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0만 관중 시대 맞은
    한국야구의 어두운 그림자
        2013년 03월 18일 03: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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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한국 고교야구의 전성기는 2001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89학번 세대(이들은 93년 입단)와 92학번(내지 그해 입단한 고교생들)간의 선의의 경쟁은 그 시절 프로야구를 보신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추신수를 정점으로 해서 김진우까지. 마지막으로 고교야구를 열정적으로 보던 시절이 김진우 고3 시절인 것 같다.

    비록 인기는 박노준 등 고교 슈퍼스타가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던 시절보다 줄었을지라도, 실력만큼으로는 이 때가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일명 에드민턴 키즈, 그중에서도 추신수는 이미 8개 구단 스카우트 중 6명 정도가 ‘투타 양면으로’ 최고로 쳤던 선수였다. 김진우는 고3때 이미 저대로 프로에 와도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라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추신수와 김진우

    추신수와 김진우

    2002년,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한국의 4강 진출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축구계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전국에 최신식 축구장을 거의 뿌리다시피 한다. 더불어 축구계의 노력으로 유소년축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다. 느리지만 수면 밑에서 착실하게 축구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반면 야구를 하려는 청소년들은 이때쯤을 기준으로 줄기 시작한다. 기억나는 최초의 뉴스는 05년쯤? 신문인지 TV였는지는 까먹었는데 매해 야구를 하는 고등학교가 줄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때쯤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보니 도미노처럼 가속화되기 바로 직전의 시점이었던 것이다.

    야구를 하는 고등학생 수도 중요하지만, 매년 꾸준히 야구선수를 배출하는 고등학교는 더욱 줄었다. 속칭 야구명문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들은 그렇게 크게 선수 수급에 지장을 받지는 않는 듯 하다. 하지만 명문이 아닌 고등학교에는 선수가 잘 가지 않는다. 좁은 인재풀이 더욱 메말랐기 때문에 남은 인재마저 코어에 집중되려는 현상이다.

    2009년 속칭 ‘신 유격수 4인방’을 마지막으로 신인선수가 첫 해에 바로 주전에 진입한다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는 듯하다. 사실 그 전에도 유망주가 전국적으로 좀 적다고 평가받는 해는 많았다. 하지만 대체로 지역에 국한되었고, 다음해 바로 회복되는 경우도 많았다.

    1차지명을 뽑을 선수가 없어서 망할지언정 드래프트 전체적으로 망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하지만 요 최근 3~4년간은 그런 것도 없는 듯 하다. 특히 야수자원은 심각해졌다.

    혹자들은 기존 야구수준이 상당히 올라가서 이제 신인들이 바로 1군에 적응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도 2010년까지나 맞는 이야기다. 후술하겠지만 최근의 경기 트렌드는 하향 평준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유망주의 질 자체가 떨어졌다는 추론을 해볼 수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장타자의 감소를 들 수 있다. 한국야구의 홈런 수 자체가 최근 몇 년간 꾸준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 자체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장타자 자체가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작년 홈런왕인 박병호는 2005년 LG지명된 선수다. 올해로 9년차인 선수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겠다. 지난 시즌 홈런을 ‘5개’ 이상 친 선수는 45명이다. 이것만으로도 리그 전체의 장타력 감소를 알 수 있다. 참고로 홈런을 ’10개’로 올리면 17명으로 확 줄어든다. 좀 극단적인 비교지만 1999년의 경우 삼성 라이온즈 한 구단에만 15홈런 이상이 6명이었다.

    더 심각한 것? 저 중에 지난 시즌 기준으로 5년차(2008년 지명 이후) 이하의 선수는 오지환(2009년 고졸지명 12개), 나지완(2008년 대졸지명 11개), 전준우(2008년 대졸지명 7개), 김선빈(2008년 고졸지명 5개) 4명이 전부다. 저기에서 대졸지명자인 나지완 전준우를 빼면 딱 두명만 남네? 사태의 심각성은 보통이 아닌 것이다. 더 절망적인 것? 앞으로 나올 선수들 중에 저 정도만 칠 선수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 다음은 불펜이다. 한국야구는 투수 관리능력의 부족, 인프라의 부족, 불펜에 대한 인식 문제 등으로 인해 수많은 투수들을 데뷔하자마자 불펜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수를 잃었다.

    특히 타도 SK를 외치던 2007-2010년에는 그런 경향이 최근 중에서는 가장 심한 편이었다. 리그는 굉장히 치열했지만 의외로 좋은 선발투수가 많지 않아 구단들이 상당히 고생을 했다. 그나마 선발이 많다던 롯데마저도 5선발이 실제로 원활하게 돌아간 적은 손에 꼽는다. 사실 따져보면 가장 성적이 좋았다는 2008년도 시즌 초반에는 송승준은 시원하게 맞아나갔고, 매클레리는 결국 끝까지 가질 못했다. 시즌 절반이 지나니 손민한의 구위가 확실하게 저하되어 장원준이 사실상 1선발 역할을 한 적도.

    그러다보니 이제 불펜도 흔하지 않다. 예전같으면 구단과 조용히 연봉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특급 불펜투수들이 FA시장에서 자주 이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대현이 아주 대표적이고, 올해 LG로 이적한 정현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오승환은 아주 대놓고 구단과 기싸움을 했을 정도다.

    이러한 현실 속에 새로운 구단인 NC가 리그에 참여한다. 예전 같으면 구단의 2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던 선수들이 새 팀에서 자리를 얻은 것이다. 물론 선수 본인들에게는 확실한 도전의 기회이자 일자리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리그 전체의 경기력에 물음표가 붙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700만 관중, 구단 팽창의 시대에 앞서서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필자소개
    야구웹진 '이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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