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프로스 사태, 어떻게 될 것인가?
        2013년 03월 25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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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만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국제 경제적 사건들이 극적으로 발생한 시간은 최근 들어 아마 없을 겁니다. 세계 경제 전체가 마치 2009년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다시 경험한 것처럼 보였고, 2011-12년 말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극적인 상황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는 유럽 변방의 소국, 키프로스라는 작은 섬나라가 있습니다. 17개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유로 통화권의 총생산 규모로 따질 때 0.5%도 되지 않는 이 작은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키프로스 은행권의 부실화와 그리스 정부에 대한 구제 금융 지원안

    이 의문들에 답을 하기 위해서 왜 키프로스 정부가 유럽연합 측에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키프로스 은행권은 2000년대 중반 꾸준한 해외 자본의 유입으로 성장세를 구가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말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해외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키프로스 은행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2012년 3월 그리스 정부에 대한 2차 구제 금융 지원 조치였습니다. 그리스에 대한 새로운 구제 금융 지원 조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었던 조항은 그리스 정부 채권 보유자들이 90%에 달하는 액면가를 손실 처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키프로스 은행들은 지난 4년 여 동안 지속되었던 남유럽, 특히 그리스의 재정 위기 때문에 그리스 기업가들과 개인들에게 대출을 해주었던 신용 대부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대출 손실금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그나마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자산 가운데 대부분 (그리스 정부 발행 국채)을 손실 처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2012년 5월 경) 키프로스 정부는 유럽연합 측에 긴급 구제 금융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키프로스 구제 금융 지원 협상 테이블에서 무슨 말들이 오갔는가?

    길고 긴 유예 기간을 뒤로 하고 올해에 접어들어서야 유럽연합 재무부 장관들은 키프로스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의 주요국 재무부 장관들은 브뤼셀에 모여 키프로스에 대한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방안을 놓고 열띤 논란을 벌입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대략 €17bn(170억유로) 정도의 구제 금융을 지원해 주기로 논의를 모았습니다. 물론 이 구제 금융 지원에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일련의 요구 조건들이 따라 붙었습니다. 첫 번째 요구 조건은 당연히 키프로스 정부의 재정 적자와 부채 규모를 줄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애초 이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올해 초를 기준으로 할 때 키프로스의 국내총생산 대비 145%에 달하는 정부 부채를 2016년까지 100%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급격한 구조 조정 정책들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 기한을 늘려 2020년까지 정부 부채 규모를 100%로 줄일 것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 부채 감축 목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추가적인 요구 조건을 내걸었지요. 그것은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이 구제 금융을 지원해 주는 대신 키프로스 정부가 자국의 은행 산업을 구조 조정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cyprus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는 키르로스의 위치

    그렇다면 키프로스 정부는 어떻게 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는 말일까요? <파이낸셜 타임즈>의 한 보도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은 키프로스가 자국의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예금에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10bn(100억유로)의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게끔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주장의 현실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당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유럽연합 관계자들 가운데 일부는 애초 이 방안에 반대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본 잠식이 심각한 키프로스 은행들의 예금에 세금을 부과하면, 대대적인 예금 대량 인출 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스페인 등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그들은 우려했습니다.

    이 방안 대신 유럽연합 협상 대표단은 퇴직연금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줄여서 그 돈으로 은행 산업 구조 조정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조달하게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3월 16일의 1차 구제 금융 안과 예금세 부과 조치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의 협상가들은 이 방안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임기응변의 조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거부했습니다. 이 같은 내부 논란 끝에 결국 국제통화기금이 강력하게 제안했던 안, 즉 일정한 규모의 예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는 안이 통과되었습니다.

    키프로스에 대한 구제 금융 협상이 이렇게 통과되는 데에는 독일 재무장관(Wolfgang Schääuble)과 네델란드 재무장관(Jeroen Dijsselbloem) 등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합니다. 이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협상 테이블에 앉은 다른 나라 재무장관들을 설득했고, 결국 국제통화기금의 안에 표를 던져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은행 예금 세금 부과안의 세부 내용을 둘러싸고도 커다란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과 세율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애초 키프로스 정부로 하여금 €100,000(십만유로) 이상의 예금 보유자에 한해 15.5%에 상당하는 세금을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고액의 예금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들, 특히 키프로스 은행 예금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 예금자들에게 피해가 집중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에 따른 파장과 러시아 정부와의 갈등을 우려한 키프로스 대통령은 만약 키프로스 정부가 예금세를 수용해야 한다면, 러시아 정부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100,000(십만유로) 이상의 예금에 대해서 배타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것이 아니라 그 이하의 소액 예금자들에게도 낮은 비율이나마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3월 16일 (토요일) 오후 트로이카와 키프로스의 대통령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Nicos Anastasiades)는 다음과 같은 구제 금융 지원 조건에 관해 합의를 하게 됩니다.

    *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은 키프로스 정부에게 €10bn(100억유로)의 구제 금융을 지원하고, 이 지원금을 자국의 은행 산업을 구조 조정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관리 감독한다.

    * 그 대신 키프로스 정부는 €100,000(십만유로) 이상의 예금에 대해서 9.9%의 세금을, 그 이하 액수의 예금에 대해서는 6.75%의 세금을 부과하여, 대략 €5.8 bn(58억유로) 정도의 구조 조정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 이와 더불어 키프로스 정부는 현재의 10%에 머물고 있는 기업 법인세를 올해 안에 12.5%로 올리고, 정부 보유 자산과 국영 기업들을 사유화한다.

    일괄 예금세 부과 조치에 따른 예상된 우려가 현실화되다

    그런데 키프로스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고통 분담형’(burden-sharing) 구제 금융 방안이 언론을 통해 발표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키프로스 대통령은 이 구제 금융 방안에 사인을 하고 이 방안에 대한 의회 인준 절차가 끝나는 3월 18일(월요일)까지 모든 은행의 정상적인 영업을 중단한다는 긴급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키프로스 시민들은 예금 자동 인출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현금을 빼내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현금인출기 앞에서 늘어선 사람들

    현금인출기 앞에서 늘어선 사람들

    이와 더불어 키프로스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키프로스 의회가 대통령이 굴욕적으로 받아온 구제 금융 안과 지원 조건들을 수용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지요.

    <파이낸셜 타임즈>와 <가디언> 그리고 <뉴욕 타임즈>와 같은 영미권의 신문들은 이 구제 금융 안이 은행 예금 대량 인출 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이것이 다시 키프로스 은행들의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며, 어쩌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지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은행들은 지급 불능을 선언하게 될 것이고, 순식간에 파산하여 키프로스 은행 산업 전체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사태가 이렇게 치닫게 되면 트로이카가 지원해 주기로 했던 €10bn(100억유로)의 구제 금융 액수만으로는 키프로스 은행 산업 전체를 제대로 구조조정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어느 순간 유럽연합 당국자들과 애초 이 안을 강요했던 독일과 네델란드 재무부 관계자들이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조만간 사태가 진정될 것이고 빠른 시일 안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 섞인 브리핑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상들도 앞을 다투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자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키프로스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에 불과하고, 여러분들의 은행 예금 자산은 안전합니다. 그러니 국민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시라’는 요지의 긴급 성명을 발표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주요 정부 당국자들의 진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융 시장은 심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국내적인 이유들 때문에 계속해서 최고치를 경신해 나가고 있는 미국의 다우존스 산업 지수를 제외하면(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른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지의 주가 지수들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지금도 지수들의 변동성이 몹시 증가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키프로스 은행들 가운데 자산 부채 규모로 따질 때 두 번째로 큰 인민은행(Popular Bank; Laiki)에 대한 지분 보유 정도가 높고, 다른 은행들에도 비교적 높은 비중으로 거액의 예금을 유치해 둔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기업과 개인들(2013년 1월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예금 보유고 €68bn(680억유로) 가운데 €20bn(200억유로) 가량으로 추정됨)이 노골적으로 트로이카의 이번 조치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번 구제금융 안이 ‘불공정하고 위험한’(unfair, unprofessional and dangerous) 조치라고 맹비난했습니다. 러시아 총리 디미트리 메드베제프도 “유럽연합이 은행 예금세를 매기는 것과 관련해서 단 한 번도 우리[러시아 정부]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이번 조치가 마치 “소비에트 시절 사유재산을 억압했던 [공산당 정부의] 조치”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차 구제금융 안의 부결과 난항이 계속되고 있는 협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설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키프로스 의회는 3월 19일(화요일) 대통령이 브뤼셀에서 받아온 구제금융 안에 대한 인준 여부를 묻는 표결 절차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극적이게도 키프로스 의회에서 이 구제 금융 안은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전체 56명의 의원들 가운데 총 36명이 반대 표를 던졌고, 이와 더불어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는 집권 중도 보수 정당 소속 19명의 의원들도 기권 표를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차 구제 금융 안이 부결되자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은 사임 의사까지 밝힌 바 있는 미칼리스 사리스(Michalis Sarris)키프로스 재무장관을 즉각 러시아에 파견했습니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이 트로이카와 새롭게 협상을 벌이는 동안 재무장관으로 하여금 러시아 측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하도록 한 것입니다. 만약 운이 좋다면 키프로스 정부는 이 양자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지원 조건을 이끌어 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미하일 사리스 재무장관은 러시아 당국자들과 만나 러시아 측이 트로이카의 구제 금융 안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금융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여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신 키프로스 정부는 키프로스 인근의 천연 해양 가스 매장지에 대한 독점 개발권을 러시아 측에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 제안에 이렇다 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요 신문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측이 왜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는지는 현재로서는 제대로 알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러시아 측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자 키프로스 정부는 다시 트로이카에 전적으로 매달려 보다 완화된 조건으로 구제 금융을 지원받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중앙은행은 키프로스 측에 3월 25 (월요일)일까지 새로운 구제 금융 협상을 매듭짓지 않으면 더 이상 키프로스 민간 은행에 대한 유동성 지원(Emergency Liquidity Assistance; ELA)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럽 중앙은행은 2011년 겨울과 2012년 봄 두 차례에 걸쳐 장기 자본 재확충 기금 운용이라는 이름으로 유럽판 양적 완화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유로 통화권 안의 민간 은행들이 정부 발행 채권 등의 자산을 담보물로 내걸고 유럽 중앙은행에서 저리로 유로화를 빌릴 수 있게 허용한 조치였습니다.

    이것은 키프로스 정부가 유럽연합 측에 구제 금융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한 이후 지금까지 지급 불능 선언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유럽 중앙은행이 3월 25일 이후부터는 키프로스 은행에 더 이상 유동성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결국 트로이카와의 협상을 질질 끌지 말고 애초 트로이카가 제안했던 안을 수용하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외적인 여건이 악화되자 파니코스 디미트리아데스(Panicos Demetriades) 키프로스 중앙은행장은 자국 은행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과 관련해서 새로운 안을 내놓습니다. 디미트리아데스 중앙은행장이 의회 보고를 통해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인민은행 (라이키)의 자산과 부채를 재정비하기 위해 이 은행을 둘로 쪼개는 방안을 처음으로 거론한 것입니다.

    그는 문제가 되는 이 은행을 상대적으로 건전한 자산을 보유한 은행(good bank)과 부실 자산을 떠않는 은행(bad bank)으로 나누고, 이 과정에서 예금 보호가 되지 않는 €100,000(십만유로) 이상의 거액 예금들, 따라서 은행의 입장에서는 부채가 되는 몫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3월 19일 트로이카의 구제 금융 안이 의회에서 부결된 직후의 일입니다.

    그러자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키프로스 정부의 이같은 자구 노력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여부를 알지 못하겠다’며, 키프로스 정부 대표단이 브뤼셀을 방문하는 대로 다시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후 3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은 독일과 네델란드 재무장관과 돌아가면서 줄곧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떤 협상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미국 동부시간 기준 3월 23일 밤)까지 양 측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적인 논란거리는 키프로스 정부가 자체적으로 구조 조정 기금을 조달하기 위해 과연 어느 수준에서 과세 여부를 결정하고 어떤 세율로 이 예금세를 부과할 것인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재까지 업데이트된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트로이카 측은 키프로스 정부에 키프로스 은행(Bank of Cyprus)에 수탁된 예금 가운데 €100,000(십만유로) 이상의 예금자들에 대해서 20%의 세금을 한차례 부과하고, 그 이외의 다른 모든 은행들이 보유한 예금에 4%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체 자금 조달 방안을 고려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방안들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안입니다. 이러한 방안이 거론되는 이유는 아마도 러시아 측의 반발을 어느 정도 무마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 때문에 애초 논의 대상이 되던 인민은행이 아니라 키프로스 은행으로 은행세 부과 대상을 바꾼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와 더불어 20%의 세금 부과안은 아마도 다소간의 징벌적인 성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애초의 15.5%의 세금 부과안에서 일주일도 채 안된 상황에서 갑자기 20%로 세율이 상향 조정될 수밖에 없는 엄밀한 경제적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최종적인 협상 내용이 무엇을 담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예금세 부과 대상 은행과 세율은 잠정 합의안의 문안이 언론에 공표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변화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2차 구제 금융 지원 안이 키프로스 의회를 통해 인준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요.

    외국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유럽 재무장관들은 유럽 현지 시각으로 3월 24일 (일요일) 오후 6시에 긴급 회의를 열고, 독일과 네델란드 재무장관의 주도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협상 내용에 대한 합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키프로스 대통령은 이렇게 합의문이 발표되는 즉시 그 안을 가지고 키프로스 의회가 표결에 부쳐줄 것을 요구할 것이구요.

    한편 유럽 중앙은행도 재무부 장관 주도의 협상 결과와는 무관하게, 키프로스 정부로 하여금 다음 주 초 은행들이 문을 열었을 때 해외로 자본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외적으로 자본 통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남유럽의 다른 나라로 대량 예금 인출 사태가 번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 차원의 긴급 유동성을 투입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키프로스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앞으로 키프로스와 유로 통화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일련의 사태들을 염두에 둘 때 키프로스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선택 지점은 결국, (1)유럽 통화권 안의 보수주의적 재무장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은행 예금세를 불가피하게 수용하거나, (2)이를 거부하다가 은행 예금에 대한 잠정 지급 불능을 선언하고 그 즉시 유로 통화권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는 것, 두 가지 중의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만약 키프로스 정부 당국자들이 애초 기대했던 대로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후자의 길을 택하더라도 키프로는 당분간 경제 체제의 급속한 붕괴를 경험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지금 키프로스가 후자의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은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키프로스 정부가 어떤 식으로건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대로 ‘은행세 부과와 정부 자산 매각을 통한 구조 조정 분담금 마련’이라는 애초의 구제 금융 지원 요구 조건을 그대로, 아니 더욱 불리한 조건에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거듭 말씀드리지만, 은행세 부과 대상 은행과 세금 부과 예금 기준 및 세율 조정과 관련된 세부 사항에서 다소간의 변화가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 경우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스페인 등이 지난 수년 동안 감내해온 긴축 위주의 가혹한 구조 조정의 또 다른 실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유럽 전역은 지극히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이성적인 근거도 없는 긴축 위주의 구조 조정 정책으로 말미암아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무조건 정부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맹목에 사로잡혀, 경제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공적 지출을 줄이고, 이것이 다시 심각한 불경기를 초래하며, 그 때문에 다시 정부의 세수가 줄어 정부의 재정 적자 규모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키프로스도, 결국 이렇게, 어리석은 유럽판 생체 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걸까요?

    * 이 글 이후 24일 밤(현지시간) 시작된 유로그룹 회의는 이 시각 현재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수용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그 전에 키프로스 정부와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채권단간의 구제금융 조건에 관한 협상이 잠정 합의가 도출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유럽연합의 한 소식통은 이번 협상에서 키프로스 최대 은행인 키프로스 은행의 10만유로 이상 예금에 대해 40%의 헤어컷(손실)을 부과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편집자>

     

    필자소개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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