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의회 예산 심사,
    우선순위와 양보, 싸움의 이중주
    [진보정치 현장] 강해지거나 성가시거나, 괜찮거나 불편하거나
        2013년 04월 18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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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은 예술적 산출’이라는 독백이 가끔 입에서 흘러나온다. 사회적·정치적 역학 관계를 가히 예술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그래서 내가 분노할 때도 많다만. 그 예술성의 결정적 백미는 온갖 제약들, 한마디로 ‘한정됨’이다.

    이 시민 저 주민이 “구미시는 재정이 많다면서요? 그런데 왜 (이러이러한 걸) 안 해요?”라고 말한다. 구미시 1년 예산이 1조원쯤이고 재정자립도도 경북 관내에서 1, 2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이 아무리 많아도 시민을 완벽히 만족시킬 순 없다. 예산특별위원회가 열릴 때 특위 위원장은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필요하고 시급한 예산이라도 예산안에 끼지도 못하는 것도 있다.

    예산은 공무원사회 내부에서도 갈등 요인이다. 일선 부서에서 올리는 예산안은 예산 부서에서 ‘난도질’된다. 예산 부서 계장이 국장급 공무원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한다. 예산 부서 계장이 뱃심이 두둑하거나 혹은 오만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지방의원의 파워가 최고로 오르는 시점이 예산 심사다. 아직 지방의회의 조례 발의나 감사 기능이 미숙해서 상대적으로 그게 더 돋보이는 탓도 있지만, 집행부 사업에 제동을 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역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다. 예산을 삭감하지 못해 부랴부랴 조례 개정으로 대응해야 했던 나의 사연을 이 지면에서 소개한 적이 있지 않은가.

    또 그만큼 성가시고 곤란해지기도 하는 게 예산심사가 있는 회기다. 상임위 예비 심사에서 ‘삭감 요망’을 외치면 해당 부서 직원들이 의회 사무실 앞에 줄을 선다. 설명을 충분히 들어봐야 할 것도 있는 반면, 의원의 가치관과 방침을 명확하게 거스른 것들도 있다.

    뒷 경우는 사정사정하는 공무원과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는 의원이 계속 시간만 죽칠 뿐이다. 곤욕이 양쪽을 덮친다.

    주민참여예산 교육 모습(사진=김수민의원 블로그)

    주민참여예산 교육 모습(사진=김수민의원 블로그)

    이를 피하려 예산 심사 직전에 등원해 예산 심사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버스를 타버린 적도 있다. 중식 직후에 종종 문을 잠그기도 한다. 예산 심사 회의 때 일부러 후반에 말하기도 한다. ‘저는 나이도 젊은데 좀 뒤에 말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하면서. 내가 삭감 요망하는 건수를, 그러니까 곤욕을 줄이기 위함이다.

    허나 그렇게 해도 만만치 않다. 다른 의원이 놓치거나 놔둔 건 결국 내가 손을 댄다. 처음에 칼을 빼든 의원이 대충 칼을 집어넣는 척하다가 다른 의원이 막판에 칼을 빼드는 등 콤비 플레이도 한다. 관록(?)이 쌓이니 일부러 짜지 않아도 그리 될 때가 있다. 신기해라. 예산 심사 때 의원 개개인의 힘이 강해지는 건 맞지만, 그런 때일수록 가능한 집합적 행위를 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의회 대 집행부는 다윗 대 골리앗이다.

    공무원만이 아니라 관련 민간인들도 전화를 걸어오거나 찾아온다. 나한테는 뒤로 갈수록 이런 횟수가 줄었다.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은데, 나는 다른 의원들보다 인맥이 좁은 편이라 압박을 받는 면적도 작으며, 이야기해봐야 고집이 세서 통하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상당히 허무한 것이, 내가 삭감을 주도한 예산이 아님에도 불구 ‘김수민 의원이 깎았다’고 소문이 난단다. 얼마 전에도 한 전직 기초의원께 “김의원은 사회적 약자 관련 예산 빼고는 아주 인색하다던데”라는 전언을 들었다. 사실 그렇게 인색하지는 않은데.

    다른 의원이 삭감하려는데 내가 살리거나, 삭감 의견이 나오기 전에 사업의 의미를 강조해 살아난 예산도 있다. 대체로 문화예술 쪽이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지역행사가 우후죽순처럼 많아져서 의회는 행사라면 일단 경계를 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는 기준을 딱히 마련하지 못해 헤매기도 했다. 그러나 방향이 잡히면서 조금 나아졌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확신이 있어 삭감하는 것도 많다. 문화예술예산과 그 집행부서에 있어 나의 존재는 이중적이다.

    예산안이 조례안과 다른 것은 그 내부의 복잡다단함에 있다. 예산안에는 수많은 건들이 올라와 있는데 이걸 두고 일일이 찬반 표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제6대 구미시의회는 조례안을 두고도 찬반 표결한 경험이 없다). 찬성이나 반대나 사안마다 그 강도는 다르다. 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존중받으려 상대방의 어느 요청을 들어줄 때가 생긴다.

    고로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그 우선순위는 철학 없는 거래의 결과로 매겨지는 경우도 숱하지만, 철학이 빚어내어야 한다. 예산을 편성할 때든 그것을 심의할 때든, 행정부 내에서 조율할 때든, 의회와 행정부가 협상할 때든, 의원과 의원이 부딪힐 때든.

    스웨덴에서 비그포르스라는 걸출한 사상가가 재무장관을 맡은 것을 보라. 그래서 나도 예산을 심사하면서 타협할 각오(세상이 ‘유연함’, ‘융통성’이라 부르는)와 함께, 기준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들어간다.

    한국노총 관련 사업을 놓고 줄다리기할 때가 대표적이다. 노동자 전반의 권익하고 하등의 상관이 없는 외유나 행사들이 그렇다. 그럴 때, 예를 들어 두 건이 쟁점이 되면, 찬성하는 의원들은 ‘둘 다 반액씩만 삭감하자’는 제안을 내민다. 난 수용불가다. 행사 자체가 문제가 있는데 반액 삭감으로 되는가. 실랑이가 끝나지 않고, 중립적이거나 소극적인 의원들이 토론 종료를 유도하는 시각이 오면, 이번엔 내가 절충안을 낸다. ‘두 가지 중 더 문제가 많은 하나만 아예 전액 삭감하자’는 식으로. 관철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서로 조금씩 물러서는 관행이 있긴 하지만, 내가 소수파로 없이 살아온 설움을 아니까(흐흐) 수적으로 우세하더라도 패권주의자가 되지 않겠다는 자세로 양보하기도 한다.

    작년 말에는 경총이나 한국노총 관련 사업이 줄줄이 막판 계수조정의 쟁점으로 남았다. 당시 예산특위의 의견분포는 표결처리하면 거의 다 삭감해버릴 수도 있을 정도였다. 또 예결특위에서 통과된 예산이 본회의에서 수정될 공산은, 의원의 1/3 이상의 연서명으로 본회의에 예산안 수정안을 낼 수 있지만, 관례적으로 거의 희박하다. 그러나 극한 충돌을 피하다 보니 그중 반이 조금 넘는 건수가 전액 삭감되었고 나머지는 통과되었다.

    반면 이해할 수 없는 타협에 밀려나는 순간도 있다. 2011년 9월 추가경정예산 심의 때 일이다. 삭감 위기에 놓인 예산 가운데 스마트센서산업육성 연구용역비 5천만원과 삼성카메라 공장 이전 기념 카메라촬영대회 1600만원이 있었다.

    관련 부서에서는 전자를 1600만원 삭감해 3400만원으로 해주고, 후자는 그대로 살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전자의 삭감에 반대했고 후자는 모두 삭감하자고 주장했다. 삭감액은 둘 다 1600만원으로 같으나, 액수가 쟁점이 아니다. 연구용역비와 카메라 촬영대회는 연관도 없으며, 전자는 산업 육성에 필요한 연구비용이지만, 후자는 졸속으로 잡힌 대회였다.

    진짜 예술적인 행사였으면 문화예술부서 예산으로 잡혔을 테고, 삼성카메라 공장 이전에 맞춰 부랴부랴 만들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의견은 소수에 해당되었다. 내 지역구에 삼성이 있으니 삼성에 예산을 주라는 궤변을 누군가에게 듣기까지 했다(이 소식을 들은 삼성의 한 사원은 되려 ‘부끄럽다’고 말했다). 삼성에 비위 맞추느라 엉뚱하게 연구용역비를 삭감해도 되나? 그래도 되는 거라면 집행부는 애초에 연구용역비를 3~4천만원만 계상할 것이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비공식적으로나마 표결을 했던 유일한 예산이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라며 예결특위를 종결지었으니 공식적으로 찬반 표결로 처리한 건 아니고, 비공개 계수조정 회의에서 아무리 토론해도 협의가 안 되는 예산이 딱 하나 남아 회의 속개 전에 표결했다.

    낙동강변 개발 기본설계용역비다. 반대 못지않게 극력 찬성하는 의원들이 있어 하염없이 대치하다가 자정을 넘겨 차수를 변경했다. 한 찬성의원은 한 반대의원에게 “참 고집이 세시네요. 저는 아집이 세고요”라고 농 섞은 한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고개가 책상으로 절로 떨어졌다. 사활을 걸고 붙다 보니 더 몽롱했다. 그 예산을 다루기 전까지 다른 예산으로 나와 고성을 주고받은 한 의원과 나는 어느 틈엔가 다시 미소를 주고 받고 있었다. 마지막 예산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민들은 시청할 수 없는 비공개 회의에서, 팽팽한 대립과 느슨한 우스개가 오갔다. 부분 삭감안이 잠시 제시되었으나, 나는 이 사업 자체가 틀렸고, 집행부의 추진이 일방적이었던 것을 경고할 목적에서라도 전액삭감으로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답했다.

    다투다가도 휴게실에서 마주 앉아 야식을 먹고, 그러고 회의장에 들어와 찬반 양측이 할 말 실컷 하고 나니 할 말이 없어 멍하니 있기도 했다. 원치 않았지만 표결했다. 그 결과 한표차로 전액삭감이 되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찬성 의원도 웃음 지어 보이며 악수를 건넸다. 늦게까지 밖에서 기다리던 공무원들도 수고했다며 인사한다. 저마다 깎고 싶은데 깎지 못한 예산, 살리고 싶은데 살리지 못한 예산이 적지 않지만, 어차피 절대적 승자와 패자는 없는 한판이다. 합의주의 문화에서는 소수파나 일인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기에 한편으로는 만족하고, 찝찝한 건 일단은 훌훌 털고 다음을 준비한다.

    내가 예산 심사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증액 사례를 겪지 못했다다는 점이다. 지방의회에서는 예산 심사 중의 증액이 불가능하다는 오인도 있지만, 지방자치법 규정이 증액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비목의 예산이 증액되거나 새로운 비목이 설치될 경우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를 얻으면 된다.

    한 비목 내에서는, 삭감한 예산 이하 만큼을 다른 예산으로 이동시키는 건 의회 재량으로 가능하다(물론 두 가지 모두, 전체 예산 중 삭감한 것이 증액한 것 이상이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면 세입을 더 부풀려야 한다).

    나는 지난해 말, 상승이 더딘 보육교사처우개선비에 대해 증액 요망을 했다. 증액을 하면 여기저기서 증액 요청이 터져 나올까봐 우려가 종전부터 있었으나, 이것은 특정 지역 예산이 아닌데다가 의회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사안이니 괜찮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별 논란도 없이 실패했다. 증액 관례가 정착하지 못해서다.

    의회가 삭감한 예산액은 그냥 놔두면 예비비로 편입될 뿐이다. 추가경정예산 때 의회에서 애를 먹고 삭감한 예산 항목이 그대로 재등장하는 건 부지기수다. 그때 가서 못마땅해 하지 말고, 삭감한 예산을 필요시급한 데 돌려서 쓰는 게 바람직하다.

    올해 말에 다시 증액 관행이 정착될 수 있도록 시도해볼 작정이다. 법으로 보장되어 절차적으로 정당한데도 그간 잃어버렸던 권한은, 의회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받을 수 없다.

    필자소개
    전 구미시의원. 스스로를 정당인보다는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녹색당 소속. 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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