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권하는 사회, 불안한 자기 열중
[안녕? 페미니즘!] 함께 꾸었기에 풍요로운 세상을 기다리며
    2013년 03월 27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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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타강사의 드림 오프

베스트셀러 『드림온 Dream On』 의 작가이자 스타강사인 김미경의 성공을 이끈 것은 재능있는 입담으로 독자와 청자를 매혹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언니의 독설』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용 자기계발서로 김미경은 여성들의 라이프코치이자 멘토로 떠올랐다.

“네가 길라임이냐? 레알 세상에 현빈은 없어!”, “불쌍한 유부남 챙겨주다 너만 불쌍해져”, “제발 ‘종 발상’을 버려라”와 같은 통쾌한 독설과 지적질은 여성들에게 속 시원한 해방감을 준다.

물론 이런 재능은 그녀가 이 시대 독자와 청자가 갈구하는 자기계발 스토리의 한 표본이라는 점에서 빛난다. 증평 ‘촌년’이 회당 3천만 원짜리 스타강사가 되기까지의 열혈 도전기는 입신양명 성공 신화를 재현했기 때문이다.

김미경

김미경씨 모습(출처는 채널예스)

그런 그녀가 다름 아닌 논문표절 의혹을 샀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했다. 1998년 그녀의 첫 저서 『나는 IMF가 좋다』가 취업난으로 군대나 대학원을 선택하는 대학생들의 ‘도피행각’을 개탄하면서, “한국에서 석, 박사 따봤자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고 훈계한 대목 때문만은 아니다.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이후 김미경의 여러 베스트셀러를 관통하는 핵심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앞으로 평생직장 개념을 고수하며 복지부동하는 ‘제너럴리스트’는 도태되고, 성별이나 학벌과 관계없이 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페셜리스트’의 세상이 오리라는 건데, 이후 15년간 승승장구해온 그녀는 누구보다 ‘스페셜리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남자가 변하고, 여자가 변하고, 기업이 변하고, 세상살이가 변해서 좋다”던 IMF 이후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스펙용 학위 수집에 대한 열정이다.

학위논문이 학문적 성과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계발용 자격증으로 팔려나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이 학위 시장의 거대한 카르텔 구조가 아니라, 표적화된 개인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사회적 양심을 달래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우리가 새롭게 볼 것은 ‘스페셜리스트’도 학부 학력과, (김미경이 글과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듯이) 음대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으로 김미경이 잠시 드림 오프(dream off)하겠지만, 우리 역시 이 ‘드림온’의 열정을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기계발서에 매혹된 여성들

2000년대 중반 이후 자기계발서 열풍은 특히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대동소이한 내용임에도 수 십 만권씩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용 자기계발서라는 사실은 독자들의 소비 태도를 엿보게 한다. 여성들은 자기계발서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기 보다는 반복적인 자기 열중을 원한다.

물론 정보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안은영의 『여자생활백서』(2006)는 제모 후 관리법, 성형수술 후 주의할 점, 장소에 따른 쇼핑 노하우, 짝퉁 잘 사는 법, 은행 100퍼센트 활용하는 법 등 깨알같은 실속 정보를 준다. 이는 개성적인 라이프스타일과 현실적인 재태크 관리가 20-30대 여성들에게 중요한 화두임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여성용 자기계발서를 통해 독점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충분히 전문성을 갖춘 것도 아니다.

자기계발서의 정보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여성에게 고유한 성공의 난관을 일러준다. 그 난관이란 변화하는 세계에 자신의 여성성을 어떻게 위치지우고, 관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소소한 ‘털 관리’에서부터 직장 동료와의 커뮤케이션 기술, ‘시월드’ 대처법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게 걸쳐 있다.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손쉬우면서도 구체적인 실천은 소비를 통해 구현된다. 속물성과 소비적 개인주의가 자기계발서에 공통적이면서도 여성용 자기계발서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까닭이다.

자신의 삶을 자산가치화하고, 주변 세계를 스스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업가형 인간을 독려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김미경의 말처럼 ‘자발적 생계부양자가 돼라’며 다그침 받는다. 사랑, 결혼, 일의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꿈을 꾸고 실현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여성에게 놓인 어떤 선택도 안전하지는 않다. 끊임없는 자기 투자에도 불구하고 외모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자산 가치화 하는데 성공하는 여성은 드물다. 임신과 양육 프로젝트는 리스크 예측과 관리가 어려우며, 일과 가족의 분산 투자는 여전히 성과가 비관적이다.

게다가 전통적인 여성성을 대체할 새로운 여성성의 규범은 파편화된 개인들 스스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압박은 여성들을 불안한 자기 열중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듯 여성용 자기계발서들의 공통적 주제의식은 남성들의 세계에서 여성성을 활용하고 쇄신하는 개인의 전략으로 요약된다.

물론 모든 저자들의 전략이 같은 것도, 한 저자에게서조차 일관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쁜 남자’와 사랑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고도 하면서, 애 돌봐줄 시어머니가 있는 남자가 최고라고도 한다. 여성성을 사용한 어리광은 금물이라고 조언하기도 하지만, 여성적 직감과 섬세함, 극단적으로는 유혹의 기술을 무기로 활용하라고도 한다. 여자들만의 수다 네트워크 대신 남성들의 ‘전우애’ 커뮤니티에 뛰어들라고 하면서도, 여성 후배와 동료를 품어 앉는 멘토가 되도록 성장하라고도 한다.

독자들은 결국 어떠한 전략도 위험부담이 있으며, 자신만의 협상력 개발과 증대만이 결론임을 발견하고 허무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계발서를 거듭해서 읽는 유용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안정이 아니라 변화를 선택해야 하며, 그 불안이야말로 성공의 발판이라는 저자들의 현실 투사적 확인에 안도하고, 자신의 욕망에 철저한 열정만이 성공의 엔진이라는 격려를 지속적인 ‘드림온’의 담금질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먹고 자란 자기계발서

이번에 문제가 된 김미경의 석사학위 논문이 ‘남녀평등 의식에 기반을 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의 효과성 분석’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미경의 성장과 여성용 자기계발서들의 성공에는 1990년대 이후 페미니즘운동의 제도적 성과와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지식이 투영되어 있다.

여성리더십 강의와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로 활약한 김미경은 예절교육이라는 명분하에 커피 타는 법만 가르치는 여성리더십 강의가 ‘범죄형 강의’라는 것을 깨닫고 여성을 주체로 두는 강의를 개발했노라 밝힌바 있다.

여성용 자기계발서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주체’, ‘자아’, ‘자기 결정’, ‘자기 실현’ 등의 담론은 페미니즘과 친화성을 갖는 것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여성학자 혹실드의 분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미국의 여성용 자기계발서들이 여성들에게 더 차가워지라(cooler)고 주문하고, 과거의 ‘남성적 규범’을 따를 것을 권유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1950년대 중산층 남성들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때까지 사랑을 지연시키라고 조언했던 것처럼, 여성들에게 사랑에 목메는 ‘여성적’ 관습에서 벗어나 성공과 경력에 오점이 되지 않도록 감정경영을 잘 하도록 조언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성이 변화하고, 변화해야하는 만큼 남성, 직장,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긴장을 혹실드는 ‘지연된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자기계발서들이 이 과정에서 남성을 ‘인간화(humanizing)’ 하기보다는 여성을 ‘자본화(capitalizing)’하는데 열중한다고 주장한다. 원자적 개인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게 세공된 근대적 남성성의 가치를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도모했지만,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성을 타자와 완전히 분리되고 고립된 것으로 표상하지도, 그 개인 여성의 이기적 욕망을 긍정하지도 않는다. 혹실드가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 정신이 되었듯이, 페미니즘이 친밀한(intimate) 삶의 상업화 정신이 되는데 사용되고 있다며, 이를 페미니즘 ‘납치(abduction)’라고 명명한 것도 이런 입장에서 일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계발서들이 페미니즘을 ‘납치’하여 오염시키고 있다는 이런 주장에 반쯤만 동의하고자 한다. 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여성들이 자기 열중과 도구적 인간관계가 아니라, 유대와 연대의 가치로 위로받을 수 있는 페미니즘의 힘 있는 ‘관계계발’ 언어가 아직 미흡하다는 반성 때문이다.

“현실은 사회 탓 남 탓만 해서는 바뀌는 게 없다는 거지. 사회가 바뀌길 기다릴래, 네가 바뀔래? 늘 사회는 내가 먼저 바뀌어야 바꿀 수 있어. 그거 기다리다간 할머니 돼 있을 거야.”

김미경이 『언니의 독설』에서 한 말이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할머니가 돼서라도, 함께 꾸었기에 풍요로운 세계를 향해 Dream On!

필자소개
필자들은 페미니즘 속 세상, 세상 속의 페미니즘이 일으키는 불화를 열광하고, 성찰하는 연구자들이다. 관계와 소통을 본격적으로 통찰하는 매혹적인 학문이자 사상으로서, 농익은 진리 주장에 머물러 있기보다 설익은 질문에 열려있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필자들의 관심사는 저마다 다르지만, 생계부터 정치적 안부까지를 함께 걱정하고 토론하는 생활공동체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각자의 사유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 엄혜진(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 연구원) 김원정(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윤보라(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이선형(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이 차례로 글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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