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발전을 위하여
제물이 되는 사람들...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25] "마치 인간을 향한 조롱과 냉소, 비난인 듯"
    2013년 04월 24일 03: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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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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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6일. 바람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차가웠다. 그날은 내 생일이지만 나는 화려하거나 따뜻한 아침 식탁이 아닌 무섭도록 찬바람이 부는 임진각 끝에서 온몸을 떨면서도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글을 쓰고 두 다리로 걸음을 걷고, 다시 글을 쓰고 걷는 ‘글발글발 평화릴레이’의 첫 주자 멤버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 평화릴레이는 임진각에서부터 강정 마을까지 작가들이 걸어가면서 강정 마을의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우리 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강정 마을의 참담한 현실을 생각하면 헤르만 헤세의 환상동화집의 글 중 ‘도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발전해 가는구나!” 어제 새로 가설된 철로 위로 벌써 두 번째 기차가 승객과 석탄, 공구와 식료품을 가득 실은 채 도착했을 때 엔지니어가 내뱉은 말이었다. 드넓은 초원은 황금빛 햇살 속에서 조용히 타올랐고, 숲으로 뒤덮인 높은 산맥은 푸르스름하게 지평선에 걸려 있었다. 들개들과 놀란 초원의 들소들은, 황무지에서 작업이 시작되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녹색의 대지에 석탄과 재와 종이와 양철의 마을이 생겨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글 속에는 특정인물이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세월이 주인공이며, 죽고 살고 망하고 흥하고 하는 것들이 이야기 줄기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짧은 동화 속에서 세월은 몇 백 년을 흐른다.

그 흐름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 사랑과 무정함과 파괴와 흥성이 수없이 반복된다. 그 반복이라 함은 짓고, 파괴되고, 정복하고, 무너지고, 강탈하고, 빼앗기고, 죽이고, 살아남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아이들은 그곳을 거닐며 …(중략)… 그들 역사의 변천과정을 관찰했다. 선생님들로부터 어떻게 조야한 것으로부터 세련된 것이, 동물로부터 인간이, 야만인으로부터 교양인이, 궁핍으로부터 풍요가, 자연으로부터 문화가 생겨났는지 하는 놀라운 발전과 진보의 법칙을 이해하였다.

노순택 작가의 사진

노순택 작가의 사진

하지만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 그들 역시 선조들의 오류와 시행착오 속에 놓여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 층 더 건물 높이가 올라감에 탄성을 지르며 ‘발전’을 자축한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하여 눈을 부릅뜨다가 마침내는 충혈된 두 눈으로 남의 것마저 제가 지키겠다는 야망에 조상들이 저질렀던 전쟁과 몰살과 황폐의 역사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세상은 또다시 불타고, 땅은 갈라지고, 강물은 핏빛이 된다. 스스로 견디다 못하여 다시 그들은 ‘발전의 이름’으로 수리하고, 건설하고, 저장하고, 개척하고, 성벽을 높여간다.

또 한 세기가 흐른다. 시간도 흐르고, 산천도 변하지만 불가사의한 일이 하나 있다. 자신의 배를 위해 이웃과 타인의 평화와 창고를 약탈하고, 무너뜨리며 생명조차 아끼지 않는 비열함과 잔인함은 그들의 조상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마침내 이 도시에는 한 사람의 시민도 살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나 우울한 목동의 노래 속에서 왜곡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이 도시의 이름과 엣날의 화려함이 유령처럼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다. …(중략)… 무너진 궁성 가운데 이제는 돌멩이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있었는데, 그 위로 어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발전해 가는구나!”

그 나무줄기를 쪼고 있던 딱따구리 한 마리가 이렇게 외치고는 커져 가는 숲과 장엄한 녹색으로 변모해 가는 땅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무에 구멍을 내어 벌레나 잡아먹고 사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딱따구리가 우리 인간의 발전을 외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을 향한 조롱과 냉소, 비난인 듯도 하다. 불현듯, 너희가 진리를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치라는 신약성경 한 구절이 머리를 울린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너무도 당당하고, 일관되며, 집요할 정도로 지치지 않으면서 외치고 있는 한 마디가 있다. 감히 돌멩이나 딱따구리가 나서지 못하게 말이다. “발전해 가는구나!” 참으로 기이한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제물이 되는 시간이다.

노경실 : 아동문학가. 1982년 『중앙일보』,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화 『상계동 아이들』, 『복실이네 가족사진』, 『동화책을 먹은 바둑이』 등.

필자소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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