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이 걸었던 50년의 시간
    [기고]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최연혁)을 읽고
        2013년 03월 29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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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내내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부럽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스웨덴 쇠데르턴 대학 정치학과의 최연혁 교수가 일상에서 만난 스웨덴 사람들과 또 따로 인터뷰한 정치인들과 나눈 대화를 기본으로 하여 썼다. 그래서 이 책은 관찰자의 생각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스웨덴 사람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스웨덴의 평균 소득세는 약 31%이다. 최고로 높은 세율을 내는 사람은 60%를 내고, 가장 낮은 세율도 29%다. 국내 총생산의 세금 부담률은 47%로 한국의 25%보다 거의 배가 많다. 그런데도 그들은 복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응답한다. 강한 복지가 스웨덴이 성장한 비결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이 사회는 투명하다. 23년을 총리로 재임했던 타게 에를란데르라는 존경받는 정치인이 있다. 매주 목요일마다 재계의 주요 인사와 노조 대표들을 만찬에 초대해 꾸준히 대화를 하면서 상생의 정치를 폈던 사람이다.

    그가 1969년 총리직을 내려놓았을 때 정작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살 집 한 채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모든 국민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민당은 고민한 결과 스톡홀름 외곽 사민당 청년 연수원이 있는 봄메쉬빅에 별장을 지어 주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고된 직업은 국회의원이다. 의원 1인당 임기 내 평균 입법수가 87개에 이른다. 4년 임기 동안 총 437개의 법안을 발의한 기록도 있다. 그런데 보좌관 한 명 없다. 밤 새 공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냉정하다. 스톡홀름에 거주하는 의원들은 버스나 전철을 타고 출근하게 되어 있다. 간혹 바쁜 일이 있어 택시를 탔다가는 곧바로 공금유용으로 경고를 받는다. 그러니 4년 임기가 끝나면 국회의원 이직률이 평균 30%나 된다.

    이 나라의 청년들은 미래에 낙관적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가가 존재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보호하고 있는 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진출하고 전 세계를 누빈다. 그들은 몇 개의 외국어에 능통하기에 언어 장벽도 없다. 청년들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한다. 사회가 그 시도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스웨덴은 척박한 환경의 가난한 나라였다. 1860년부터 1930년까지 잘살아보겠다고 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간 사람들이 150만 가까이 되었다. 1900년 초 인구가 450만 정도였으니,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이민 간 것이다.

    그런 나라가 변하게 된 계기는 역사적으로 가슴 아픈 사태를 겪고 나서였다. 1931년 오달렌 사태 때 파업 행진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군대가 총을 발포해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력으로 사회 전체의 희생이 더 커질 수 있는 위험한 시기였다.

    이 때 사민당은 더 이상의 폭력은 스웨덴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며 정부와 시위대에 호소했다. 이 호소가 힘을 얻어 정부와 노조가 자제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오달렌 사태 후 중도 우익 정당들이 실권하고, 1932년 선거에서 사민당이 승리하였다. 이후 사민당은 44년간 집권하면서 스웨덴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938년 스웨덴 근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세바덴 협약이 체결되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사측은 고용 안정과 경제발전에 상응하는 임금인상과 노동환경의 개선을 약속하였다. 이후 스웨덴은 안정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사회의 갈등해소를 위한 첫 단추는 노조가 먼저 채웠다. 1957년 연대임금제가 시행되었다. 금속 노조의 높은 임금은 동결 수준에 가까웠고, 대신 중소기업체와 비정규직 노조원들에게 임금 인상이 집중되었다.

    이러한 노조의 노력은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고, 1970년 이후 기업들이 고용주세 도입으로 사회기금의 40%를 담당하게끔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70년대 노조에서 회사 수익의 20%를 임노동자기금으로 조성해 달라고 한 요구는 최종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 기금이 축적될 경우 언젠가는 자본금을 초과하게 되어 회사의 소유권이 노동자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을 우려한 사용자들의 극렬한 반대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사간의 갈등이 커졌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서 노사협의체제가 다시 가동되면서 생산성이 다시 세계를 선도하기 시작하였다.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이 대한민국의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맞는 이상향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하다.

    그러나 그의 책 제목에서 보이듯이 스웨덴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미래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의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정치’에 의해서 가능했다는 점이 우리가 스웨덴을 다시 보게 되는 지점이다. 스웨덴이 걸었던 50년의 세월을 왜 우리는 걷지 못하겠는가.

    필자소개
    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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