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술
[메모리딩의 힘-13] '마음'은 전파성이 강하다
    2013년 03월 29일 01:41 오후

Print Friendly

사마천이 가르쳐준 마음의 기술

사마천은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서 중 하나인 <사기(史記)>를 썼다. 그 중에서도 백미로 알려진 <사기열전>은 <백이열전>으로부터 시작한다.

백이열전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했을 때 고죽국의 왕족인 백이와 숙제가 “반역자의 녹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하고 수양산에서 고사리 따 먹으면서 결국 굶어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다. 백이와 대비되는 인물로 도척이 나오는데, 도척은 수천 명을 끌고 다니면서 사람을 쉽게 죽이고 내장을 꺼내 먹을 정도로 잔인한 짓을 일삼은 인물이다.

사마천은 이 대목에서 필생의 질문을 하나 던진다. 백이는 몸을 닦고 수양을 닦아도 단명하고, 도척은 천하의 악질이면서 천수를 누렸을까? 하늘은 있는가, 하늘은 과연 옳은가? 착한 일을 하면 과연 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가? 그럼 왜 도척은 벌을 안 받았는가.

백이와 숙제

이것은 사마천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절박한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는 한나라 무제 시절이었는데, 이릉이라는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참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릉 장군은 한나라 북쪽을 괴롭히던 흉노라는 오랑캐와 싸우다가 적진 깊숙이 들어갔고, 흉노족에게 포위돼 중과부적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를 두고 간신과 호사가 신하들은 이릉을 비난했지만, 사정을 다 알고 있었던 사마천은 이릉의 처지를 간곡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사마천의 태도에 발끈한 무제는 사마천에게 당시 사형에 버금가는 중형인 궁형(거세형)을 내린다. 사마천이 불명예를 무릅쓰고 목숨을 연명한 까닭은 <사기>를 쓰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사기열전>의 서두에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마천이 스스로 마지막 편인 <태사공 자서>에서 답한다. 한 가지 질문을 평생 안고 있었다는 뜻이다.

“옛날 서백(주나라 문왕)은 유리에 갇혔기 때문에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림으로써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여람(여씨춘추)>를 전했고, 한비는 진나라에 갇혀 <세난>, <고분> 두 편을 남겼다. <시> 300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인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히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 것이다.”

– 태사공 자서 (사기열전 마지막 부분)

사마천은 자신의 불행이 착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 것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현실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저 마음을 다해서 마음을 얻으면 그뿐이다.

체험, 마음의 현장!

2011년의 일이다. 일본에서 처형네 식구가 우리 집에 놀러와 한여름을 보냈는데, 네 살배기 조카 때문에 애간장이 탔다. 조카는 새벽마다 일어나 울었다. 엄마가 달래도 계속 울고, 무슨 수를 써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며칠 내내 새벽마다 우는 통에 조카 엄마는 거의 녹초가 되고 말았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우는 조카가 괴로울 것 같았다. 그날 새벽도 어김없이 우는 조카를 안아주었다. 조카를 안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조카의 마음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조카를 안고 창가로 갔다. 창으로 여름 밤공기와 연한 바람이 불었는데, 덕분에 조카의 울음이 조금 잦아드는 듯했다.

그 때 문득 조카가 더워서 더 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부채를 가져다가 열심히 부쳐 주었다. 그때부터 조카는 편안하게 잠들었다. 이 일로 한 동안은 편안한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다. 만약 조카의 울음 때문에 시끄럽다는 마음이 강했더라면 아마도 방법을 알아내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조카가 되어보기’를 터득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마이스터고등학생 대상 ‘인성 강의’도 마음의 기술을 써서 효과를 본 사례다. 주로 취업이 확정된 학생들이나 취업을 계획하는 학생들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동양고전과 인성을 버무려서 강의하는데, 주제가 주제인 만큼 뭔가 재미난 게 필요했다. 어쩌면 나와 학생들이 평생 한번 만날까말까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강의가 재미 없다면 그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셈이니 여간 아깝지가 않다. 처음에는 연예인 사진과 인기 개그 프로그램의 개인기를 총 동원해서 재미 요소를 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강의가 끝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여론조사를 했더니 학생들은 차갑게 “정말 재미없었고 지루했어요. 잠 참느라 혼났어요!”라는 솔직한 반응을 주었다.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민폐를 끼쳐서 미안했다. 다음날로 예정된 다른 강의는 처음부터 방식을 뜯어고쳤다.

아이들이 회사에서 겪게 되는 실제 사례를 10가지 찾아서 담았고, 모둠별 대항전 형식의 놀이 방식을 덧붙였다. 1등을 한 모둠에게는 아이스크림 패밀리 사이즈 쿠폰을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그 강의도 한계에 부딪혔다. 앞서 진행하는 1시간 강의가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다시 강의 방식을 뜯어 고쳤다.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하는 팀별 대항전을 먼저 시작하고, 아이들이 선택한 주제에 맞는 내용만 골라서 강의를 했다. 아이들이 만족감을 표시했다. 어떤 친구는 문자메시지로 강의가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이 강의 사례는 아이디어를 짜내고 피드백을 반영한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을 이뤄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그 시작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즉, 평생 한번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똑똑한 기획이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이 간절하지 않으면 중심을 잡기 어렵다. 마음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마음의 기술’이다.

마음 2012

2012년 여름 동안 노원의 어머니들과 함께 6주 동안 메모리딩 독서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상태인 데다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준비했던 자료를 모두 치워버리고 ‘마음의 기술’을 발휘했다.

일단 전체 강의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하고 어머니들의 고민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준비된 강의안을 모두 버리기로 결정한 것도 일종의 ‘마음 씀’에서 나왔는데, 엄마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자신과 아이를 간단히 소개하고 아이의 독서 스타일이나 단점, 원하는 점 등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수업의 시작이었다. 즉, “엄마의 마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준비된 메모리딩과 독서놀이 프로그램 외에 강의의 상당 부분은 엄마들의 마음에 맞게 채워졌다. 이 부분에 총력을 기울이다시피 했는데, 그 까닭은 아이들에게 이 마음이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마들에게 ‘수용’과 ‘경청’을 이야기해도, 실제 상황에서 엄마가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의 말을 듣고, 여기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엄마의 몸과 마음에 이런 흔적이 남아서 아이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마음의 신비한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음 씀’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 엄마들은 서로 마음을 나누고,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의견이 오가는 과정에서 상호 치유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마음이 통하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겪는 문제를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교 3학년 엄마는 크게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전해진 마음은 일상생활에서 실천되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가 그렸던 가장 이상적인 장면은 엄마들이 마음의 이야기를 터놓고 하고, 강사인 나는 마치 서기처럼 엄마들의 말을 기록하고 간단한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바로 내가 생각하는 그림대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이 마음은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출근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번 하는 그 수업에만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마음은 전파성이 강하다.

마음의 기술을 가족과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엄마는 지혜로운 엄마다. 아이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마음’이 공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공부도 하고, 마음이 일도 하고, 마음이 돈도 벌어 오고 아이도 키운다. 그 마음이 무엇일까 고민하면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온다. 아이들은 마음이 맑다. 장난꾸러기도 마음이 맑다. 아이의 맑은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엄마 역시 마음을 맑게, 가지런히 한 상태에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마음의 기술’을 완벽하게 숙달했다고 할 수 있다.

필자소개
오승주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