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사람’ 함석헌의 본모습 그려
    [책소개] 『저항인 함석헌 평전』(김삼웅/ 현암사)
        2013년 03월 24일 1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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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알의 목소리를 듣고 전한 사람, 野人 함석헌 1901-1989

    1. 재임 기간 동안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해 “행복했다”고 밝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수행원 40여 명과 논현동 사저 근처의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들며 함석헌 선생의 시「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를 낭독해 화제가 되었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는 함석헌 선생의 시집 『수평선 너머』에 수록된 시로, 함석헌 선생이 젊은 날 평생의 지우 김교신의 죽음을 추도하며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대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은 대체 무슨 뜻으로 이 시를 낭독한 것일까?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가 그립고 아쉬워 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설령 그가 함석헌의 사상과 생애를 기리고 추모한 것이라면, 이 낭패감은 무엇일까? 함석헌 선생은 무어라 했을까?

    2. 최근 도봉구는 함석헌 선생이 말년을 지낸 쌍문동 옛집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 선정 지원비로 사들여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을 짓기로 하고, 올 하반기부터 공사를 시작해 내년 7월에 개관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함석헌 선생이 돌아가신 지 24년이 지난 옛집에는 그의 차남이 기거하며, 선생이 생전에 사용했던 방과 가재도구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선생이 집 앞마당에 심었던 보리수와 진달래 등이 오늘도 푸르른 데, 정작 함석헌 선생의 뜻과 생애가 잊혀져가는 터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3. 마침 함석헌기념사업회는 3월 20일 15시부터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강당 2층에서 ‘함석헌 선생 탄신 112주년 기념 강연회’를 개최한다.

    함석헌 선생이 7,80년대 수많은 시국 강연과 고전 강의를 했던 곳이라 뜻 깊은데, 이날의 강연 주제는 ‘한국의 종교, 함석헌의 종교’로 때마침 김경재 교수(한신대명예교수)가 ≪함석헌의 저항, 우상과의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고, 송기득 교수(전 목원대 교수, 《신학비평》 주간)가 ≪함석헌과 만남 그리고 1978년 대담≫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다.

    20세기 한국 사회의 증인,‘들사람’ 함석헌의 본모습을 그린 뜨거운 평전 

    함석헌은 20세기 한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다. 같은 시대는 물론 전후사를 통해 그만큼 폭넓은 지식과 학문을 두루 갖춘 사람이 또 누굴까.

    그는 종교ㆍ역사ㆍ철학ㆍ사상ㆍ교육ㆍ언론ㆍ민중ㆍ평화ㆍ비폭력ㆍ인권ㆍ민족ㆍ여성ㆍ시ㆍ아나키즘ㆍ퀘이커ㆍ세계사에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갖고 이것을 통섭하는 거대한 지식 체계, 학문 세계를 이루었다.

    함석헌은 교육가ㆍ사상가ㆍ시인ㆍ언론인ㆍ종교인ㆍ역사학자ㆍ민주화 운동 지도자ㆍ아나키스트 등 다양하게 불린다. 그렇듯 함석헌은 ‘어느 하나’ 가 아니라 이들 모든 분야를 넘나들고 포괄하는 ‘큰 그릇’이었다. 지은이는 함석헌의 본령(本領)을 서슴지 않고 ‘야인(野人)’, 즉 ‘들사람’ 정신이라 말한다. 함석헌의 역사관ㆍ교육관ㆍ민중관ㆍ언론관ㆍ종교관이 모두 야인정신에서 발원했으며 이는 순전한 저항정신으로 체화되었다고 말한다.

    함석헌

    지은이가 이 책의 제목에 ‘저항인’이라는 수사를 붙인 까닭은 그간 함석헌을 노장(老莊) 사상가ㆍ 퀘이커 종교인ㆍ『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쓴 재야사학자ㆍ인생론을 설파한 문필가 등으로 ‘축소’ 하여 읽어 왔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평전을 통해 함석헌의 본모습, 즉 전 생애를 통해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고 행동한 참지성 함석헌을 그리고자 하였다.

    지은이는 함석헌을 성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도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흠결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함석헌은 아무런 대가도, 어떠한 감투도 탐하지 않는, 보상이 없는 생애를 살았다. 그러면서 맨 정신으로 씨알의 신음 소리를 듣고, 세상의 아픔을 대신 앓았다. 질곡의 20세기 한국의 씨알들은 함석헌이 있어서 위로를 받고, 생명을 찾아 꿈틀거릴 수 있었다.

    함석헌이 만나고 풀어간 사상과 언어, 맞서고 누린 저항과 생활로부터 우리는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극히 숭고한 경지를, 풀과 미물까지도 어여쁘게 쓰다듬는 따스한 하심(下心)의 지극함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싸우는 평화주의자’, 영원한 청년 함석헌의 거대한 삶과 사상 

    “지금 우리나라엔 영리한, 약은 문화인만 있고 어리석은 들사람 없어 이꼴이다.… 들사람이어 옵시사! 와서 이 다 썩어져 가는 가슴에 싱싱한 숨을 불어넣어 줍시사!” 

    함석헌은 1901년, 20세기가 막 열리는 시대에 태어났다. 조선이 망할 무렵에 태어난 그는 감수성이 예민한 19세 때에 3ㆍ1운동에 참가했다가 퇴학을 당한다. 오산학교에서 들사람 류영모ㆍ이승훈ㆍ안창호ㆍ조만식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식에 눈뜨게 된다.

    동경고등사범 유학 시절에 간토 대지진을 겪고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 사상에 접하게 되면서 함석헌의 ‘들사람’ 혼이 성장한다. 많은 동시대인들이 뒷날 친일파가 되었지만 그는 굳건한 반일 사상으로 《성서조선》에 글을 썼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에 찍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힌다.

    함석헌은 해방과 함께 소련군에게 붙잡혀서 감옥살이를 하고, 간신히 월남한 남한에서 장준하와 함께 《사상계》를 만들다가 이승만에게 밉보여 투옥된다. 이후 가장 먼저 박정희의 5ㆍ16쿠데타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필화를 입는다. 박정희에게 함석헌은 제1의 강적이었다. 김종필은 5ㆍ16을 비판하는 함석헌을 ‘정신분열증에 걸린 노인’이라 막말을 하고, 군사정권은 그의 말과 글을 막으려고 온갖 핍박과 탄압을 가했다.

    함석헌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혹독한 군사독재에 저항한 거의 모든 사건에 앞장섰다. 그는 70이 넘고 80이 되어서도 반독재 투쟁에 어김없이 참여했다. 민주화 투쟁의 전선에서 백발의 노옹 함석헌의 존재는 구심점이었다. 씨알들은 그를 ‘할 말’을 하는 지도자로 존경했다. 권력욕이 없고 정파와 물욕과 권위를 벗은 그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찾기 어려운 어른의 상이었다.

    함석헌의 저항은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만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권력과 부의 신도로 전락한 주류 기독교 지도자들, 어용기관이 된 대학의 교육자, 권력과 야합한 언론, 사이비 지식인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한국의 소크라테스’ 역할을 했다.

    그는 중년 시기부터 1일1식으로 먹는 것을 줄이고, 흰 수염ㆍ흰옷ㆍ흰 고무신으로 조선 정신을 이으면서, 민중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글을 쓰는 것은 민중을 속이는 것이라고 질타하면서 구어체 우리말과 우리 글로 뜻을 폈다. 그러면서도 넓은 철학과 사상과 저술은 누구도 넘보기 어려웠다.

    함석헌은 민(民)을 뜻하는 ‘씨알’이라는 말을 통해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90평생을 싸우면서 살았다. 평생을 일제, 공산당,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력 집단, 지배세력에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그래서 ‘싸우는 평화주의자’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한국의 모세, 한국의 간디라는 별칭이 따랐다.

    그가 걷고자 한 야인의 길은 권력ㆍ부ㆍ종파ㆍ세력ㆍ집단화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 있었다. 그의 말은 진실이 있었고 글에는 믿음이 실려 민중은 그를 따랐다. 함석헌은 20세기 혼돈의 이 땅에서 반독재와 평화통일, 그리고 씨알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의 역사를 이끄는 길잡이의 역할을 다 하다가 1989년 먼 곳으로 떠났다.

    불통의 시대, 야인이 그립다

    “나는 10대 후반 《사상계》에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 뒤로 내가 함 선생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내 역사관의 지침이 되고, 그의 많은 글은 내가 살아오는 데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1970~80년대 여러 번 만나 인터뷰를 하고, 《씨알의 소리》에도 몇 차례 글을 썼다.”

    『저항인 함석헌 평전』은 세 번째로 씌어진 함석헌 평전이다. 김성수가 쓴 『함석헌 평전: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2001,2011)은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으로 함석헌의 인생 여정과 사상 변화를 총괄적으로 다루었다. 이치석이 쓴 『씨알 함석헌 평전』(2005)은 함석헌의 신앙생활과 종교적 관점, 역사인식과 가치관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반면 김삼웅이 새로 쓴 함석헌 평전은 20세기 한국사와 함석헌의 역정을 입체적으로 대비하며, 온몸으로 시대를 고뇌하고 생을 밀쳐나간 행동주의자의 궤적에 주목한다.

    그는 함석헌의 구체적인 생애에 집중하기보다는 시대마다 불굴의 신념으로 전개된 함석헌의 저항(정신과 행동)을 중심으로 추적한다. 특히 20세기 후반기 군부 독재와 유신의 질곡과 한계를 통해 지금 여기의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와 과제를 환기한다.

    활달하고 명쾌한 지은이의 글에 더해 본문에 수록한 17컷의 흑백 사진은 뭉클한 마음으로 ‘거인’ 함석헌 선생의 자취를 기리게 할 것이다. 특히 젊은 날의 당당한 형안, 장년기의 호연지기, 인도의 성인 비노바 바베와의 환한 환담, 60대 이후 80대까지 독재에 저항하며 끌려가는 마른 육신, 말년의 공부하는 현인의 얼굴 등은 울림이 큰 이미지이며, 평생의 스승과 지기들이었던 김교신ㆍ류영모ㆍ장기려ㆍ장준하ㆍ안병무 등과 함께 한 모습은 20세기 한국사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사 문제적 인물의 연대기 
    『저항인 함석헌 평전』은 한국형 평전 쓰기의 한길을 매진하고 있는,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선생이 스무 번째로 쓴 평전이다. 그동안 가까이로는 현대사에서 통일과 민주화,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대정신을 고취한 문제적 인물(조봉암, 장준하, 송건호, 김대중, 노무현, 리영희, 박현채, 김근태), 조금 멀리는 근대사에서 나라의 자주 독립과 민족정신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선각자(전봉준, 안중근, 박열, 김구, 이회영, 김상덕, 김원봉, 김창숙, 한용운, 신채호, 독부 이승만) 들의 삶을 그려냈다.

    김삼웅 선생의 평전 쓰기는 입장의 선명함(권력과 사욕이 아닌 시대와 소명에의 충실)과 생산성(1년에 2-3권)이 놀랍지만, 그럼에도 철저히 서지 자료에 근거한 객관성과 인물의 공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로 평전 분야의 독보적 입지를 넓혔다. 특히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오늘의 역사에서 되새겨 읽어야 할 ‘위인’을 호명하는 김삼웅 선생의 안목은 늘 시의적이며 예지적이다.

    모두 서른 권의 평전을 계획하는 김삼웅 선생의 붓은 함석헌에 이어서 안창호(2013년 5월 출간), 홍범도(2013년 12월 출간), 여운형 등으로 이어져 종내는 다산 정약용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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