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도시개발과 한국 뉴타운
    [일본의 일상] 도심 아파트 숲의 단지 형성은 한국적 현상
        2012년 06월 05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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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퍼센트의 주인공, 강남

    세상이 참 좋아져서 인터넷으로 각종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나는 간혹 다음 포털의 지도서비스 중에 로드뷰를 이용한다.

    오랜만에 가면 원래 알던 길도 어리둥절해지는 서울 거리의 변화 때문에 뭔가 찾아야할 일이 있으면 바로 로드뷰로 찾아본다. (선전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편리하다. 해외에서도 IT강국의 혜택을 절감한다)

    며칠 전에 뭔가를 찾으려 학동과 논현역, 신사역을 중심으로 로드뷰를 돌렸다.

    영동시장을 찾고 논현초등학교를 거쳐서 학동으로 빠지는 길을 로드뷰로 달리는데, 조금 의아해졌다.

    내가 처음 강남으로 이사간 날은 80년 5월 17일인가 18일로 신군부의 확대 계엄령이 내린 무렵이었고, 그 일주일 후에 논현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으니 이미 22년전 일인데, 논현초등학교에서 학동역까지 오는 길은 건물이 좀 변한 것 빼고는 거의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 어린 마음에도 왜 골목길이 이렇게 이중으로 되어 있을까 싶었던 불합리해 보이는 둔턱까지 그대로 있었다.

    짐작컨대 이전부터 논현초등학교에서 신사동, 논현동 주변은 오래 자리잡고 살던 소규모 주택 소유자들의 땅이고, 이미 80년 당시에 대규모 택지개발로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던 압구정동과는 다른 방식의 개발이 진행된 듯하다.

    그래서 거기에 원래부터 살던 단독주택 세대들은 여전히 이전과 다르지 않게 거주하면서, 대규모 개발이 아닌 개별적인 주택매매와 개축 증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크게 변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회학에서 대규모 개발의 가장 커다란 약점은 기존 동선의 파괴로 인한 악영향, 신구 주민의 갈등, 범죄율의 증가로 파악한다.

    강남은 특별한 지역이라서 땅값 상승이 주민 갈등을 약화할 수 있었고, 도로가 80년대에 이미 미래를 위해 계획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에 따른 동선의 파괴도 적었다.

    강남이 특별한 지역이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전국 토지의 0.04퍼센트 정도의 규모가 60년대에 비해 액면가 60만배의 지가 상승이 이루어진 유일한 지역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예측 가능했던 갈등은 이익 논리에 묻히면서 기존의 사회학적인 견해로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어쨌든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압구정동 같은 대규모 개발계획구역과 달리 소규모 주택소유자들의 개별적인 움직임이 지역변화를 더디게 할 뿐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지역사회에 주는 충격이 적어서 원칙적으로 바람직 하다는 얘기다.

    뉴타운이라는 고유명사

    한국에서는 뉴타운이라는 말이 대규모 도시개발계획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지만, 일본에서 뉴타운이라는 것은 도쿄 주변의 몇몇 대규모 베드타운을 일컫는 말이고 거의 고유명사에 가깝다.

    1972년 항공사진 <남타마신도시개발본부관계자료>

    그 중에 가장 유명한 뉴타운 지역이 타마(多摩)뉴타운인데 1965년에 계획되어 1971년에 첫 입주가 시작된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말한다. 혹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 유명한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대작전>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애니메이션이 이 타마뉴타운 개발사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940년대에 패전국으로 배급을 실시할 정도로 궁핍을 겪어야했던 일본은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 특수로 경제적 혜택을 누렸고, 1960년대에는 고도성장기를 맞이했다. 소위 “금달걀”이라고 불리며 지방에서 “집단 취직”(학교마다 공장이나 회사에서 단체로 취업안내를 다니면서 단체로 노동력을 유입하는 방법)을 통해 젊은 노동력은 끊임없이 도시로 진출하여 산업 현장에 투입되고 토쿄의 인구는 날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토쿄는 금방 포화상태로 접어들고 몇몇 공장지대를 제외한 기업과 시설이 토쿄로 집중되면서 토쿄 주변의 베드타운을 개발해야할 필요가 발생했다.

    이는 1970년대 이후에 서울이 겪게 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른 것은 타마뉴타운은 주택지로서의 기능에 철저하게 특화되어 서울의 강남과 같은 개발과 지가상승을 겪게 되지는 않았다.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지금의 성남분당지구에 가까운 느낌이다.

    (아파트)단지는 베드타운의 고급스러운 이름이 되었고, 한국에 비해 소규모 지주나 단독주택소유자 비율이 많은 일본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주택지개발은 그다지 흔한일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다. 특히 도심주변에 아파트만으로 숲을 이루는 서울의 풍경은 다른 나라의 전통을 가진 수도에서는 베이징 외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2000년에 들어서자 타마뉴타운은 일부가 고스트타운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1970년대 초기에 입주한 사람들이 고령화되면서 조용한 마을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30여년동안 노후화된 아파트들은 고령 인구가 많은 베드타운에서는 적극적인 재개발 수요도 없었다.

    게다가 버블이 무너져서 토쿄 도심의 땅값이 반토막난지 10년이 지나도 회복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도 기업도 쉽사리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도 고령인구 비율이 70%가 넘는 한 지역에서는 생필품을 취급하는 몇 개 이외의 거의 모든 상가가 문을 닫고 거리마저 조용한, 말 그대로의 고스트타운이 되었다.

    일본의 주택사정

     이러한 배경에는 몇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주거형태와 상관없이 일단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의 이사 빈도가 높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구입 담보대출을 통해 집 장만을 하는 일본에서는 대개 30년에서 35년짜리 주택구입 담보대출(모기지론)을 통해 주택을 구입한다. 물론 이 대출은 직장과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이 받을 수 있고, 대출 승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여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대출을 유지해가면서 평생 살아간다.

    당시 신문기사로 "<세계 제일의 대단지>- 타마뉴타운 탄생"

    물론 이런 장기대출이 가능하고 또 유지되는데에는 일본식 평생직장의 개념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버블 이후에는 신규주택 매매보다는 중고주택 매매가 훨씬 활발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택구입 대출은 직장과 연봉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에 비해 단독주택 소유자도 많을 뿐더러 새로 소규모 택지를 개발해서 단독주택을 지어 파는 건설업체도 적지 않고, 또 토지를 구입해서 직접 집을 짓는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히 높다.

    이러한 경우들에도 준비자금이 어느 정도 들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주택구입 담보대출을 이용한다.

    둘째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일본도 역시 토건국가이긴 하다. 일본 토건 사업의 상당수는 자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도로 하천 철도 공공시설 등의 인프라 산업에 집중된다.

    타마뉴타운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일반적으로는 택지 조성을 대규모로 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계획수립 5년만에 조성을 완성하는 대규모 개발은 없다.

    철저하게 필요와 미래 수요를 기준으로 계획되고 조성되었다는 것이 투기를 조장하지 않고도 대규모 택지개발을 이루게 되었던 배경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환경론자들의 비난도 높았고, 이로 인한 문화적 사회적 혼란과 충격도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단지 형태를 이루는 아파트 군을 발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간혹 보이는 아파트 단지는 주로 공영주택이나 시영주택처럼 주택실수요를 조절하여 국민생활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이고, 영구임대형식의 주거지역일 뿐이다.

    물론 이 임대아파트는 공기업에서 관리하거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며, 수입에 따라 임대료가 차등적용되며, 입주 역시 자격이 엄격히 제한된다. 저소득이 가장 우선 기준이고 거기에 장애인, 외국인이주자, 고령자, 다가족 등의 일정한 티오도 존재한다.

     처음에 말한 강남의 두 가지 도시 발전 방식에서 논현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개발 방식이 도시의 일반적인 것이라면, 서울 곳곳에서 추진되는 뉴타운은 사회학적 검토와 고려가 필요한 방식이므로 쉽사리 행해져선 안되는 방식인 것이다.

    클린턴시절에 행해진 금융화 정책 이후 금융자본의 힘이 커지면서 모기지론 사태의 기초를 마련했고, 전세계는 금융도시화를 목표로 도시개발을 진행했다. 파리 신도시와 런던 리버풀 개발도 이러한 흐름 위에 있었고, 두바이 개발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중동의 오일머니와 러시아 마피아의 자금, 동남아 부패관료의 비자금이 대량유입되고 막대한 부를 챙겼다.

     금융도시화를 추진해서 성공한 곳은 매우 적다. 다양한 인프라와 인적자원과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도 심지어 운이라는 것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금융도시이다. 아시아 거점인 토쿄, 미주 거점인 뉴욕, 유럽 거점인 런던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은 쉽사리 그 지위를 얻어낼 수 없다. 그런데도 모든 지역이 뉴타운처럼 금융도시화의 조건에 가까운 도시개발 모델을 따라가게 되면 정상적인 도시발전을 가져올 수가 없다.

    물론 금융도시화가 정착한 뉴욕과 런던, 토쿄의 경우에도 돈을 번 것은 도시와 기업, 투기금융자본일뿐 서민들의 생활은 파탄에 직면하고 전에 없는 비정규직과 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금융자본이 전세계를 무대로 파괴적인 자본화의 과정을 수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음 회에는 토건국가 일본의 국토 개발 방식을 살펴볼 예정이다.

     

     

    필자소개
    일본 후쿠오카에서 14년째 살고 있으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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