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굶주림 속으로 내모는 것들
    [책소개] 『세계 굶주림 지도』(토마스 J. 바세트/ 동녁)
        2013년 04월 21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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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끼 금식 캠페인, 티셔츠 기증, 스톱 헝거 캠페인, 기아 모금 콘서트, 기아 체험 캠프, 1+1 탐스 슈즈의 매진 기록.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기아 관련 캠페인을 들어봤거나 참여해봤을 것이다.

    기아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세계 곳곳에는 개미 후원자들이 계속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무색할 만큼 기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아와 관련된 기사들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5초에 1명꼴로 어린이가 죽어 가고, 세계 곳곳에서는 식량 위기로 1억명 이상이 굶주림에 내몰리는 ‘소리 없는 쓰나미’를 겪는다. 2015년까지 개발도상국의 굶주린 주민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의 목표도 거의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27년간 기아는 인구수와 인구 비율 면에서 모두 감소했으나, 그것은 특정 지역에만 해당된 결과라고 한다.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인구수가 줄어든 곳은 동아시아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반문해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도움을 주는 걸까? 혹시 기아의 원인을 바로 보지 못한 채 급한 불만 끄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닐까?

    세계 굶주림 지도

    《세계 굶주림 지도》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전 세계 기아의 현주소를 다시 묻는 책이다. 기아 문제의 심각성을 논하는 책들이 많았고, 기아를 줄이는 데 일조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그때 활용됐던 많은 정보들이 얼마나 실제 상황을 반영했는지 다시 살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각도에서 입체적으로 기아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200여 장의 지도와 그림 및 각종 기아 지표들을 한데 모아 세계의 굶주림 지형도를 다시 그린다. 기아가 어디서 발생하며, 기아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왜 발생하는지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이 책은 우리에게 기아 문제를 총망라할 수 있는 종합적인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혁신적인 지도 제작법과 비판적인 사회적 시각이 결합

    2008년 3월, 아이티에서 시작해 전 세계 30여 나라로 확대된 식량 항위 시위를 기억할 것이다. 연속된 폭동으로 결국 아이티 의회의 총리는 해임했고, 정권은 무너졌으며, 아이티 정부는 쌀값 15% 인하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결국 주요 식량 가격이 2006년의 두 배로 오르면서 전 세계적인 기아 항의 시위로 확대됐다.

    이 책은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들은 당시 시위가 특정한 변수에 의해 기아가 어떻게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면서, 식량 위기의 이면에 부유한 나라의 농업 보조금이나 바이오 연료 정책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기아 문제에는 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포착해 역사 속 기아 사건들을 넘나들며 기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려고 시도한다.

    이 책의 저자인 바세트와 윈터-넬슨은 세계의 식량 문제,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2003년 바세트가 연구 과제로 기아의 지형도와 요인에 관한 토론을 시작하면서, 기아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을 만들자는 목표로까지 이어졌다.

    이후 윈터-넬슨을 비롯해 우루과이, 멕시코 등 심각한 기아국 전문가들이 자료를 보태주고, 200여 장의 지도를 직접 그려 기아에 관해 총망라한 책으로 완성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책에 수록된 지도들이 세분화된 항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참고한 자료들 역시 세계 기구나 각국 단체의 자료들을 비롯해 민간단체, 비영리 단체에서 집계한 것들까지 종횡무진하며 넘나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직접 제작한 지도들은 개인, 가구, 나라 별로 기아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기는 여러 가지 요소를 차례로 대입해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이렇게 깊이 있고 풍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1부에서는 중요한 기아 지표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본 다음, 세계의 기아를 더 잘 표시할 수 있는 ‘기아 취약성 지수’를 제안한다. 2부에서는 기아가 빈곤 및 사회적 취약성과 항상 연관이 있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기아 취약성을 나타내는 여러 요소들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본다.

    앞의 지도들이 기아의 위치를 보여준다면, 뒤의 지도들은 기아 취약성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지적한다. 저자들은 기아의 뿌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대개 빈곤과 사회적 취약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기아의 지형도를 새롭게 파악하고, 기아를 줄이려는 국제적인 노력에 기여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이 책은 교사, 학생, 그리고 기아의 지형도와 요인을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시의적절하고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가난, 기아, 빈곤은 어떻게 다르며, 기아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1인당 총소득, 1인당 경작 가능한 토지, 1인당 식량 생산량, 1인당 1.25미만으로 생활하는 인구수, 1인당 필요한 하루 칼로리…….

    모두 기아 상태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지표들이다. 대부분의 세계 기구와 기아 단체들은 이것들을 통해 산출된 수치들로 기아 실태를 발표하고, 대책을 세운다. 우리가 머릿속에 쉽게 그려볼 수 있는 기아 지도들도 대부분 여기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각 자료들이 연구자의 주관적인 시각과 사견이 들어가기 쉽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지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아 상황이 다르게 나타나, 실제로 도움이 가장 절실한 나라들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제 연합이 2005년에 만든 ‘구매력 지수’는 1인당 하루 1.25달러의 소비 지출액을 극도의 빈곤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자국 내에서 극빈층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다. 실제로 본문의 지도 41.1과 41.2를 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측정치를 썼을 때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1부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기아 현황 분석의 한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적 지표로서 ‘기아 취약성 지수Hunger Vulnerability Index, HVI’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지표는 단일하게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각 나라 간의 식량 가용성, 빈곤, 성장 부진의 차이점을 보여줄 수 있다.

    이 지수를 활용하면 가령 볼리비아는 타지키스탄과 비슷한 수준의 성장 부진율을 겪지만, 빈곤율이 더 낮고 식량 가용성이 더 높기 때문에 전반적인 취약성이 약하다는 점이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는 높은 기아 취약성과 인구 증가율을 보이지만, 아라비아 반도와 중동은 높은 인구 증가율에도 불구하고 기아율이 매우 낮다는 점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기아 문제가 나라별로 어떻게 다르며,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표시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여기에 천연, 인적, 구축 자산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 다양한 자원들을 하나의 지표로 결합시키는 ‘자원 기반’과 같은 개념들을 활용한다. 저자들의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연구가 짚어내지 못한 부분을 밝혀내 우리가 몰랐던 기아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왜 세계는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기아의 원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실은 인구 증가다. 저자들에 따르면 멜서스의 이론에 기반을 둔 이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지난 50여 년간 1인당 식량 생산량이 늘었다. 특히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는 크게 증가했다.

    또한 1인당 식량 생산량이 가장 줄어든 유럽에서는 기아나 기근보다 비만이 더 심각하다. 식량과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된다면 1인당 식량 생산이 증가해도 기아가 줄어들지 못한다.

    따라서 인구 증가로 기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구로 인해 압박을 받은 자원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저자들이 인구 증가보다 자원의 분배, 소득, 자격권, 기회의 불평등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의 2부는 1부의 지표들을 바탕으로 기아를 유발하는 교육 수준, 문해율, 기술, 성적 평등, 전쟁, 질병 등 수많은 원인들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여기에는 기아가 발생하는 이유가 정책 및 기술, 가용 자원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실제로 지도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바와 달리 인구 증가나 환경 문제, 자원, 정치적 자유와 같은 요소들이 기아 취약성과 그다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인구 증가나 식량 부족과 같은 일반적인 문제에만 집착하면, 정부가 땅이나 물과 같은 천연자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치게 된다.

    2부의 지도들을 복합적으로 보면, 의외의 결과들이 산출된다. 가령 일본이나 벨기에처럼 소득이 높은 나라는 천연 자원에 한계가 있더라도 기아 문제가 적다. 미국과 동아프리카에서는 1인당 경작 가능한 토지가 점점 줄어들지만, 그것이 식량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한 가구 내에서는 대개 남성보다 여성의 기아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지도들이 전해주는 안타까운 시사점은, 기아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 자국의 기술적 한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원의 취약은 기술 취약으로 이어지고, 심각한 기아를 낳는 순환고리를 만든다.

    따라서 저자들은 성급한 대안이나 대책 시행, 부유한 나라의 한시적인 보조금, 시민들의 짧은 선행이나 실천 등과 같은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진통제를 투여하기보다 근원적인 원인을 찾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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