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책소개] 『마술적 마르크스주의』(앤디 메리필드 / 책읽는수요일)
        2013년 04월 06일 1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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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마르크스주의와 불화를 일으키는 21세기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이 책은 계급, 국가의 역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등의 해묵은 논쟁, 지루하고 감흥 없는 부정적 비판 분석, 그 결과로서의 자기 위안적 고립 등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댄다.

    그리고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마르크스주의가 오래도록 유지하던 형식주의적 구속복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에 맞서는 대안 세계를 상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안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의 반자본주의 저항자들과 조우하게 함으로써,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지평을 연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2012년에는 영국의 사회과학 서점들이 가장 뛰어난 좌파 저작에게 주는 ‘빵과 장미 상(Bread and Roses Award)’ 최종 후보에 올랐다.

    마술적

    신자유주의적 스펙터클 사회의 급진 정치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를 신자유주의적 스펙터클 사회, 즉 합병과 취득을 통한 자산 강탈과 이제껏 공공 자산이던 것을 기업화하고 사영화하는 등 공동 소유권이 전복된 신자유주의 사회이자 지배 엘리트가 숙달된 기술로 동의를 생산하고 일어날 일에 대한 무지를 조직하며 망각을 만들어내는 스펙터클 사회,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무감각과 정신의 오염에 빠져든 채 살아가는 스펙터클 사회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21세기에 필요한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허구의 자본이 그러하듯 환상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즉 사이버 공간 등을 통해 영감과 자극과 분노와 연대의 감정이 지구 공간을 옮겨 다니며 반란이 이어지는‘사실적이면서 허구적인 마르크스주의’라고 저자는 말한다.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다양한 반자본주의 저항자들이다!

    2007년 서구 사회를 발칵 뒤집은 책 <다가오는 봉기>와 앙드레 고르의 <노동자 계급이여 안녕>에서 영감을 얻은 저자는 21세기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주체를 재설정한다.

    오늘날 전 세계의 주민 가운데 상당수에게 노동생활은 죽은 생활이며, 의미 없는 시간 낭비이고, 소외의 영역이자 시계를 보는 영역이며, 주말과 휴가와 은퇴를 열망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정의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즉 노동자들이 느끼거나 열정을 가지는 프롤레타리아트 같은 것은 더 이상 없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자본주의 체제와 지배 계급에 맞서는 전복 정치의 주체일 수 없고, 비계급 반자본주의적 정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비계급 반자본주의 저항자들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권력을 잡는 게 아니라 생산력주의라는 시장 합리성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들의 삶에 대한 권력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인데, 이들과 만나는 “비계급”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영역을 확대하며, 정치적 영역을 잠재적으로 더 풍요롭게 그리고 여전히 불확정적이지만 더 포괄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길고 다양한 지하 터널’들

    카프카의 성과 같은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는 정면으로 맞서서는 틈을 내기 어렵고, 한 번의 망치질로 국가를 “깨부술” 수 없다. 그래서 “성 내부의 구석진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는 성의 누벽 아래로 구멍을 파고들어야 한다.” 또 다른 종류의 공동체 구조를, 또 다른 비영리 화폐 형태를, 또 다른 촌락 생활 양식을, 점거한 건물에서 또 다른 도시적 존재를 창출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자율적인 자기 긍정과 자기 조직화를 추구하면서 틈을 내야 한다.

    이는 곧 신중하고 은밀하게 지하 터널을 파는 것이다. 그리고 터널이 길고, 다른 터널과 만날 수 있게 곳곳으로 퍼져서,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전부 떠나고 나면, 표면의 상부 구조가 어느 날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남는 것은 폭삭 가라앉을 것이다.

    도시, 전복 정치의 주요 장소가 되다

    오늘날 전복 정치의 공간은 도시이다. 메리필드는, 르페브르와 마찬가지로, 도시가 공장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본다. “한때 자유주의는 작업장에서 사람들을 착취함으로써 잉여 가치를 추출했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의 삶의 공간을 박탈하는 것에 의해, 공통의 것을 접수하는 것에 의해, 우리 도시의 중심부를 재전유하는 것에 의해 그 몫을 추출한다.”

    따라서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적 휴머니즘은 도시에 대한 권리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는 마술적으로 공간에 대한 권리, 토지에 대한 권리를 북돋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이 자기 긍정과 자기 발전의 권리를 주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공간에 대한 이 권리는 공간에서 살 권리 및 생계의 권리와 같은 것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 부르지 않는) 반자본주의자들의 다양한 싸움과 실천에서 21세기 마르크스주의는 발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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