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의 길’ 품은 ‘오래된 서울’
    그리고 야망의 터전 ‘서촌’
    [서평] 『오래된 서울』(최종현, 김창희/ 동하)
        2013년 04월 21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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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에 서울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 소문인 창의문을 왜 그 자리에 냈겠는가? 그 고개에 본래 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 남경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자 개성에서 남경에 이르는 마지막 고갯길이었던 것이다. 이성계가 서울 도읍의 자리를 살피기 위해 무학과 함께 건너왔던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이어주는 길이다…
    – [오래된 서울], ‘제1부 서울의 탄생 – 고려시대의 길을 찾아서2’ 중

    서울의 역사는 조선이 건국되고 2년이 지난 1394년에 수도로 정해진 이후로부터 ‘600년’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서울시도 1994년에 ‘정도 600주년 기념식’을 치렀다니 관(官)에서도 인정하는 ‘공식 역사’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공학과 교수를 지낸 최종현과 언론인 김창희가 공저(共著)한 [오래된 서울]은 우리 역사를 좀더 거슬러 올라간 ‘서울의 원점’에서 추리를 시작한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 형제는 주몽의 또 다른 아들 유리가 왕위에 오르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비류는 미추홀에 자리 잡고, 온조는 위례에 자리 잡았다. 온조는 나라를 세운 후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미추홀은 지금의 인천 지역으로 땅은 습하고 물은 짠 곳이었고, 위례는 지금의 서울 지역으로 매우 기름진 곳이었다. 그 뒤 비류가 죽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온조를 따랐다.
    – [오래된 서울], ‘제1부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원점을 찾아서’ 중, [삼국사기] 재인용

    서기전 18년 백제를 건국한 온조가 서울 위례 지역에 터를 잡고 건국한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례성 지역은 지금의 경기도 하남 지역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행정구역이 바뀐 지 몇 십년 밖에 안된 지역에다가 조선의 수도 한양은 ‘사대문’ 안의 구역을 의미하니 양자의 ‘서울’은 현재의 서울로 통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지역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역사를 백제 건국 시기인 2000여년 전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600년 통설’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인가.

    오래된 서울

    [오래된 서울]은 고대 삼국과 근세 조선의 중간에 위치한 고려시대에서 그 해답을 추적해 나간다. 즉, 지금의 ‘사대문’ 지역은 고려시대 한양부 ‘남경(南京)’으로서 지금의 경기도 양주(楊州) 이남으로 천도를 준비하기도 했던 고려 숙종대인 1100년대 전후에 경복궁 후원 한 귀퉁이에 임금의 또 하나의 별궁인 ‘남경행궁’을 지었다는 것까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 추적해 나간다.

    이후 무신정권과 몽골지배기를 거쳐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100여년 시기에도 인도 승려 지공화상과 그의 고려 제자 나옹화상이 나누었다는 선문답에서 ‘삼산양수(三山兩水)’, 즉 삼각산과 한강-임진강 사이의 명당이라 하여 개창된 경기도 양주 회암사를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의 명찰로 보면서 역시 지공화상의 제자 중 하나였으며 한양 천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조계종파의 무학대사가 공민왕대 화엄종의 신돈이 실권한 후 회암사에 머물렀다는 사실까지 추적해 낸다.

    따라서 서울은 조선의 ‘한양’ 이전인 고려 중기 ‘한양부 남경’ 시절부터 하나의 수도로서 역사를 추리할 수 있으니 이쯤 되면 서울의 역사는 600년이라기보다는 1000년 정도로 볼 수 있게 된다.

    [오래된 서울]은 추리에서 끝나지 않고 고려 중기 이후 ‘천년묵은 길’을 소개한다. 모든 길은 자연이 만든 물길, 즉 물길을 기준으로 생기기 마련인데 조선 태종이 종로와 교차하여 창덕궁 앞으로 통하는 돈화문로와 양쪽의 피맛길을 만들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길을 보여준다.

    현재 지하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나와 ‘갈매기집’ 좌측으로 비스듬히 올라 삼일로 삼환기업 건물 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이 바로 [오래된 서울]이 이야기하는 ‘천년묵은 길’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은 후 찾아간 골목길은 두리번 거리며 걷는 내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한다.

    또 하나의 길은 고려시대 수도 개경(개성)에서 남경행궁으로 내려오는 유일한 길인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는 길이다. 현재 경복궁 서쪽으로 종로구 옥인동과 청운동 부근을 지나 올라가면 조선시대 ‘사소문’ 중 북문이었던 ‘창의문’이 나오는데 이 ‘북소문’은 조선이 만든 문이지만 여기로 통하는 길은 위에서 인용했듯이 ‘천년묵은 길’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북대문’이었던 ‘숙정문(肅靖門)’으로 통하는 길은 없었다고 하니 ‘창의문’이 북쪽과 남쪽을 잇는 실질적인 북문이었던 것이다. ‘창의문’은 임진왜란 때 일부 소실되어 1740년대에 중창되었으나 ‘사소문’ 중 유일하게 그 자리에서 300년 이상 제 모습을 보존한 문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천년묵은 길’을 추적한 [오래된 서울]의 본래 주제는 ‘서촌(西村)’이다. ‘서촌’은 조선 초기 왕실군락지로서 경복궁 서쪽으로 해서 자하문로 따라 위로 올라가면 나오는 지역으로서 책은 세종이 태어난 ‘준수방 잠저(임금이 되기 전 살던 집)’로 추정되는 지금의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과 그 뒷편길로 해서 서북쪽으로 예전 청계천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세종의 3남 안평대군이 살았다는 수성동 계곡 일대를 소개하고 있다.

    이 곳 수성동 계곡은 안평대군이 어느날 문득 꿈에서 본 풍경을 화가 안견을 불러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한 지역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서촌 수성동 계곡 어딘가에서 삼각산 쪽으로 바라본 풍경 아닐까 추정된다고 한다. 이후 ‘단종복위사건’으로 안평대군이 형인 세조에 의해 사사된 후 수성동 계곡에는 세종의 둘째 형이자 안평대군의 삼촌인 효령대군이 옮겨와 천수를 누리며 살았다고도 한다.

    ‘서촌’은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 외에도 겸재 정선과 같은 화가가 살면서 ‘서촌’의 배경인 ‘인왕제색도’를 포함하여 그 특유의 화법을 발전시킨 곳이기도 하고, 병자호란 때 ‘주전파(主戰派)’로 이름날린 김상용, 김상헌 형제의 ‘장동 김씨’류의 권신들의 터전이었으며 조선 중기로 넘어오면서 신분사회에 대한 절망을 시(詩)로 승화시킨 중인들이 ‘송석원’ 등의 절경을 배경으로 ‘동인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지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을 뒤에서 바라보며 실현될 수 없는 야망을 태우던 일종의 ‘야망의 터전’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서촌’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과 그에 못지 않았던 윤덕영 등이 현재 옥인동 일대를 강탈하여 호의호식하며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의 마지막 왕후의 큰아버지이자 이완용과 친일을 경쟁하던 ‘1급 친일파’ 윤덕영 같은 자는 현재 옥인동 47번지 일대와 ‘송석원’ 등의 지역에 벽수산장이라는 서양식 호화별장을 짓기도 했다는데 이쯤 오면 권력을 향한 ‘폭력적 야망의 터전’이기도 하였다.

    [오래된 서울]은 서촌 옥인동 일대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둔 이완용에 대하여 당시만 해도 ‘민족정론’이었던 <동아일보>의 1926년 사설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나’ 중 다음의 명문을 소개하기도 한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아마도 이완용과 친일부역자들의 삶을 가장 명료하게 정의한 테제가 아닐까 싶다..

    조선 후기 ‘서촌’은 작가 이상과 화가 구본웅, 시인 윤동주와 국문학자 정병욱, 민족사회주의 화가 이여성과 이쾌대 형제 등이 시대를 고민하면서 ‘동행’했던 터전이 되었고, 김수임, 노천명, 앨리스 현 등의 역사의 파고에 쓸려간 여성들이 살던 지역으로도 소개된다. [오래된 서울]은 이들 모두를 포함하여 화가 이중섭이 작품을 생산하던 집까지 추적하여 소개하고 있다.

    날씨 좋은 휴일에 [오래된 서울]의 추적을 따라 ‘천년묵은 길’과 ‘서촌’ 일대를 둘러보는 산책길은 이미 관광상품화된 ‘서울성곽길’과는 또 다른 상념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동행’이 없다 한들 어떤가. 우리에게는 ‘천년묵은 길’을 품은 ‘오래된 서울’의 역사라는 동행이 있으니.

    필자소개
    현대해상화재보험노동조합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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