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영화와 경쟁체제가
    한국 철도의 미래일 수 없다
    [기고] 제3의 길은 없다 - 제2공사 추진은 우회적 민영화
        2013년 03월 13일 02:17 오후

    Print Friendly

    3월 11일 새 정부의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이제 철도 정책은 박근혜정부의 몫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였던 지난 한 해는 수서발 KTX 민영화를 둘러싼 문제로 많은 사회적 갈등을 빚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그동안 추진됐던 철도 정책이 갖는 문제가 무엇인지 심도 있게 분석하고 철도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 임명된 서승환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문회 과정에서 밝힌 내용과 이에 따른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면 정부가 미래지향적 철도 발전 전망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인사 청문회에서의 KTX 민영화 관련 답변에서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철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새 정부의 입장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어서 덧붙인 현재의 체제도 문제가 있는 만큼 제3의 길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철도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는 우려를 주기에 충분하다.

    철도 경쟁체제의 도입….이게 박근혜 정부의 정책?

    일부 언론은 벌써 제2의 철도공사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장관이 밝힌 방침은 이명박정부에서 추진했던 철도정책의 연장선에 서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체제란 철도공사가 철도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철도의 부실이 경쟁의 부재에 있다는 진단에서 시작하는 논리다. 지난 십 수 년 간 철도개혁이란 이름아래 민영화를 추진해왔던 세력들이 일관되게 유지했던 입장이다.

    한국철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일은 정부 정책부서에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잣대가 협소하거나 한국철도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는 철도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아전인수식 진단과 대안으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기까지 했다.

    지난 시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수서발 KTX 민간경쟁체제 도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이 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의 문제로서의 민영화 문제이다. 아무리 시장만능주의가 대세라고 해도 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공공부문 갖는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사회기반시설인 철도의 공공적 유지는 시장경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도 또 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시민 친화적인 보편적 복지로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이런 사회적 자산을 일부 재벌과 그들에 투자한 외국 투기자본의 몫으로 넘기는 것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반사회적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철도산업의 진정한 발전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철도의 경영부실이 경쟁의 부재로 인해 발생했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하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에서 일관되게 주장한 “경쟁만이 살길이다”는 것은 그동안 누적돼온 정부의 정책오류까지 교묘하게 철도운영기관에게 떠넘기고 있다.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교통시스템은 사회의 변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00년대 하루에 340여 편에 달했던 영국 각지로 떠나는 런던 발 우편마차는 철도의 등장으로 소멸해 버린다. 영국 주요 도시의 운하를 이용한 화물 운송도 철도에 밀려 사라졌다. 세계 각국에서 철도가 등장한 이래 철도는 부설된 나라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고 절대적인 수송 분담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등장과 도로교통의 발달은 철도를 한물간 교통수단으로 전락시켰고 나라 전체에 깔린 선로와 역사를 갖고 있는 이 거대한 사회적 장치는 돈 먹는 하마가 되어버렸다.

    전 세계적 흐름이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경쟁을 안 해서 철도가 부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도로 중심으로 교통체제가 전환되는 시점에서는 철도에 경쟁에 경쟁을 더해도 더 큰 손실만 양산할 뿐이다.

    사양산업으로 몰려 애물단지가 되는 듯 했던 철도를 기적적으로 환생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철도를 몰락시켰던 도로교통이다.

    도로교통의 대안으로 철도교통이 재부상한 것

    한 때 선진사회의 상징이었던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로 변했고 그 대안으로 철도를 소환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도로교통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높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KTX가 개통되면서 국내선 항공편이 부진을 면치 못한 이유는 항공사들이 경쟁을 치열하게 하지 않았거나 갑자기 경영이 부실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알 수 있다.

    국토교통부의 입장을 보도하는 언론에 따르면 수서발 KTX를 제2공사에게 맡기는 것은 한국 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예나 서울지하철의 서울 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와 같은 경쟁체제를 말한다고 한다.

    이것이 제3의 길이라면 꽉 막힌 길이다. 네트워크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거점형으로 운영되는 공항시스템을 철도와 비교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증명할 뿐이다.

    과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는 개혁의 대안으로 통합을 선택했다. 유사기능과 중복기능의 비효율을 통합을 통해서 극복하겠다는게 그 이유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유사기능과 중복기능이 아니라 동일기능이다. 똑같이 서울에서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굳이 분할하지 않아도 되고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견해도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기된다.

    서울의 지하철이 분리되었던 이유는 경제논리가 아니었다. 정치논리와 노조무력화의 한 방편으로 시도된 것으로 당시 강성노조로 이름을 떨쳤던 서울지하철공사노조에 대한 견제책이었다.

    더구나 이 두 기관은 경쟁하지 않는다. 요금도 동일하고 서비스 수준도 비슷하며 무엇보다 각 노선은 독자성을 갖고 있어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수유리에서 과천을 가는 시민은 서울 메트로의 4호선을 타야하고 천호동에서 김포공항을 가는 승객은 도시철도공사의 5호선을 타야한다. 경쟁의 전제인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례를 경쟁사례라고 소개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현재 서울지하철의 발전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두 서울지하철 운영기관의 통합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두 기관으로 나뉘어진 고위 경영진들의 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비용이 절감되고 현장인력 중심의 운영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기 지하철인 도시철도 공사의 경우 깊은 지하 심도만을 운행하는 노선이 많아 기관사들이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양기관의 통합을 통해 순환 근무 시스템을 만든다면 일정부문 해소 될 수 있는 문제다.

    제2공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운영을 맡겨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국토교통부의 입장은 민간경쟁체제에서 앞의 두 글자만 지운 것으로 기본적으로 수서발 KTX가 갖는 여러 가지 특혜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경쟁의 최소한의 전제는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전국의 철도 운영을 책임지는 철도공사와 수익성이 보장된 고속철도만 운영하는 제2공사는 애초에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철도에서 진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똑같은 노선을 하나 더 건설해 두 운영기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인데 천문학적인 철도 건설비용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제2공사가 철도공사와 공정한 경쟁을 하려면 현재 철도 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일반철도의 적자 노선을 똑같이 나누어 운영하거나 적자선만 운영하는 또 다른 공사를 만들어야한다. 철도 네트워크의 특성을 교란시키는 이런 체제가 효율적인 것인가?

    제2공사 추진은 국토교통부가 그동안 민간경쟁체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비판한 비효율적인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도로공사를 효율화 시키겠다며 똑같은 기능을 하는 도로공사 하나를 더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추진과정과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은 중복투자에 따른 예산낭비, 기관간의 갈등과 책임 떠넘기기 등 무엇 하나 국민들에게 이로울 게 없는 구조다.

    수도권집중 여객을 분산시켜야, 철도의 편의성이 증대

    정부는 수서발 KTX 노선이 왜 계획되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되새겨 봐야한다. 한국철도의 비효율을 가중시킨 이유 중의 하나는 수도권 중심의 철도네트워크 때문이다.

    KTX 수익의 80%, 수송량의 70%가 수도권 이용객이다. 일본의 여러 고속철도 노선 중의 하나인 도카이도 신간센 노선만 해도 도쿄-나고야-오사카라는 거점 대도시를 운행하면서 각각의 도시들이 품고 있는 일반철도 노선의 이용객들을 흡수하고 있다. 하루 이용객만 해도 40만명이 넘어 한국 고속철도 전체 이용객의 4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독일의 베를린-프랑크프르트 노선이나 이와 유사한 유럽의 도시 간 고속노선도 적절하게 이용객이 분산되어 있다.

    75 (1)

    일본 신칸센의 자료사진

    그러나 한국철도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서울-금천구간의 고속선과 일반선이 만나는 지점의 선로 포화상태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병목구간으로 인해 늘어나는 고속열차의 승객을 감당할 수 없어 통로마다 입석으로 가득 찬 KTX가 달린다.

    일반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도 대폭 줄어든 일반열차의 운행편수가 불만이다. 또 수도권으로부터 연결되어야 탑승률이 높아지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의 비수익노선도 선로용량 한계로 열차편수를 늘일 수 없고 이것은 열차이용의 편의성을 떨어뜨려 열차이용을 외면 하게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을 찾다가 최종 선택된 방안이 수서-평택간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해 체증구간을 우회하여 철도의 선로용량을 대폭 확대하는 안이었다. 서울 동남부와 수도권 동부 지역의 철도이용을 확대하고 서울역으로 집중된 승객을 분산하게 되면 한국철도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열차좌석공급부족이 상당히 해소되기 때문이다.

    결국 수서-평택 노선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특성 때문에 기형적으로 발달한 한국철도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고 철도네트워크의 자기 완결성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수서-평택간 노선으로 선로용량의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답보상태에 빠졌던 일반철도노선의 준고속화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속140km가 최고인 서울-대전 구간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의 일반열차 운행시간은 1시간 55분 정도 걸리는데 이것을 시속 180km~200km 정도로 올리면 1시간 20분 내외로 운행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KTX 보다는 느리지만 150~200km 이내의 중단거리 노선은 일반열차를 이용해도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KTX의 좌석보유율을 높여 쾌적한 장거리 여행을 보장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소득과 운임수준이 아니라 기능과 용도에 따른 선택 보장해야

    한국철도가 낙후된 일반철도와 고급형 고속철도로 분리되고 소득수준에 따른 차별적 열차선택이 아니라 열차의 기능과 용도에 따른 철도 선진국형 이용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시점이다.

    철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와 정부의 도로중심 교통정책, 선로용량의 한계로 인한 열차운용의 탄력성을 발휘할 수 없는 문제를 극복하고 이제야 철도운영의 본모습을 찾을 수 있는 단계에 와있다. 식민지 철도로 시작한 한국철도가 비로소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명분으로 제2철도공사를 추진하는 것은 한국철도의 앞길에 쐐기를 박는 일이다. 철도공사와 제2철도공사의 경쟁구도는 수익성 높은 고속선을 독점한 제2공사와 철도공사의 무리한 경쟁만을 촉발하게 된다. 철도공사는 현재처럼 고속철도 운영위주의 편성으로 일반열차와 고속열차의 동반성장은 요원하게 된다.

    한국철도_노선도_(101101)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한국철도의 노선을 제2공사체제로 나누기에는 너무도 협소한 규모라는 사실이다. 철도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네트워크의 유기적 완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5천 키로미터의 운영노선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3500여 키로미터의 영업거리를 가지고 있는 한국철도를 경쟁을 빌미로 잘게 쪼개는 것은 국가의 장기적 발전전망에 비추어 보아도 부적절하다.

    특히 제2공사가 문제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가 밝히고 있는 미래 철도 정책에 따른 신설 노선들에서 광범위한 민영화를 도입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5년간 철도에 투자될 예산은 22조원이 투입되었다는 4대강 예산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한 강원권 노선을 비롯한 많은 철도노선도 신설될 계획인데 이 노선들에 대한 민간투자사업 도입이나 운영권 임대를 통한 민영화는 진작부터 고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권시절 무리하게 추진하다 제동이 걸린 관제권에 대한 회수 시도도 제2공사가 설립되면 공정경쟁을 이유로 손쉽게 성사시킬 수 있다.

    지금 한국철도에 필요한 것은 잘못된 진단을 근거로 한 경쟁체제의 도입이 아니라 철도 네트워크가 철도 안에서 그리고 다른 교통수단과의 조화를 통해 우리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제2공사로 얻는 이익은 국토교통부의 산하기관이 늘어 몸집을 불리는 것 외에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새로 채워 내야할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감사자리 등 고위 관료들의 퇴직 후 일자리 창출이나 정치인들의 영전자리가 늘어나는 것을 바라는 국민은 없다.

    박근혜 정부는 무엇보다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시 하고 사회의 여러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대통령의 뜻이 제대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도 부처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 여론을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한다.

    필자소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원

    페이스북 댓글