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라는 필살기, SIU의 <신의 탑>
    [기승전병의 맛] 2012년 독자만화대상 작품
        2013년 03월 20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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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신의 탑>을 보게 된 계기부터 설명을 해야겠다. 1월초에 <레디앙>의 기고글을 쓰기 위해 어떤 웹툰을 볼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독자만화대상이라는 시상식이 떠올랐다. 콘텐츠진흥원 같은 기관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콘텐츠대상과는 달리 독자들이 선정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 지난해 가장 인기있는 웹툰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지난해 최고 인기작을 소개해보는 일종의 신년 특집을 생각했다. 그래서 독자만화대상 2012 대상에 선정된 SIU 작가의 <신의 탑>을 보기 시작했다.

    2010년 10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1부 77화, 2부 54화나 되는 장기연재 웹툰의 정주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벌써 3월 중순이다. 신년이라는 컨셉은 무색해졌고 나의 게으름만 인정하는 꼴이 됐다. 어쨌든 정주행은 끝났다. 거대한 서사시를 써내려가는 <신의 탑>을 만나보자.

    <신의 탑>을 보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든 생각은 ‘이건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신의 탑>은 일종의 히어로물이었다. 능력자들의 대결, 이 대결에 이긴 자가 탑을 오르는 기본 골격이 조금은 유치해보였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웹툰 중에서도 삶의 깊이 있는 통찰이 있는 작품이 있다. <신의 탑>은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있어 좀 심하게 말하면 중고등학생들이나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스크롤을 내리는 나를 발견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이야기에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걸까. 점점 진지하게 이 거대하고 오묘한 세계에 빠져들면서 <신의 탑>이 그저 단순한 히어로물, 능력자들의 대결의 청소년용 웹툰이 아니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

    그리고 <신의 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장점들을 찾아냈다. 그것들은 기존의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는 훌륭한 특징과의 접목이었다.

    <신의 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꽤 단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모두 탑의 꼭대기에 오르고 싶어한다. 그곳에는 어떤 부귀영화가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 탑을 오르기 위한 조건은 상대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래서 상대를 죽이는 일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잔인한 세계의 <신의 탑>에도 친구가 존재한다.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진흙탕 싸움에서도 동료애가 피어나는 것이다. 이 중심에는 ‘스물다섯번째 밤’(이하 밤)이라는 주인공이 있다.

    밤은 <신의 탑>에서 유일하게 탑에 오르고 싶지 않았던 캐릭터다. 자신이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준 라헬만을 생각하고 그녀가 탑에 오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자신도 탑에 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밤은 함부로 상대를 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 능력도 없었다. 지나치게 순진해보이는 밤이라는 이질적 캐릭터가 <신의 탑>의 중심에 놓이면서 견고해보였던 대결과 경쟁의 질서에 균열이 생긴다.

    신의탑2

    신의탑3

    신의탑4

    신의탑5

    전략적으로 동료를 모집하고 포섭했던 쿤 아게르 아그니스(이하 쿤)가 이 균열에 동참하며 쿤은 밤과 친구가 된다. 이런 식으로 밤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료 집단은 <신의 탑>에서 꽤 울림이 있는 대사들을 창조해낸다.

    그 대사는 이런 식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세워 가로막고 있는 이 탑이 적어도 하나의 천장 아래에서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2부 22화) 어찌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는 대사다.

    하지만 이런 대사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들(배신, 배반, 음모, 계략에 맞선 희생, 협동, 우정 등)이 웹툰 전반에 무리없이 녹아들기 때문에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기가 막힌 반전(정주행 시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댓글을 읽지 말 것, 어쩌면 이 글도 스포일러일 수 있다)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의 플래시백과 같은 장치가 적재적소에 등장하면서 우정이라는 보편적 감정에 힘이 실린다.

    <신의 탑>의 우정은 아무런 이유없이 “우린 동료니까”를 외치는 오다 에이치로의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와 동료들의 그것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 단순한 정서는 사실 일본 청소년만화의 전형성인데 <신의 탑>은 이 감정을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신의 탑>인물들은 모두 탑의 꼭대기에 오르고 싶어한다고 이미 설명했다. 특히 <신의 탑>의 주요인물들은 더 구체적인 이유로 탑에 오른다. 탑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적 이유를 각자 품고 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아낙 자하드다. 아낙 자하드는 탑을 지배하는 자하드 가문의 공주 신분처럼 보인다. 자하드 가문의 무기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아낙 자하드는 자하드 가문의 복수를 위해 탑에 오른다.

    여기에는 물론 사연이 있다. 아낙 자하드가 <신의 탑>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를 주인공을 놓고 가정을 해볼 수는 있겠다. 이때 대략의 스토리는 이렇다. 아낙 자하드는 그 복수를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복수의 대상이 있는 탑에 들어왔다. 탑의 상층부에 가야 복수의 대상을 만날 수 있으니 탑의 상층부로 가기 위해 약한 상대부터 무찌르고 더 높은 곳으로 갈수록 더 강한 상대를 만난다.

    결국 아낙 자하드는 탑의 꼭대기에서 최고로 강한 복수의 상대를 만나 쓰러뜨린다. 아낙 자하드를 주인공으로 가정해서 단순화시킨 이 스토리라인,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무협이다. <신의 탑>은 많은 부분 무협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낙 자하드라는 캐릭터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고 가정까지 해보았지만 사실 <신의 탑>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협이라는 장르를 떠올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신의 탑>은 인물들간의 대결, 싸움을 그리기 때문이다.

    각 대결에서 <신의 탑>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무기, 필살기를 쓴다. 물론 각종 초식(招式)도 등장한다. 점점 더 강한 상대와 대결해야 하는 구도도 무협의 그것과 비슷하다.

    탑이라는 단어 자체만 높고 보면 이소룡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사망유희>라는 영화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은 5층탑을 오르면서 각층의 무술 고수들을 하나씩 제압하기 때문이다. <신의 탑>은 대결구도와 양상, 복수라는 이야기 구조 같은 무협의 필수요소를 웹툰에 끌어들여 새로운 재미를 만들었다.

    <신의 탑>의 배경은 탑이다. 어쩌면 이 탑 자체가 무협의 강호와 유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강호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볼 수도 있다. 판타지 혹은 SF 장르다.

    <신의 탑>이 만들어놓은 탑의 세계는 거대하다. 외탑과 내탑이 존재하고 중간지역이라는 곳도 있다. 중간지역이라는 명칭에서 <반지의 제왕>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탑이라는 명칭은 사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설정에 지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탑 안에는 산이나 바다와 같은 공간도 존재하는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히 탑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힘들다. 상식을 뛰어넘는 이 거대한 세계 안에는 당연하게도 비현실적인 동물이 살고 있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괴물이다. 밤이 탑에 막 들어왔을 때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대는 신수라는 물에서 사는 흰철갑장어라는 거대한 물고기였다.

    우렉 마지노라는 절대강자가 등장하는 2부 29화에도 신수어가 등장한다. 이때는 등장인물들이 신수어 안에 들어가서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시험을 치른다. 이렇게 등장하는 괴물 뿐만 아니다. <신의 탑>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밤, 라헬, 쿤 등 주인공을 비롯한 대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라크 레크레이셔라는 캐릭터는 악어처럼 생겼다. <반지의 제왕>처럼 명확하게 인간, 호빗, 엘프 등으로 구분이 되진 않지만 판타지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금발의 말포이 가문처럼 <신의 탑>의 쿤 가문은 머리칼이 푸른색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신의 탑>의 세계는 분명 기존 판타지의 요소에서 착안했다. 그것들의 변주과정에서 SF적인 요소가 보이기도 한다.

    팀을 이뤄 대결을 펼칠 때는 등대지기라는 포지션을 맡은 인물이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등대를 운용한다. 공중을 떠다니는 등대는 다른 동료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또 구슬처럼 생긴 포켓이라는 도구는 언어를 바로 번역해준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바벨피쉬와 같은 기능이다. 이렇듯 <신의 탑>의 세계와 각종 소품들은 판타지와 SF의 변형으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신의 탑>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장르적 특징을 살펴봤다. 이런 특징들 이외에도 <신의 탑>의 재미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꽤 많다. 탑의 상층부로 올라가기 위해 치르는 기상천외한 방식의 시험들도 이 웹툰을 보는 재미가 될 수 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도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소소한 유머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인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반전의 반전이 만들어낸 충격이 <신의 탑>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전의 묘미가 <신의 탑>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유치할 거라는 선입견을 깬 건 아니었다.

    선입견이 사라진 이유는 식상해보였던 장르적 전형을 <신의 탑>은 영리하게 변형하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몇몇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신의 탑>과 비교해보았지만 그것들이 <신의 탑>의 장르를 단정짓고 설명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신의 탑>은 장르의 용광로 같다. 어떤 장르든 접목시킬 수 있다. 앞으로 보게 될 <신의 탑>에서는 더 다채로운 장르의 변형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전설'의 만화 잡지 [팝툰] 기자로 일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영화 잡지 [씨네21]의 편집 기자로 일하고 있다. [레디앙] 모 기자의 열렬한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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