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제 눈 바친 대지와 바다에게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26]그들은 자기 고향에 살던 민간인
    2013년 04월 26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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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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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제 눈을 바친 대지와 바다에게

그 마을은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의 흔적은 마을의 흔적이겠고 패총 같은 겹겹의 역사일 것입니다. 화산재가 쌓여 지층을 이루고 그 기름진 땅은 달고 시린 밀감을 키우고 미끈한 당근을 키워 냈습니다. 귀하디귀한 쌀을 모셨습니다.

이렇듯 불티는 소멸이 아니라 생성의 기원이었습니다. 선대들은 한결같이 자연사를 거역하지 않으면서 인간사를 써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인간이 파괴한 인간사, 공포 조장을 대의라 분장하는 데 뛰어난 수완을 가진 국가와 건설자본이 창조(파괴)한 자연사를 써야 하는 불행한 사태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 땅의 모두가 탈 없이 평안했는데 ‘평안을 보장’한다는 ‘안보’는 누구의 언어술이던가요?

일단 깨놓고 보자는 심보는 깡패들의 전투수칙 아니던가요? 가장 높은 격과 예의를 갖추어야 할 국가와 군대가 가장 저질스런 방식으로 자국민들을 분열시키고 몰아내 버린 이 사태에 왜 용산이 겹쳐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섯 명이 죽어간, 허물어져 평지가 된 제단, 남일당 건물이 고작 임시주차장이 되어 버린 기막힌 사건을 말입니다. 기민한 공권력과 피눈물도 없는 건설자본이 만들어 낸 위대한 용도(!)를 말입니다.

혹자는 국가 시책의 일방적 준수를 요구합니다. 절차와 상식을 지키자 하면 안보관이 불순하다고 하고, 무기의 크기가 평화의 크기가 아니라고 하면 망상주의자라고 비난합니다.

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여태껏 벌어진 수많은 오류와 파괴의 기획들을. 국가가 연출하거나 방조한 참혹한 사태들을 말입니다.

비릿하게 고여 있는 4대강을. 찾는 이 없는 흉물로 방치된 수변공원과 콘크리트 보를 허물어 대는 강의 거대한 역류를. 산 사람을 불태워 만든 남일당 임시주차장을. 후진적 무기체계를 수입하고도 바가지를 쓰는 군수체계의 무능함과 사익에 눈먼 명예도 없는 일부 퇴역장성들의 뻔뻔한 얼굴을. 관급공사의 담합과 흑막을. 아, 정말 완벽하십니까?

노순택 작가의 사진

노순택 작가의 사진

제주 옥빛 바다처럼 투명하였습니까? 겁주고 윽박지르는 거 말고 사람 말을 말처럼 들어보았습니까? 아님, 말을 말처럼 타며 그 뜨거운 떨림과 울음을 느껴 보기나 했습니까? 혹시 조랑말만 ‘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습니까?

강퍅한 목소리로 전쟁불사를 겁박하는 북한보다 이 나라가 갖는 체제적 우월함은 전체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일상화하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군대의 영지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자기 고향에 살았던 민간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주권자들의 합의 없이는 그 땅도 그들의 마음도 귀속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 강정 마을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치하이며 민주(民主)와 공화(共和)를 누리며 살 자격이 충분한 청동기 때부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파괴도 복원도 못 하는 저는 이렇게 눈빛으로나마, 그저 게으른 문자의 감촉으로나마 강정 푸른 바다와 아름다웠던 마을을 더듬어 볼 뿐입니다. 보지 못해도 밟히는 그 바다와 대지, 보지 못해도 아파하는 사람이 그 사태의 주연이라는 말이 괴로운 밤입니다.

눈에 밟힌다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눈에 손발이 달린 사람이거나
마음이 통점(痛點)이었던 시인이었을 것이다

아무 하중도 없는 눈빛에 천만근의
무게를 달아 놓고
눈빛이 심장처럼 뛰었다고 하였으니
더듬었던 눈이,
밟힌 눈이 아프다 하였으니

그는
눈물에 제 눈을 바쳐 본
그립고 서러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졸시, 「눈물에 제 눈을 바친」 전문)

문동만 : 시인. 1994년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는 작은 행복도 두렵다』,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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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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