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희망을 잃을 수 없다"
[책소개]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이젤딘 아부엘아이시/| 낮은산)
    2013년 03월 31일 11: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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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 상 가장 복잡하고 험난한 작은 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잠시 멈춘 때, 3개월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 있다. 그 남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곳은 그날 내가 찾아낼 수 있었던 곳 가운데 천국에는 가장 가까우면서 지옥과는 가장 먼 곳이었다. 가자 시티의 비참함으로부터 4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는 고적한 해변. 파도가 어제를 씻어 내고 내일을 향한 새 출발을 하듯 모래 위를 굴렀다. ……

우리가 살던 자발리아 시티의 소음과 혼돈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고 느꼈다. 날은 서늘했다. 12월의 하늘은 창백한 겨울 햇살에 흰빛이었고, 지중해는 선명한 푸른빛이었다. 파도와 함께 노니는 나의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즐거워 보였는데도, 나는 우리와 우리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비극이 그때보다 몇 곱절이나 커지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 이것은 나에게, 내 딸들에게, 그리고 가자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다.”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랑하는 세 딸과 조카를 잃은 팔레스타인 의사인 이젤딘 아부엘아이시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묻는다. “보복한들 내 딸들이 살아날까?” 그리고 이야기한다. “증오는 병이다. 증오라는 병은 치유와 평화를 가로막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수많은 폭력과 비극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고, 용서를 통해 불의에 대항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세 딸을 폭격으로 잃은 팔레스타인 의사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그 슬픔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저자가 증오를 버리고 평화와 공존을 택하는 절절한 이야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그 아픔과 여파에 대한 이야기는 뒤쪽 6장 〈공격받다〉 7장 〈참극의 여파〉에서 나오고, 나머지는 저자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는 언론을 통해, 몇몇 책이나 영화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관해 들어본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보다 막막한 곳,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의 나날들, 그 일상이란 정말 어떠할까?

증오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풀어내는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먹먹함, 그 부조리함, 혹은 어이없음에 몸서리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도대체 왜 이렇게 폭력적인, 일방적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절정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세 딸을 잃는 6장이지만, 그 참극 몇 달 전에 급성백혈병으로 아내를 잃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5장 〈잃다〉는 왜 우리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하루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폭력과 지배의 결과는 무엇인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급성백혈병으로 죽어 가는 아내가 몇 킬로미터 떨어진 병원에 있는데도, 검문과 검문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저자의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역시 답답함에 숨이 턱턱 막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몇 대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가자에서의 생활이 정상적이라면 2008년 8월 16일에 지역을 벗어나는 비행기를 타는 일이 간단했을 것이다. …… 하지만 우리의 삶은 정상이 아니었고,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은 팔레스타인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 2008년 여름에는 몰랐지만, 가자를 벗어나는 이 부자연스럽고 문제 많았던 여행은 여러 면에서 내 상상을 초월하는 파국의 시작이었다. …… 규칙은 규칙이었다. 나디아가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병원에서 점점 나빠져 가고 있다 해도, 출입사무소 문이 아침 7시 반에 열린다는 엄연한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

하지만 그건 지옥 같은 여정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악몽으로 되살아나고는 하는 경험이다. …… 나는 직원들에게 대체 왜 자꾸 지체되는지 알 수 있느냐고 애원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의사이고, 이스라엘의 병원에서 일하며, 아내가 위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로지 셰바 병원에 어서 가기 위해 24시간 이상을 뜬눈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기다리시오.’”

‘세 딸을 폭격으로 잃’고도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니 동의하기 힘든 독자도 많을 것이다. 의아해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혹은 과연 진심인지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한다.

“나를 보고 장밋빛 색안경을 끼고 있다고,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잃을 수 없다. 난산 중인 산모를 도울 때, 출혈이 심한 산모를 지혈할 때, 낫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대할 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두 민족 간의 다툼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나 역시 다른 누구하고도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이다. 우리는 본래 그렇게 남들과 어울려 살게 되어 있는 존재이다. 분리와 차별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너무나 소중한 딸들과 조카를 잃었다. 중동 지역의 고질병과도 같은 보복을 한다 해도 그들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다. 그런 일을 겪고서 의분을 느낄 필요는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깨워 주고 변화를 일으키게 자극해 주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증오에 휩싸이지는 말아야 한다. 복수와 증오를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지혜를 쫓아 버리고, 슬픔을 키우며, 갈등을 연장시킨다. 영혼을 말라 죽게 만드는 참극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면, 60년 동안 우리를 갈라놓은 위태로운 분단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 이제 이젤딘 아부엘아이시의 자전적 에세이를 따라서, 폭력과 증오, 지배의 결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법은 무엇인지 가슴 속에 깊은 질문을 남겨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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