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다시 문화제 하지 말아요"
    어느 한 해고자의 해고 1주년 문화제....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지부 김은석씨
        2013년 04월 25일 05: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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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석 동지가 해고된지 벌써 1년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수십년간 살아왔던 비슷한 한 해였겠지만 김은석 동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1년인 것 같다. 2010년 8월 처음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지부를 설립했다고 만난 김은석 동지는 수의사 면허증을 갖고 들어가기 힘들다던 외국계 회사에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고액 연봉자였다.

    그런데 노조 만들고 얼마되지 않아 해고를 당한 뒤 수염도 덥수룩하게 기르고 세수도 며칠간 안하고 다닌 것 같고, 다크써클도 내려오고 피부도 거칠어졌다. 동물을 치료하던 수의사가 자기가 진료하는 짐승처럼 변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렇게 많이 바뀌었고 실없지만 허술한 농담을 자주하던 동지의 표정이 분노와 좌절, 독기만 남아있는 얼굴로 바뀌었다”

    – 심동희 전국사무연대노동조합 공동위원장/ 전 화이자동물약품지부 해고자

    노동자는 임금 더 달라고 하면 안 돼?

    4월 30일은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지부(베링거 지부)의 초대 지부장인 김은석씨가 해고 당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 아닌 기념하기 위해 공동투쟁단이 24일 밤 베링거 앞에서 문화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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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 공연 중. 참석자들이 목이터져라 따라 불렀다.(사진=장여진)

    인체약품에 비해 5배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회사에 갖다주고, 본인 스스로도 입사 직후 영업실적을 10배로 올려놓았지만, ‘동물’약품을 다룬다는 이유로 인체약품 노동자의 임금에 비해 30%나 적게 받았다.

    이미 수십년 째 노조를 설립해 한국노총 산하에 소속된 한국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과 사장과 인사, 경리부 등은 같지만 회사는 형식상 분리되어있다)은 인체약품을 다루는 곳으로, 이곳 노조위원장은 입사 직후 대리때부터 지금까지 위원장으로 있다. 임금단체협약 또한 한국노총 내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높은 수준이다.

    회사 사장과 동기가 노조위원장으로 있는 인체약품과의 차별은 김은석씨에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만큼 큰 차별이었다. 수익은 동물약품이 내는데 임금은 인체약품에서 더 많이 받아가는 게 납득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회사에 임금인상을 요구했지만 회사 부사장이 “억울하면 노조 만들어”라고 말했고, 그는 정말 덜컥 노조를 만들었다. 2002년 10월에 입사해 2010년 8월 결국 노조를 만든 것이다.

    24일 밤 문화제에서 공동투쟁단인 재능지부의 유명자 지부장이 이렇게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우리 노동자들은 임금투쟁하면 안 되는 거지? 왜 우리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임금을 더 요구하는 게 사람들 인식 속에 거부되어야 하는 거지? 대공장 정규직 노조가 투쟁할 때마다 조중동에서 매번 ‘귀족노조’라고 하지만 나는 한 번이라도 귀족이 되고 싶다”

    처음엔 임금인상으로 시작했지만 싸우다보니 민주노조 절실해져

    사람들은 남 부럽지 않은 직장에, 고액 연봉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하는지, 수의사 자격증도 있는데 왜 복직하겠다고 투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김은석씨의 처음 시작은 임금 인상 때문이었지만, 회사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동원해 교섭을 회피하고 부당노동행위를 벌이는 행태를 목격하면서 오기가 생겼다.

    특히 회사 간부가 조합원들을 불러내 “너네 자꾸 이러면 한국에서 사업 철수한다”고 협박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노동자의 목숨줄을 가지고 복종을 요구하는 자본가의 전형적 태도였다.

    이외에도 사측은 민주노총을 “외부인”이라고 표현하며 “외부인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교섭을 회피했다.

    김은석 해고자(사진=장여진)

    김은석 해고자(사진=장여진)

    회사는 매번 교섭장소를 회사 바깥으로, 교섭 시간을 근무 시간이 끝난 뒤로 잡았다. 노조가 교섭장소에 나갔을 때는 회사가 일급 알바로 고용한 대학생이 위임장을 갖고 앉아있었다. 그렇게 회사는 성실교섭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며 노조를 압박해왔다.

    회사는 이미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노조위원장 등을 부당해고한 전력이 있는 화이자동물약품회사의 ‘전문가’를 영입해 김은석 지부장을 전담하게 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승장구해 해고 전까지 마케팅 부서에 있던 그를 괴롭히기 위해 온 ‘전문가’는 김 지부장의 모든 마케팅 기획서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는 2012년 4월 30일 업무태도가 불량하다는 등의 이유로 김은석씨를 해고했다. 처음에는 17분 지각한 이유마저 해고 이유로 들었을만큼 해고의 정당한 이유는 없었다.

    현재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지만 회사는 불복하고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계류중이다.

    노조는 회사 사장 등 4명을 부당노동행위로 노동부에 고발했고, 노동부 또한 검찰 기소 의견을 보내어 현재 검찰에 기소된 상태이다.

    김은석씨는 다음 날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동물약품 회사 중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심동희 위원장이 2년간 해고 투쟁을 벌였던 화이자동물약품도 결국 노조가 없어졌다. 만약 내가 여기서 멈추면 한국의 동물약품회사에서 민주노조란 더이상 설 수 없게 된다. 꼭 복직해서 다시 조직할 것이다”

    ‘내가 노동자일까’라는 고민, 해고되고 나서야 깨달아

    “해고는 살인이라지만 옆에서 지켜본 해고는 너무나 쉬워 보였습니다. 누구누구를 언제로부터 해고한다, 라는 종이 한 장이면 해고는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적장의 목을 잘라 성문 앞에 걸듯, 그래서 성 안에 사는 다른 백성들이 항상 그 머리를 보면서 숨만 쉬며 살라는 듯, 그렇게 해고는 초대지부장을 향해 내리꽂히고야 말았습니다”

    김은석씨 해고로 현재 지부장을 맡고 있는 이비함씨가 24일 밤 문화제에서 김씨에게 전한 편지 내용이다.

    해고는 김은석씨에게도 큰 변화를 주게 됐다. 막연히 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에서 나름의 ‘노동자성’을 찾게 된 것.

    해고된 지 2달이 지날 때 쯤 현재 투쟁 중인 사업장 중심으로 공동투쟁을 벌이자는 제안이 김씨에게 왔다. 하지만 처음 김씨는 함께 해야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공투단 처음 들어가서 보니깐 다들 해고된지 8년, 5년 이런 사람들이었다. 다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애자고 하는데 나는 정리해고 당한 것도 아니었고 정규직이었는데 내가 들어가도 되나 싶었다. 그런데 그 때 저쪽에서 먼저 ‘노조탄압’ 받았으니 함께 하자고 해서 합류하게 됐다”( 김은석)

    “자기 코도 석잔데 내 걱정해주는 사람 보고 정신나간 사람인 줄 았았다”

    해고는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상처이겠지만, 스스로 고액연봉자, 정규직이었다는 이유로 다른 투쟁 사업장과의 연대활동이 서먹했었다. 하지만 나홀로 해고 투쟁을 벌이고 있던 김은석씨에게 공동투쟁은 단비 같았다.

    “처음 두 달간은 회사로 가서 복도에서 혼자 농성하고 그랬다. 남아있는 조합원들은 회사를 다녀야 하고 본조에서 아무리 도와줘도 결국 나 혼자 하게 됐는데 지금 18개 정도의 사업장이 참여하고 있는 공동투쟁사업장 연대 투쟁하러 가는 것이 주요 일상이다”

    옆에서 가장 힘이 되는 사람들에 대해 그는 이 ‘공투단’ 동지들을 꼽았다. 김씨는 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도 자기 코가 석잔데 내 걱정해주고 서로 걱정해주는 거 보면서 처음엔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나야 그나마 퇴직금 받은 걸로 버티고 있지만 재능이나 콜트콜텍 보면 진짜 갑갑하지 않나. 심지어 콜트콜텍이 이제 공장까지 밀려나서 자기 앞길도 바쁜데 어제도 문화제 못 와서 미안하다고 전화오는데 내가 이 사람들 없었으면 어떻게 싸웠을지 상상조차 안 간다”

    실제로 24일 문화제에 골든브릿지, 재능지부 등 곳곳의 투쟁 사업장 조합원 100여명이 참석했다. 조합원 4명 중 홀로 해고되어 투쟁하는 김은석씨를 위해 100명이 모여 노래노동자 ‘꽃다지’를 초대해 신명나게 놀았다.

    게임과 노래, 춤을 추며 덩실덩실 실컷 놀고는 다들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다시 문화제 하지 말아요”

    앞서 조합원 1명과 원직복직 투쟁을 2년간 벌였던 심동희 위원장도 문화제를 열기 전 투쟁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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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제 마무리 행사로 단체로 음악에 맞춰 군무를 췄다(사진=장여진)

    “절대 기념하지 말아야 할 문화제이다. 결코 2주년 문화제는 없어야 한다. 김은석 동지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오늘 세수도 하고 면도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 지금 복직해도 손색없을 만큼 깔끔한 모습이다. 김은석 동지의 얼굴에 때가 더 타기 전에 반드시 투쟁 승리해서 복직하고 임단협 쟁취하는 그날 맞이하자”

    회사 위로 폭죽을 쏘아올리며 끝난 김은석 해고자의 1주년 문화제. 정규직 고액연봉자가 ‘임금 인상’ 하나로 시작한 노조 설립에서 해고, 그리고 해고 1주년을 맞이하며 얻은 것은 단순히 때 탄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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