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업화된 병원, 그 현장을 가다
    [책소개] 『병원장사』(김기태/ 씨네21북스)
        2013년 03월 16일 0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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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이 장사에 나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병원이 돈을 벌면 안 되는 걸까? 우리나라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세울 수 있다. 일반인이나 영리법인은 병원을 세울 수 없고, 또 의료인이라도 2개 이상의 병원을 가질 수 없다.

    병원을 소유한 법인은 병원에서 발생한 수익을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없고,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이런 엄격한 기준이 있는 이유는 병원이 돈벌이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의료는 빈부와 지위 고하와 상관없이 건강권을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병원 장사>의 김기태 저자는 기자로 일하던 2010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 기획으로 가난한 사람이 더 쉽게 다치고 병들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더 쉽게 사망하는 ‘건강 불평등’을 취재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업화된 병원의 실태를 목격한다.

    과잉진료와 의료사고, 거대 병원들의 무한경쟁 속에 사라져가는 동네병원, 돈 안 되는 응급의료나 산부인과가 줄어드는 현상, ‘공짜 스케일링’을 내세워 고가의 시술을 강권하는 네트워크 병원들…

    이러한 문제의식을 벼려 2012년 같은 매체에 ‘병원 OTL’을 연재했다. 병원과 의사, 정부정책, 산업화한 재벌병원, 이에 장단을 맞추는 언론 등의 문제점을 두루 짚어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문제를 보여주는 이 기획을 연재시 부족했던 부분을 보강하고, 새 글을 더해 책으로 엮었다. <병원 장사>는 공공에서 시장으로 난폭하게 떠밀리고 있는 한국 의료의 현실을 정밀 진단하고 있다.

    “병원이 돈을 밝힌다는 것쯤이야 병원을 한두 번 드나든 환자들도 일찌감치 눈치 챈 내용이었다. ‘병원 상업화’를 다루는 기획은 자칫 중언부언이 될 가능성이 컸다. 여러 아이디어가 오가는 가운데 나온 안이 ‘가짜 환자로 들어가보자’였다. 조심스럽게 실험을 시작해보았다. 결과는 싱거웠다. 날로 경쟁이 치열해져가는 의료시장에서, 대형 병원들의 ‘싹쓸이‘와 중?대형병원들의 과잉진단, 과잉진료의 증거들이 어처구니없이 쉽게 드러났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병원 관계자들의 익명 좌담을 마련했다. 병원들이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지도 관찰과 통계를 통해 입증되기 시작했다. -‘머리말’ 중에서

    과잉진단 과잉진료 … 싱거운 가짜 환자 실험 결과

    취재를 위해 가짜 환자 실험을 했다. 병원들이 안 아픈 생짜 환자에게 어떤 처방을 내리는지 두고 보기로 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척추전문병원이었다. 의사는 환자 몸에 손을 대보지도 않고 문진을 하다 엑스레이를 찍고는, 대뜸 70만 원짜리 MRI를 권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에 갔다. 여기서는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주고, 통증이 지속되면 다시 오라고 돌려보냈다.

    전문의에 따르면 “급성요통은 치료가 없어도 자연 치유가 쉽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2주 이내에 80%가 좋아진다. 마비가 오는 등 긴급 처치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2~4주 쉬면 된다. 소염진통제를 먹거나 물리치료를 하면서 통증이 완화되길 기다려보고, 이후까지 통증이 지속되거나 긴급 수술이 필요한 이상이 있을 때만 CT나 MRI 같은 검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의 척추 수술 환자 수는 2008년 7만9418명이었다가 2010년 10만368명으로 2년 사이 26.3% 증가했다. 척추 수술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매출 늘리는 의사에게 인센티브 지급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척추 수술 전문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을 보면(중복응답 가능), ‘고령화에 따른 유병률 증가’(77.3%) ‘신의료기술의 신속한 도입’(64.9%)에 이어 ‘의사들의 수술 유도’(43.8%) 때문이란 답이 나왔다. 불필요한 수술이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많은 답이 나온 ‘신의료 기술의 신속한 도입’ 역시 고가의 장비와 재료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병원들이 상업적 이익을 남기려고 수술을 더 하고 고가장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병원들이 ‘매출’을 늘리는 의사에게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검사를 하나라도 더 하고, 수술을 더 하면 병원과 의사의 수익이 올라간다.

    이어 찾아간 치질 수술 전문병원에서는 당장 수술하고 내일모레 퇴원할 것을 권했다. 배변시 조금 피가 나는 증상에 대한 처방이었다. 공공병원에서는 같은 증상에 약을 지어주었다.

    치질 수술 분야 역시 1999년 6만 건이던 것이 2001년 18만4천 건으로 2년 사이 시장이 3배로 늘어났다. 치질 수술 건수가 드라마틱하게 증가한 데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갈수록 서구화하는 식습관의 영향도 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외과 병의원들이 경쟁적으로 항문외과를 개설하고, 과잉중복 수술을 한 것이 큰 원인이다.”라고 분석했다.

    영리병원 허용이 과잉의료 키웠다

    크고 작은 병원들이 돈벌이에 매달리는 데는 정책적인 배경이 있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의료영리법인 시험적 허용안을 시작으로 2006년 제주도 경제자유구역법의 영리병원 조항 준용, 2011년 송도국제병원 우선협상자 지정 등, 지난 10년 동안 병원에 투자, 배당을 허용하는 민영화 정책이 정부,관료,기업 주도로 추진되어왔다. 박근혜 정부 또한 영리병원 도입에 관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원칙적으로 의사 혹은 비영리법인만 설립할 수 있는 의료법의 규제를 정부가 하나둘 풀어주어 민간자본이 병원에 유입될 수 있고, 결산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이윤을 배당하는, 한마디로 기업과 마찬가지로 상업적 목적으로 무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된 것이다.(47쪽)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검진을 유도하고, 보존적 치료로 회복이 가능한데도 수술을 시행한다. 의료 시장은 정보 비대칭 영역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와 가족은 건강과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의사와 병원의 권유와 처방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병원의 이윤 추구를 위해 환자들은 필요 이상의 진료를 받고 돈을 쓰게 된다.

    병원장사

    의료 시장화의 최대 수혜자는 의산복합체 삼성

    삼성은 의과대학, 대형 병원, 제약회사, 보험회사, 의료기기를 아우르는 ‘의산복합체’다. 삼성은 2010년 5대 신사업 분야의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선정했다. 삼성은 이미 삼성병원과 삼성생명을 가지고 있다. 의료 신사업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2011년, 바이오의약품 생산 사업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에 2020년까지 2조1천억 원을 투자해 바이오의약품 생산 및 연구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삼성물산도 병원산업에 손을 댔다. 삼성전자, 삼성서울병원 등 계열사들과 함께 ‘병원 패키지 수출’ 사업을 시작했고, 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 사업에 참여해 병원 건설과 의료기기 제조와 판매에 나섰다.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의료 서비스 산업 고도화의 과제’ 보고서에서 영리의료법인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제시했다. 2008년 기획재정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에 이 두 주장이 반영되었다. 영리병원 1호는 삼성이 지분을 갖고 있는 인천 송도의 국제병원이다. 민간의료보험 업계의 선두주자는 삼성생명이다. 정책 변화의 혜택은 삼성으로 돌아간다.(243쪽)

    어떻게 공공 의료를 강화할 것인가

    영리병원을 도입해 투자가 활성화되면 의료 서비스의 질은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 혜택은 고소득층 일부에게 돌아가고, 국민 대다수의 건강권은 희생된다.

    이에 대해 김창엽 서울대 보건학 교수는 ‘민주적 공공성’을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의료의 공공성은 당위의 영역에 속한다. 단기적 방안으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지금보다 더 확대하는 것이다.(259쪽)

    주치의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병원이 이윤 추구로부터 좀더 자유로워지는 데에는 진료비 보상을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포괄 수가제로 바꾸는 것도 유효하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은 병원의 소유와 지배를 공공화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 권력과 경제 권력 모두에 시민사회 권력을 강화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우석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 추천의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의료 체계의 변화와 발전은 각성하고 분노한 시민들의 몫이다.

    필자는 ‘마무리 글’에서 공공 의료를 강화하고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OECD ‘한국 의료의 질 검토 보고서’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안하는 공공 의료 강화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265쪽)

    OECD ‘한국 의료의 질 검토 보고서’ 의료의 질 개선 방안 가운데 일부

    -지역사회 중심의 1차 의료기관을 강화한다

    한국에서 1차 의료기관이 ‘게이트 키퍼’ 구실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진단과 시술, 입원이 이뤄진다.

    -포괄수가제를 도입한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행위별수가제에 의존하고 있어 입원과 외래 서비스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행위별수가제에 따르면 병원은 진단을 오래 할수록, 시술을 많이 할수록, 입원을 오래 시킬수록 돈을 많이 벌게 된다. 과잉진료, 과잉시술을 부추긴다.

    -병원과 의사들의 성과 및 과실 자료를 공개한다

    환자들은 자신이 받는 의료의 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심지어 의료사고로 사망해도 유가족은 영문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병원이 의료행위의 내용을 환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응급서비스의 질을 강화한다

    한국에서 응급의료 서비스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인 급성심근경색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30일 내 사망하는 비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점 부실해지고 있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안하는 공공 의료 강화 방안 가운데 몇 가지

    -국민건강보험을 중심으로 재정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민간의료보험은 답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 확대로 국민전체 의료비의 85%수준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

    -중증 질환 등 고액진료 환자에게 더 많은 건강보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40%가량이 병원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 적이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은 것이 한 원인이다.

    -의사 인력의 교육과 양성과정이 전면적으로 재편돼야 한다

    “최근처럼 의사를 교육하는 과정에 돈이 많이 드는 상황에서는 투자비용이 큰 만큼 더 높은

    수익을 바라는 시장의 논리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공공병상이 확충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상 비율은 10% 수준이다. OECD에서 가장 낮다.

    <병원 장사>의 각 장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특히 척추와 치질 분야에서 과잉시술이 심한 것으로 알려진 병원을 필자가 직접 찾아가 진단을 받은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현장 교수의 증언을 통해 과잉진료가 이뤄지는 배경을 서술했다.

    2장에서는 돈벌이를 위해서 의료계에서 편법 혹은 불법적으로 이어지는 의료 시술의 문제를 다뤘다. 이를테면 바지사장을 내세워 시술을 하는 사무장 병원, 네트워크병원의 문제를 소개했다. 이런 불법에 대해서 일부 언론은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홍보를 하기도 했다.

    3장에서는 중대형 병원의 위세 속에서 말라죽는 동네의원의 현주소를 짚었다. 그리고 동네의원이 소중한 이유와 의료계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까닭도 점검했다.

    4장에서는 의료생태계를 파괴하는 대형병원들의 무한 경쟁을 살펴보고, 병을 만드는 건강검진 시장이 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지도 소개했다.

    5장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해야 할 공공의료기관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위축됐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점검했다.

    6장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크고 작은 병원에서 찬밥 신세인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의 문제를 전했다. 이 분야에는 투자도 소홀했고, 인력도 모이지 않았다. 결국 위협받는 것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었다.

    7장은 병원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력을 아끼고, 장비를 아끼는 바람에 벌어지는 의료사고의 문제를 짚었다. 의료현장에서 값싼 노동력인 전공의들은 졸면서 시술을 할 수밖에 없다.

    8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사회는 의사에게 선생님이기를 요구하지만, 지금 우리의 의사 양성 시스템은 결국 영리를 추구하는 자영업자를 양산할 뿐이었다.

    9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의료 민영화를 추구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누구인지를 짚어봤다. 의료상업화를 이끄는 의산복합체의 실체는 이제껏 구체적으로 파악된 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록에서는 우리나라 대형 병원들의 사망률 정보를 공개했다. 병원들의 실력이 검증되지 않으니, 의료기관들은 결국 무리한 규모 경쟁을 할 뿐이었다. 사망률 정보 공개를 통해 환자들이 더 많은 판단 근거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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