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철학을 설계하게 하는 16개 질문
    [책소개] 『그리스인생학교』(조현/ 휴(休)
        2013년 03월 24일 11: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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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토스 산에서 트로이까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인도 오지 기행》, 《운둔》, 《하늘이 감춘 땅》 등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저자의 대표도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동양문화의 원류로 그리스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인도와 이집트, 이스라엘과 티베트, 중국과 우리나라의 오지 기행 등 방대한 지역을 순례하며 정신의 원형을 탐구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살아 있는 역사와 신화의 땅, 그리스로 향했다.

    전통적인 동양의 경계를 넘어 서양으로 향한 것은 또 다른 모험이자 도전이라 하겠다. 저자는 책으로 만나는 그리스 신화나 ‘관광적’ 그리스가 아닌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생생하고 풍부한 자료를 보여준다.

    또한 세속의 삶을 기꺼이 버리고 은둔 수행자의 신비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수도자들의 삶과 우리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수많은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이 탐험은 태초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지금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수도자들의 땅 아토스 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제우스가 호령하던 올림포스신전, 알렉산드로스의 기도신전이 있는 고대 디온과 세상의 운명을 점쳤던 예언신전 델포이를 지나, 이상국가 스파르타와 철학의 본고장 아테네 그리고 자유의 섬 크레타와 《요한계시록》의 파트모스 섬, 천재 지식인들이 살았던 사모스 섬과 트로이 목마가 있는 고대도시 트루바를 넘나드는 탐험을 계속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호된 형벌을 각오하고 하늘에서 훔쳐 건네준 내면의 빛을 다시 한 번 발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저자와 함께 2,500년을 넘나들며 떠나는 그리스 시간 여행을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이 던지는 삶과 죽음, 소유와 무소유, 탐욕과 자족에 관한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고, 인류 문명의 탄생과 발전, 쇠퇴와 멸망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된다.

    이것은 마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우리가 끌어안고 있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때 우리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 새로운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왜, 지금 그리스인가? 한국 사회에 부는 그리스 바람 

    미국의 문명 사학자 윌 듀란트(1885~1981)는 “오늘날의 문명국가들은 모든 지적 활동 분야에서 그리스의 식민지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지상의 문명국가들은 그리스의 지식으로 길러졌다는 것이다. 18세기 이래 서구 문명이 세계를 지배했는데, 그리스는 바로 그 서구 문명의 발생지였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의 전개도 ‘그리스적 가치’의 전파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스적 가치를 받아들인 문명은 번성했고, 그렇지 않으면 쇠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적 가치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개인으로서 인간의 발견’을 들 수 있다. 인도, 중국, 메소포타미아 등 다른 문명권에서 인간은 신 혹은 운명에 종속된 존재였다면 그리스는 달랐다.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다”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 철학자들은 개인의 힘을 믿었다.

    그리스 학교의 교육과정도 ‘개인의 탁월함’이 각 분야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다른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마법사가 없다. 영웅들 역시 부단한 노력 끝에 단련된 ‘훌륭한 인간’일 뿐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서 시민 개개인의 참여를 강조하는 민주주의가 태어났고, 또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의 체력을 겨루는 올림픽이 열렸다. 그리고 신화와 철학이 탄생했다.
    원시적 신화의 세계는 탐욕과 배타와 살상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였다. 소크라테스가 원시적 신화 속에 잠자는 인간들의 이성을 깨운 것처럼 공자, 석가, 예수 같은 성인들은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세상에 도덕을 깨웠다.

    그리스인생학교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는 신화나 철학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의 나라가 된 지 2,000년이 다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신화는 미신으로 치부되고 신전은 파괴되었다. 신화와 신전은 박물관과 폐허의 부서진 대리석으로만 잔존한다. 신앙을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십상인 ‘철학’의 거인들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디오게네스의 흔적도 그리스에선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그저 신화와 철학뿐인가. 아니다. 나무뿌리처럼 우리를 지탱하고, 닻처럼 우리를 정착시키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주고,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설정해주는 생명수를 잃어버린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나를 나답게 하는 생명수는 우리의 존재 자체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면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공격적 성향을 띨 수도 있다. 이런 집착이 강력해지면 다른 문명과 문화의 패배와 전멸을 원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결국은 우리 자신과 문명마저 파괴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그리스 신화에서 수없이 발견할 수 있듯이. 또 지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역설적이게도 지난 정권이 그리스 문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이었기에 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인생철학을 설계하게 하는 16가지 질문! 

    책은 금욕의 나라 아토스 산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동양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이곳에서 종교전문기자는 묻는다. ‘나는 과연 버려야 할 것을 버렸는가?’라고.

    2장 지상낙원 아기아나 수도원 에서는 ‘자족을 모르는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3장 알렉산드로스의 기도 신전 고대 디온에서는 ‘자족을 모르는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질문을 던진다.

    4장 그리스 신들의 산 올림포스에서는 ‘신들의 질투와 분노는 인간적 욕망의 투사가 아닌가?’, 5장 하늘 위의 수도원 메테오라에서는 ‘죽음은 필멸의 고통인가,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인가?’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또 6장 최고의 예언 신전, 델포이에서는 ‘미래의 비밀을 푸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7장 이상한 이상국가 스파르타에서는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묻고, 8장 나체의 향연장, 올림피아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당신은 어떤 노력과 훈련을 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철학의 본고장인 아테네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9장~10장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묻고, 11장 자유의 섬, 크레타에서는 ‘조르바처럼, 당신도 자유를 위해 삶을 바꿀 용기가 있는가?’를, 12장~13장에서는 ‘삶에 지친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한 적이 있는가?’ 묻는다.

    또 14장 《요한계시록》의 파트모스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약자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15장 천재 지식인들의 섬, 사모스에서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를, 마침내 16장 신과 전사들의 무대 트로이에 이르러서는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트로이의 목마는 무엇인가?’ 묻는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그리스 최고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 식사와 바꾸겠다.”

    명민한 그는 아무리 많은 돈과 기술도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와 치른 두 차례의 전쟁으로 혼란을 느끼고 있던 아테네 시민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 걸던 소크라테스를 밉살스러운 괴짜 노인 정도로 여겼던 듯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선택 속에 숨은 ‘트로이의 목마’

    옛 도심의 신타그마 광장은 매일 의장대 사열대 시범을 보여주는 국회의사당 앞에 있다. 아테네 시내를 일주하는 버스투어 출발지이기도 하다. 이 광장은 저자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일흔일곱 살의 은퇴한 약사가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곳이다.

    경제 위기에 따른 국가의 긴축 재정으로 연금이 줄어든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인의 주머니에서 유언장이 발견되었다. “정부가 살아갈 희망을 없앴다. 정의도 없다. 휴지통의 음식물을 찾아 나서기 전에 위엄 있는 최후를 맞는 것밖에 길이 없다.” 노인이 자살한 자리엔 추모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이 비극은 누구의 책임인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의 자원을 약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를 쌓은 것과 달리 그리스는 근대에 들어와서야 2,000년 만에 나라를 되찾은 신생독립국가다. 게다가 오랫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인구 또한 1,000여 만 명에 불과해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긴 어려울 터다.

    어느 날 시작된 유럽경제통합과 유로화 사용은 우리로 치자면 시골 분교의 아이를 서울 강남의 8학군 학급에 집어넣고 경쟁을 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속 모르는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며 말한다. “그리스는 먹고 놀기 좋아하고, 복지만 늘려서 망했다.” 그리스는 원래 약체였던데다 가진 자들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탓에 위기를 맞았다. 고대 아테네만한 경제적 민주화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그리스가 금융위기 이후 과도한 재정적자로 인해 부채가 급증했고 지금 이 지경에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그리스에게 금융지원을 제안했지만, 그리스는 거절했었다. 이유는, 미국의 금융지원으로 당장은 살아나겠지만 그 후 미국의 경제적 노예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긴축재정을 시행하는 것은 국민 자신들의 몫이다.

    그러나 그리스를 둘러싼 국제 이해관계들이 이를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리스의 미래를 지배하지만, 돌파구가 생겨날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살은 사회 안전망이 구멍이 난 데도 큰 원인이 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대적 결핍과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독자들과 나눈다. “나도 생의 의미를 잊고 표류한 때가 있었다. 죽으려던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이를 극복한 순간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문제를 동반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덧붙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고, 깜깜한 밤이 지속되리라는 절망감은 가장 큰 어리석음임을 말한다.

    저자가 그리스를 여행할 무렵 경제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넘쳐났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면서 오히려 이방인에게 사랑과 지혜를 나눠주는 그리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또한 “지혜의 선구자들을 품었던 그리스는 헉헉거리던 숨을 돌려 쉬며 생각을 전환하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고, “인생은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며 ‘그렇고 그런’ 도그마만을 강요하는 질서에 항거해, 의문에 찬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그리스에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인 소크라테스는 신화에 맞서 신성모독으로 죽어가면서도 묻고 또 물었다. 신의 뜻이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이루어지도록.

    저자에 따르면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 인간이 있었다.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역사에 명함을 내밀 수 없던 하층민이자 첩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신마저 자신들을 버렸다며 도망갈 궁리만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이치에 맞는 작전을 세울 때 신은 반드시 우리 편이 된다.”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은 절망적 상황에 주저앉지 않은 이가 그리스에 테미스토클레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예이자 절음발이였으나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의 스승이 된 에픽테토스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짊어짐으로써 부활했다. 이들은 신체나 계층의 장애가 비록 불편하기는 했지만, 결핍과 시련을 탁월함의 양분으로 삼았다. 인생이 빚어내는 최고의 요술은 이런 약자들이 상처를 아우라로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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