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 회개를 내가 해?
할려면 지네나 하라 그래"
[평양출신 할머니의 생애사-10]아들의 결혼과 목사 안수 그리고...
    2013년 04월 02일 01: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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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앞 연재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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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아드님 목사 만든 이야기 좀 해주셔요.

(김미숙) 아들은 서른 중반 넘어 결혼했어. 이래저래 다 늦은거지. 서울서 만난 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전에 그 여자가 중신해 가꾸 여자를 하나 선을 봤어. 근데 내 생전에 그런 여자는 또 처음이야. 그 처자가 코가 구녕만 두개 있어. (자신의 코를 만지며) 코 살, 요 뽈록하게 올라온 이게 없는 거지.

우리 아들 보면 그래도 멀쩡하게 잘 생기고 그랬잖아. (필자는 어르신 병원 모시고 가는 일로 부부 목사인 아들 며느리를 만난 일이 있었다.) 아무리 공부를 못했다구 해도 그런 여자가 맘에 차겠어?

그러니 우리 아들이 화가 나가지고 자기가 결혼할 사람 데꾸 온다구 화 낌에 결혼상담소 가서 만나 온 게, 지금 그 며느리 년이야.

그 계집년이 남편 목사를 원했대. 상담소에다가 지가 원하는 남자를 써넣을 거 아냐. 우리 아들이 아직 신학교도 안댕길 땐데 속였대, 신학교 당긴다고. 그래서 결혼해서 들어와 보니 신학교도 안댕기지, 시어머니는 양키물건 장사해서 겨우겨우 벌어 먹구 살지 하니까, 한 달 만에나 그 년이 가뻐렸어.

그 전에는 아들이랑 이 집서 같이 살다가 결혼시키면서는 내가 이 집을 비워주고 나갔었거든, 이태원으루. 그년 도망가구 나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내가 도루 이 집으로 들어와서, 나는 이 방 쓰고 저는 저쪽 방 쓰고 그랬지.

아들은 그제야 소박맞구 나니까, 신학교 가서 목사되겠다고 하더라구. 나는 첨에 막았어. 우리 아들이 원채 사람이 공부도 안했구 또릿또릿 하지도 않은데, 거기다가 목사까지 되면 지가 이 세상 어떻게 살아나가? 그래서 막았는데 지가 하겠다구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래서 별 수 없이 놔 뒀지. ‘알았다 그럼, 근데 니가 석달이나 하겠니?’,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남들은 아들 목사 만들려구 어머니가 천날 만날 기도하구 그러는데 엄마는 어째 그러냐?’는 거지. 말이야 맞지.

그래서 ‘알았다, 그럼 내가 기도는 열심히 해 주께.’ 그러고는 내가 팔년을 기도하루 산을 다녔어. 교회 가면 헌금 천원을 해야 하는데, 내가 헌금 천원 낼 돈이 없는 거야. 그러니 저 청와대 뒤에 산을 매일 다니면서 봉우리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그저 소리를 지르며 기도를 하는 거야, 통성기도라 그러잖아.

두 손을 번쩍 들고 그저 ‘주여~~~’ 하면서 목청이 떠나가게 하는 거야. 내가 세상 사는 게 갑갑하니 소리가 더 잘 질러지더라구. ‘절대 가다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아들 맘 변치 않게 해달라구’, 그 기도밖에 없는 거지. 그니까 옆에 사람들이 나 쫓아서 기도를 하드라구.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거기에다 붙여서 지네 기도들을 하더라구. 그 기도가 목사를 만든 거야, 내 기도 덕분인거지.

성결교회 최초의 목사 안수

1914년 4월 한국 성결교회 최초로 5명이 목사 안수를 한 후 기념 사진. 본문과 관계 없음(출처는 blog.daum.net/uslawyer/12669212 )

공부 팔년 만에 목사안수 받을 때 쯤 해서, 며느리 년이 어디 숨어서 지켜봤는지 알아봤는지 어떤지, 다시 기어들어 왔더라구. 목사안수 받으면 옆에서 챙겨줄 여자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래서 딴 여자를 수소문해서 결혼 약속을 하고 양가 밥까지 먹고 날까지 받아 놨는데, 그 년이 기어들어 온 거지.

그 결혼날짜 받아놓은 여자두 인물도 괜찮고 허우대도 나만 하구 좋았어. 그래서 내가 내 옷을 같이 입으믄 되겠다 생각하구 있었어. 내가 옷이 많자나. 근데 내가 새 옷 사서 갖다 주라고 하면, 우리 아들이 안갖다 주더라구. 그걸 보니 아마 지 맘에 안들었던가봐. 그 년 나타나니까, 두말도 못하게 하고 약혼을 깨버리고는 집 나갔던 여편네를 다시 받아들인 거지. 그루구 나서 애를 낳았으니 애가 늦었지. 그 손주가 이제사 군대 갔자나.

성남 아들며느리네서 열달 이십일 함께 살기….성남은 지옥, 이화동은 천당

거의 내내 그것들이랑 따로 살았어. 그러다가 재작년에 성남 지네들 사는 데로 갔을 때는 내가 몸이 많이 아파서 간 거야, 먹은 게 체해 가꾸 여엉 내려가지를 않더라구.

내 생각에 이젠 죽을 때가 됐나보다 싶었어. 그래도 하나 빢에 없는 자식인데 거기 가서 죽어야지….혼자 있다가 남들 모르게 죽어 송장이 썩기라도 하구 그러면, 지네가 욕먹을거 아냐. 게다가 부부목산데 뉴스에 얼마나 난리가 나겠어.

보니까 그렇게 혼자 죽어가꼬 나중에야 썩어서 발견된 노인네들이 있어서 자식들이 욕먹구 하는 거 뉴스에도 나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지네 욕 안 멕일려면 거기 가서 죽어야겠다….그런 생각에 거길 내발로 갔던거지.

근데 내가 엊그제 계산을 해보니까 열달 이십일만에 여기로 다시 왔고, 그 동안 거기서 내 돈을 천삼백사십만원을 썼더라구.

(필자) 하따~, 계산도 세세하게 하셨네. 그걸 다 따져보신거에요? ㅎㅎ

(김미숙) 내가 다 메모를 하고 살잖아. 그리고 돈 나가는 거야 내 통장 놓구 따져보면 금방이구. 여덟달 동안은 죽 하나에 늘 된장국 하나야. 여기서 두 달을 죽 먹다가 갔었거든. 며느리년이 이 만한 들통에 죽을 끓여놓구는, 그것두 한그릇 그득 주는 게 아니구 딱 두 국자씩 줘. 그루구는 나더러 엄청 많이 먹는 대는 거야.

내가 여기를 비우구 가면서 카드를 만들었어. 여기 세 사는 사람들이랑 돈이 들어오구 나가구 할 일이 있어서 만든 거지. 이 방도 전세를 내놓구 갈려 그랬는데 안나가더라구. 그래서 사글세로 오백에 이십오만원씩에 놔서 방이 나갔었거든.

그 동안 그 월세를 아들 며느리가 다 받아다 쓰고 내 카드 가져다가 지네가 맘대로 찾아서 쓰구, 다 계산해 보니까 천삼백사십만원을 그것들이 썼더라구. 내가 한 달에 삼십만원 가지구두 그렇게는 안먹거든.

한달 삼십일 된장국 한 가지에 죽, 그걸 어떻게 먹느냐구? 그런 놈에 집구석에 내가 더 있고 싶겠어? 병두 나서 나중에는 밥 먹고 했거든. 그래서 이 집으로 다시 간다구 하니까 그것들이 못가게 하자나.

근데 거기가 한번 정내미가 떨어지니까 나한테는 지옥이야, 여기가 천국이고. 여기야 머든지 내 맘 대로 할 수 있자나. 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가고 싶은 대로 가고. 그래서 내가 가겠다고 우기면서, ‘성남은 지옥이고 이화동은 천당’이라구, 나 보내달라구‘ 날만 새면 우겼었어.

그래도 말을 안들으니 수면제 한 주먹을 먹어 버린거야. 정말루 죽어버릴려 그런 거지. 그런데 그게 안죽고 병원에 한참동안 입원을 하게 된 거지. 그러구선 몸 회복되구나니 결국 일루 보내준거야, 아들이.

(필자) (웃음을 띠고 약간 비틀며) 하따~ 그 아들며느리두 힘들겠네요. 이런 똑뿌러지는 시어머니 때메.

(김미숙) 내가 쉬운 노인네야 아니지. 그건 나두 알아. 하지만 글쎄 내 말이 틀렸나 보라구. 우리 친정 평양에서는 잡곡이 싸구 쌀이 비싸기 때문에 된장두 안먹었어. 간장 빼고난 된장이 먼 맛이 있느냐구? 돼지나 주는 거야 된장은. 간장 안빼구 콩으로 메주가루 만들어서 거기에 꼬추까루 넣은 막꼬추장. 그걸 먹거든.

근데 여그 와서 며느리년 손에 그 잘나빠진 된장을 맻~달을 내내 먹어대니… 그러니 아주 질려 버린 거지. 그리구 그 잘나빠진 죽을 들통으로 하나 쒀가지고는 딱 두국자만 떠 주는 거야. 난 뜨거워서 우선 두국자만 퍼 주는 줄 알았는데 딱 두국자 떠주고 나면 그게 끝인거야. 속을 다스려야 된대나 머래나….거기다 대고 우리 아들이 머래는 줄 알아. 나보러 자기보다 세 배를 먹는데, 그러니 하느님이 복을 안줘서 복을 못받아서 교회가 그러구 앉았는 거지.

(필자) 그래서 이화동 와서 다시 혼자 사시니까 편하셨어요?

(김미숙) 아~, 천당이 따로 없지. 다 내 맘 대로 하니까. 근데 와서 혼자 살림하면서 오래간만에 살림을 잡으니까 그런가 깜빡 실수를 한 거야.

그때가 아직 봄이 다 안 온 때여서 우풍 없앨려고 혼자 의자 놓고 카텐을 달다가 떨어져 넘어져서 이 왼쪽 팔이 부러진거야. 다리는 괜찮아서 아들도 안부르고 혼자 택시타고 병원을 갔더니 팔 뼈가 부러졌다는거야. 뼈가 붙여야 하니까 땀도 닦지 말고 옷도 갈아입지 말라며 아예 머러 매달아서 여기 오른쪽 어깨에다 불들어 매주더라구.

그런데다 어느날인가 도시가스 저거를 틀어 머를 해먹다가 국물을 넘치고는 그걸 안잠그고 까먹고 그대로 잔 거지. 그래서 밤에 도시가스가 방으로 들어와서 중독이 된거야. 그래가지구는 이래 저래 이화동 와서 고생을 하기는 했지. 그 때 두 달을 붙들어 매 놓은 이 팔이 그대로 굳어버린 거야. 아무리 펴볼려구 운동두 하고 물리치료니 침이니 맞아도 안펴져. 그러니 머 이채로 사는거지.

(필자) 그러신거구나….저는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오셨던 건가 해서 여쭤볼려고 했더니. 아~, 그렇게 뼈가 부러지고 가스 중독까지 되셨으면 아들네를 좀 부르시던가 하지 그려셨어요. 그래도 아들인데 쿠사리야 좀 하겠지만 와서 좀 챙겨드리고 했을텐데….

(김미숙) 아구 야야, 다시 지네집으로 가자 그럴까봐 팔이 뿌러졌느니 가스중독이니 뻥끗도 안했어. 나중에야 알고 막 화를 내고 하더만.

근데 아무리 불편해도 여기가 천당이야, 거기는 지옥이고. 밥끓여 먹는 거야 그때도 요양보호사가 맨날 오니까 웬만한 건 그 아줌마가 해줘서 머 못끓여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성남에 있으면 울화통이 터지고 속상할 일만 있어. 교회라구는 그저 코딱지 만이나 해가지구….

(필자) 어르신 생각에 그 아들며느리네랑 어르신이랑 머가 젤 안맞으신거 같아요? 아 하나밖에 없는 아들며느리에 서로 신앙도 같고, 전에 저도 두분 뵜었는데, 성품들도 납납하고 분명하신 거 같던데요.

(김미숙) 자네니까 하는 이야긴데, 아들이 나 살아온 거를 대강 알잖아. 미군이랑 살림도 차리고 애도 수도 없이 떼고, 그런 거를 대강 아는 거지. 그러니 아마 며느리도 알겠지. 지네끼리야 찰떡 궁합이니 말을 안했겠어?

근데 이것들이 뚝하면 날더러 회개를 하래는 거야? 거기 살 때도 새벽 기도 같이 하면, 뚝하면 “우리 어머니 회개의 은혜를 내려주십사!” 어쩌구 기도를 하는 거지. 지들 생각에 내 회개가 머겠어? 뻔하지.

언젠가 아들이 말도 하더라구. 미군부대 근처에서 몸 함부로 굴린거랑 낙태 많이 한거랑 그런 거를 회개를 하래는 거야.

지랄을 하고 자빠졌어. 나는 그 회개는 안나와. 나두 예수 믿지만, 난 그런 게 별루 죄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거야. 여자 혼자 벌어먹고 사느라 한 일이고, 내가 도둑질을 했어 살인을 했어. 그루구 그렇게 임신된 거를 다 낳았써봐. 그걸 누가 책임지고 키울거야?

거기서도 미군이랑 살림하던 여자들은 많이들 낳았어. 남자 붙잡아 놓을래니까 남자가 낳자 그러면 낳는 거지.그러다가 대부분은 남자 혼자 미국 들어가던가 안나타나든가 하면, 그 새끼는 여자 혼자 책임이 되는거지.

그렇게 혼혈아 나서 많이들 미국으로 입양 보내구 그러드라고. 붙들고 키운 사람들 보면, 어린 것들이 손가락질 당해서 학교도 못가고 직장도 못다니구 그러드라고. 나 하나로 끝나면 될 걸 왜 애기를 낳아서 그 설움을 또 만드냐구? 그걸 회개하라니 말이 돼?

그러구 저 목사 만든 돈이 어디서 나온 건데? 양키물건 장사로 일찌감치 돈 모아서 이 집이라도 사놓고, 저 일년 학비 들어갈 때마나 한층 올려서 전세돈 받아 모아논 돈이랑 합해서 등록금 내고, 다음 해 또 한층 올리구 일년 학비 내고 한 거야.

그러면 저 목사된 게 결국 내가 양키물건 장사하고 미군이랑 살림해서 번 돈인데, 그게 머가 잘못이냐구? 더구나 그 돈으로 공부해서 목사된 지가 할 소리냐구?

회개를 할려면 지가 장성해서도 고생한 에미 하나 못멕여살리고 내 뼈가 빠지게 고생한 돈 갖다 쓰기만 한 거를 회개를 하든가 말든가 해야지. 내가 나 팔십여덟 저 육십다섯 되도록 저한테 생활비 한번을 못받아봤어. 명절이라고 오면 딱 오만원 그것도 주다말다 하는거구, 뚝하면 돈 없다고 지금도 한몫씩 받아간다니까.

근데 왜 회개를 내가 해? 할려면 지네나 하라 그래. 그 소리 듣기 싫어서 거기를 안가.

(필자) 아구, 정말 가기 싫으시겠네. 저 같아도 죽어도 가기 싫겠어요.

(김미숙) 지네들 하나님은 어쩐가 몰라도, 내 하나님은 딱 나같은 사람을 위해 있는 하나님이야. 복음에도 나오잖아. 창녀와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

내가 성질이 못되서 사람들한테 잘못한 게 많지. 나두 알아. 내가 죄가 없다는 게 아냐. 남의 세정 안살피고 싫으면 딱 매몰차게 끊어버리고, 말 험하게 하고, 게으른 사람은 사람 취급을 안하고, 그런 거나 회개를 하라면 또 회개를 한다지만….

나도 나 못된 사람인거 알아. 그저 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주는 말들 제대로 안담고 내 맘대로 성질대로 하는 거, 남의 맞는 말 알면서도 내 고집대로 하는 거. 내가 죄가 없대는 사람이 아냐.

(필자) 어르신하구 저하구 성격이 비슷한 거 같아요. 호기심도 많고 주관이 확실해서 내 줏대대로 살고. 제 경우 그러다 보면 남한테 상처도 주고 사는 거 같아요,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속마음은 그게 아닌 데 결과가 그렇게 되는 거지.

어르신도 혼자 계실 땐, 아들 며느님한테도 따뜻하게 해야 되겠다…..그 생각 하시잖아요. 근데 막상 보면 머가 안맞아서 또 밉고 오래 같이 안있고 싶고 그러는거고.

(김미숙) 그래. 자식인데 머 에미가 다른 마음 있겠어. 나야 내가 알아서 살테니, 저 하나 잘되라는 거지. 다른 목사들은 안수 받구 교회 시작하면 얼마 안있어서 교인들이 맻백명이 늘구 그러잖아. 야네 교회는 지금도 교인이 없어. 며느리도 늦게 목사가 돼서 둘이 같이 교회를 하거든. 목사 한 지 벌써 이십년이 됐잖아. 목사 되구 나중에 박사 학위까지 받구 나더니, 지 여편네가 박사학위 뒤 밀어줬다구, 머 지 여편네밖에 없어.

나는 목사 만드느라고 8년을 뒷바라지를 했는데, 그건 다 얼루가구 박사학위 밀은 지 계집년 공만 치는 거지. 내가 신학 박사학위 따는 날 쟈네 교회 사람들에게 한턱 쓴다고 이십만원을 들고 나갔었는데, 이십만원 쓸 교인이 없어. 맻푼 안쓰구 도루 갖구 왔어. 지금도 교인이라구 그 년 친정 어머니, 동생 둘, 동생 남편 둘, 그 다섯이 전부야. 가족들만 있고 교인이 아무도 없는 거지. 그게 속상하니까 보면 화가 나는거야….

게다가 그 친정 것들 내 흉을 보는거야. 나는 양장이 삼십벌이구 한복이 열벌이었거든. 그래서 성남 살러 갈 때도 내가 옷은 좀 챙겨갔지. 그래서 아들네 교회 갈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데 그 친정 것들은 맨 날 딱 한 벌이야 한 벌. 그러니까 그것들이 내가 백날 만날 옷 갈아입고 다닌다고 흉을 보고, 그래서 우리 아들이 나 옷 바꿔입고 교회가는 걸 싫어하더라구.

그러구는 나 지네 집 가 있는 새, 장모랑 모두들 데리고 와서 내 옷을 싸악 다 가져간 거야. 헌 나부랭이 몇 개만 놔두구. 세타도 공작 실 좋은 걸루 짜놓은 게 있는데 그것두 싸악 다 싸가지고 갔어. 나 죽을 줄 알구 그랬나 부지.

며느리가 팔남매 맏인데, 지네 친정이 머 식모까지 두구 살았었다고 하드만, 천만에 말씀이지. 하는 꼬락지 보면 몰라? 거지처럼 옷이 딱 한 벌씩 밖에 없다니까. 나 죽을 꺼라고 나 없을 때 내 옷장 싹 털어간 것들이.

저 사진 내가 영정으루 할려구 찍은 건데[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으심], 저 한복이 공정 값만 해두 상당해. 한 칠십세 쯤에 죽는 줄 알고 육십 다섯에 홍콩 양단 두루마기까지 해 입고 찍은 거야. 근데 팔십 넘도록 살아지더니 재작년에 먹은 게 소화가 안되서 인제 죽을래나 보다 하면서 아들네로 갔던 거지.

내가 저 옷감 살 때 열벌 감을 한꺼번에 사가지구는 두루매기 두 개 한복 두 개는 만들어 입고, 나머지는 옷감으로 갖구 있었어. 저게 홍콩 양단이거든. 저게 홍콩에나 가야 보지 한국에서는 구경두 힘들어. 너무 좋으니 아까워서 남은 옷감도 팔지를 못한 거지.

홍콩 양단

유물 명칭은 홍콩 양단 저고리(일명 홍콩 양단). 숙명여대 소장.

근데 장롱에 그거 넣어둔 옷감이랑 옷을 며느리네 친정 것들이 다 없앤 거야. 우리 며느리 말이 쓰레기봉지 큰 거, 대짜 열 개를 사서 다 채워서 버렸대. 그 아까운 걸 버렸겠어? 친정 것들이 바라바리 다 가져간 거지.

전매국 다닐 때두 작업복을 따로 줘. 그러니 올 때 갈 때 옷은 좋은 걸로 사 입었었어. 어릴 적부터 우리 엄마가 늘 “입은 거지는 얻어 먹어두, 벗은 거지는 굶어 죽는다.”며 옷은 잘 사줬거든. 옷을 잘 입으면 잘 사는 줄 알지, 못산다고 생각 안한대는 거야. 그리고 옷을 잘 입어야 못나도 좀 괜찮아 보이잖아.

그래서 내가 옷에다 무척 신경을 써. 캬바레 다닐 때도 한복이구 양장이구 옷을 잘 입어야 잘 팔려. 그리구 내 몸이 옷 가다가 좀 나오거든. 키두 여자 키로는 큰 편이구. 그러니 웬만한 옷은 다 소화가 되구 어울려. 근데 똑같은 옷도 어떤 여자가 입으면 그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어. 내 체격이 늘 이거야, 오십이키로. 젤 많이 나갈 때 오십오키로 한번 나가 보고, 늘 오십이키로야.

난 젊은 여자구 늙은 여자구 피둥피둥 살찐 거 보면 미련해 보이구, 말두 붙이구 싶지 않아. 얼굴 생긴 거야 타고나니 별 수 없지만 몸무게는 좀 자기네가 관리할 수 있는 거 잖아. 게을러서 그렇게 살을 찌구 사는 거지.

재작년에 아들네 가서 십개월 이십일 있다 작년[2011년] 3월 그믐에 여기로 다시 온 거지. 요즘 내가 가만히 세보니까 나 혼자서 한달 30만원이면은 살거든. 겨울게 젤 많이 나가는 거는 도시가스하구 십일조 5만원. 내가 요즘은 수입이 오십만원이 못되는데, 전에 목사님이 ‘십일조를 동전까지 계산해서 내는 사람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거 있느냐?’ 그러더라구. 그게 나였거든.

그래서 내가 수입이 오십만원이 좀 못 돼도 십일조를 5만원을 채워 넣어. 그리구 한 노인네한테 주일 헌금 얼마나 내냐구 물어보니까 삼천원 낸데. 그래서 나도 주일 헌금 삼천원 씩 한달이면 만이천원이구, 십일조 오만원이니, 매달 교회에 육만이천원을 내는 거지. 겨울에 도시가스비 나가는 거 말구는 교회에 내는 게 나한테는 젤로 커.

가만 생각하니 내가 영양있는 걸 못먹잖아, 그래서 잡곡 열가지 넣은 밥에, 미숫가루도 열가지를 넣어서 만들어. 아침은 미숫가루루 먹구, 점심은 요 뒤 노인복지관에 가서 먹구, 저녁밥만 해 먹는거야.

전에 아들네 있을 때는 똥을 못눠서 침맞고 뜸뜨구 했었는데 여기 와서는 그게 없어. 맘이 편하니까 그런 거지. 나 아픈 거는 고혈압에 치매 3급, 그거야. 가까운 동네 길을 자꾸 헷갈리는 치매가 있는 거야. 다른 기억이나 계산 그런 거는 옛날 그대로구. 40분은 걸어야 운동이 된대서, 비만 안오면 아침에 이 근처를 꼭 40분을 걸어 다니거든.

동회 앞으로 해서 걸어서 오는 데, 저번에 동회 갈려구 나갔는데, 머릿속에 길이 그림이 그려져야 할 거 아냐? 근데 여엉 동회 가는 길을 모르겠는 거야. 아들네 있을 때는 10분거리도 안되는 데를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구, 바로 집 앞에서두 집을 못찾구 그러더라구. 그래 겁이 나서 혼자 못댕기겠는 거지.

아들네 있을 때 온 요양보호사 중 다섯 번째 온 여자, 그 동안 요양보호사를 열 명두 훨씬 넘게 겪어봤는데, 딱 그 여자 하나가 맘에 쏘옥 들어. 너무너무 좋은 거야, 아주 왔따야. 라면을 끓이면 내가 스프를 삼분지 일만 넣거든. [북쪽 음식은 상대적으로 싱거워서 어르신의 식습관은 많이 싱겁다.] 나는 남들은 못먹을 만큼 싱겁게 먹거든. 근데 그 여자가 라면을 끓여 주면, 내가 끓여도 그렇게 입맛에 들게 못끓여.

전에 여기로 전화 했길래 내가 오라 그래서, 안신는 신발도 주고 멸치도 한 박스 싸주고 그랬어.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들이 해주는 돌봄이 맘에 안들어서 많이 바꾸어대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다]

내가 이 집에 아주 들어와서 사는 게 십년짼데, 그 전까지는 계속 돈을 번거지. 그러니까 이른 여덟 정도까지 돈을 번 거야. 양키물건 장사만 삼십년 넘게 한 거지. 마지막에는 이태원에서 양키물건 장사를 했어. 미군부대 주변만 따라다니며 살면서 30년 정도 양키물건 장사를 한 거야. 이태원에 동성연애자들도 많구 남자가 여자 옷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아. 머 저런 것들이 있나 싶지만, 저 좋아서 하는 거를 남이 멀 머라 그래?<계속>

필자소개
1957년생 / 학생운동은 없이 결혼/출산 후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됨. 2000년부터 진보정치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 성정치위원장 등을 거쳐, 공공노조에서 중고령여성노동자 조직활동. 현재 서울 마포에서의 지역 활동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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