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핵을 쥐려 하는가.
[에정칼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능력은 핵무기 능력과 비례
    2013년 04월 03일 01: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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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아직 내복을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긴 하지만 남쪽에 만개한 꽃들을 보니 봄이라고 해도 상관없겠다.

영미권에서는 3월을 로마신화의 군신인 마르스(Mars)의 이름에서 따와 March라고 부른다. 고대 로마에서는 따뜻한 봄이 되어야만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반면 4월을 일컫는 April이라는 말은 ‘열리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aperire’에서 유래가 됐다. 4월은 본격적으로 꽃봉오리가 열리는 시기라고 봤던 것이다. 봄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March가 April보다 앞에 있는 걸 보니 고대 사람들은 꽃봉오리가 열리기도 전에 전쟁부터 시작했나 보다. 시작이란 의미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듯.

사무실에 오는 길에 분꽃의 씨앗을 하나 샀다. 둘째 아들님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봄을 맞아 씨앗뿌리기 행사를 한다고 한다. 아들님이 장미반이어서 장미 꽃씨를 샀으면 했지만 꽃집 사장님 말로는 분꽃이 화려해서 애들이 더 좋아한단다. 그리고 사는 김에 더 화려한 한련화 씨앗도 사라고 해서 1,000원을 주고 꽃씨를 구입했다.

화술 좋은 장삿속이었겠지만 날도 좋고 해서 기분 좋게 꽃씨를 구입했다. 하나쯤은 마당에다 심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나와 컴퓨터를 켜니, 아뿔싸. 누군가에겐 봄이 꽃피는 춘사월이 아니라 전쟁을 시작하자는 구호를 의미하는가보다. 하루하루 일촉즉발의 전시상황이 연출된다. ‘타격’이니, ‘보복’이니 소름이 돋는 말들이 신문을 도배하고, 각종 군사훈련이 연이어진다.

그 와중에 눈길을 잡는 소식 하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논쟁의 시작이다.

북한의 압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논쟁이 무슨 관계고 하니, 아무 관계도 아니다. 한반도 긴장은 긴장이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에너지 문제다. 전혀 별개로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이 정말 순진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의 핵심 중 하나는 무기화, 즉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갖게 되면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북한은 믿지 않는다. 미국조차도 믿지 않는 판국에 북한이 믿어줄 거라 생각하는가.

이런 와중에 우리의 대통령은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와 환담하는 자리에서“한국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확대할 수 있게 원자력협정이 선진적으로 개정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라는 걸 명확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용후 핵연료란 무엇인가?

원자로에서 약 5년간 핵분열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면 연료를 교체해야 하는데 이게 화근이다. 사용후 핵연료에는 제논, 스트론튬, 세슘과 같은 맹독성 방사성 물질이 생기기 때문에 연료봉을 깊은 물속에 담가 방사선 방출을 막아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는 지난해 6월 기준 36만8000다발이 발생했고 임시 저장용량의 71%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경수로형 원전 17기에서 약 1000여다발, 중수로형 원전 4기에서 1만6000다발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는 2016년 고리 원전부터 월성 원전은 2018년, 영광원전 2019년, 울진 원전 2021년에 각각 포화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을 짓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소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현재 전체 전기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32%를 넘어간다는 걸 감안하면 꽤 설득력있는 협박이 된다.

새로운 저장시설을 짓는 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 정부는 결국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집중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해지면 연간 농축우라늄 수입 비용 수억 달러가 절감될 거라고 보고 있다. 우라늄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이용률을 현재보다 수십 배 높일 수 있고, 방폐장 등으로 인해 겪는 갈등과 사회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내용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재처리 과정 중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재처리를 하게 되면 핵무장국으로 가는 모든 기반이 구축된다.

한․미 양국이 공동 개발 중인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기술)이면 플루토늄 단독 추출이 불가능해서 핵무기로 전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공동개발의 한 축인 미국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방사능 반감기가 10만년이 넘는 사용후 핵연료는 새로운 저장시설 없이 그냥 아무데나 보관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오히려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다른 곳에 있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여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처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막고 있는 한미원자력협정을 다시 협상해야 하는 시기와 일치해서라고 하지만, 우리가 자체적으로 핵 억지력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작년 가을 일본이 원전은 포기해도 핵연료 재처리는 포기 못한다고 얘기했을 때 핵무기를 염두에 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었나?

일본 로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시설 가동 중단 퍼포먼스(환경운동연합 자료사진)

일본 로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시설 가동 중단 퍼포먼스(환경운동연합 자료사진)

그랬던 우리가 1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다르다, 평화적’이라고 얘기하는 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 또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겠다고 밝히자 정부는 강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는 반대편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걸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론을 만들기 위한 언론사들의 행태는 거의 눈물겨운 수준이다. 방송 3사를 비롯해 모든 언론들이 지난 3월 중순부터 줄기차게 재처리 여론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북핵 위기 고조 소식과 함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다.

핵확산금지조약(NPT)나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핵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가히 선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만 보자..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그렇게 비판하고 있는 북한이 늘어놓는 변명과 유사하다.

물론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려는 노력 없이 계속 지역 사회의 희생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쓰레기를 계속 배출할 수는 없으니 핵발전소를 줄여서 없애자고 하는 게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그런 계획 좀 세워보라고 세금을 내고 정치인을 뽑는 것이다. 핵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시키면서도 장기적으로 핵폐기물과 에너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선 이래저래 탈핵 외에는 답이 없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한미 원자력 협정의 선진적 개정”이니, “평화적 핵주권”이니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 봐도 작금의 이상 증후군을 용납하긴 어렵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칼날을 세우는 시절을 계속 반복할 순 없다. 지금은 씨앗을 뿌리고 한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할 때다. 3월은 이제 보내도 되지 않겠는가.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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