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한
    노동자로서의 삶과 경험
    [노동자의 구술생애사-2]아직은 미숙한 만남과 대화들
        2013년 04월 22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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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의 구술생애사 1회분 기사 (관련기사 링크)

    자칫 이어지지 못할 뻔 했던 두 번째 만남

    두 번째로 만난 것은 2주 후, 조합원이 근무하는 제1공학관 건물의 4층에서였다. 한 주 전 한글교실을 마치고, 만날 일정을 정했지만 잊으셨나 보다. 하루 이틀 전쯤에 상기시켜 드렸어야 하는 건데, 당일 아침에 전화하니 깜빡하고 계셨다. 시간을 조정해 오후에 만났지만, 강의실과 연구실이 가득한 공학원에도 이야기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탓인지, 창가의 벤치는 다소 으슬으슬했다. 가족 이야기를 말문을 열었다.

    함께 사는 아들과 제주도로 시집가서 자주 보기 어려운 딸

    (필자) 딸이랑 아들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드님은 같이 사신다고요.

    (조합원) 응, 맞어.

    (필자) 아드님은 그럼 미혼이신 거에요?

    (조합원) 응, 여자 친구가 있긴 있어. 2년인가 사겼다는데… 두어 번 만나봤어. 이쁘게 생겼더라고.

    (필자) 우와, 애인은 어때요?

    (조합원) 몰라, 이쁘게 생겼어 그냥. 곧 결혼할 것 같아.

    (필자) 따님은 결혼하셨고요?

    (조합원) 응, 걔는 제주도에 있어. 직장 다니거든…LG.

    (필자) 아, 직장이 제주도에 있어서 거기 있는 거예요?

    (조합원) 아니, 시댁이 제주도야.

    (필자) 그렇구나, 그럼 자주 못 보시겠어요.

    (조합원) 그렇지, 1년에 한 번 정도 보나.

    (필자) 명절 때요?

    (조합원) 아니, 명절 때는 바빠서 못 봐, 시댁 일로…

    (필자) 그럼 아드님 일 하고, 집에 혼자 계실 때는 주로 뭐 하세요?

    (조합원) 집에 가면 일 하기가 싫어… 그래서 씻고 그냥, 책 쭉 보다가…

    조합원은 한글교실 학강 중 가장 성실한 것으로 강학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더 일찍 시작한 조합원들에 비해 아직 글짓기나 읽기를 술술 하는 편은 아니지만, 결석률은 가장 낮다. 한글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청소노동자현수막

    사진 출처는 공공운수노조 전북지역평등지부

    발 들이기가 창피해 주저했던 한글교실

    (필자) 한글교실에서 하는 책을 읽으시는구나, 저는 조합원님이랑 같이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잖아요. 요즘에는 한글교실에서 뭐 배우세요?

    (조합원) 최현우(가명, 시작 교실 강학)와 그거 책… <가방 들어주는 아이> 그거 읽고 있어. 원래 하던 책은 그냥 쫌 남았는데 어쩌다 한 번씩 읽고… 이제 조금 말 발음이 나오고… 근데 아직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읽기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대목 있다니까. 그런 걸 받아쓰기를 해야 돼, 잉. 너무 선생님들한테 고맙고, 감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데…

    (필자) 감사하긴요… 근데 한글교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에요?

    (조합원) 응, 그게… 지금 군대 간 학생 이름 머지… 덩치 좀 크고… 그래, 세현(연세대학교 학생, <빗자루는 알고 있다>의 공저자이기도 하다)이가 방마다 방문하면서 같이 하자고 했어. 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창피했지. 그런데 우리 방에 있는 김순자 언니가 이거 창피한 거 아냐, 같이 가자고 해서 발을 들여놓은 거야. 한 자 한 자 알아가는 게 그냥 감사하고… 정말 연세대학교 학생들한테 감사하지. 같이 사는 내 자식들도 안 하는데…

    (필자) 하지만 아직 불편한 건 좀 있으시죠? 이를테면 공지 같은 거나 고지서 읽는 거요

    (조합원) 그래, 그럼. 주소 쓰고, 은행일 보고… 우리 애들하고 항상 같이 가야 되고…

    (필자) 그래서 앞으로도 한글교실에서는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하려고요. 책만 보면 늘긴 하는데, 실제로 고지서 같은 거 읽고 하는 데는 별로 도움 안 될 수 있다고 해서요.

    (조합원) 응 그래? 그거 좋네…

    (필자) 그럼 요즘에는 원래 쓰던 책이랑 <가방 들어주는 아이>로 하시는 거에요?

    (조합원) 응, 7권 반 정도 했어. 다른 것도 읽어보고 받아쓰기도 좀 해. 근데, 그렇게 해도 돌아서면 또 몰라 처음에는 이게 안 느니까, 부끄럽고 그냥 때려 칠까 하다가… 어느 날은 받아쓰기도 하고 책도 읽어보니까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빠지면 안 되겠더라고.

    (필자) 맞아요, 조금씩 느는 게 진짜 뿌듯하잖아요. 요즘에 TV 같은 거 보면 글씨 나오는 거 좀 알아보시죠, 예전보다는?

    (조합원) 응, 근데 너무 빨리 지나가 하하. 그래도 쪼금 알아보지. 근데 앞으로 한 10년은 해야 그거 다 알아보려나? 하하

    한글교실 이야기만 이어지면 조합원은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한글교실에서 강학은 대학생들이었지만, 무언가를 배워가는 이들은 비단 학강 뿐만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몇 템포 늦추는 법을 배웠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학강들이 한글을 습득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렸다. 쌍시옷이나 겹자음 받침, 동사 과거형 같은 경우에는 몇 번 씩 반복해서 받아쓰고 읽어도 계속 틀리곤 했다. 한 문장 내에서도 어떤 쌍시옷 받침을 바르게 표기했다가 다른 단어에서는 디귿 받침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여러 예시를 보여주고 틀릴 때마다 읽고 쓰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설명하는 나의 속도도 조금씩 느려지고 목소리 톤도 차분해졌다. 남과 함께 걸음을 맞추어 보기 전까지는 내 보폭이 큰 줄, 내가 걷는 속도가 빠른 것을 모르듯 한글교실을 하지 않았다면 성급한 성미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글교실 이야기만 나오면 결국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조합원이 나를 포함한 강학들에게 감사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조금 서둘러 보다 궁금했던 부분으로 넘어갔다. 청소노동자로서의 삶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정작 제대로 듣지 못한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경험

    (필자) 일하다 보면, 휴게실에서 여자들끼리 모여 있고 하면, 재밌는 일들도 있고 그러시겠어요.

    (조합원) 응, 일 끝나고 모여 있으면 수다 떨고 재밌지.

    (필자) 학생들 더럽게 쓴다고 욕도 좀 하시고요?

    (조합원) 응, 그렇지. 아침에 깨끗해, 근데 저녁에 너무 더러워.

    (필자) 정말 더럽잖아요. 애들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데 꼭 그 옆에다가 버려놔요.

    (조합원) 그러니까. 음식물 든 걸 그대로 버려놓고… 그런 게 좀 힘들지. 뭐 그래도, 하는 일인데. 이젠 초월했어. 어차피 내 구역은 내가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넘어가고… 일과가 그거야.

    (필자) 음, 공대에는 연구실이 많으니까 학생들과 교수들이 많잖아요. 어떠세요?

    (조합원) 뭐 교수님들도 종종 인사하시고 그래. 엘리베이터 같은 거 타고 하면 고개 끄덕이고…

    (필자) 혹시라도 부딪히거나 하는 일은 없고요?

    (조합원) 에이, 그런 거 없어… 여기는 또 연구생들이 많아서… 그런 거 없어.

    조합 활동이 부담되지는 않는지 묻고 싶었지만, 잠깐 시간을 쪼개 나온 그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음 만날 날짜를 잡으려 했지만, 조합원은 자꾸만 할 이야기도, 말할 시간도 더 이상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인터뷰어로서 이제 막 준비운동을 끝낸 기분이었고, 질문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조합원은 단호했고, 나는 난감했다. 아직은 사전조사표를 채우는 단계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아직 학교 청소노동을 시작하기 전의 이야기는 나누지도 못했다.

    때문에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공백이 길었다. 그동안은 세미나에서 다른 인터뷰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연재에서 이어지겠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매우 많았다. 시골에서 상경한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그 시기나 이유가 각기 달랐다. 게다가 현재 경제적 상황이나 가족과의 관계도 제각각이었다.

    물론 학교 청소노동을 하게 된 경위 역시 다양했다. 몇 편의 대하소설이나 현대사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친구들이 라포를 잘 형성했던 것인지, 인터뷰이들이 이제껏 마음속에 담아둔, 그래서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것인지 그들의 생애사는 촘촘히 채워지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 인터뷰이의 생애사를 읽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인터뷰가 시작과 동시에 종을 치고 있는 것이 사전에 라포 형성의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이야기를 끌어내는 나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질문을 어떤 식으로 꺼내고,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이어갈 것인지에 있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짧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해 그 내용으로부터 연쇄적으로 질문이 이어질 수 있었던 데 비해, 내 경우는 거의 단답형이었다. 태반의 경우, 질문이 대답보다 더 길었다.

    (한글교실을 오래 한 강학들에 의하면) 워낙에 과묵하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조합원의 성격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녹취록을 찬찬히 읽어 보니 대답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한 적이 많았다. 일은 어떤지, 조합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한글 배우는 것은 어떤지… 추상적인 질문을 했으니 거창한 대답을 기대하는 게 무리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한 번의 만남이라도 더 갖는 게 보다 중요했다.

    필자소개
    정치외교를 공부하는 대학생 / 대학 입학 후 학내 언론 에서 활동하다가, 졸업을 코앞에 두고 학교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작교실'의 한글교실에 합류. 숙독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강연 참관을 계기로 구술생애사 작업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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