌신이었다. 잠든 시대를 일깨운 그의 절절한 호소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세계시민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초대다.

참된 자유와 젊음, 지성과 겸손, 진심 어린 앙가주망과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일관한 용기 있는 삶의 아름다운 표본이었던 스테판 에셀.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회고록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진정한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과 향후 세계가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인문적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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