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와 정의를 위해
    스스로 감옥에 간 버밍햄의 십대들
    [책소개]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신시아 Y. 레빈슨/ 낮은산)
        2013년 03월 31일 11: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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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어리지만, 아이들이라고 해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어렸을 때 어른들의 문제로만 보였던 일에 뛰어들었던 거잖아요.
    당시 상황이 바뀐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야말로
    우리가 청소년이었다는 사실 아닌가요”

    자유와 정의를 위해 스스로 감옥에 간 버밍햄의 십대들

    1963년 5월. 앨라배마 주 버밍햄 시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인종 분리 정책과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종 차별이 심했던 버밍햄 시에서 비폭력 시위를 통해 감옥을 가득 채우라는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의 가르침에 따라 인종 문제를 개선하려 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생명과 직장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저항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오드리, 워시, 제임스, 아네타 같은 어린아이와 4,000여 명의 십대 청소년들이 자유를 위해 감옥을 향한 행진을 벌였다.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이 책(원제: We’ve got a job)이 출간되기 전에는 미국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 행진을 계기로 인종 분리 정책 폐지가 추진되고, 수천 명의 다른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신시아 레빈슨은 광범위한 조사 및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 네 명과의 집중적인 인터뷰를 통해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시선으로 버밍햄 시 청소년 행진 사건을 생생하게 재구성해냈다.

    불우이웃에게 보내려 준비한 장난감이 탐나 갈등하던 9살 오드리,
    학교 수업을 밥 먹듯 빼먹으며 문제를 일삼던 저돌적인 반항아 14살 워시,
    의사 아버지를 둔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모범생 15살 제임스,
    백인 학교에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던 16살 아네타……

    이 보통 아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눈떠가는 감동의 드라마를 직구로 던지는 책

    우리는 감옥

    1960년대 버밍햄, 흑인을 향한 증오로 들끓던 도시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1954년엔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을 통해 연방 법원이 공립학교의 흑백분리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1955년 몽고메리 시에서 로사 팍스 여사가 버스 뒷좌석에 앉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촉발되었고, 1956년 비로소 버스에서의 인종 차별이 불법이라는 선고를 받아냈다.

    하지만 1960년대 버밍햄의 흑인들은 여전히 백인들의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탄압과 억압을 받고 있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인종 통합을 이루려는 흑인들의 어떤 시도도 허용하지 않았고, 심지어 경찰의 3분의 1이 악명 높은 인종주의 집단 KKK의 단원이었다.

    자신들의 마을을 “바밍햄(Bombingham)”이라고 부를 정도로 빈번하게 폭탄 테러가 일어났지만 법조차 언제나 백인의 편에 섰다. 당시 미국 남부 여러 도시들이 여전히 흑백분리를 유지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버밍햄은 훨씬 많은 것을 강제했다.

    학교, 버스 좌석, 화장실, 식수대는 물론이고 각종 축제와 파티, 예배, 법정에서 증인이 맹세할 때 사용하는 성서, 식당 자리 등등 온갖 것에서 흑인과 백인은 분리되었다.

    심지어 매년 열리는 앨라배마 주 축제 기간에도 흑인은 ‘개의 입장이 허용된 목요일’에만 참석할 수 있었다. 백인들에게 흑인은 개와 동격이거나 그보다도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높고 두터운 인종 분리 장벽을 쌓은 이들이 특별히 더 악하거나 편견으로 가득 찬 백인들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실린 KKK 집회 현장 사진 속에서 흰 옷을 걸친 백인들의 얼굴은 너무나 선하고 온화해서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심지어 천진한 어린아이들까지 대동하고 있어 그 충격을 더한다.

    대부분 백인 아이들은 인종 우월주의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돌아볼 기회조차 없이 백인이 우월하다는 신념을 지닌 채 자랐으며, 실제로 자유를 향한 흑인들의 여정에 더 큰 걸림돌이 되는 것도 악랄하고 잔인한 폭도들이 아니라, 평범하고 온건한 일반 시민이었다. 킹은 “버밍햄 시의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잔인함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라고 통찰했다.

    이렇게 극심한 차별 속에서 버밍햄의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항해왔다. 하지만 그 대가로 한 집안의 가장이 일자리를 잃거나 체포되면 가족 전체가 경제적인 위협을 받아야만 했다.

    버밍햄의 교도소들을 가득 채움으로써 시 행정을 마비시키고 버밍햄의 실태를 미국 전역, 나아가 전 세계에 드러내려는 ‘프로젝트 C’의 중심에 청소년들이 서게 된 배경이다. 아이들이 감옥에 간다면 아버지는 계속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십대 영웅들이 변화하는 과정

    이 책의 저자 레빈슨은 1963년 당시 아홉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였던 청소년 네 명을 축으로 하여 버밍햄 시 청소년 행진의 역사를 탁월한 솜씨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평범한 어린아이들에 불과했던 이들이 어떻게 인권 운동에 눈 뜨고 선뜻 감옥행 시위에 참여하게 되는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네 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수천 명 청소년들은 마틴 루터 킹, 셔틀스워스 같은 당시 운동 지도자들의 연설을 들으며 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두려움 없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가장 어린 시위자였던 오드리는 자유를 향한 의지를 당당하게 실천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아네타는 머리카락이 뽑혀나갈 만큼 강력한 물대포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고 비폭력 시위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투

    쟁에 참여하는 것을 가장 꺼렸던 워시는 분노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바탕으로 ‘용기 있는 반항아’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제임스는 가장 처음 교회 밖으로 나온 시위자로서 자유를 얻기 위해 십대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던 네 소년소녀들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5월 2일 디데이 시위 현장으로 서서히 좁혀지는 구성 방식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마치 퍼즐조각 같은 시퀀스들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박진감 넘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1963년에 오드리, 워시, 제임스, 아네타처럼 십대 시절을 보낸 저자는 성인이 된 후 역사를 바꾼 청소년들의 시위행진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밍햄 사건을 조사하는 일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4년에 걸쳐 당시 시위 참가자들, 목격자들을 만나 심도 깊은 인터뷰를 나누고 방대한 자료를 찾아 읽은 뒤, 이 책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를 썼다.

    책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 외에도 1960년대 버밍햄에 살고 있던 수많은 이들의 증언과 회상이 나온다. 시위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 시위를 반대했던 사람들, 시위를 구경만 했던 사람들, 시위에 무관심했던 사람들…… 하나의 사건을 대하는 다양한 시선을 풍부하게 담음으로써 역사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으로 느끼게 한다.

    흑백 통합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백인들뿐만 아니라, 찬성했던 백인들, 미온적인 백인들의 목소리와 더불어 당시 사건을 바라보던 여러 미디어의 견해와 태도도 균형 있게 담았다. 한국어판에는 싣지 않았지만, 원 저작물 《We’ve got a job: The 1963 Birmingham Children’s March》에 보면 책에 등장하는 문장 하나하나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느 매체의 기사인지 인용 출처를 꼼꼼하게 밝히고 있어 저자의 완벽주의적인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책 구석구석에 등장하는 마틴 루서 킹, 셔틀스워스, 베벨 등 당시 운동 지도자들의 연설이나 대화 내용을 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들의 명연설들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크나큰 울림과 영감을 준다.

    저자 레빈슨은 ‘가능한 한 진실하게 기록하자’는 원칙하에 절제된 문장으로 ‘사실’인 동시에 ‘이야기’인 역사를 명확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글 솜씨, 적절히 선택한 사진, 꼼꼼한 참고 문건을 통해 훌륭하게 기록함으로써 뛰어난 논픽션 책에 요구되는 덕목을 두루 갖췄다.

    자유와 평등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버밍햄의 흑인들은 흑인 의사에게서 태어나, 흑인 선생에게 배웠고, 흑인 교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했으며, 흑인 이발사에게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사망하면 흑인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들의 세상은 이게 전부였다.

    “그게 뭐 어때서?”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흑인들 가운데서도 그런 삶이 불평등하다고 느끼지 못하거나, 아이들이 나설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흑인 성인들이 억압에 무뎌지고, 저항할 힘을 잃어가고 있던 그때, 버밍햄의 청소년들은 물대포가 쏟아지고, 사나운 개들이 달려들고, 폭탄이 터지는 곳으로 용감하게 나아갔다.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당연하고도 단순한 것이었다. 자유와 평등.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지만 역사의 어느 지점을 들춰봐도 이 당연한 명제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 예는 없었으며, 오늘에도 여전히 ‘사람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 있다.

    어쩌면 역사란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한 끝없는 싸움’으로 요약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밍햄의 청소년들은 이 지난하고도 위험한 싸움에 기꺼이 몸을 던져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들의 싸움은 그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한 싸움이 되었다.

    이들의 외침과 행동은 마침내 1964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을 이끌어냄으로써 인종, 피부색뿐만 아니라 종교, 성, 출신국가를 근거로 한 모든 차별이 철폐되었다. 그리고 1965년, 흑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투표권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결국 이것이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는 기적을 낳았다.

    오프라 윈프리, 타이거 우즈, 할리 베리, 비욘세, 오바마까지……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50년 전 버밍햄의 청소년들에게 크게 빚지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 역시 피땀 흘려 투쟁해온 이들이 남긴 것이다.

    버밍햄의 불의와 차별, 그리고 그것에 저항한 청소년들의 싸움은 먼 시간,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의에 맞서 싸운 그들의 행동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한편, 50년 전 버밍햄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증오와 분노로 들끓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싸움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진보는 한꺼번에,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의의 불씨는 빠른 속도로 번지지만, 정의의 불씨가 다른 곳까지 옮겨가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정의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를 읽는 것이 작은 동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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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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