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하고 있는 중국정치
    [중국과 중국인]후진타오 전면 퇴장의 함의와 배경
        2013년 04월 01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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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의 퇴진과 시진핑-리커챵 체제가 확립된 시점에서 개혁개방부터 후-원 체제에 이르기까지의 제도적인 변화와 시-리 체제의 인적 구성 및 변화 가능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보겠다.

    지난 해 가을의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와 올 3월 초에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를 통해 향후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어갈 당/정/군의 지도부가 모두 인선되었다. 당 대회에서 결정한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을 비롯한 각급 주요 기관의 책임자들을 헌법상의 최고 권력기관인 전인대를 통해 공식적으로 추인한 것이다.

    떵샤오핑 이후 쟝쩌민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당 권력의 승계과정에서 서구의 잣대로 보면 오히려 퇴보한 듯 보이지만 중국의 정치과정에 적지 않은 긍정적인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이런 과정들이 당 내부 세력 간의 치열한 세력다툼 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혁개방의 두 기둥이었던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즈양(赵紫阳)이 자신들을 직접 발탁했던 떵샤오핑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난 것은 개혁개방의 속도조절과 당내 민주화에 대한 견해차이 때문이었지만, 쟝쩌민 집권 초기의 천시통(陈希同, 베이징시 서기)이나 후진타오 집권기의 천량위(陈良宇, 샹하이시 서기)와 보시라이(薄熙来, 총칭시 서기)는 모두 경제적 부정과 부패 혐의로 처분(보시라이는 곧 사법처리가 진행될 예정)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최고 권력자에게 도전한 죄과로 권력 핵심에서 축출 당했을 뿐 아니라 법적 처벌까지 받았다.

    중앙정법위(中央政法委) 서기 조우용캉(周永康)은 보시라이 사건과 연계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식적으로 축출 당하지는 않았지만 임기 말에 적지 않은 권한을 박탈당한 채 은퇴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 내부에서는 경제적인 문제에서의 실수는 용서되지만 정치적인 문제, 특히 당의 권력체제에 대한 도전이나 최고위층(정치국 이상) 또는 세력들 간의 합의를 지키지 않을 때에는 핵심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형성되었다.

    쟝쩌민의 권력에 도전했던 천시통과 후진타오에게 도전했던 쟝쩌민의 유력한 후계자 천량위 그리고 후진타오와 차기 총서기로 내정된 시진핑을 상대로 모반을 꾀했던 태자당의 유력주자 보시라이와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정법위 서기였던 조우용캉이 실각하게 된 원인은 모두 정치적으로 당의 최고 지도부에 대한 도전 때문이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절대 권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각 세력 간의 경쟁 그리고 경경 이후에 합의된 구도에 대한 존중이 상호 간에 요구되었으며 이에 대한 도전은 용납되지 않았다.

    동시에 경쟁 과정에서 자파 세력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몇몇 내규들이 합의되었다. 그 중 중요한 것이 당 총서기의 10년 재임 규정과 각 직급에 대한 연령제한 규정 및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합의제, 그리고 중앙위원회의 실질적 업무 확대이다.

    국가주석, 전인대 위원장 국무원 총리 등 모든 주요 직책이 임기가 규정(5년 임기에 재임 허용해 10년)되어 있는데 당의 총서기는 임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그러나 쟝쩌민(1989년의 천안문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전임자 자오즈양이 중도에 퇴진하면서 13년 재임)과 후진타오를 거치면서 당 총서기의 10년 재임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런 규칙에 의해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당 총서기에 올랐으며, 이미 시진핑 이후 차기 최고 지도부의 후보자(소위 말하는 중국공산당의 6세대 지도자)들이 정치국에 진입했는데, 그들이 바로 신임 광동성 서기 후춘화(胡春华)와 총칭시 서기 순정차이(孙政才)이다.

    정치국원과 중앙위원 그리고 각 부처의 부장(장관) 급 관리들은 이미 직급에 따른 연령제한이 규정되어 있었다. 정치국원은 65세 중앙위원과 부장급은 일반적으로 만 63세를 초과한 사람들은 이들 직책에 임명되지 못했다. 그러나 당의 최고 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몇 차례의 합의를 통해 현재는 만 67세 이상은 새롭게 정치국상무위원회에 진입할 수 없게 되었다(중국식 표현에 의하면 七上八下).

    장쩌민을 거쳐 후진타오에 이르면서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포함한 정치국 전체회의의 토론과 합의에 의한 주요 의사결정이 정착되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의 규정상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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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협 부주석에 대한 득표 현황표

    5년 마다 개최되는 당의 전국대표대회에서 선출되는 중앙위원회는 형식적으로는 당의 최고 권력기구이지만, 오랫동안 당의 최고 지도부에 의해 각 세력 간의 합의에 따라 선출되었으며, 당 지도부의 결정을 그대로 추인하는 고무도장에 지나지 않았었다.

    물론 여전히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는 매년 가을 정기적으로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개최해 당의 중요한 정책들에 대해 토론하고 또 정책적 건의를 하는 등 실질적인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또 다른 변화는 각종 선거 결과에 대한 공개이다. 과거에는 각종 선거, 예를 들면 중앙위원이나 정치국 및 각종 정구기구의 책임자들에 대한 선거 결과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는데, 최근에 들어서는 임명에 대한 찬성, 반대 및 기권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가 공개되면서 최고 지도부에서 임명한 간부들에 대한 당 중앙위원 및 중견 간부들의 찬반 투표를 통한 비판까지 허용되고 있다.(국가부주석과 전인대 및 정협의 부위원장 선거 결과의 공개 등이 대표적인 사례)

    최근의 선거 결과를 보면 평판이 그다지 좋지 못한 간부들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반대표가 쏟아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20년간의 중국정치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후진타오가 모든 권력을 한꺼번에 내려놓은 사실이다.

    10년 만에 진행된 이번 권력교체에서 후진타오는 수 십 년간의 전례를 깨트리고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뿐 아니라 중앙군사위원회(이하 군사위)주석 직까지 포함한 모든 권력을 자신의 후임인 시진핑에게 넘겨주었다.

    마오쩌뚱 이후 떵샤오핑과 쟝쩌민은 당과 국가의 최고 직책을 후임에게 넘겨주면서도 중국에서 당 이상으로 중요한 힘을 갖고 있는 당의 군사위 주석 직은 일정기간 유지하면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후진타오 역시 전임자들처럼 일정기간 군사위 주석 직을 유지한 채 수렴청정 할 수 있었지만,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서 당 원로들이 은퇴 후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던 중국정치의 폐습을 중단시키고 중국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서구의 잣대로 보자면 우습고 더디기도 하겠지만 현재 중국공산당과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으며 중국정치의 점진적인 변화를 예고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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