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회사보다 먼저 생겨난 협동조합
    [책소개]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스테파노 자마니, 베라 자마니/ 북돋움)
        2013년 04월 13일 1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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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은 UN이 지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였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협동조합은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일깨워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돼 5명만 모이면 손쉽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 곳곳에 협동조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며, 많은 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이고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를 향후 10년 안에 8,000개의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을 선포하기도 했다.

    주식회사라는 하나의 기업 형태가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열기가 시행착오로 이어지고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를 더 많이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다간 자칫 협동조합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겨날까 걱정해서다.

    협동조합

    이런 시점에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의 진정한 강점과 의미, 역사적 유래, 협동조합 강국의 다양한 모델을 소개함으로써 협동조합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래야 지속 가능한 협동조합을 일굴 수 있고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2013년 개정판의 부록 <초심자를 위한 협동조합 이해하기>에는 2012년 11월 저자가 정부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진행한 특별 강연과 국내 협동조합 관계자 및 청중들과 나눈 질의응답을 Q&A 형식으로 엮은 ‘오래 흥하는 협동조합의 조건’을 비롯해 ‘나에게 맞는 협동조합 유형’, ‘협동조합기본법 해설’ 등을 담아,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단 한 권의 협동조합 교과서로 삼을 만하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보다 먼저 생겨난, 기업의 ‘맏형’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협동조합은 어찌 보면 두 얼굴의 야누스이다.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개의 차원이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경제적 차원의 기업이다. 동시에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다른 경제 주체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의 조직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협동조합은 설명하기도 다루기도 매우 어렵다. 이를테면 통상적인 경제학으로는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 경제 주체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통상적인 경제학의 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해서, 협동조합이라는 대안이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의 대안이라고 오늘날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협동조합은 오히려 주식회사보다 역사가 길다.

    협동조합 기업은 산업혁명 시기에 생겨났지만, 서로 연대하고 가난을 배려하는 문화는 그 수 세기 전부터 있었다. 중세 사회에서는 상인과 장인 같은 생산 계층이 모여 각자의 이해를 협력적 방식으로 관리하는 길드와 상인회의소 조직을 만들었다. 생산 계급에 속하지 못하거나 일시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병원, 보육원, 공공대부기관, 빈민보호소 같은 제도도 세웠다.

    이런 조직들은 시장의 관계망 속에 운영되면서도, 어떤 구성원도 배제하지 않고 도시의 일상생활과 조화를 이루었다. 상장 회사 같은 ‘자본주의’ 기업 형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18세기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서였다.

    썬키스트 등 세계적 기업도 협동조합 … FC 바르셀로나, AP통신도
    핀란드, 스웨덴 등 협동조합 활발한 나라는 경제와 복지도 뛰어나

    협동조합은 오늘날에도 활발히 기업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6개국의 230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총 10억 명에 이른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캐나다로 이들 국가에서는 국민 절반이 조합원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일본이 꼽히고, 놀랍게도 미국 역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조합원이다. 모든 경제 부문으로 협동조합이 진출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협동조합이 왕성한 부문은 농업 및 식품 가공, 소매업, 그리고 은행 및 보험 쪽이다.

    뉴질랜드 경제를 끌어가는 최대 기업, 폰테라(낙농)와 제스프리(키위)도 협동조합이다. 리오넬 메시의 FC 바르셀로나, 미국 언론의 대표 주자 AP통신, 캘리포니아 오렌지의 대명사 썬키스트, 프랑스 최대 은행 크레디 아그리콜, 이런 세계적 기업들도 협동조합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협동조합 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는 나라가 뛰어난 경제 발전과 복지 수준을 동시에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원칙,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기업에도 적용돼야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조직 형태로 폄하되어왔다. 사실 ‘효율성’이라는 개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어떻게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라는 두 가지 기업 형태를 효율성 측면에서 비교하는 것이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관점은 모든 인간을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바라보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다른 가치와 신념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나아가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오히려 저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협동조합이 가진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사회의 민주화이다. 생산 현장에서의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의 민주화를 강화하고 지지하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

    저자는 ‘정부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화된다면, 기업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는 똑같이 정당화된다’라는 로버트 달(Robert Dahl)의 말을 소개한다. 민주적 원칙이 오직 정치에서만 적용되는 한, 그 사회는 완전히 민주적일 수가 없다. 좋은 사회라면, 시민이자 유권자로서는 민주적이고,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는 비민주적인 그렇게 당황스러운 분열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람 간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

    이 책은 협동조합의 원리가 무엇이고, 세계의 협동조합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협동조합이 번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 간의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해 성장해온 기업 형태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정 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풍부하게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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