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낡은 저작권을 개혁할 때
    [정보공유와 지적재산권]이용자 통제와 감시 강화의 위험
        2013년 04월 09일 09: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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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미국와 유럽에서 있었던 저작권 반대 시위는 내게 큰 충격과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이런 게 가능하구나. 저작권에 대한 그들과 우리 사회의 인식의 격차는 무척 커보였다.

    온라인 저작권에 반발한 전 세계적 항의 시위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었지만, 지난 해 1월 18일, 수천 개의 인터넷 사이트가 온라인 파업에 들어갔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영문 사이트(관련링크)는 서비스를 중지하고 소위 ‘블랙아웃(black-out)’에 돌입하였으며, 수많은 사이트들이 로고나 헤더에 ‘STOP CENSORSHIP’이라는 검은 바를 달았다.

    심지어 구글마저 검색창 아래에 ‘웹을 검열하지 말라고 의회에 말하세요!(Tell Congress: Please don’t censor the web!)’라는 문구를 달고 항의에 동참했다. 일명 ’미국 검열의 날(American Censorship day)’.

    이 온라인 시위는 미국 하원과 상원에 각각 발의되어 있는 온라인해적행위방지법(SOPA)과 지적재산권보호법(PIPA)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이 항의 행동 관련된 링크)

    Stop_Censorship 로고

    Stop_Censorship 로고

    이 법안은 미국 법무부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이트도 차단할 수 있게 했으며, 결제 서비스나 광고 서비스를 거부하도록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 업계와 인권단체, 그리고 이용자들은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터넷의 혁신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항의 시위의 결과, 결국 이 법안의 표결은 연기되었다.

    온라인 저작권 강화에 대한 항의 시위는 며칠 후 유럽으로 옮겨갔다. 지난 해 2월 11일, 유럽 각 국의 수십 개 지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항의 시위 현황 링크)

    이는 지난 1월 26일, 유럽연합이 ‘위조및불법복제방지무역협정(ACTA, 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에 서명한 것에 대한 저항 행동이었다. 2월 11일에 이어, 2월 25일, 그리고 6월 9일에 2차, 3차 ‘국제 항의행동의 날’이 열려 전 유럽에 걸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지난 해 7월 4일, 유럽의회는 ACTA를 반대 478, 찬성 39의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시켰다. ACTA 역시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불법복제 단속을 명분으로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위축시킬 것일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 역시 ACTA 협상에 참여해왔으며, 한국 정부는 이미 ACTA에 서명을 한 상황이다.

    저작권 규제 강국, 한국

    재밌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SOPA나 ACTA 보다 강력한 저작권 규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저작권 삼진아웃제, 그리고 웹하드, P2P 등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대한 ‘필터링 의무화’가 그것이다.

    온라인 저자권 반대 행동

    온라인 저자권 반대 행동

    저작권 삼진아웃제는 반복적인 저작권 침해로 3회 이상 경고를 받은 이용자의 계정, 혹은 게시판을 문광부 장관 명령으로 최대 6개월 동안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문화부가 얘기한 도입 목적은 ‘헤비업로더에 대한 규제’.

    그러나 2009년 도입 이후, 삼진아웃제에 따라 경고장을 보내거나 계정을 정지시킨 이용자 계정은 무려 47만개. 지금까지 계정정지를 당한 이용자는 408명. 이 중 침해액이 고작 9천원에 불과한데도 계정정지를 당한 경우도 있다.

    저작권 삼진아웃제는 도입 당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인터넷 이용권은 기본권인데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이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 마치 주차위반으로 3번 딱지를 떼면, 그 지역으로의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거나 자동차 이용을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많은 논란으로 어떠한 국제협정에도 반영된 바 없고, 프랑스, 뉴질랜드 등 소수 국가에서만 도입되어 있다. 그나마 법원의 판단없이 행정부의 결정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도록 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인터넷 기업에게 ‘필터링’을 의무화한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국내 저작권법은 웹하드, P2P 등 소위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대해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저작권 규제는 2011년에 더욱 강화되었다.

    기본적으로 인터넷 부가 서비스는 신고제임에도 불구하고, P2P, 웹하드 사업에 대해서만 등록제로 전환한 것이다. 시행령에서는 최소 2인 이상의 모니터링 요원을 두도록 하고 있으며, 게시물 전송자를 식별·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와 로그기록의 2년 이상 보관을 의무화하고 있다. 인터넷 기업을 보호하거나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서 볼 수 있듯이, 인터넷 기업의 저작권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결국 이용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 귀결된다. 물론 저작권을 근거로 특정한 사업모델을 허가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인터넷 서비스의 다양한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 예들 들어, 다양한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역시 저작권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면 금지할 것인가? 이용자가 전자책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북스캔 서비스를 금지하는 것이 마땅한가?

    유럽사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저작권 침해 방지를 이유로 인터넷서비스제공자로 하여금 필터링을 의무화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기업의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동시에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처럼 과도한 저작권 규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규제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혹은 그만큼 ‘저작권 보호 이데올로기’가 우리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있는 것일까?

    어느새 우리는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와 같은 기본권보다 (사실은 배타적 권리, 즉 특권에 불과한) 저작권을 우선시하게 된 것일까.

    다행히 올해 1월 17일, 저작권 삼진아웃제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대한 필터링 의무화를 폐지하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최재천 의원의 대표발의로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무사히 통과될 수 있을지 낙관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이 개정안에 대한 국내외 저작권 단체들의 반발이 강력하다. 반면, 이 개정안에 대한 이용자의 지지는 아직 미약하다. 오히려 해외 정보인권단체들이 앞장서서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관련 링크)

    저작권에 대한 흔한 오해

    사회적으로 ‘진보’에 속한 사람도 저작권 문제에 있어서는 주류 관념을 옹호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강력한 저작권 보호 이데올로기 뒤에는 ‘저작권은 소유권’이라는 인식과 ‘창작자 보호’에 대한 동의가 깔려있다.

    사람들은 마치 다른 사람의 자동차를 내가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저작물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동차와 음악은 다르고, 소유권과 저작권은 다르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배타적이지만, 제한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보호기간이 제한되어 있고 (물론 이 보호기간이 끝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문제지만) 보호기간 이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보호기간 내에도 일정한 경우 저작권이 제한된다.

    예를 들어, 교육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사적 복제의 경우, 정당한 인용의 경우 등이 그것인데, 이를 공정이용(저작재산권의 제한)이라고 한다. 저작권은 배타적 권리와 공정이용의 균형을 도모하도록 되어있다.

    요컨대 배타적 권리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결국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최근 카페에서 음악을 틀 때 사용료를 지불할 것인지가 논란이 된 바 있는데, 이 역시 당연히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 카페나 음식점에서도 음악 사용료를 내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할 문제이다. 현행 법 상으로는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복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바뀔 필요가 있다. 저작권의 대상인 문화와 지식은 복제된다고 나에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제될수록 사회적 가치는 커진다. 정책적인 목적으로 일정하게 복제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복제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해야 균형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창작의 가치를 인정하고 창작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창작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저작권만 있는 것도 아니며, 현행 저작권이 진정 창작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미 저작권은 주로 투자자(문화자본)를 보호하는 법이 되었고, 실제 창작자들은 그들에 고용된 노동자이거나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기존의 지식과 문화가 새로운 창작의 밑거름이 된다고 했을 때, 배타적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마냥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거나 창작을 활성화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과거 전업적인 창작자가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예를 들어, 블로그를 운영하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 당신이 창작자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배타적 권리의 강화가 오히려 비영리적 표현과 창작에 저해가 되고 있다.

    낡은 저작권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최재천 의원의 개정안이 저작권을 보호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권리 보호에 편향된 저작권법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고자 할 뿐이다. 저작권 삼진아웃제와 필터링 의무화가 폐지되어도 저작권자는 여전히 저작권과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민, 형사상 수단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저작권 개혁(Copyright Reform)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는 해적당 역시 저작권의 폐지 혹은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현행 저작권법이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작권의 기본 목적은 ‘저작권자의 보호’가 아니라, ‘문화의 향상, 발전’이다. 그런데 현행 저작권이 정말로 문화의 향상, 발전에 복무하고 있을까?

    저작권에 의한 제한이 없었다면 우리는 디지털 도서관이나 구글 북스 등을 통해 전 세계 서적들을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냅스터나 소리바다 등을 통해 희귀음악이나 시장성이 없는 음악까지 다양한 전 세계 음악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상업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문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이고, 이들의 우려 역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저작권이 ‘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기반한 문화 생산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고, 이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려했을 때, 저작권을 한 순간에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작권의 제한으로 인해 얼마나 큰 사회적 가치가 손실되고 있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과거에 저작권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영리적으로 이용하는 소수의 전업적 복제자만을 규제 대상으로 했다. 즉, 길거리의 불법 테이프나 CD를 판매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작권은 모든 비영리적 이용자로 그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아이가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영상을 찍어서 올려도, 팬카페에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동영상 클립을 올려도, 결혼식 동영상에 음악을 사용해도, 사회단체가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도 저작권 규제 대상이 된다.

    문화센터 댄스강좌에서 음악을 사용해도, 카페에서 음악을 틀어줘도, 심지어 생일 케이크 위에 쓰여진 글자 폰트에도 저작권 규제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친구들과 시와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온라인에서는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모든 표현과 소통이 ‘복제’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적인, 문화적 삶 자체가 저작권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누군가 그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감시받아야 하는 것일까?

    저작권 체제는 문화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체제와 연결된다. 그것은 바로 문화가 ‘상품’이 되는 체제이며, 곧 저작물 향유자가 ‘소비자’가 되는 체제이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은 우리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창작자로 만들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글을 쓸 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 상의 이미지를 내게 맞게 변형시킬 수도 있고, 음악과 영상을 골라 편집하기도 한다.

    로렌스 레식은 먼 옛날 ‘읽고 쓰는 문화(Read/Write Culture)’가 문화 산업의 발전으로 ‘단지 읽는 문화(Read-Only Culture)’로,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 다시 읽고 쓰는 문화로 복귀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것이 문화의 본래적 의미가 아니던가.

    진정한 문화적 소통이란 창작물의 개인적인 소비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비틀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나 저작권 체제는 문화상품을 소비해주는 소비자만을 원할 뿐이다.

    냅스터와 소리바다의 진정한 가치는 현재 유행하는 음악을 공짜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공급자에 의해 통제되는 문화시장, 즉 팔릴 수 있는 문화상품만 유통되는 문화시장이 아니라, 이용자에게 어떠한 문화에 접근하고 향유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는 권리자들에 의해 그 싹이 잘렸지만, 그러한 시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저작권은 태고적부터 있었던 제도가 아니다. 특정 시대에 태어나 나름대로 역할을 했던 제도였을 뿐이다. 이제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저작권이라는 이 제도가 과연 적합한 것인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과 저작권의 충돌은 단시간 내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저작권법만을 어떻게 바꾸는 것에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문화의 창작과 이용이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필자소개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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