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과 민주당,
    과연 자격심사할 '자격' 있나
    [기자눈깔] 다시 짚어보는 '통합진보당 사태'의 성격과 의미
        2013년 03월 27일 02: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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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를 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김재연, 이석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발의했다.

    2012년 4.11 총선 비례대표 당내 경선에서 부정선거 혐의가 있었다며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는 비례대표 후보자의 선정과 그 순위의 확정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며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는 것이 양당이 자격심사를 발의한 공식적 이유이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비례대표를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해왔다. 전략공천 대상자도 있지만 순위 경쟁을 통해 후보를 공천하는, 당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진성당원제도의 문화이다.

    여기서 특정 정파들간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위법적인 형태가 없었더라도 ‘조직 동원’ 형태의 정파 투표 문제는 이전부터도 계속 지적돼왔다. 이는 비단 통진당이나 경기동부만의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검찰 수사 발표는 김재연, 이석기 의원 뿐만 아니라 국민참여당계와 인천연합계 등 특정 정파의 부정선거 혐의도 밝혀냈다.

    당시 인천연합계인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윤금순씨가 사퇴했던 이유도 총체적 부정선거의 문제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천연합계와 국민참여계 등은 부정선거를 인정하며 비례대표 후보 전원이 사퇴했다.

    또한 나머지 비례대표 당선자 및 경선 후보자들의 사퇴를 촉구했으나 김재연, 이석기 의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당기위 제명 절차를 거쳤지만 최종적으로는 의원단 총회에서 부결되었고 그 파행의 결론은 분당으로 이어진 것이다.

    통진당 사태의 본질, 김재연-이석기 아니라 정파패권주의

    얼마 전 모 일간지의 선임기자가 통진당 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그이는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사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의 논란은 두 의원이 ‘정치적 책임’을 거부했기 때문에 더욱 커졌던 것이지 두 의원이 부정선거의 ‘직접적 법률적 책임’이 있다고 해서 불거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부정경선을 제기했다가 오히려 구속되거나 기소된 사람들이 어느 계파였느냐, 어느 계파가 많았냐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구속기소됐던 그 사람들마저도 부정경선을 인정하고 자진사퇴했던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해당 일간지의 기자는 김재연, 이석기 후보가 기소되지 않고, 검찰 수사 결과 구속된 3인의 비례 후보가 비경기동부였다는 이유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두 의원이 부정선거에 직접 가담했는지 여부는 검찰의 ‘표적 수사’의 일환이었지, 진보정치 영역에서는 두 의원의 직접 가담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파 패권주의의 문제가 핵심이었고, 그런 퇴행적 문화와 그 결과로서 벌어진 총체적 부정부실선거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과 반성의 문제였다. 그 두 의원이나 다른 누군가의 직접 가담 여부는 당시 언론에서도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니었다.

    두 의원만 부정선거의 공적으로 지목했다는 반발은 당시 경기동부의 정파적 반발이었을 뿐이다. 진상조사보고서는 1, 2차 모두 경기동부, 인천연합, 참여계, 통합연대계 모든 정파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총체적 부실 부정 선거’였다고 결론을 내렸던 사안이다.

    그래서 핵심은 정파패권주의였으며, 해결방안으로 총체적 부정부실선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안고 경선후보자들의 전원 자진 사퇴하는 것이었다. 당시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몰락을 막기 위한 초강경 배수진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19대 개원 합의와 8월 국회 합의사항으로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밀어붙였고, 민주당은 이를 수용했다.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의 여야 야합은 이미 당내 책임있는 해결 과정을 무시한 채 진행됐던 일로, 다른 정당이 정략의 대상으로 삼은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 때문에 과거 통진당 사태가 왜곡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김 자격심사 발의, 합리적 상식적 법률적 근거는 있나

    두 의원이 직접적으로 부정경선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사법수사의 영역이다. 광범위한 부정경선의 정황이 포착됐더라도 이 때문에 김재연, 이석기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당선됐다고 확정할 수도 없다.

    나머지 비례 후보들이 사퇴한 이유는 각 정파간의 광범위한 부정경선 그 자체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내포했던 것이지, 직접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누군가는 관여했을 수 있겠지만 이는 밝혀내기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두 의원이 통진당 사태 당시 자진 사퇴에 동참하지 못한 것은 (특히 진보진영 내에서) 정치적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수 있지만, 이것이 국회에서 자격심사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고 타당하지도 않다.

    검찰 수사에서조차 두 의원의 직접 가담행위를 밝혀내지 못했는데도 국회에서 이를 다루겠다는 것은 아무리 공정한 심사과정을 거친다하더라도 공정성을 담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데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박범계 의원은 “두 의원이 직접 부정경선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과 부정경선이 당선에 영향을 미쳤는가는 다른 문제”라며 자격심사 과정에서 이를 밝혀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는 ‘부정선거가 당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를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면 두 의원의 자격은 박탈당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두 의원의 직접적인 행위가담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주 위험한 논리이다.

    ‘공천장사’ ‘간택공천’, 새누리당과 민주당에게 자격심사의 자격 있나?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할 ‘자격’이 있는지도 논쟁 지점이다.

    19대 총선에서 청년비례대표를 선출한 민주당 내에서도 조직 선거, 투표 조작 의혹 등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것이 사법부의 영역에서 판단되지 않았을 뿐, 심사 평가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탈락자들의 불만이 제기됐었다. 뿐만 아니라 16명의 최종후보 중 4명의 청년대표를 선출하는 모바일 및 인터넷 투표에서도 친지와 지인들을 동원해 투표해 구태 정치라는 비판도 있었다.

    새누리당은 뚜렷한 기준과 이유 없이 제왕적으로 ‘간택’하는 방식의 공천을 선택했다. 손수조 후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반 비례대표 또한 비례대표 후보가 확정되자 당안팎에서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뚜렷한 기준 없이 공천된 이들에 대해 밀실 공천이라며 계파간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갈등과 논란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오래된 전통(?)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 장향숙 전 의원이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 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의 선고를 받았다. 친노 성향의 인터넷방송 전 대표인 양경숙씨도 공천 댓가로 3명에게 40여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양씨는 이해찬 대표측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고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뿐만인가. 선거 때마다 지역에서 암암리에 선관위에 신고되지 않은 ‘검은 돈’이 뿌려진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자기표를 조직하기 위해 현금 다발이 돌아다니는 일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었다.

    만약 이런 이런 모든 의혹을 수사한다면 과연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선거과정을 거쳐 당선됐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계파, 학연, 지연으로 ‘간택 공천’되고, 당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현금 다발을 뿌리는 정치 행태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과연 있을까?

    최소한 당내 경선 과정을 열어 페이퍼 당원이 아닌 진성당원의 선택을 길을 열어줘 발생한 문제가, 공천 헌금, 간택 공천과 비교해 더 비민주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를 두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부정부실 경선 사태가 백번 천번 잘못된 일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지만, 부러 드러내놓고 사태를 해결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한 채, 자신들의 치부는 덮어둔 채, 겨 묻은 개를 나무라겠다는 태도는 우스울 따름이다.

    더불어 자격심사 제도는 대한민국 국회가 성립된 이후 딱 한번, 1957년 피선거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당선되었던 도진희 국회의원의 경우가 유일하다. 그 이후 60여년만에 다시 시도되는 것이 국회의원 자격심사 제도이다.

    자격심사와 별도로 국회의원을 제명하는 제도가 있다. 국회의원 제명에는 징계사유가 12가지로 국회법에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자격심사의 ‘자격’에 대한 규정은 없다. 피선거권 등의 법률적 자격에 대한 규정이라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 추진되는 이-김에 대한 ‘자격’심사가 그런 ‘자격’을 심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진보정의당,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

    진보정의당은 두 의원의 자격심사에 대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자격심사 자체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 반대를 공식화하고 있지 않다. 이는 태생적으로 두 의원의 제명이 부결된 이후 분당, 창당한 당인 탓일 것이다.

    하지만 진보정의당이 이 사태에 침묵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처음 자격심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현재의 진보정의당(당시 강기갑 혁신비대위)은 당내에서 민주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물론 그 당내 해결과정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당내 해결을 하지 못한 일부의 책임은 현재의 진보정의당에게도 있다.

    특히 새누리당이 자격심사를 빌미로 사상검증에 나서고 민주당이 이에 부화뇌동하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신매카시즘의 동조자로 오해될 수 있는 모습이다. 매카시즘의 독버섯에 침묵하는 것이 진보세력에게 자유일 수는 없다.

    소수정당이라는 이유로 자격을 박탈당하고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정치폭력에 ‘아니요’라고 외치지 못한다면 진보정치는 언제든지 검찰이나 보수양당의 폭력에 운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 이 같은 상황에 제동을 걸 가장 효과적인 집단은 진보정의당이다. 통진당 사태에 가장 많은 피를 흘렸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발언권이 있고 명분과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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