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유대의 배꼽,
대한문에서 아름다운 캠핑을!
[기고] 쌍용차 분향소가 아픈 건 우리 양심의 성장통 때문
    2013년 04월 11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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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군의 검은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아직 눈꺼풀의 무게가 물먹은 솜처럼 고단한 몸을 한껏 짓누르고 있었다. 새벽버스의 요란한 운행소리도 할증 풀린 택시의 질주음도 쏟아지는 잠만은 막지 못했다.

갑작스런 무리들의 움직임을 눈치 챈 순간 모든 상황은 끝나있었다. 제대로 손 한번 써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잘 짜진 각본대로 움직이는‘연극’처럼 그 날 새벽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 4월 4일 새벽 5시 30분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가 침탈당했다. 공무집행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게도 야음을 틈탄 작전에 쌍용차 해고자들은 저항다운 저항조차 할 수 없이 당하고 끌려갔다.

애써 만들고 가꿔온 대한문 분향소가 또 다시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의 전광석화 같은 작전에 주저앉고 파괴됐다.

잠자던 세 명의 노동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철거과정에서 두 팔이 뒤로 꺾이고 사지는 들려 새벽이슬이 그대로인 찬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들은 개인 짐은 물론 신발까지 철거해갔다. 새벽 찬 바닥에 맨발로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발가락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분향소와 함께 철거 당한 처지의 노동자(사진=이창근)

분향소와 함께 철거 당한 처지의 노동자(사진=이창근)

대한문 분향소 철거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3월 8일엔 이른바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으로 강제 철거에 나섰다. 해당 관청인 중구청은 가로 환경과를 중심으로 도시 환경을 위해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남대문 경찰서는 울고 싶던 차에 뺨맞은 격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중구청의 행정대집행에 부역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법적 절차는 물론 실체적 요건 또한 불법이며 부당함을 주장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3월 3일 전과 27범인 방화범에 의해 1년 가까이 유지되던 분향소가 전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따라서 중구청이 그동안 분향소 철거 계고를 한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행정대집행을 위해선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대집행은 장소나 주소가 아닌 대물 즉 물건에 대한 집행을 말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중구청은 이를 무시했다. 불법적인 행정력의 행사에 해당한다. 이런 전력이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중구청은 이번 4월 4일 철거는 도로법을 들먹이며 ‘행정대집행’이 불가능 하다고 판단될 때 할 수 있는 ‘즉시 철거’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즉시 철거 대상에 해당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왜냐면 즉시 철거 또한 불법점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인데, 분향소는 집회 시위 물품 목록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법적인 문제가 충돌하고 부딪히는 과정이며 그리고 중구청과 대화는 물론 중구청장과의 면담을 실무적으로 조율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강제 철거를 통해 우리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닌 이 사회의 관용과 옹졸함 그리고 연대와 유대를 생각하게 된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22번째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과 점차 미궁으로 빠져지는 쌍용차 진실규명을 위해 지난해 4월 5일 이 곳 대한문에 올라왔다. 맨바닥에 영정 사진을 놓고 몇 날 며칠 싸우고 연행되는 고초를 겪은 다음에야 분향소 한 동을 설치할 수 있었다.

그 뒤 이어지는 수많은 투쟁을 통해 쌍용차 국회 청문회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대한문을 중심으로 연대는 확장됐고, 유대는 강화됐다. 그러자 전국으로 퍼져있는 아픈 고름들이 가장 낮고 깊은 고통의 우물인 이곳 대한문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함께 살자 농성촌이 만들어진 계기도 이 때문이다.

대한문은 저항과 투쟁 나아가 연대의 상징이 돼버렸고 이제 더 이상 이곳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만의 투쟁의 공간이나 분향소가 아니게 되었다.

철거당일 수백의 사람들이 함께 한 이유 또한 이곳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만의 공간이 아님을 증명해 줬다. 또한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임시 분향소가 설치됐었고 수천 수만의 노동자와 시민들의 이곳을 거쳐 갔고 함께 했다. 웃고 웃으며 부러진 마음에 부목을 대고, 패인 고름을 짜낸 곳에 마음의 연고를 바르는 곳이 대한문 분향소인 것이다.

저들이 이 곳 대한문 분향소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불타 버린 분향소 앞에서 뜨개질 하던 사람들, 형체를 알 수 없던 의자를 다시 꾸미고 만들던 손놀림과 꽃을 심고 땅과 하늘로 연결되는 마음의 길을 열던 솟대들. 이 모든 것들이 저들에겐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철거한 분향소 자리에 중구청이 경찰병력이나 콘테이너 박스가 아닌 화단을 놓은 뻔뻔함이 실은 우리들의 방식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지금껏 대한문에서 쌍용차 진실규명을 위한 다양한 방법과 다채로운 몸놀림을 저들이 흉내 낼 순 있어도 결코 같을 순 없다. 꽃을 도구로 삼는 이들과 꽃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의 차이처럼.

우리는 다시 이곳을 연대와 유대가 열리고 확장되는 공간으로 만들고 가꾸어 갈 것이다. 분향소 철거 과정에서 56명이 연행되고 지부장을 구속하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다시 이곳이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숙과 단식 그리고 철탑에서의 투쟁이 방향이라면 대한문을 가꾸고 새롭게 단장하는 것은 힘을 쓸 수 있는 작용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작용점을 강화해 제대로 된 힘을 쓰기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중구청이 불법으로 조성한 대한문 무덤동산의 높이는 1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높이를 우리는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네댓 평도 되지 않는 공간이 노동자들에겐 허용되지 않는 현실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이 오를 수 있는 높이와 공간이 그 정도는 아닐까.

쌍용차 분향소를 대신한 흙으로 쌓인 무덤동산(사진=이창근)

쌍용차 분향소를 대신한 흙으로 쌓인 무덤동산(사진=이창근)

쌍용차 국정조사는 물론 팽창하는 정리해고와 부풀어나는 비정규직의 삶의 개선이 실은 딱 그 정도 높이에 공간에 가둬지고 막혀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문 무덤동산은 새로운 투쟁의 베이스캠프가 돼야 한다. 그곳에서 다시 연대와 유대를 시작해야 한다. 아직 우리들에겐 올라야 할 산의 높이가 무척이나 높지 않은가.

저들이 대한문 분향소에 대한 탄압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는 이곳이 연대와 유대를 낳는 배꼽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탯줄을 끊고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히 살아가는 것에 멈추지 않고 꾸준히 늘려가야 한다.

꽃 좋고 바람 좋은 봄날. 연대와 유대의 배꼽인 대한문으로 캠핑을 가면 어떤가. 가벼운 차림으로 도시락을 먹으며 연인들과 아이들과 대한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건 어떤가. 연행과 쪽잠에 지친 이들의 손을 한 번 잡는 건 어떤가. 촛불 문화제와 성직자들과 미사와 법회 그리고 목회에 함께 하는 건 또 어떤가.

대한문 분향소가 아프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의 우울함이 아니라 이곳에 발 딛게 됨으로서 새롭게 태어나고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꿈틀거리는 양심의 건강한 성장통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이고, 자본과 정권이 노동자를 제 손아귀에서 쥐락펴락하는 물건이 아님을 똑똑히 증명해 나갈 것이다.

4월 13일부터 1박 2일. 대한문으로의 캠핑! 지금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대한문이 아닐까.

대한문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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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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