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걀 하나를 깨고
    노른자만 달걀이라고 판정했다"
    [현장편지] 현대차에서 10년간 시트를 만든 노동자 … 중앙노동위 판결의 문제
        2013년 03월 21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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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에는 시트공장이 있습니다. 부품회사에서 시트를 만들어 납품하기도 하지만, 울산공장에서 직접 시트를 제작해 자동차 조립 라인에 보내기도 합니다.

    세 아이의 아빠인 서른다섯살 박영현 조합원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3년 1월 울산공장에 사내하청 노동자로 입사해 시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시트를 만드는 일은 숙련된 노동이 필요합니다. 시트 모양의 빈 빵틀에 왁스칠을 하고, 뼈대와 스폰지 등을 넣고 구운 다음, 빼내서 다듬은 후 검사를 하고 빠레트에 올려서 조립공장으로 보내는 과정입니다.

    그는 민영산업이라는 이름의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했습니다. 시트2부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공장에 300여명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뒤섞여 함께 일했습니다. 작업 과정은 짧지만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시트 하나가 만들어지고, 그는 첫 공정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10년 동안 자동차 시트를 만든 노동자

    시트를 만드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로봇이 만든 시트를 꺼내서 다듬는 일입니다. 뜨거운 시트를 꺼내서 불량을 잡아내고, 다듬어서 보내는 일입니다. 최소한 1년 이상 일을 해야 불량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 일을 처음에는 정규직과 같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규직은 만들어진 시트를 최종 검사하는 등 조금 쉬운 일을 하고, 비정규직들이 힘든 일들을 맡아서 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힘든 일을 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절반의 임금과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시트2부 대표가 되었습니다.

    2007년 6월 1일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낸 소송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되자, 회사는 작은 시트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을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청업체 이름도 태성산업으로 바뀌고, 지금은 라온기업으로 바뀌었습니다.

    법원에서 진 현대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업무 구분

    2010년 7월 22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고, 그 해 11월 15일부터 25일간 울산1공장 점거파업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이 파업에 참여했고, 시트2부 대표라는 이유로 그는 해고된 후 동료들과 함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습니다.

    그런데 3월 19일 중앙노동위원회는 그를 포함해 시트를 만들었던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정했습니다. 결과를 들은 그는 황당했습니다. 중노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중노위는 3월 20일 현대차 51개 사내하청 노동자 423명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징계에 대한 판정회의 결과 의장부(조립부) 하청업체 30개, 차체부와 도장부 3개 등 총 274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므로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정했습니다.

    그러나 시트 4개 업체, 엔진변속기 5개, 생산관리부 4개, 품질관리부 2개 등 18개 업체 사내하청 노동자 148명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을 조립(의장)라인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뒤섞여 일하는 공장으로 제한해 판정을 한 것입니다.

    정규직과 혼재작업하는 의장라인만 불법파견?

    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이고,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55일째 송전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은 “자동차공정 특성상 작업공정은 독립적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달걀 한 개를 깨고 노른자만 달걀이라고 판정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강성용 수석부지회장이 중노위 판결에 대해 트위터에 날린 글입니다. 이 글은 중노위 판정의 잘못을 좋은 비유를 들어 지적했습니다. 기차 10량 중에서 승객이 타지 않는 기관차나 화물칸은 기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동차 제조 공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작동되어 독자적인 업무가 있을 수 없는데, 중앙노동위원회는 불법파견을 축소하기 위해 일부 공정이 합법적인 도급이라고 왜곡한 것입니다.

    노른자만 달걀이다?

    이번 중노위의 판정은 20일 전인 지난 2월 28일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법원은 GM대우(현 한국지엠) 닉 라일리 전 사장에 대한 파견법 위반 재판에서 조립공정뿐만 아니라 차체, 도장, 자재보급, KD까지 자동차 생산라인 전체를 불법파견으로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불법적으로 이뤄지는 근로자 파견 관계로부터 해당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노동위원회가 조립부서 외에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앞서 2010년 7월 22일과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던 현대차 울산공장 최병승 조합원에 대해서도 의장(조립)라인에서 정규직과 뒤섞여 일한 것을 하나의 요소로 보았지 전부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 내용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의 자동차 조립 생산공장에서는 독립적이고 합법적인 도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11월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라인을 세운 장면(사진=현대차비정규직지회)

    작년 11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며 관리자와 대치하는 장면
    (사진=현대차비정규직지회)

    대법원 판결의 취지도 축소, 왜곡

    현대자동차와 관련된 중요한 판결이 하나 더 있습니다.  2010년 11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면서 조립공정이 아닌 엔진서브에서 근무한 노동자도 불법파견이라고 했습니다.

    2007년 6월 1일 1심 재판에서 패소한 현대자동차는 조립(의장)라인을 연속으로 2년 이상 일한 노동자가 아닌 서브공정에서 일한 노동자는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사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고, 1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심수진 조합원은 엔진부의 델타엔진 테스트 공정에서 근무했고, 김기식 조합원은 의장공장 내 도어라인에서 근무하다 자리를 옮겨 엔진서브라인 최종확인공정에서 일했습니다.

    재판부는 엔진서브공정이나 내외관 검사 공정업무 등의 업체에 대해 “사내협력업체들과 현대차 사이의 이 사건 업무도급계약은 실질적으로 사내 협력업체들이 그 소속 근로자들을 피고에게 파견하여 피고의 지휘․감독을 받게 하는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했습니다.

    현대차 아산공장 서브공정도 불법파견 법원 판결

    따라서 중앙노동위원회가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 취지를 왜곡해 일부에 대해서만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분리해 한 공정에 몰아넣어 일을 시키면 합법도급이 된다는 황당한 결정이며, 재벌의 눈치를 보는 판정입니다.

    현대차는 중노위 판정 이후 보도자료를 내 “중노위조차 상당수 사내하도급에 대해 적법하다는 판정을 내렸다”며 “사내하청노조가 주장하는 전원 정규직화 요구는 이제 명분이 없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중노위의 판정이 심각한 것은 바로 사용자들에게 불법파견을 중단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을 은폐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최근 현대차는 울산 2공장 도장공장에서 혼재작업을 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을 다른 공정으로 배치해, 비정규직노조가 파업을 벌였습니다.

    중노위의 판정대로라면 비정규직만 모아놓고 일을 시키면 합법이 되는 셈입니다.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모든 생산공정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대모비스, 기아차 서산공장(동희오토), STX중공업,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등 가장 나쁜 ‘비정규직 공장’들이 불법파견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가 아니라 은폐 시도

    “작업표준서 일부 수정 및 사양 식별표 업체 것으로 변경 작성”

    “보안 월, 주, 일 단위 관리대장도 업체 것으로 변경”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 관련 각종-폐기서류 확인 및 정리함”

    2011년 9월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발견된 사내하청업체 관리자의 수첩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이 수첩에는 현대차가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해 벌인 범죄행위들이 소상하게 적혀있었습니다.

    현대차 아산공장의 관리자는 사내하청업체 총무들을 모아 회의를 열어 그동안 현대차의 로고가 찍혀있었던 작업표준서 및 사양식별표를 하청업체의 것으로 바꾸도록 지시하고, 하청업체가 각종 인사, 노무, 안전보건 등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자료를 만들고,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자료들을 폐기시켰습니다.

    노동위원회 판결이 불법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발견된 관리자의 수첩

    대법원 판결은 자동차 생산 공장에서 사내하청이라는 제도는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법은 간단합니다. 사내하청이라는 제도를 없애면 됩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10년 동안 시트를 만든 박영현 조합원은 중노위 판결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자리를 불법으로 사내하청을 사용해왔습니다. 그것도 10년 동안 회사의 전 조직을 동원해 불법을 벌인 것입니다.

    이 불법노동의 정점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있습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불법파견이 있는 곳이면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든지 법에 있는 대로 직접고용을 명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지금 당장 할 일은 현대자동차에 대한 압수수색과 특별근로감독을 벌이고, 법에 따라 파견업체를 폐쇄하는 것입니다.

    채동욱 검찰총장 내정자는 2006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시절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수사를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했습니다. 검찰이 지금 당장 할 일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을 소환해 불법파견을 조사하고 구속시키는 일입니다.

    지금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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