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POP 스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소판
    [TV 디벼보기]"얼마나 넘치고 모자라야 그들의 제물이 되지 않지?..."
        2013년 04월 24일 03:4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수다. 아메리칸 아이돌을 필두로 춤과 노래는 기본, 모델, 디자이너 등 직업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다. 평범한 수리공이 세계적 가수가 되는 인생역전도 벌어진다. 한국에서도 모델이나 디자이너와 관련한 한국판 버전을 넘어 슈퍼스타K가 대박의 성공을 거둔 후 지상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말 그대로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나오고, 동네 노래방 스타부터 보컬 트레이너까지, 그도 모자라 가수들끼리 경합도 한다.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은 탑밴드를 본단다.

    최근 음원차트를 쓸었던 케이팝 스타가 그러했듯, 도전 슈퍼모델이나 탑디자이너, 프런코 등은 그들의 시기 질투, 합숙 생활과 경쟁의 피로를 고스란히 방송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 자체를 넘어 ‘트루먼쇼’의 모습까지 보여주었고, 대중들은 그런 그들의 ‘리얼’한 캐릭터와 갈등에 열광했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어라 잘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과 씁쓸함이 혀 끝에 감기기 때문이다. 그토록 뚱한 얼굴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피해 다녔으나 결국 나는 최근 악동 뮤지션을 응원하는 이모팬이 되어 티비앞에 앉아있었다. 박진영의 오바하는 물개박수만 아니라면 조금 더 집중해서 티비를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런 아쉬움은 그들의 멋진 노래와 무대에 대한 찬사에 금새 잊혀졌다.

    케이팝에 출연한 악동뮤지션의 모습(사진=악동뮤지션 페이스북)

    케이팝에 출연한 악동뮤지션의 모습(사진=악동뮤지션 페이스북)

    오디션 프로그램에 앞서 퀴즈 프로그램이 있었다. 미국에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제퍼디 쇼’가 있었으며, 한국에는 역시 장학퀴즈를 비롯한 무수한 퀴즈프로그램과 도전 골든벨이 있다. 각기 조금씩은 다른 컨셉과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듯 하지만 결론은 같다. 문제를 맞춘 자, 심사위원과 대중을 설득한 자는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경쟁에 돌입할 자격은 이전 라운드에서 승리한 자이며, 최종 승자는 인생역전과 가까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의 ‘성공’은 실력이나 재능, 노력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악동 뮤지션의 곡 중 유일하게 음원차트를 휩쓸지 못했던 곡은 ‘착시현상’이라는 곡이었다. 매우 독특한 분위기의 자작곡이었는데, 심사위원들로부터 비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승부가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그들의 음악도 점차 잘 다듬어지고 매끈해져갔다. 거칠지만 풋풋했던 느낌보다 잘 키워진 상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제목 부터가 음악가의 발굴이 아니라 차기 ‘케이팝 스타’를 키워내는, 그래서 대표적 대형 기획사 3곳이 연습생을 선발하는 그런 프로그램 아니었던가. 지난 시즌에서 이하이라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그루브를 가진 가수가 지금 대형 기획사에서 매력적인 보컬의 팝을 하는 가수가 되어버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애당초 독특한 매력이나 비주류적 음악이 설 곳은 없는 무대가 아니었던가. 나가수에서 한큐에 떨어져 버린 조규찬의 섬세한 음악은 소향의 돌고래 기인열전 앞에선 다분히 ‘비대중적’이지 않은가. 백청강이 위대한 탄생에서 ‘콧소리’에 대해 지적 받았을 때 이승환은 ‘저는요?’라고 물었고, 나는 통쾌함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만약 이소라가 케이팝스타에 나왔다면’이라는 유머를 떠올리면 이승환의 저 멘트는 참으로 속 후련한 것이었다. (이소라가 나와 케이팝 스타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면 박진영이 소리가 답답하다며 좀 소리를 열라며, 고음할 때 인상 찡그리지 말라는 지적질을 받았을 것이라는 유머가 있다)

    하지만 내가 끊임없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퀴즈쇼를 불편해 하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평가되고 심사되고, 혹은 문제를 맞춘 후 주어지는 것은 달콤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이 세계는 피로하다. 승리는 달콤할지 모르지면 승리는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지지 않는다. 승자와 패자가 있는 싸움이 아니라 그저 너도 나도 각자의 방법으로 적당히 연대하며 사는 방법은 없는걸까. ‘실력’과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되고, 누군가는 낙오되고, 누군가는 환호하는 이 오디션 세계가 비정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믿는 것일까.

    우리는 거대한 오디션 프로그램 안에서 살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우리를 심사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자들을 선택하는 거대한 오디션 프로그램 안에서 승자들에게 환호하는 사이, 하나씩 둘씩 프로그램 밖으로 사라진 이들은 잊혀진다. 나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은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를 거부한다. 경쟁의 규칙을 바꾸자거나 탈락자에게 끊임없는 기회를 주자고 주장하는 것은 프로그램에 대한 반동이며 악질 선동이다. 모두가 환호하며 즐거워 하는 이 최고의 흥행꺼리 오디션 쇼를 바꾼다고? 재미없지!

    낙오자들은 노력하지 않았고, 발전하지 않았으며,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을 설득하지도 못했다. 패자부활의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규칙을 정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다. 낙오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지 않은가. 노력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혜택을 보장할 것이니 그대들은 앞만보고 이 무한 경쟁의 오디션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친구는 없다. 모든 자들이 당신의 경쟁자이며,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다.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 하며 아쉬워 할 틈 따윈 없다. 당신이 슬퍼하고 섭섭해 하는 사이 당신의 경쟁자들은 다음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며 감상에 빠지는 것은 나약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낙오된 자들은 어떻게 되냐고? 그걸 왜 당신이 신경쓰는가. 노력하지 않은자, 발전하지 않은자,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 자. 세상 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잊혀지거나 말거나 신경쓸 겨를 따윈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룰을 망가뜨리려는 불온한 자들의 목소리는 들을 가치도 없다. 실패한 자들의 푸념일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멈칫하는 당신만 손해일 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과 퀴즈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열 여섯살의 아이가 옥상에 서 뛰어내리면서 남긴 유서는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이제 더 이상 못버티겠어요. 죄송해요”였다.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다는 걸 알아버린 영혼은 세상을 등졌고, 심장을 갉아먹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거나, 심장이 없어져 버린 자들만 세상에 남았다.

    뱀발 : 위대한 탄생의 멘토로 나와서 살짝 나를 섭섭하게 했던,-그래도 백청강의 ‘콧소리’에 대한 지적질에 대해 당당하게 ‘저는요?’라고 물었던 – 이승환의 노래 <퀴즈쇼> 가사의 일부다.

    “진실은 소비되고 혀 위에 남아 치열한 공방 속에 흥미진진한 쇼, 승자에 환호하라 짓밟았으니 획득하는 모든 건 파괴된 자아와 타인, 시작해요 퀴즈쇼 right now 자 즐겨요 퀴즈쇼, 얼마나 넘치고 모자라야 그들의 제물이 되지 않지, freaky silly show in the air, freakt silly show in the air, 누구나 누군가 해하여도 추악한 모든 건 사해지는, freaky silly show in the air, freaky silly show in the air, 또 만나요 다음주 이 시간 기대해요 퀴즈쇼 다 같이”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