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
    [청소노동자행진5] 노조법 2조 개정하여 노동 기본권 보장해야
        2012년 06월 04일 12: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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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들

    우리는 동성기업 자동차가 아니라 현대자동차를 생산한다. 우리는 동희오토 자동차가 아니라 기아차 모닝을 생산한다. 우리는 인터기업이나 영진실업이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STX조선에서 배를 짓는다. 우리는 제일휴먼 건물이 아니라 연세대 건물을 청소한다. 우리는 용진실업이 아니라 홍익대에서 경비 업무를 담당한다. 우리는 CJ프레시웨이나 아워홈이 아니라 한일병원 환자들 식사를 책임진다. 우리는 (주)포스트원이 아니라 인천공항에서 전자택을 부착한다.

    그런데 현대기아차·현대중공업·STX조선·연세대·홍익대·한일병원·인천공항은 우리가 하청·용역업체 소속일 뿐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다. 노조를 결성하고 교섭을 요구해도, 원청은 교섭을 거부하고 하청은 자신들이 실권이 없다며 도망친다. 너무 억울해서 파업에 나서게 되면, 아무 관계가 없다던 원청이 직접 나서서 고소고발·손배가압류 등 탄압을 자행한다.

    이처럼 노조탈퇴 공작이나 고소고발·손배가압류 등 사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모두 가지면서도,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장이 져야 할 책임은 모조리 면제되는 기막힌 제도가 바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사내하청, 용역, 도급, 파견, 하청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일체를 진짜 사장인 원청이 결정하면서도 사용자책임은 지지 않는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노동조합을 노동조합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들.

    화물트럭·덤프트럭·레미콘·굴삭기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설계사), 대리운전·택배·퀵서비스 기사, 간병사, 애니메이터 …… 우리의 이름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또는 ‘위장 자영업자’라고도 불리운다.

    이놈의 세상이 워낙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세상이다 보니, 저놈들은 비정규직을 무엇으로든 ‘위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간접고용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위장도급’이란 형태로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있으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위장 둔갑시켜 놓은 것이다.

    우리의 이름이 처음부터 특수고용이었던 것이 아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본래 레미콘회사, 화물운송사, 학습지회사의 정규직 노동자였다.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화물·덤프트럭, 레미콘차량을 강제로 불하하고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오라 하더니, 그때부터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며 특수고용직이 되었다. 학습지회사가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탁계약·도급계약으로 계약형태를 강제로 바꾸라 하더니 그때부터 특수고용직이 된 것이다. 보험모집인, 애니메이터, 골프장 경기보조원들 모두 마찬가지다.

    특수고용은 아예 노동자성을 강제로 빼앗아 버림으로써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박탈해버린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권리부터 부정된다. 이명박 정권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다는 이유로,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의 설립변경신고를 받지 않거나 심지어 설립필증을 내주지 않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노동자임이 부정되니 일하다 병들거나 다쳐도 산업재해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 특수고용 노동3권 보장이 글로벌 스탠다드!

    간접고용·특수고용의 문제는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에 해당한다. 전체 비정규직 중에서 직접고용 계약직(기간제 비정규직)을 제외하면 90% 이상이 모조리 간접고용·특수고용에 해당하며, 그 규모도 600~700만에 육박한다.

    비정규직 통계 수치와 관련하여 정부와 노동계의 기준이 매우 상이한데, 기묘하게도 양자의 통계에서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기간제 비정규직의 숫자는 줄어드는 반면,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간단하다. 기간제의 경우 사장이 직접 고용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반면, 간접고용·특수고용의 경우에는 자본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처절한 저항에 나서는 사례의 90% 이상이 간접고용·특수고용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제 사회도 눈 감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국제 노사정 협의체라 할 수 있는 ILO(국제노동기구)는 지난 10년 동안 무려 4차례에 걸쳐 간접고용의 원청 사용자책임, 특수고용의 노동3권을 인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특히 올해 3월에 나온 네 번째 ILO 권고는 한국 정부가 다른 핑계를 댈 수 없도록, 이례적으로 “현대자동차” “기륭전자” “화물노동자” “건설노조” 등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명하며 권고한 바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 노동기본권을 회피할 목적으로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부는 노사와 협의를 통해 적절한 메카니즘을 개발할 것

    – 금속산업 부문, 특히 현대자동차 등에서 일하는 사내하청/파견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에 관해 행하는 단체교섭이 촉진될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 화물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른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 노동 3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것

    –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조합원 범위에서 배제하도록 한 정부의 시정명령을 철회할 것. 또한 이후 특수고용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취급을 하는 등 행위를 하지 말 것

    입만 열면 ‘글로벌 스탠다드’와 ‘국격’을 거론하는 이명박 정부, 하지만 ILO의 권고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ILO 부이사국이기도 한 한국 정부가 국제적 망신을 당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장할 수 없다는 태도 아니겠는가.

    노동조합법 2조를 개정하라! ‘갑(甲)’이 책임져라!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매우 쉽다. 진짜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를 수 있도록, 노동조합법 제 2조의 문구 몇 개만 고치면 되기 때문이다. 제 1항의 ‘근로자’ 개념을 확장하면 특수고용 노동 3권을 인정할 수 있고, 제 2항의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면 원청 사용자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런 단순명쾌한 해법을 적용하면,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보장받고, 교섭을 통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법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기존 법의 문구 몇 개 고치자는 것인데, 지난 10년 동안 정권과 자본은 이 요구를 철저히 무시해 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홍길동처럼, 자신의 설움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누구에게 책임을 묻지도 못하게 설계된 것이 바로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 제도이다. 계약의 형태가 어떠하건 간에, 마땅히 ‘갑(甲)’에 해당하는 자본이 노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 설립의 근본이었는데, 자본 스스로 이를 부정하는 꼴이 된 것이다.

    이제 ‘갑(甲)’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 이상 ‘갑(甲)’에게 설움 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다못해 근로계약서에서조차 ‘을(乙)’의 지위에 있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최소한 단결해서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조법 2조 개정에 나서야 한다.

    옳소!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홍길동이오!

    우리 수많은 홍길동을 무시하지 말라! 관공서에 비치되어 있는 각종 서식에는 홍길동이 ‘갑(甲)’이 아니던가!

    올해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필두로 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 3권 보장과 산재보험 동등적용을 핵심요구로 한 6월 총파업이 예고되어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무려 1,600일 넘게 파업농성을 벌이며 해고자 전원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 한일병원, 인천남동구 도시관리공단, 인천공항 세관 등 원청을 상대로 직접 투쟁을 벌여 합의서를 체결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역시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라는 슬로건으로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에게 직접고용 책임을 묻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역시 임금삭감·산재은폐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홍길동과도 같은 존재이다. 홍길동이 누구이던가? 서자 출신은 관리등용을 제한한다는 조선시대 악법 때문에 좌절과 울분 속에 지내다가, 억압받던 민중들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만들고 신분타파·만민평등을 위해 싸운 홍길동!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진짜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는 기막힌 세상! 특수고용·간접고용이란 비정규직 신분을 타파하고 평등세상을 위해 싸우는 우리가 바로 현대판 홍길동이오!

    필자소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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