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에 맞서 통쾌한 일침
짜릿하고도 통렬한 풍자 소설
[책소개] 『나는 꽃 도둑이다』(이시백/ 한겨레출판)
    2013년 03월 31일 11: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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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의 벼룩 같은 인생들, 부당한 세상에 통쾌한 풍자를 날리다

능청스런 해학과 맛깔 나는 사투리를 구사하며 ‘제2의 이문구’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 이시백이 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나는 꽃 도둑이다》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현재 서울 한복판 청계천을 배경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을 비춘다. 작가는 청계천 장바닥 사람들의 삶을 통해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생존’만을 목표로 무작정 앞만 보고 서로에게 등을 떠밀려 가는 약육강식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나는 꽃 도둑이다》는 개발과 욕망에 취한 대한민국에서 그저 먹고살자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천변 사람들의 삶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청계천을 덮었다 엎었다 하는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휘말리며 “덮개를 씌우든, 벗겨내든 언제나 쫓기고 몰리는” 없는 인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작가는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 온 불법 노동자와 탈북자,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들, 멀쩡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 등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두루 살피며 우리들의 삶의 풍경을 완성해간다.

나는 꽃도둑

한 장소(경찰서)에서 천변 명판이 없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도둑을 찾는 과정 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그리는 《나는 꽃 도둑이다》는 4대강, 광우병, 촛불 시위, G20, FTA, 청계천 복원 등 현실 사회를 성실히 풍자하면서 걸쭉한 입담을 뽐내는 생기발랄한 소설이다. 수시로 터지는 웃음과 동시에, 작가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의 두 얼굴을 마주하다

《나는 꽃 도둑이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에 몰두한다. 그 속에서 작가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를 착취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을 포착한다.

김치 공장 공장장인 명식은 도시락을 싸고 다니겠으니 식대를 달라고 공장에 요구했다가, 오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사장의 대꾸에 풀이 죽는다.

‘먹도날드 분식’을 하고 있는 명식의 아내는 그런 김치 공장 사장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다가도 자신이 부리는 종업원 영식 엄마에게는 너나없이 굶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며 윽박지른다. 서울광장에서 외쳐대는 시위대의 외침이 세상을 지배하는 부자들의 논리 그대로 약자의 입을 통해 왜곡되는 현실의 반영이다.

“배지를 쫄쫄 굶겨야 혀. 시방 나라 경제가 워찌 돌아간다는 소리도 듣지 못혔나. 애덜 돌반지꺼정 빼다가 나라 살린 지가 월매나 되었다고 파업이여? 가뜩이나 불경기에 영업허는 사람들은 밤잠을 제대루 못 자가며 고심허는디, 다달이 따박따박 봉급에 밥값에 차 몰구 댕기는 지름값꺼정 챙겨 받구, 때마다 보너스루 떡값꺼정 타먹으면서 뭘 워쩌라구 심심허믄 빨갱이덜츠럼 대가리에 뻘건 띠를 두르구 거리루 나서냔 말이여.”(p.31-32)

환경미화원 보조로 일하는 심씨는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온 삶이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서는 밑바닥을 벗어나기 힘들다. 벼룩시장 골목에서 좌판을 벌이고 헌 옷 장사를 하던 그에게 청계천 복원 공사는 날벼락이었다.

당장 끼니를 이을 방도가 막막하던 차에 ‘만물상회’ 황 회장의 소개로 그나마 일당 5만 원의 환경미화원 보조로 청계천 청소를 맡게 된 것이다. 그에게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세상의 잣대는 화를 치밀게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계급사회 안에서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회의 시선이 심씨를 숨 막히게 한다.

그로 말하자면 부모 잘못 만나, 남들이 놀이 삼아 다닌다는 대학도 못 가고, 등 기대고 일어설 밑천이 없어 변변한 장사조차 벌이지 못했고, 자기 집 가진 이들이 남는 돈으로 우르르 몰려가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아파트값이 오르면 그걸 세를 주어 분당에 아파트를 사들이고, 분당이 오르면 다시 세를 주어 수지에 사고, 그렇게 앉아서 눈덩이 굴리듯 돈을 불리지 못한 죄밖에 없었다. 그것도 잘못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해서 지질하게 산다는 말만은 차마 앉아서 들을 수가 없었다.(p.89)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윤리의 부재는 자신의 친구 딸 경순이를 키쓰방에서 마주치고도 서비스를 받는 이발사 재록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누구 하나 바르게 살려고 하지 않는 세상에서, 앞장 서 세상을 바꾸려고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자 하는 이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그런 민중은 더 이상 똘똘 뭉치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정신으로 파출소에서 풀려난 청심회 계원들은 하루하루 살아내기 힘든 일상 속으로 순식간에 파묻힌다.

졸졸졸 흐르는 개천에 발을 담그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과 눈으로 보는 ‘태평성세’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결말에 이르러, 작가는 뭉칠 줄 모르는 민중들에게 세상을 바꿀 힘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꼬집는다.

생동하는 언어로 부당한 권력을 눙치는 이시백의 소설 세계

“여그서 채이구 저그서 쫓겨난 것들이 꾸정물처럼 떠내려와 살던 청계천에 본토가 워디 있구, 펼쳐놓을 족보가 워디 있간디? 애견 센터 갱아지 족보라믄 모를까.”(p.208)

“애국허지 말그래이. 백성 알기럴 갈빗집 빼박이쯤으로 아는 나라에 미쳤다꼬 충성허고 애국헐 끼가.”(p.245)

이시백 작가의 작품에서 주요한 특징은 ‘구술성’이다. 사멸해가는 토종 언어는 그가 그리는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하여 세계를 세밀하게 재구성한다.

이 책에서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런 구술성은 힘없는 민중들이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이시백 작가 특유의 구술성은 “민중의 생생한 생활 감각뿐 아니라 이것에 바탕을 둔 세계 인식을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요소(p.285)”로 하나의 작품 세계를 훌륭히 구축한다.

작가의 구술성은 국가의 제도적 권력의 틈새에 균열을 냄으로써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조소가 동반된 비판적 풍자의 길을 낸다.

국가 권력의 강제성을 통해 민중의 일상을 감시하고자 한 진술서가 오히려 민중의 일상의 감각을 떠받치는 구술성에 의해 통렬히 비판을 받는 이야기로 전도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당한 국가 권력이 민중의 구술성의 신명으로 전복되는 통쾌함에 짜릿함을 맛본다.(p.285-286)

《나는 꽃 도둑이다》는 보이지 않는 국가의 시스템 안에서 민중들은 여전히 속을 수밖에 없는 뼈아픈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는 시종일관 유쾌하고도 능청스럽게 유머를 구사한다. 가장 힘없고 기댈 곳 없는 이들에게 웃음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힘이라는 것을 충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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