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상근만 10년째, 까칠한 패션좌파
    [타인의 삶] 네 번째 인터뷰: 노조상근자 정현철씨
        2013년 04월 15일 0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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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들은 말했다. 학생운동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노조 상근자’만큼은 하지 말라고.

    노동운동을 하려면 ‘현장’을 들어가야 한다는 시절에 너도 나도 학교를 중퇴하고 현장 갔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에도 드물게 서울 구로공단 등지에 취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와중에 선배들이 ‘비추’하던 노조 상근자를 대학 졸업 이후 지금껏 10년째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노동운동의 정석을 밟았던 4-50대 노동운동 선배들과는 비켜나간 애매한 나이, 민주노총 유니폼으로 대표되는 등산복과 등산화를 거부하는 패션 센스, 감각적이고 아이디어 돋는 여성주의 한다는 언니들과 젊은 운동권의 피를 부러워하는 38세 노조 상근자 정현철씨를 만났다.

    간혹 보수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는 ‘전문 시위꾼’의 이미지가 훨씬 더 많은 것이 노조 상근자라, 남들에게 직업을 소개할 때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한 이의 삶을 인터뷰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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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여진: 자기 소개 부탁 한다.

    정현철: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조직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직국장 아니다. ‘부’국장이다. 주로 하는 일은 조직, 쟁의, 지원이다.

    장여진: 노조 활동 경력은 어떻게 되나

    정현철: 2002년 10월 서울경인지역사무서비스노조(현 전국사무연대노동조합)에서 상근자로 입사하면서 시작하게 됐다. 중간에 잠깐 그만두고 돈 벌려다 실패하고 다시 손해보험노조 상근자로 갔다가 지금까지 왔다. 여기로 오게된 것은 손해보험노조가 대산별노조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용승계됐기 때문이다.

    장여진: 당초 2002년부터 노조 상근자를 일하게 된 것인가?

    정현철: 대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처음엔 일반직장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졸업 한 달 전인가부터 학교선배가 당시 유행하던 벤처기업을 소개시켜줘서 다녔다. 첫 월급이 당시 100만원인가 120만원인가 했다. 그런데 재미가 없어서 3개월만에 때려쳤다.

    그리고 뭘 해먹고 살까 고민하다가 한참 높은 운동 선배한테 찾아가 계속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양반은 어떤 식으로 하고 싶냐고 해서 노조 상근자 같은 거 하고 싶다고 하니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하더라. 왜냐고 물어보니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현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현장은 어떻게 가야하니 물으니 평택의 한 자동차 노동조합을 추천해줬다. 그때는 노동조합 추천 T/O가 있었는데 비정규직 직군에 T/O가 생길 것 같다고 기다려보라 했는데 당시 그 노조가 기념품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2-3개월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래서 다시 선배한테 찾아가서 어떻게든 취직시켜 달라고 땡깡을 부리니 큰 노동조합가서 따까리 하기 보다는 현장 조합원들과 밀접한 노조에 가서 1년 정도 있는 걸로 생각하고 배워보라고 해서 서울경인지역사무서비스노동조합(서사노)에 가게 됐다.

    당시 상근비가 70만원이었는데 그건 감수했다. 그렇게 2007년 3월까지 근무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일반 회사에 취직했는데 실패했다. 전화로 교재를 파는 텔레마케터였다. 평소 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다보니 ‘이바구’로 물건 파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사기에 가까운 일이라 양심에 찔렸다. 결국 그것도 2개월 일하다 때려쳤다. 그러다 마침 서사노 활동으로 알게된 분들이 손해보험노동조합 활동을 제안하길래 그곳에서 활동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직업 설명할 때 나오는 두 가지 반응
    “데모하는 사람이구나” or “엄청 수고하시네요”

    장여진: 일반적으로 민주노총이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노동조합 상근자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레디앙>독자들도 잘 모를 것 같다. 보통 자기 직업을 소개할 때 어떻게 설명하는지?

    정현철: 사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뭐하세요’라고 물으면 ‘무슨 회사 다녀요’라고 말하는데 나는 설명을 해야 한다.

    내가 노조 상근자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못 알아 듣는다. 그러면 나는 다이렉트로 민주노총은 아냐고 묻는다. 대부분 안다고 한다. 그럼 그 때 민주노총에서 일한다고 하면 대충 이해한다. 물론 그 이해가 ‘데모하는 사람이구나’, 또는 ‘엄청 수고한다’는 반응 두 가지로 갈린다.

    특히 격하게 ‘데모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분에게 노조의 기능에 대해 설명해주고, ‘수고한다’고 말해주는 사람한테는 추가 설명없이 명함 주면 알아서 이해한다.

    정현철씨

    정현철씨

    내 직책의 풀네임은 ‘조직쟁의부국장’인데, 이게 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는 노조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상담도 하고, 설립도 도와주고 단체교섭도 진행하고, 나중에 회사와 의견이 틀어지면 단체행동, 쉽게 말해 파업을 하게되었을 때 그런 것까지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하면 대략 알아듣는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해도 결국 ‘고생 많으시네요’라고 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모르겠지만 그냥 고생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여진: 수입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정현철: 230만원 정도.

    장여진: 생각보다 많이 받는다? <레디앙>은 ***만원인데….

    정현철: 호봉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사무금융연맹에서 손해보험노조 경력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장여진: 노조 상근자가 정작 자신의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

    정현철: 서사노때는 간혹 체불이 있었지만 현재 다 정산됐고 지금은 체불된 적은 없다. 현재 다른 노조 활동가에 비하면 적게 받는 축은 아니다.

    장여진: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돌아가나?

    정현철: 9시 출근 5시30분 퇴근이다. 보통 기본 조직사업 관련해서 일한다. 구체적으로는 조직상담, 노조 설립 시 설립총회에 대한 지원, 일상적으로 터지는 노사쟁의 관련해서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귀족노조’, ‘철밥통 노조’라는 비판에 “정규직 노조의 특권화가 문제”

    장여진: 일반 국민 여론은 민주노총이나 기타 산별, 기업별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귀족노조’, ‘철밥통 노조’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현철: 일단 노동자들이 임금을 맣이 받는 것을 욕할 순 없는 일이다. 많이 받을 수 있지. 다만 그게 특권화됐다고 판단해서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정규직 노조가 나름 자신들의 투쟁으로 따낸 파격적인 대우들이 노조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혜나 특권으로 보일 수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최근 진주의료원 폐업과 관련해 홍준표 도지사가 ‘노조를 위한 병원’이라며 단체협약 내용을 밝혔는데, 그건 노조가 투쟁으로 따낸 것이다. 사용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내준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노조가 투쟁으로 따낸 성과물이라는 것.

    그런데 그걸 노조 바깥 사람들한테는 특권이나 특혜로 보일 수 있다. 특히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조직된 노동자들보다 더욱 늘어나는 현 추세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는 경향이 더 크다.

    정규직 노조가 자신들이 기존에 누리던 것의 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것만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데서 특권으로 보일 수 있다. <밥꽃양>같은 영화처럼 식당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담보로 정규직 조합원을 살린 그런 사례들이 바로 이 특권 문제의 핵심이다.

    장여진: 사무금융연맹 내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나?

    정현철: 금융권 내에서 IT부분 분사를 많이한다. 콜센터도 분사한다든지 외주화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조는 이를 막아내거나 끝까지 싸웠던 적은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뺏기고 있다.

    장여진: 누구한테 무엇을 뺏긴다는 말?

    정현철: 자본한테.

    가장 보람찰 때는 ‘투쟁 승리할 때’… 가장 힘든 기억은 ‘뒷통수’

    장여진: 노조활동가로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나 보람찬 일이 있다면?

    정현철: 당연히 투쟁이 승리했을 때이다. (웃음) 가장 최근에는 내가 상담해서 설립까지 하고 단협에도 끝까지 참여해 체결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참여해 완성한 것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역설적으로는 과거 서사노에서 활동했을 때가 제일 좋았다. 그때는 열정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서사노에서 처음 활동할 때가 20대 중후반이었을땐데, 그때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그 월급 받으라고 하면 못 돌아가가겠지만 그 때 그 열정을 다시 회복했으면 좋겠다.

    장여진: 지금 열정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정현철: 열정이 사라졌다기 보다는 노조라는 조직 형태가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냉정한 인식이 생겨났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본의 아니게 노조에서만 10년을 활동하다보니 굉장히 단조롭다. 경험이 많이 쌓이는 것은 좋은 거긴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길 때면 그 전 경험에 의존해 단순하게 대응하게 된다.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절에는 회사가 조합원에게 노조 탈퇴하라고 협박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도 엄청 열받아서 즉각 쫓아가고 삿대질하고 댓거리하고 했었는데 그런 일만 10년째 겪다보니 대응 매뉴얼이 생긴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을때면 노조 간부에게 ‘일단 사측과의 대화를 녹음하시고, 녹음하시기 힘들면 꼬박꼬박 상황을 면밀히 작성해 축적해두고, 회사가 조합원들을 1:1로 불러 탈퇴 종용 면담을 진행한다면 위원장 명의로 조합원에게 공식 입장을 밝혀라’ 이렇게 건조하게 설명해준다. 경험이 쌓이는 만큼 매너리즘에 빠진 걸 수도 있고.

    장여진: 노조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분이 좋지 않았을 때는?

    정현철: 내가 상근자라고 느낄 때이다. 내가 활동가가 아니라 단순히 업무 처리해주는 상근자로 느낄 때. 그럴 때는 이걸 계속 하는게 맞나 싶기도 하다. 그냥 회의자료 만들고, 서기하고, 회의결과 결재 받고, 팩스와 메일로 보내주고.

    이것 뿐만 아니라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참여했는데 최종 결정에서는 배제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럴 때 자괴감을 느낀다.

    장여진: 노조 결성하겠다고 해서 지원해줬는데 결국 사측 요구안 받고 한국노총으로 옮기거나 노조 탈퇴해버리는 그런 경우도 종종 있지 않나.

    정현철: 서사노에서 일했을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사무직군 사업장이었는데 노조 만들고 싶다 해서 결국 노조도 만들고 교섭도 진행했었다.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잘 버티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부장이 연락이 안됐다. 부지부장도 연락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느낌이 이상해 사업장에 찾아가 사무실로 전화하니 받길래, 밑에 있다고 말했더니 당황해하면서 그 옆 커피숍으로 가있으라는데 그 때 직감했다. 아니다 다를까 회사가 그간 교섭 요구 내용 다 들어줄테니 노조를 없애라고 해서 그 안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미안했던지 다음 날 자신들이 회사와 그렇게 타결하면서 받은 성과급을 각출해서 모았다며 노조발전기금으로 건네주었다. 안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받을 걸 그랬다. (웃음)

    그보다 더 큰 사업장도 회사가 매각됐는데, 고용승계 조건으로 회사가 노조 탈퇴를 요구했다. 그때는 그냥 조합 총회 안건이니 총회를 통해 결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탈퇴했다. 그리고 당시 노조일에 열심히 활동하던 부지부장이 울면서 전화하더라. 미안하다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장여진: 실제로 내가 아는 모 노조 위원장이 그렇게 뒷통수 크게 맞고 한동안 울고 힘들어해 가슴 아팠던 적이 있다. 거기는 회사가 전원 정규직화 해줄테니 민주노총 탈퇴하고 한국노총 상급단체를 옮기라고 요구했는데, 조합원 총회에서 근소한 차이로 민주노총을 탈퇴하게됐다. 그런 일 한 번 겪고 나면 참 힘들 것 같다.

    정현철: 과거에는 정말 상처 많이 받고 아팠다. 몇날 며칠을 술만 쳐먹고 일도 안 하고 무기력해졌는데 이제는 그것도 많이 겪다보니 그런가보다 한다.

    그런데 그 경험들로 하여금 내가 상처 받지 않을 방법과 상처에 아파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동시에,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열정이 죽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것 같다.

    지금은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방어를 치게 된다. 옛날에는 상담이 오면 매일 내가 먼저 전화하고 그랬다. 사측에 이렇게 이야기는 해봤냐, 저렇게 한 번 해봐라, 잘 모르는 거 있음 언제든지 전화해라 등등 정말 열과 성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없다.

    결국 본인들이 노력해서 만들어야지,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거다. 옛날에는 되지도 않게 꾸겨 만들기도 했지만 그렇게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충분히 상담해주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리고 연락을 기다리게 됐다. 그런데 이것이 노련해진 것인지 열정이 사라그라진 것인지, 스스로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활동가에서 상근자가 된 걸지도 모른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민주노총은 필요”

    장여진: 왜 그렇게 신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나? 그냥 월급 잘 받고 들어오는 일만 잘 하면 될텐데 말이다.

    정현철: 일종의 노동운동이기 때문이다. 자본가에 비해 상대적인 약자인 노동자가 대항해서 자기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서 일정 정도 노조가 여전히 유효하니깐. 현재 법적으로 회사와 대화할 공식창구는 노조 말고는 없다. 그러니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겠냐.

    민주노총이 난파선마냥 찌그러져있어도 여전히 문들 두드리는 사람이 있는 거고, 또 여전히 민주노총 탈퇴하고 한국노총으로 가면 어떤 요구든 다 들어주겠다는 자본가도 있는거다.

    몰락하는 조직(민주노총)을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붙잡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 동아줄(민주노총)을 썩었다고 비판면서도 그 사람들에게 딴 곳에 가라고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덜 관료적, 개량적이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곳이니깐. 그리고 난 그 원칙을 지키면서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얻을 수 있도록 옆에서 서포트하는 것이 내 일이다.

    장여진: 어떻게보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직업과 일치하는 것 같다.

    정현철: 시니컬하게 이야기하면 이제 다른 데 취업 못하는 것도 있고. (웃음) 딴 일 하려 했으면 옛날에 냉정한 선택을 했어야 했지. 10년차가 할 이야긴 아닌 것 같지만 배운 게 이거라 딴 걸 할 엄두가 없어서 붙어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깐 좀 슬프네.

    한국 노조 조직률 낮은 이유는 비정규직 제도 때문

    장여진: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굉장히 낮은 편인데 이에 대한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정현철: 기본적으로 노조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역설적으로 소위 말하는 정규직, 대공장은 대부분 조직되었다는 점, 그 때문에 ‘다 조직됐다’는 인식이 크다.

    나머지 800만, 혹자는 1000만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민주노총의 조직화 계획이 사실상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미 미조직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위원회를 설치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효과를 보고 있지 않다. 현대자동차 등 비정규조직들이 투쟁을 통해 많이 조직화된 것 같지만 사실 그 숫자는 엄청나게 소수이다.

    전체 노동자 중에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넘어선지 오래됐는데도 그를 위한 게획이 별로 없는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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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집으로 이동해 밤 늦도록 기자와 논쟁 중인 정현철씨”

    장여진: 노조가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인데 비정규직 스스로가 나서지 않는 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건가

    정현철: 기본적으로 비정규직은 회사에 잘못 보이면 한방에 훅 가는 시스템이다. 해고도 아니고 계약 해지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비정규직들이 계속 사회 하층으로 밀려나가다보니 당장 먹고 사는 문제 말고는 노조 설립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조를 위해 여러 사업을 쏟아붓고 있지만 당사자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조직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대책 자체도 수정이 필요한 것 같다.

    장여진: 결국 역설적으로 비정규직과 관련한 법률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대정부, 대국회 투쟁을 벌이는 계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10년전에는 몰래갔던 민주당행, 이제는 대놓고 가 씁쓸
    “이게 다 진보정당 때문이야”

    정현철: 비정규직은 현재 포화상태이며 불만이 언제 어떻게 터져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서구 유럽의 경우 인종적 문제도 있지만 하층 계급의 폭동이 발생하는 건 복지나 이런 것들에서 소외되고 계속 하층으로 밀려나다가 인종문제로 터진 것이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 오히려 계층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고 이를 방치할 경우 폭동 등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걸 보수정당, 보수경제학자마저도 인식하고 있는 거다. 어떻게 희석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새누리당도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내는 거고 이는 당연한 추세일 뿐이지 민주노총이 그런 투쟁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력을 두고 민주노총이 민주당을 충분히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그건 결국 한국노총에 다 뺏기고 있지 않나. 민주당도 민주노총의 이야기를 듣는 척이나 할 뿐, 결국 그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수권 기반을 만들기 위한 정략적인 목적일 뿐이다.

    이럴 때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 등을 공론화하고 싶다면 바깥에서 시끌시끌하게 공론화시켜, 대중들에게 더욱 필요한 법제도라는 걸 인식하게 하는 박자를 맞쳐줘야 하는데 민주노총의 몇 년간 행보는 의원 따라 다니며 법안 만들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정도 뿐이다. 이런 식으로 결국 몇 년째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 거리의 투쟁을 결국 못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이게 다 진보정당 때문이다. 쓸데없이 국회의원 만들어서 다들 의원만 쳐다보고 자기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장여진: 진보정당의 의회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건가?

    정현철: 그렇다. 투쟁사업장이 생기면 그래도 10년 전에는 때려박는 투쟁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국회의원부터 먼저 찾아간다. 사회적 문제가 있는 사업장도 아닌데 꼭 국회의원 찾아가 줄 대고 멘트 하나 얻고, 청문회에 매달리고. 이런 것이 어떤 지점에서는 효과적이긴 하지만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방식과 거리가 먼 것 아닌가?

    장여진: 노조의 기본적 방식이 있다 하더라도 대정부, 대국회 사업도 벌일 수 있는 거 아닌가?

    정현철: 너무 그 쪽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옛날에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 이야기 들어주던 국회의원 하나 없으니까 우리 스스로가 법을 만들자고 하면서 국회의원 10명 만들었고 대국회 투쟁이니 뭐니 했다. 그런데 뭐가 남았다. 이 전략이 양날개로 활용될 수 있긴 하지만 국회의원 10명 만들고나서 거리투쟁을 구시대적 유물 취급 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예전에는 국회의원 없어도 여전히 거리투쟁이 유효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사라지고 국회의원 10명으로 입법화도 안되니 보수정당을 끌어들이고, 그러다보니 보수양당과의 합종연행하면서 노동자의식도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민주당을 우리 우군처럼 생각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데 10년전에는 완전 택도 없는 소리였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때 노동계 인사들 중 우파쪽 사람이 노무현 캠프로 들어갔는데, 도망치듯 갔다. 지금처럼 대놓고 가지 못했다. 본인들이 떳떳하더라도 그걸 대놓고 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10년이 지나니 이제는 아예 ‘같이 갈래?’라고 권유까지 하면서 가고 있다. 단적으로 민주노총이 우경화되고 노동자계급 의식 또한 더욱 우경화됐다는 반증인 것 같다.

    패러다임의 전환,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 필요해
    “모래를 뜰 때 손에 물을 묻히건, 바가지로 뜨건 해야”

    장여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아직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정현철: 노동조합이 크든 작든 상대적으로 전투적이든 어용이라 욕을 먹든, 중요한 건 문제 처리에 있어 창의성이 없다는 것이다. 노조의 전형적인 틀거리에서만 해결하려 한다.

    예들 들어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비슷할 거다. 기존에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방식으로 해결한다. 반면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의 경우 노조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방식이 창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상담해서 노조 가입하고, 교육 시키고, 요구안 만들어서 교섭 요구하고, 부당노동행위 자료 모아서 압박하고, 교섭 안되면 노동쟁의조정신청하고…이게 일반적인 스토리지만 이는 조직된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된다.

    그런데 한 개인이 상담을 요청하면 이걸 노조에서 해결할 수 없으니 아는 노무사를 소개시켜주게 된다. 노조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그 사람이 노조를 만들 생각은 없고 자기 개인의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할 때는 (노조의 )개입 여지가 거의 없다. 옛날 서사노 때는 그런 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는 게 특기였지만 현재 있는 곳은 산별연맹이라 상황이 다르다.

    장여진: 만약 민주노총이 개인의 문제를 상담, 해결만 해주고 조직은 안하면 일반 노무법인의 기능과 다를 바 없는 것 같긴 하다.

    정현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비정규직이 점점 더 파편화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민주노총 태생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먼 옛날 노조의 태초인 길드(장인조합)도 원래는 자기 이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곳이고, 구체제와 가장 대립되는 곳이다 보니 사회변혁 등의 임무를 얻게 된 거였다.

    그런 지점에서 노조의 역할과 의미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인데, 한국의 경우 군사독재 시대가 끝나고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경쟁이 극대화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리되기 시작했지만, 기존 정규직 노조가 개별화, 파편화된 사람들을 모아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계속 실패한다면 전체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손으로 뜰 때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다 빠져나가지 않는가. 반면 진흙은 손으로 뜨면 덩어리 그대로 딱 떠진다. 비정규직은 모래알이다. 그러니 모래를 뜰 때 손에 물을 묻히든지 바가지로 뜨던지 해야 하는데 진흙 뜨던 대로 하면 되겠냐.

    장여진: 그래서 구상해본 비정규직 조직화 방법은 있는 것인가?

    정현철: 그런 게 없어서 답답한거지. (웃음)

    “새로운 진보정당 만들려면 자기 먼저 혁신해야”

    장여진: 민주노총 내 정파갈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현철: 진보정당운동이 일정하게 성과를 거뒀다가 폭삭 망했다는 게 드러난 지점이 정파 문제다. 예전에는 각각의 정파로 존재했는데 민주노동당이 분당하고 또 거기서 분당하면서 정파 포지션이 특정 정당들과 맺어졌다. 그런데 지금 정당과 정파의 관계가 다 망해버리니 정파도 회복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히 말하자면 지금 있는 정파들은 해소되야 하는 게 맞다.

    장여진: 해소되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인가?

    정현철: 해소된다고 다 해결되진 않겠지. 하지만 해소되어야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다 해소하는 게 깔끔하다는 것이다.

    장여진: 최근 노동정치 연석회의처럼 비통합진보당으로 제정파가 규합되는 흐름도 있는데 해소 말고 서로 다시 뭉치는 건 어떻게 보는지?

    정현철: 구차한 생명연장은 아닐런지. 누군가 국공합작이라 표현하던데 그 정도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노동운동 관료들의 또 하나의 이합집산은 아닌지 시니컬하게 지켜보고 있다.

    장여진: 모든 정파를 다 해소하자, 다시 모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자라는 인식 차이 자체가 대중적 진보정당의 필요성이 있고 없고의 차이인가?

    정현철: 나는 제대로 된 진보적 대중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건 아니지만. 하지만 사실상 대중적 진보정당이 있긴 했나 싶기도 하고.

    장여진: 내가 할 건 아니지만 진보적 대중정당은 필요하다는 말은 무슨 심보인지?

    정현철: 그거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정당 노선이 아니면 제대로 된 사민주의 정당이라도 만들어 자본주의 견제 역할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장여진: 결국 계급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가?

    정현철: 계급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에게도 난 비판적이다. 계급정당에 대한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전투적 조합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 진보정당 또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 수준도 안 되고 오히려 자기 분열하고 있고. 뭘 하든 각자 선명하고 더 명확하게 해야 한다. 계급정당 할 꺼면 그에 대한 건설 경로와 명확한 상이 있어야 하고, 대중정당도 철저하게 이론과 주의에 따라 활동해야 하는데 지금 그 어디도 그걸 표방하는 곳이 없다.

    장여진: 결국 종합하자면 ‘다 닥쳐라’ 이건가?

    정현철: 한 마디로 불신이 있다는 거다. 노동정치 연석회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낸 글을 보면 자기 반성이 없다.

    장여진: 자기 반성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현철: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에 발 걸쳐놓고 진보정당 분열되는 과정에 어떻게든 다 개입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이쪽저쪽 다 거리둔다고 자기들 과오만 수면 아래로 쓱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장여진: 그럼 어떻게 해야 자기반성인 것인가?

    정현철: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운동을 안 했으면 한다. 그래서 예전에 한 자리 했던 사람들끼리 다시 뭘 할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새로운 운동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가 봐도 상층부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새로운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인데, 아래로부터 시작하려면 일단 본인들부터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한 자리 꿰차는 사람 많다. 지금도 노조 T/O 받아서 노조 사무실 한켠에 자리 잡은 사람도 있는데 그게 반성이나 아래로부터의 혁신일 수 없는 거다.

    올드한 이미지 민주노총, 등산복 패션부터 탈피 좀…!

    장여진: 민주노총이 고령화 됐다. 본인부터 사무금융연맹에서 막내 축이지만 내일 모레면 마흔이다. 새로운 피가 순환되지 않는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보아라. 민주노총에서 흔하지 않은 나름 패셔니스타이다"(장여진 기자의 평가)

    “보아라. 민주노총에서 흔하지 않은 나름 패셔니스타이다”(장여진 기자의 평가)

    정현철: 매력적이지 않으니깐. 내가 2002년 노조 상근한다고 했을 때 후배들이 ‘우와’ 그랬다. 그때는 노조 상근한다고 하면 후배들한테 동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와’ 소리는 나오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으니깐 그런 거 아니겠나.

    어디서 노조 상근자 구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찾아달라고 하는데 막상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손해보험노조에 있을 때는 여성부장인가를 뽑는데 지원자는 정말 많았지만 대부분 노동운동과 관련없는 취업준비생이나 실직자였다.

    장여진: 그런 사람들은 왜 안 뽑는가? 꼭 학생운동에 있어야 노조 상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현철: 어떻게 보면 폐쇄적인 것일 수 있다. 운동권 출신이 아닌 사람을 뽑으면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또 이 직종 자체가 기본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보니 그렇다. 그렇다고 채용 공고를 낼 때 ‘사회의식이 있는 자’ 이런 걸 명시하기 때문에 지원자들도 안 보고 지원했을 리도 없고 면접 등을 통해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본다. 나 또한 꼭 학생운동, 노동운동한 사람들을 채용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장여진: 이른바 민주노총 패션이라는 게 있다. 등산화에 등산복. 등산복만 입고 있으면 민주노총 사람 같다.

    정현철: 언제부터 등산복이 유니폼이 됐는지 모르겠다. 난 등산복 자체가 없어서 안 입는데, 아무래도 편의성과 활동성 때문에 입는 것 같다. 하지만 좀 화사하게 입고 다녔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여진: 패션도 그렇지만 민주노총 이미지 자체가 너무 관성적이고 구태스러운 느낌도 있는데.

    정현철: 젊은 친구들이 만든 조직이나 여성주의 단체, 구사회당 일부 조직 같은 곳이 그야말로 깜찍 발랄하고, 센세이션한 기획을 많이 만든다. 반면 민주노총은 과거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데 그렇다고 과거 방식이 구태스러움을 떠나 필요한 부분도 있는 거니 이 두 개가 좀 믹스됐으면 좋겠다. 민주노총이 구태스럽고 올드하고 과거를 답습하는 건 있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의식적으로 재밌게 이런 저런 걸 많이 시도하지만 거기서 끝인 경우도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묵직한 생기발랄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장여진: 노동운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현철: 노조 상근자의 매력이 있다면 노동이라는 문제가 모든 사회문제가 응축되서 나타나는 핵심지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회 변화에서 한 역할을 하고 싶다면 최전선에서 해볼만한 활동인 것 같다.

    하지만 돈 버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물욕이 있는 사람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웃음). 또한 상근자의 한계도 명확하다. 다양한 투쟁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개입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힐 때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싫다면 자기 스스로 주체가 되는 노동운동을 하면 된다. 현장에 들어가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으로 직장에 취업해서 입 바른 소리 할 수도 있는 거고, 비슷한 사람 모아서 노조도 만들 수 있는 거다. 진보정당에 관심이 있으면 당원으로서 활동해도 되는 거고. 할 수 있는 수단은 많다.

    홀어머니, 조카 넷, 비어있는 잔고…그래도 잘 버텼다

    장여진: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현철: 매해 1월 1일이 되면 개인 블로그에 짧은 글을 남기는데 올해는 이런 글을 남겼다.

    어쨌든 잘 버텼다. 지난 10년간 잘 버텼다. 나에게 남은 것이 홀어머니, 조카 셋, 아니 이제 넷. 비어있는 잔고. 이것 뿐이지만 어쨌든 잘 버텼고, 앞으로도 잘 버틸 것이다’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의 운동이 하락하고 있고 겉으로 보기엔 시대가 점점 역행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계속 무언가 파열구를 내고 빛을 내는 일은 누군가는 계속해야 하는데, 그런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기는 것 보다 지는게 더 많았지만 어지간하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버텼고, 잘 버틸 것이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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